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128화 (128/599)

<-- [여름 바다] -->

“…….”

주르륵 나열된 알림문구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신을 차린 나는 곧바로 랜덤 스킬 상자부터 수령했다.

[축하합니다!]

[스킬 ‘슬라임 소환’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슬라임 1마리를 소환합니다.]

[강제로 역소환되었을 시, 10분 뒤에 다시 소환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슬라임인가.”

고블린과 스켈레톤 그리고 오크에 이어서 이번에는 슬라임까지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소환술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4시 45분이라…….’

서연이 누나가 6시에 퇴근할 테니, 적어도 1시간의 여유가 남아있었다.

“이계 퀘스트나 해볼까.”

이리 생각한 나는 곧바로 이계 퀘스트 목록으로 넘어갔다.

[이계 퀘스트]

[오크 족장의 상징]

오크 족장은 마정석 파편이 자신의 힘과 정력을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때문에 오크 족장은 과감하게 자신의 남근에 마정석 파편을 심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오크 족장의 정력이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해졌습니다.

물론 정력만이 아닙니다.

정액은 진흙처럼 끈적끈적하게 되어서 암컷을 무조건 임신시키는데다가, 암컷의 성감대는 자극시키는 성분까지 포함되어 오크 족장의 남근 맛을 본 암컷은 무조건 그에게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건 같은 종족의 암컷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크 족장은 보다 강해진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타 종족의 암컷을 사로잡은 뒤에 교미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미에 아무리 강인한 정신력과 육체를 가진 암컷이라고 해도 금세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세상은 오크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오크 족장으로부터 마정석 파편을 얻어내십시오. (보상 : 랜덤 장비 상자)

[곤란에 처한 엘프]

엘프의 숲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이를 심상치 않게 여긴 엘프들이 오염의 근원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엘프들이 마정석 파편을 찾아내기 전에 먼저 찾아내세요.

-엘프들보다 더 먼저 마정석 파편을 찾아내십시오. (보상 : 랜덤 스킬 상자)

“엘프라…….”

앞선 오크 족장 퀘스트보다도 훨씬 쉬워보였다. 게다가 딱히 전투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곧바로 곤란에 처한 엘프를 선택했다. 그러자 일순 눈앞이 일그러졌다가 이내 환하게 밝아지며 우거진 숲 속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 있을까?’

이렇듯 숲 속으로 이동한 나는 마정석 파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 미니 맵을 열람했다.

“꽤 멀리 떨어져있네.”

이전의 퀘스트들과는 다르게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마정석 파편이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기서 불평불만을 해봐야,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시간만 축내는 꼴이었다.

“끄으윽.”

그런데 그 때, 가래침 끓는 소리가 오른쪽 수풀에서 들려왔다.

‘뭐지?’

온 몸의 털이란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칠흑의 지팡이를 소환한 뒤에 소리가 들려온 쪽을 응시했다.

“…….”

그렇게 얼마간 기다리자, 부패한 피부와 다 헤어진 옷가지를 입고 있는 무언가가 흐느적거리며 수풀 사이로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좀비?’

그것을 본 순간, 좀비라는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실제로 그것은 다 썩어가는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느리긴 해도, 양 팔을 휘저으며 절뚝절뚝 다가오는 모습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하아.”

가볍게 숨을 내뱉은 나는 그대로 지팡이를 좀비 쪽으로 겨누었다.

“……어둠의 화살.”

펑!

주문을 외움과 동시에 빠르게 쏘아져 나간 검은색 구체가 그대로 좀비의 머리통을 꿰뚫으며 폭발했다.

“으윽.”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고 말았다. 아무리 마법으로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폭발과 동시에 터져나가는 머리통은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어어…….”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 폭발 소리를 듣고 몰려드는 모양인지 사방에서 좀비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블린 소환.”

그 소리에 나는 재빠르게 고블린들을 소환했다. 그러자 스물네 마리의 고블린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둘러쌌다.

“……좀비들을 처리하세요.”

