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 퀘스트] -->
“여기사라…….”
퀘스트의 내용은 여기사, 에나에게서 마정석 파편을 얻어내라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문제는 에나가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병사들과 싸워야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살인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사람을 죽인다니…….’
아무래도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윈 헤드 오우거와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보단 사람이 좀 더 상대하기 편할 테니까.’
나는 일단 현관 쪽으로 돌아간 뒤에 신발을 신었다.
“뭐, 일단 해보자.”
천천히 숨을 들이켠 나는 곧바로 이계 퀘스트 ‘여기사와 영주’를 선택했다.
[이계 퀘스트 [여기사와 영주]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스마트폰 화면에 떠오른 알림문구에 나는 곧장 네를 눌렀다.
그러자 잠시 눈앞이 어두컴컴해졌다가 이내 자취방의 풍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어두운 숲 속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다만 완전히 어두운 것은 아니었다.
달빛이 생각보다 강해서 주변의 사물이 명확하게 인식되고 있었다. 더욱이 밤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무수히 많은 별들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실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모습에 잠시 넋을 빼고 있던 나는 이내 정신을 추스른 뒤에 미니 맵을 확인해보았다.
“저쪽인가.”
항상 그랬듯이 목표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나는 달빛에 의지해서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갔다.
채앵!
그 때, 저 멀리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과 미니 맵에 표시되어있는 대상의 위치를 비교해보니, 거의 일치했다. 아무래도 영주가 보낸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싸워야 되는 건가.’
쓰게 혀를 찬 나는 곧바로 소리가 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얼마 가지 않아서, 나는 열댓 명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공격받고 있는 한 명의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어이, 너무 다치게 하진 말라고?”
“귀하신 몸이니까, 몸에 상처가 안 나게 해야지. 흐흐.”
“조심해! 힘을 빼게 하란 말이야!”
“아, 저 년 살결 흰 것 좀 보라고? 미치겠네.”
에나를 둘러싸고 있는 병사들은 저마다 음담패설을 하며 침을 질질 흘려대었다. 반면에 이번 퀘스트의 목표인 에나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병사들이 내지르는 검과 창을 묵묵히 받아내며 방어에 전념하고 있었다.
‘저 여기사가 에나인건가.’
꾹 다문 입술과 오뚝한 코 그리고 적을 무심히 쏘아보는 파란색 눈동자는 섬뜩하리만큼 아름다웠다. 특히나 은실을 엮어 만든 듯한 은색 머리카락은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과연, 병사들이 침을 뚝뚝 흘리며 그녀를 노릴만 했다.
“윽!”
그 때, 병사가 휘두른 창대가 에나의 어깨를 때렸다.
때문에 에나는 짤막한 침음성을 내뱉으며 몸을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여러 병사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저마다 소리쳤다.
“하핫! 됐다! 얼른 무기를 뺏어!”
“끝내자고!”
에나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자, 병사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공격에 에나는 급급하게 검을 들어 수비를 하다가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붙잡아!”
“드디어 저 년이 처녀인지, 아닌지 알게 되겠군.”
또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에나의 얼굴에는 낭패한 표정이 그려졌다.
그녀는 분하다는 듯이 병사들을 한번 둘러보더니, 곧 맨손으로라도 싸울 생각인 모양인지 두 주먹을 꽉 쥐고서 병사들이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 하도록 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 정도는 우습다는 듯이 낄낄대며 에나에게 다가갔다.
“어이쿠, 쳐보시려고요? 어디 한번 쳐보시죠? 응? 잘난 기사 나으리!”
“낄낄, 우리가 잔뜩 귀여워해 줄 테니까 그만 힘 빼라고?”
“저 야들야들한 속살 좀 보라고? 미칠 것 같네.”
잔뜩 흥분한 병사들은 방패 따위로 그녀를 밀치며 제압한 뒤에 땅바닥에 넘어트렸다.
“놔라!”
순간 에나의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병사들은 더더욱 흥분한 듯이 크게 소리쳤다.
“이 년 앙칼진 것 좀 봐라? 야, 팔이랑 다리 좀 꽉 붙잡아봐!”
“놔! 으윽!”
사지가 붙잡힌 에나는 어떻게든 도망치기 위해서 발버둥 쳐보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신체를 억압하고 있는 병사들의 힘은 배가 되었다.
“이 년은 내가 가장 먼저 따먹는다.”
이리 소리친 병사는 바지춤을 끌어내렸다. 그러자 곧 흉물스런 남근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나는 쓰게 혀를 찼다.
