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 퀘스트] -->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나올 테니까.”
이리 말한 마틸다는 저 혼자서 집 안으로 쌩하니 들어가 버렸다.
‘그다지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는 것은 금물이었다.
혹시라도 마틸다가 나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 좋은 사람인 척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들 사이로 들어선 뒤에 입을 열었다.
“엘레노아 소환.”
내가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내 눈 앞에 금발의 미녀, 엘레노아가 나타났다.
“주인님~.”
그녀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내 목에 매달려왔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아주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심심했어요. 절 그런 어둠 밖에 없는 공간에 놔두지 말아주세요.”
이리 말하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엘레노아다.
“그 동안 신경 쓰지 못 해서 죄송합니다.”
“미안하면 앞으로 자주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그보다 엘레노아 씨에게 한 가지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뭔데요?”
호기심을 표시하며 묻는 엘레노아의 태도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조금 있다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던전 탐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어머! 그럼 저도 함께 가는 건가요?”
“아니요. 가는 것은 저 혼자 갑니다. 다만 저와 함께 가는 사람들이 그다지 믿음직하지 못 해서……. 만약에 제가 위험해진다 싶으면 곧바로 저를 구해주세요.”
“구해드리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그 이후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엘레노아가 작게 콧소리를 내며 슬쩍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왔다.
“끝나면 안아주실 거죠?”
“물론입니다.”
이렇듯 내가 확답을 내려주자, 엘레노아는 무척이나 만족한 듯이 눈매를 반달모양으로 만들며 환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엘레노아 씨에게 하나 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요?”
이런 내 말에 그녀는 한껏 기대감에 부푼 얼굴을 하고서 날개를 파닥파닥 거렸다.
“매혹의 채찍 소환.”
매혹의 채찍을 소환하자, 순간 내 손에 채찍 하나가 잡혔다.
길고 매끄러운 채찍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살짝 황홀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나 뱀의 비닐처럼 미끌거리는 표면은 악어가죽으로 만든 명품 가방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걸 쓰세요.”
“네? 이, 이걸 저한테 주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엘레노아 씨도 무기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겐 다른 지팡이들이 있으니, 이건 필요가 없습니다.”
이리 말하며 채찍을 내밀자, 그녀는 무척이나 감격에 겨워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가 건네는 채찍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린 채찍을 전체적으로 한번 어루만지더니 곧 황홀해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굉장해요. 이 정도로 순수한 마력은 처음 느껴 봐요!”
감탄성을 터트린 엘레노아는 헤실헤실 웃음을 터트리며 매혹의 채찍을 꼭 끌어안았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따라오세요. 제가 전에 드린 망토, 아직도 가지고 계시죠?”
“아, 그거……. 놓고 왔는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소환해드리겠습니다. 엘레노아 역소환.”
고개를 끄덕인 나는 곧바로 엘레노아를 역소환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을 둔 뒤에 다시금 그녀를 소환하자, 이전에 내가 건네준 망토를 두르고 있는 엘레노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좋습니다. 그럼 거리를 두고서 따라와 주세요.”
“네.”
고개를 위아래로 작게 끄덕이며 대답한 엘레노아는 곧장 후드를 눌러 쓰고서 건물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걸로 보험은 된 건가.’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방금 전, 마틸다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소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마틸다 쪽은 아직 준비가 다 되지 않은 모양인지, 집 밖으로 나오고 있지 않았다. 이에 나는 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을 확인하고자 스마트폰을 꺼냈다.
“응?”
이렇듯 스마트폰을 꺼내는데, 순간 화면에 새로운 알림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엘레노아가 매혹의 채찍을 획득했습니다!]
[엘레노아의 충성도가 12 상승합니다!]
‘포상 시스템인가?’
나로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가뜩이나 충성도가 낮은 엘레노아인데, 이걸로 약간이나마 만회를 했으니 말이다.
‘……그래봤자 29에서 41로 상승한 거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호감도가 67로 꽤 높은 편이라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마저도 낮았다면 틀림없이 엘레노아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 했을 것이다.
‘이왕에 이렇게 된 거, 랜덤 장비 상자를 잔뜩 까서 불필요한 건 엘레노아에게 다 줘버릴까?’