“케르륵! 주인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이렇듯 내가 명령을 내리자, 고블린들이 좀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에 좀비들도 고블린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양 손을 허우적거려보지만, 고블린들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인지 부딪히는 족족 우직우직 소리를 내며 부러지거나 잘려나갔다.

‘압도적이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숨을 고르던 나는 이내 모든 좀비들을 처리하고 내 곁으로 모인 고블린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러한 내 말에 고블린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으며 복종의 뜻을 표시했다.

그 모습에 조금 뿌듯한 마음이 일어나긴 했지만 지금은 이들을 칭찬해줄 때가 아니었다.

‘서두르자.’

목표하고 있는 마정석 파편이 가까이에 위치해있다면 고블린들에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없냐고 물어봤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마정석 파편이 멀리 떨어져있었다. 더욱이 내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돌려 미니 맵에 표시되어 있는 마정석 파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이리 생각하며 몸을 굳히는데, 또다시 젊은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

그 목소리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모른 척 하고 마정석 파편이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겨야 될까, 아니면 가서 구해줘야 될까?

“아악!”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또다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구하자.’

비명소리를 못 들었다면 모를까, 들은 이상 못 들은 척 하는 것은 아무래도 찝찝했기 때문이었다.

‘……저긴가.’

그렇게 한동안 걸음을 옮기자, 얼핏 봐도 오십이 넘어가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은 다리를 다친 모양인지, 절뚝절뚝 걸으면서도 어떻게든 좀비들로부터 도망쳐보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좀비들은 그런 여성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끈질기게 달라붙고 있었다.

“아악!”

그 때, 좀비 한 마리가 여성의 팔을 물어뜯었다. 그 때문에 여성은 저도 모르게 비명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동시에 숲 속 여기저기서 좀비 울음소리가 그로테스하게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이 숲 속에 있는 좀비들은 소리에 민감한 모양이었다.

‘좀비들이 더 몰려오기 전에 구해야겠네.’

이리 생각한 나는 내 뒤에 서있는 고블린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길을 뚫어주세요.”

“케르륵! 맡겨주십시오! 케륵!”

이러한 내 말에 스물네 마리의 고블린들이 용감하게 좀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틈에 나는 다친 여성 쪽으로 뛰어갔다.

“그어어어!!”

“케르르륵!!”

두 무리가 맞부딪친 순간 퍼석! 퍼석! 하고 찰흙덩어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부서지는 쪽은 좀비들 쪽이었다. 고블린들은 철저하게 좀비들을 박살내며 길을 뚫었고, 나는 좀비의 살점과 피로 얼룩진 길을 가로지르며 여성 쪽으로 다가섰다.

“괜찮으세요?”

“이, 인간……?”

여성은 무척이나 놀란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이에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근처에서 퍼석!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재빨리 여성을 품에 안은 뒤에 뛰기 시작했다.

“……자, 잠깐! 놔라! 꺅!”

“가만히 계세요.”

“하, 하지만…….”

“가만히 안 있으면 버리고 가겠습니다.”

“…….”

이러한 내 말에 여성의 입이 거짓말처럼 꾹 다물어졌다. 아무리 내 품에 안기는 게 싫다고는 해도, 좀비가 가득한 이 숲에서 버려지는 건 또 싫은 모양이었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최대한 멀리, 안전한 곳까지 뛴 다음에 여성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하아.”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토해낸 나는 그제야 구해낸 여성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예쁘네.’

구할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못 봤는데, 이렇게 두고 보니 꽤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가로저은 나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고블린 역소환.”

이리 말하는 것과 동시에 저 뒤편에서 그어어어! 하고 분성을 터트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인간이 여기에…….”

그 때, 여성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단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에 나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여성의 귀가 뾰족하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엘프구나.’

엘프라는 말은 원래 고대 노르웨이어의 알브(alfr)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말 그대로 요정이다. 그리고 이들 알브는 하늘에 있다고 여겨진 알브헤임에 살고 있으며 신과 마찬가지로 숭배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엘프는 숲속에 있으니, 아마도 그 알브와 같은 기원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알브헤임에서 추방되었다거나 말이다.