아무래도 내가 나설 수밖에 없어보였다.
“칠흑의 지팡이 소환.”
칠흑의 지팡이를 손에 쥔 나는 수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재차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 하시죠.”
딱히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목소리는 사방으로 또렷하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런 내 말소리에 에나를 둘러싸고 있던 열댓 명의 병사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저 놈은?”
“저 새끼가 미쳤나?”
동시에 에나의 사지를 붙잡고 있는 병사 네 명을 제외한 열 명 정도의 병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손에 쥐며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나를 쏘아보는 그들의 안광에서 섬뜩한 살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아니, 살해당할 것이다.
‘살해당한다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리 긴장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부가 오싹오싹거리는 것이 즐거웠다.
“도망쳐!”
그 때, 에나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아무래도 내가 병사들을 감당해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일반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나는 혼자였고 상대는 열 명이 넘어가는 신체 건장한 사내들이었다.
당해내지 못 하는 게, 당연했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고블린 소환.”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말했다.
“……오크 소환.”
다시 한 걸음.
“……엘레노아 소환.”
마틸다를 제외한 모든 소환물을 내 앞에 소환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내 주위에 스물네 마리의 고블린과 세 마리의 오크, 그리고 엘레노아가 나타났다.
“헉!”
그 순간, 열댓 명의 병사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이들 모두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더불어 경악어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에나의 시선도 느껴졌다.
기분 좋은 시선들이었다.
‘흥이 나네.’
정말로 흥이 났다.
나는 입가를 이죽이며 입을 열었다.
“제압하세요.”
이렇듯 내 명령이 떨어지자, 고블린과 오크들이 일제히 고함을 터트렸다.
“케르르륵!!”
“크워어어!!”
도합 스물일곱 마리의 몬스터들이 병사들에게 달려들자, 가장 앞줄에 서있던 병사가 변변찮은 저항도 못 한 채 오크가 휘두른 몽둥이에 얻어맞고서 땅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방패병! 막아! 정신 차려! 고블린하고 오크들뿐이다! 막아!”
이렇듯 첫 희생자가 나오자, 이들을 지휘하는 자로 보이는 사람이 크게 소리치며 병사들을 다그쳤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입가를 이죽인 나는 지팡이 끝을 그에게 겨눈 뒤에 입을 열었다.
“어둠의 화살.”
주문을 읊조린 동시에 검은색 화살이 빠른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악!”
지휘관의 어깨를 꿰뚫은 어둠의 화살은 여전히 힘이 넘치는 모양인지, 바로 그 뒤에 서있던 병사의 허벅지까지 꿰뚫으며 소멸했다. 때문에 고블린과 오크들을 막던 병사들이 하나같이 낭패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시발, 이게 뭐야? 고블린이 왜 이렇게 강해!”
“아악!”
특히나 칠흑의 지팡이가 주는 버프를 받고 있는 오크는 상상 이상으로 괴력을 발휘하며 병사들을 휩쓸고 있었다.
“크워어어!!”
오크가 휘두른 주먹에 가슴께를 얻어맞은 병사는 그대로 허공에 붕 떠오르더니,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땅바닥에 쓰러트렸다. 그 후, 게거품을 물며 사지를 부들부들 떨어대었다. 말 그대로 엄청난 괴력이었다.
“아아…….”
이 엄청난 광경에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터트렸다. 몇몇 병사들은 무기를 바닥에 떨어트리고서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뭐, 이쪽은 얼추 끝나가는군.’
피식 웃음을 터트린 나는 에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후, 어둠의 화살을 사용하자, 빠르게 쏘아져 나간 검은색 구체가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있던 병사의 어깨를 꿰뚫었다.
“아악!!”
때문에 병사는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에나의 다리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틈에 그녀는 자유롭게 된 발로 병사의 턱을 걷어 찬 뒤에 자신의 양 팔을 붙잡고 있는 병사들에게도 발차기를 한 대씩 먹여주었다.
“컥!”
“악!”
그 모습이 마치 액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역시, 괜히 기사가 아닌 모양이었다.
내심 감탄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녀 쪽으로 다가간 뒤에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이리 말하며 손을 내밀자, 에나는 잠시 파란색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나를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일순, 굳은살이 잔뜩 배겨있는 손바닥의 감촉이 느껴졌다.
의외의 감촉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그녀가 기사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대단하네.’
재차 감탄한 나는 그대로 손을 잡아당겨, 그녀의 몸을 일으켜주었다.
========== 작품 후기 ==========
역시 물량이 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