확실히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가장 쉽고 빠르게 엘레노아의 충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계속 먹힐 거란 보장은 없지만.”
혀를 내두르며 마틸다를 기다리는데, 불현듯 집 문이 열렸다.
“오래 기다렸지?”
가장 먼저 집 밖으로 나온 것은 마틸다였다.
그녀는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다르게 가죽을 덧씌운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세 명의 남성들이 따라 나왔다.
“아닙니다. 그보다 이분들은?”
“우리 식구야. 야, 인사해라. 김……. 아무튼 이번에 던전 탐색을 같이 떠나게 되신 분이다.”
이러한 마틸다의 말에 세 명의 남성이 내 곁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톰이라고 합니다.”
“레딕.”
“하센이네. 잘 부탁하지.”
레딕을 제외한 두 사람은 제법 인상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에 나는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입을 열었다.
“김 유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듯 소개가 끝나자, 마틸다가 허리춤에 매여져 있는 검을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가자. 해 떨어지기 전에 던전 안으로 들어가야지.”
그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를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다른 세 명의 남성도 마찬가지였다.
뜻이 일치하자, 우리는 서둘러 걸음을 옮겨 마을을 벗어났다.
이번에 이들이 탐색할 던전은 내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산 속에 있는 모양인지, 마틸다는 거침없이 울퉁불퉁한 마차 길을 따라 걸으며 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엘레노아가 우리를 잘 따라오고 있나 싶어서, 일행들 몰래 뒤쪽을 힐끔 살펴보았다.
그러나 우리를 놓친 것인지, 아니면 따라올 생각이 없는 것인지 엘레노아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배신인가.’
불길한 예감이 조금 들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엘레노아는 보험이었다.
내가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은 고블린 소환이란 스킬이었고, 이마저도 안 되면 퀘스트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천천히 숨을 들이켠 나는 네 명의 용병들을 따라서 산 초입에 들어섰다.
“생긴 건,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 생각보다 잘 걷네.”
문득 마틸다가 입가를 이죽이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예전에 산을 많이 타봤거든요.”
군 복무 할 당시에 산이라면 지겹도록 타보았기에 이 정도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그 때처럼 무거운 군화를 신고 있지도, 그렇다고 해서 총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형씨, 어디 지역에서 온 거야?”
이렇듯 마틸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분명 자신을 톰이라고 소개했던 우락부락한 사내가 내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동쪽에서 왔습니다.”
“동쪽? 하폰 왕국에서 온 건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국가 이름에 나는 비지땀을 흘렸다.
“아뇨, 저는……. 좀 더 먼 곳에서 왔습니다. 아마 이름을 들으셔도 모를 겁니다.”
“이거 참 비밀이 많은 친구로군.”
낄낄대며 웃음을 터트린 톰은 눈앞에 보이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무기는 어디에 있나?”
“네?”
“설마 무기도 비밀로 붙이는 건 아니겠지? 이봐, 우리는 지금 던전에 진입하려고 하는 거야?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위험한 일인 만큼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지 말해는 줘야 되지 않겠어? 자, 봐봐. 난 이 롱소드를 사용한다고.”
이리 말하며 검을 뽑아드는 톰이다.
새하얀 검신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게,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엄청 무거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톰의 팔은 내 팔보다 족히 두 배는 더 굵어보였으니 말이다.
“아, 진짜 더는 못 해먹겠네! 누님, 이쯤에서 그만 끝내죠? 계속 쳐다봤는데, 저 새끼 무기라곤 하나도 안 들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때, 갑자기 레딕이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확실해?”
“틀림없어요. 야, 김 뭐시기! 너 무기 꺼내봐!”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레딕은 그대로 날 향해 검을 휘둘렀다. 마치 내 몸을 반 토막 낼 것처럼 말이다. 이에 깜작 놀란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위험하게 이게 무슨 짓입니까!”
부웅! 소리를 내며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검에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누님, 보셨죠? 저 새끼 아무런 무기도 없다니까요?”
“진짜네?”
이렇듯 나를 한번 시험한 레딕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마틸다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외침에 그녀는 히죽히죽 웃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물론 그녀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쓰게 혀를 찼다.
‘역시 함정이었나…….’
