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93화 (93/599)

<-- [이계 퀘스트] -->

“누나 집으로요?”

“왜? 싫어?”

내 가슴팍에 손을 얹으며 은근하게 압박을 주는 서연이 누나다.

“싫은 건 아닌데……. 저 아직 계약기간도 남아있고, 학교도 다녀야해서.”

“어차피 방학이잖아. 그리고 학기 중에는 내가 차로 바래다줄게.”

“그럼 누나가 피곤해지잖아요.”

“하나도 안 피곤해.”

딱 잘라 말한 서연이 누나는 좀 더 노골적으로 내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특히나 그녀의 손가락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유두 주변을 희롱할 때면 오묘한 쾌감이 등골을 타고 짜릿하게 흘러들어왔다.

“이, 일단 생각 좀 해볼게요.”

꿀꺽, 침을 삼킨 나는 애써 말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그러자 누나도 더 이상 나를 보챌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떼어내었다.

“알았어. 잘 생각해봐.”

이리 말한 누나는 마저 옷을 입은 뒤에 내 배웅을 받으며 회사로 출근했다.

“휴.”

이렇듯 서연이 누나를 떠나보낸 나는 그제야 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동거라…….’

벽에 등을 기대고서 잠시 동거 생활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꽤 좋을지도.’

매일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며, 알콩달콩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낼 게 틀림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와 누나는 속궁합이 잘 맞았다. 내 평생에 이런 여자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찰떡궁합이었다. 게다가 가르치는 맛도 있어서, 내가 무얼 하나 가르쳐주면 누나는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금세 능숙하게 해냈다.

그리고 그 때 느끼는 성취감이란…….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망설이는 것은 역시 매니저 어플의 존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 내가 가면 쓴 남자라는 것을 누나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지옥도가 펼쳐지겠지.”

으스스, 몸을 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 후, 따뜻한 물로 몸을 깨끗이 씻은 나는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동거는 좋은 말로 거절하자.’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학생이란 이유와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든다면 서연이 누나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물론 얼마간 삐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대로 이부자리 위에 드러누운 뒤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어디보자.”

스마트폰을 켠 나는 오늘의 출석 체크 보상을 얻기 위해서 매니저 어플을 실행했다.

[축하합니다!]

[출석 체크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염색약이 주어집니다.]

[염색약을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염색약?”

염색약이라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이내 염색약을 수령 받았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염색약(블루 블랙 : R61 G79 B105) (1회)’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목록에 저장되어 있는 여성의 특정 부위의 색을 지정된 색으로 변경시킵니다.]

“……미친.”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제는 하다하다 염색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었다.

대체 이 게임에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이 뭐가 있을까 새삼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업적에 강화, 그리고 염색? 중독성 강한 건 다 모아놨네.”

심지어 상자, 스킬 그리고 장비도 랜덤이었다.

도박성까지 두루두루 갖춘 이 게임에 경의를 표시한 나는 곧바로 확인을 눌렀다.

[사용자에게 알립니다.]

[상납까지 현재 10일 남았습니다.]

[이 시간부로 상납을 받습니다.]

[상납의 잠금이 풀립니다.]

“아……!”

새로운 알림문구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상납에 관한 건, 까맣게 잊고 있었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곧바로 확인을 누른 뒤에 엄지로 상납을 눌렀다.

[상납의 기한은 매달 1일입니다.]

[상납은 상납 기한 10일 전부터 받습니다.]

[현재 사용자의 레벨은 5입니다.]

[이번 달 사용자가 상납하셔야 되는 정기의 양은 1000입니다. (0/1000)]

[이번 달 사용자가 상납하셔야 되는 마정석 파편의 수는 5개입니다. (1/5)]

“마정석 파편?”

낯선 단어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이윽고 마정석 파편이 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이계 퀘스트!”

확실히 저번에 이계 퀘스트를 진행했을 때, 엘레노아에게서 마정석 파편을 획득했었다.

‘상납을 하기 위해서는 이계 퀘스트를 진행해야 되는 건가.’

하지만 이계 퀘스트란 것 자체는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실제로 늑대에게 물려서 며칠 동안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던가? 잠시 끙끙 앓으며 고민하던 나는 이내 상납을 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는지 찾아보았다.