‘……어쩌면 여기가 알브헤임일지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브헤임에 좀비라니.’

농담도 이런 농담이 없었다. 그리고 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였다.

“대답해라, 인간!”

이렇듯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는데, 돌연 엘프가 날 향해 으름장을 내어놓았다. 슬쩍 표정을 살펴보니, 꽤 심각해보였다. 아무래도 이 숲은 인간이 들어오면 안 되는 그런 종류의 숲인 모양이었다.

“진정하세요.”

“대답해라! 어떻게 여길 들어온 것이냐!”

그녀는 무언가 무기를 찾아서 주변을 더듬어보지만, 손에 잡히는 무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버리고 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기엔 숲 속에 좀비가 너무 많았다.

‘……치료해주면 될라나.’

다만 치료해준 뒤가 문제였다. 만약에 날 적대한다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이내 입을 열었다.

“치료해드리겠습니다.”

“뭐?”

“당신을 구하긴 했지만, 당신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도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해야 될 일이라니…….”

“치료술사의 지팡이 소환.”

“헉!”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난 지팡이의 모습에 적잖게 당황한 모양인지, 그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내 손에 잡혀있는 지팡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표정이 제법 우스꽝스러워서,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지만, 나는 그것을 꾹 참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상처 회복, 체력 회복.”

이렇듯 주문을 외자, 새하얀 아지랑이가 엘프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좀비에서 물어 뜯겼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며, 금세 상처 하나 없이 말끔히 치료되었다.

“…….”

이 광경에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었다.

치료술사의 지팡이를 역소환한 나는 칠흑의 지팡이로 땅바닥으로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돌아가세요. 여긴 위험합니다.”

이 말과 동시에 미니 맵을 확인한 뒤에 마정석 파편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여성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자, 잠깐만!”

그 외침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긴 했지만, 나는 이내 귀찮다는 생각에서 곧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더욱이 시간도 없고 말이다.

“……잠깐 기다려!”

“…….”

그러나 여성은 나를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크게 소리치며 나를 뒤따라오기 시작했다.

‘저 소리에 좀비들이 몰려오겠네.’

왠지 모르게, 괜히 구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락 눈살을 찌푸린 나는 걸음을 멈춘 뒤에 여성을 쳐다보았다.

“조용히 하세요. 좀비들에게 또 둘러싸이고 싶은 겁니까?”

“아? 아……. 미안…….”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모양인지, 내게 사과하는 엘프 여성이다. 이에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벗어나세요.”

“우리에게 피해가 갈지, 안 갈지 어떻게 알 수 있지?”

그 물음에 나는 진지하게 이 여성을 노예로 만들지, 안 만들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노예로 만드는 과정 역시 시간이 오래 걸렸다. 쓰게 혀를 찬 나는 엘프 여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따라오세요.”

“에?”

“절 따라오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내 말에 여성은 그제야 얼굴색을 밝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늦었지만, 날 구해줘서 정말로 고맙다. 내 이름은 리샤르. 리샤라고 불러도 좋다.”

“김 유현입니다. 유현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리샤.”

이렇듯 악수를 나누며 자기소개를 한 우리는 곧바로 마정석 파편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던 중에 리샤가 내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유심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것은 무엇에 쓰는 것이냐, 유현?”

“검은색 돌을 찾는 용도에 쓰이는 겁니다.”

“검은색 돌?”

“그렇습니다.”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아니,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으니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 말에 리샤는 감탄성을 터트리며 ‘인간들은 정말로 신기한 물건을 사용하는구나.’라고 말했다.

그 언행을 보아하니, 인간과 접촉한 적이 그다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로브도 안 입었네.’

뒤늦게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리샤가 내 옷차림을 가지고 무어라 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순수하게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 태도가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내게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리샤.”

“응?”

“이 숲엔 원래 이렇게 좀비가 많습니까?”

========== 작품 후기 ==========

엘프!! 그리고 슬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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