처음부터 어느 정도 함정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덕분인지, 생각보다 당혹스럽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벗어.”
그 때, 마틸다가 검 끝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벗으라니요?”
“죽고 싶지 않으면 그 옷, 전부 다 벗으라고! 말귀 한번 더럽게 못 알아듣네.”
혀를 차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친 마틸다는 위협적으로 내게 검을 휘둘렀다. 그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또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누님, 그냥 죽여 버리죠.”
“야! 넌 저 옷을 직접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
“저런 옷 봤어? 시발, 난 내 평생에 저렇게 잘 짜인 옷은 처음 본다. 만약에 저걸 귀족 놈들에게 보여주면 어떻게 될 것 같냐? 아마 두 눈에 불을 켜고서 달려들 걸? 깔깔, 얼마에 팔아야 될라나.”
낄낄대며 웃은 마틸다는 벌써부터 내 옷을 귀족들에게 판 것처럼 기뻐했다.
‘옷이 문제였나.’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나는 현재 내 문제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의복이 문제였다.
아니, 의복뿐만이 아니었다. 스마트폰도 너무 대놓고 사용하고 있었다.
‘……조심해야겠네.’
한숨을 내뱉은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나저나 엘레노아는 날 안 구해주는 건가?’
살짝 실망감이 몰려오려고 하고 있었다.
“야, 도움 구해봤자 소용없으니까 얼른 옷 벗어. 서로 좋게 좋게 가자고? 나도 귀한 옷에 피 묻히고 싶지 않으니까.”
“…….”
“아, 그리고 방금 전에 네가 가지고 있던 그 물건. 그것도 내놔.”
그 요구에 나는 양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이상으로 더 요구할 건 없습니까? 예를 들어 신발이라던가, 무언가 특별한 거요. 아니면 지적할 거라도요.”
“뭐란 거야, 이 미친놈이? 실성했냐?”
요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날 향해 소리치는 마틸다의 행동에 나는 쓰게 웃음을 터트렸다.
“옷하고 스마트폰. 이 두 개만 문제였나 보군요. 알겠습니다. 덕분에 고쳐야 될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
“기분입니다. 지금 제게 얌전히 마정석 파편을 넘기신다면, 당신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겠습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컥!”
크게 소리친 마틸다는 그대로 크게 검을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쌔액 소리와 함께 채찍이 날아와 마틸다의 목을 휘감았다.
‘늦었어.’
이제야 날 돕는 엘레노아의 늦은 행동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누님!”
“시발, 동료가 있었잖아!”
“나와, 이 시발 새끼야!”
이렇듯 엘레노아가 휘두른 채찍이 마틸다의 목을 휘감자, 남은 세 남자가 검을 바짝 들어 올리며 채찍이 날아온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남자들이 경계하고 있는 방향 쪽에서 한 명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주인님.”
엘레노아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내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곧 마틸다의 목에 두르고 있던 채찍을 풀어주며 세 남성을 둘러보았다.
“커헉, 컥……. 죽여! 저 년 죽여!”
한편 채찍에서 풀려난 마틸다는 독기가 가득 서린 목소리로 엘레노아에게 소리쳤다.
“누, 누님……. 저 년, 머리에 뿔이 나있는데요?”
톰이 살짝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에 마틸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린 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곧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집어 들어서는 입을 열었다.
“쪼, 쫄지 마! 시발, 마족 새끼들이 여기서 쫓겨난 지가 언젠데 여기에 마족이 있을 리가 없잖아!”
크게 소리친 마틸다가 한 걸음 엘레노아 쪽으로 다가서자, 돌연 엘레노아가 요란스럽게 꺅꺅 소리를 지르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는 포옥, 내 품에 안기며 앙앙 우는 소리를 내었다.
“주인님, 저 여자 너무 난폭해요! 혼내주세요!”
앙알대는 엘레노아의 목소리에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고블린 소환.”
말을 끝마친 순간, 스물네 마리의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칠흑의 지팡이 소환.”
그리고 이어서 내 손에 짙은 검은색의 지팡이가 잡혔다.
========== 작품 후기 ==========
현지 가이드로는 역시 그 나라 사람을 사용해야죠!
엘레노아는 너무 눈에 띄이잖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