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계 퀘스트] -->
한순간 어두워졌던 시야가 점차 밝아지면서 서서히 숲의 풍경을 만들어내었다.
그 풍경이 흡사 동화 속에서나 튀어나올 법한 그런 광경이었다.
긴장과 설렘으로 쿵쿵 뛰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힌 나는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깨끗한 호수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멋지네.”
절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혀를 내두른 나는 금방이라도 어린 요정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호수에서 애써 시선을 떼어낸 뒤에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 후, 지도를 켜자 액정에 마정석 파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현재 내가 서있는 장소와의 거리를 가늠해보니,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었다.
‘바로 아랜가?’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완만한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숲 속의 풍경이 어느 순간 사라지더니, 곧 주변 경치가 확 트이며 넓은 평야를 드러내었다.
그 모습이 마치 부드러운 빵 반죽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뒤에 반죽 밀대로 쭉쭉 시원하게 밀어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혀를 내두른 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 강을 옆에 두고서 여러 채의 집들이 세워져 있는 작은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폰을 들어서 비교해보니, 저곳이 내가 목적한 곳인 모양이었다.
“중세 시대인가.”
하긴 서큐버스가 있는 세상이다.
과학 기술이 그다지 진보되어 있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이리 짐작한 나는 울퉁불퉁한 산길을 따라 쭉 내려가서는 마차 길로 보이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간은 낮 시간대였지만 사람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저 멀리서 작물을 다듬고 있는 농부 몇몇이 보일 뿐이었다.
‘엄청 긴장되네.’
어쩐지 내가 중세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금 쿵쿵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나는 한참을 걸어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몇몇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에 내가 손을 들어 인사해주자, 순진무구한 아이들답게 금세 해맑게 웃으며 내 인사를 받아주었다.
보아하니, 마을 인심이 그렇게 막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자세한 것은 이 마을에 사는 어른들을 만나봐야지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문제는 이 마을에 머물고 있는 용병단이었다.
이름이 분명히 하얀 머리 용병단이었지?
이름대로라면 틀림없이 용병단주의 머리카락은 하얀색을 띠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이리 짐작하며 마을을 둘러보자, 저 멀리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한 명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어디 한군데 헝클어진 곳은 없나, 옷과 머리를 한 번씩 매만지고는 천천히 여성 쪽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상대방도 이런 내 인기척을 느낀 모양인지, 눈썹을 치켜들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여성은 꽤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위아래로 한번 쓱 훑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그 시선이 조금 불쾌하긴 했지만, 나는 그걸 내색하지 않고서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부탁하는 입장이었다.
“누구?”
여성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뿌연 담배 연기가 허공에 스며들었다. 그 모습이 제법 고혹적이었다. 특히나 용병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몸매는 꽤나 잘 다듬어져 있었다.
라틴계열처럼 살짝 그을린 피부색에 건강한 몸, 그리고 그것과 대조적으로 머리카락의 색은 반짝이는 하얀색이었다.
놀랍도록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재빨리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제 이름은 김 유현이라고 합니다.”
“김……. 뭐?”
“김 유현입니다.”
“특이한 이름이네. 이 근방 사람이 아닌 모양이지? 모험 나온 도련님? 아니면 상인?”
퀘스트에는 꽤 질 나쁜 사람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이렇게 무난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분명히 내게 있어서는 희소식이었다.
“여행자입니다.”
“수행인들은?”
“네? 아, 저 혼자입니다.”
“용감하네. 거기다가 무장도 없고……. 아! 혹시 나한테 의뢰하러 온 거야? 호위해달라고?”
그녀는 꽤나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곧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러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필터가 한꺼번에 타들어가더니, 곧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놔두고서 멈추었다.
“……목적지가 어디야?”
그 물음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제가 의뢰할 건 호위가 아닙니다.”
“그럼?”
“마정석 파편을 제게 주셨으면 합니다.”
“마정석 파편? 그게 뭐야?”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그녀의 태도에 나는 혹시나 대상을 잘 못 찾았나 싶어서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맞는데?’
지도에 표시된 대상과 내 눈 앞에 서있는 여성의 위치는 정확하게 일치했다.
‘……혹시 마정석 파편이 뭔지 모르는 건가?’
이러한 생각에서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이내 마틸다 쪽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설명해주었다.
“검은색 돌입니다. 크기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할 겁니다.”
“아하, 이거?”
탄성을 내뱉은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귓등으로 넘겼다. 그러자 곧 내 눈에 귀걸이처럼 귓불에 붙어있는 마정석 파편이 들어왔다.
“네, 맞습니다. 그겁니다.”
내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그녀는 다 타고 남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며 입을 열었다.
“얼마 줄 건데?”
“네?”
“설마 공짜로 달라는 거였어? 미친 거 아냐?”
“아…….”
그 말에 나는 그제야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 눈앞의 마정석 파편에만 신경을 쓴 탓에 정작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정석 파편과 교환할만한 물건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말은 것이었다.
‘실수했네.’
눈살을 와락 찌푸린 나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일단 여기서 퀘스트를 포기하고, 마정석 파편과 바꿀만한 걸 가져와야겠네.’
마침 상대는 마정석 파편을 귀걸이로 만들어놓았다.
그 말은 즉, 꾸미는 것에 꽤나 신경을 쓰는 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현실로 돌아가서 적당한 가격의 귀걸이나 목걸이를 사온다면 마정석 파편과 바꿔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듯 생각을 정리한 나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생각을 못 했군요. 그럼 이따가 다시 오겠습니다.”
“아아, 잠깐만.”
“네?”
“그러지 말고 너 손에 들고 있는 거, 그거.”
나를 제지한 그녀는 내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거 주면 바꿔줄게.”
그 말에 나는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재빨리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건 안 됩니다.”
“그래? 흠…….”
이런 내 말에 그녀는 잠시 침음성을 내뱉더니, 곧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할래?”
“어떻게 말입니까?”
“던전의 탐색을 도와주면 네게 이걸 줄게.”
“던전이요?”
“그래. 우리는 던전의 보물을 얻어서 좋고, 너는 원하는 것을 얻어서 좋고. 어때?”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좋은 조건이라서 살짝 의심이 갔다.
‘함정일까?’
하지만 함정이라고 생각하기엔 상대방의 태도가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그렇게 질이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며 눈앞의 여성을 바라보는데, 문득 마틸다가 입을 열었다.
“참고로 우린 던전 탐색을 떠날 준비가 다 된 상태야. 네가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이건 더 이상 못 얻을 걸?”
이리 말한 그녀는 자신의 귀에 걸려있는 마정석 파편을 검지로 툭툭 쳤다.
‘해볼까?’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퀘스트를 포기한 직후 목걸이랑 귀걸이를 사왔더니, 그 대상이 이미 던전 탐색을 떠나고 난 직후라면 나는 그저 헛수고만 한 셈이었다.
더욱이 마틸다가 반드시 내가 사온 목걸이와 귀걸이를 마음에 들어 할 거라는 보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차피 위험해지면 바로 퀘스트를 포기하면 되니까.’
더욱이 내게는 24마리의 고블린을 소환할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적어도 이걸 가지고 있는 이상, 상대방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렇듯 안전 여부를 따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이렇듯 내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마틸다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에 나는 곧바로 그녀의 손을 마주잡으며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 작품 후기 ==========
라틴계열 용병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