[상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본 어플은 삭제됩니다. 또한 본 어플이 사용자에게 끼치고 있던 영향 또한 사라집니다.]

[본 어플이 삭제 될 경우, 사용자가 소유하고 있던 노예는 소멸됩니다.]

“…….”

경고 문구를 본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물론 첫 번째 경고 문구는 당연한 말이었다. 상납을 제대로 못 했으니, 이 어플을 잃는다고 해도 무어라 불평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소유하고 있던 노예가 소멸한다는 건…….

‘엘레노아가 죽는다는 건가?’

순간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엘레노아에게 무언가 특별한 애정을 품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나와 몸을 섞었던 여자였다.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될 것이 아닌가?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한동안 경고 문구를 바라보다가 이내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하지.”

아직 열흘이란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얼마든지 고민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늦장을 부리는 것은 금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계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현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니 말이다. 물론 그래봤자, 현실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흐른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위험한 것만 피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안일한 생각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지금 이 어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솔직히 내가 서연이 누나와 사귀는데, 이 어플이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게다가 몇 시간 동안 쉼 없이 섹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내가 매니저 어플을 잃는다면?

과연 서연이 누나가 내 곁에 남아줄까?

아니, 서연이 누나뿐만이 아니었다.

민서도 문제였다. 이제 막 프로에 발을 들인 민서인데, 내가 이 시점에서 매니저 어플을 잃게 된다면 그녀에게 무슨 악영향이 끼쳐질지 아무도 몰랐다.

‘복잡하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여러 사람을 생각해줘야되었다.

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제쳐두고서, 과연 내가 매니저 어플을 잃었을 때 이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이토록 강하고 매력적인 힘을 얻었던 내가 이 힘을 상실한다면?

분명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삶 자체에 회의적으로 변할지도 몰랐다. 특히나 지금 와서 서연이 누나의 경멸어린 시선을 받으며 차인다면?

“…….”

최소한 자살각이다.

남자로선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한번 했는데 또 못 할 건 없지.”

무엇보다도 나는 이 어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어플을 집어든 나는 곧바로 정기 1000을 상납했다.

[이번 달 상납 정기 양을 충족하셨습니다.]

이렇듯 정기를 상납한 나는 곧바로 이계 퀘스트로 넘어갔다.

[이계 퀘스트]

[트윈 헤드 오우거의 보물]

트윈 헤드 오우거는 한 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마정석 파편입니다. 트윈 헤드 오우거는 마정석 파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은색 광채에 마음이 사로잡혔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때문에 트윈 헤드 오우거로부터 마정석 파편을 돌려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트윈 헤드 오우거로부터 마정석 파편을 얻어내십시오. (보상 : 랜덤 장비 상자)

[하얀 머리 용병단]

이름 없는 마을에 네 명으로 구성된 용병단이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마을 촌장을 불러내어 일거리가 없냐며 행패를 부렸습니다. 때문에 마을 촌장은 억지로 일을 만들어 내어 용병단에게 일거리를 주었고, 그 일을 처리한 용병단은 보수를 이유로 마을에서 가장 호화스런 집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벌써 일주일째입니다.

당신은 이들 용병단을 이끄는 하얀 머리의 용병단주 마틸다에게서 마정석 파편을 얻어내야 됩니다.

-하얀 머리의 용병단주 마틸다에게서 마정석 파편을 얻어내십시오. (보상 : 랜덤 스킬 상자)

이게 퀘스트의 목록을 살펴보니, 딱 두 개의 퀘스트가 나와 있었다.

하나는 트윈 헤드 오우거 퇴치였고, 또 하나는 꽤 질이 나빠 보이는 용병단의 단주에게서 마정석 파편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흠.”

침음성을 내뱉으며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이내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편이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의외로 순순히 넘겨줄 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말이다.

‘만약에 말이 안 통하는 상대라면, 곧바로 퀘스트를 포기하면 그만이니까.’

천천히 숨을 들이켠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후, 신발을 신은 나는 이계 퀘스트, 하얀 머리 용병단을 선택했다.

========== 작품 후기 ==========

사용자 레벨을 올리면, 상점에서 염색약을 팝니다!

물론 이것도 랜덤입니다.

참고로 이건 '부분'입니다.

머리, 눈동자, 음모, 날개.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이 모든 걸, 하나의 색으로 통일시키려면... 정기가 좀 필요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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