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 프로젝트] -->
“뭘 그렇게 봐요?”
이렇듯 민서의 개인 능력치를 살펴보고 있는데, 불현듯 내 앞 쪽에서 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흠칫 어깨를 떤 나는 이내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매니저 어플을 종료했다. 물론 은하의 시선을 피해서 말이다.
“잠깐, 게임 좀 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혹시…….”
“아니거든요!”
혹시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은하가 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크게 소리쳤다.
이 과민 반응……. 설마 진짜인가?
“진짜야?”
“뭐가 진짜에요? 별로 걸리지도 않았구만!”
이리 소리쳐 말한 은하는 침대 위에 제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 후, 그녀는 무릎에 놓았던 가방을 발치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오빠, 언제 퇴원해요?”
“광견병 검사 결과가 나와야지 알 수 있다는데? 만약에 괜찮으면 곧바로 퇴원하겠지.”
“큰일이네요.”
“큰일은 무슨…….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설혹 별 일이 생기더라도 치료술사의 지팡이로 치료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노말 등급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였지만……. 만약에 이걸로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이번에 얻은 정기로 다른 장비를 더 뽑아볼 생각이었다.
아무리 운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레어 등급의 치료 관련 장비가 하나쯤은 나와 줄게 틀림없었다.
안 된다면 될 때까지 하던가 말이다.
마침 민서도 내게 푹 빠져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정 안 되면 정기로 장비를 강화시키던가.’
이리 생각하며 팔짱을 껴는데, 불현듯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 능력이면 불치병도 치료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잘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지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입 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방을 치료해주기 위해선 치료술사의 지팡이를 꺼낼 필요가 있었다.
더욱이 내가 상대방의 병을 치료해준다고 해서 반드시 상대방이 대가를 지불하리란 법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 방송국 같은 곳에 나를 알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인데.’
물론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조교의 방으로 데려간 뒤에 악마인 척 계약을 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이 이상으로 조교의 방의 존재를 타인에게 알리고 싶지가 않았다.
‘세상사는 게, 뭐 다 그렇지.’
혀를 내두른 나는 은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저녁에 어떻게 할 거야? 같이 먹을래?”
이런 내 물음에 은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렸다.
“전 괜찮은데……. 언니랑 먹기로 했다면서요?”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은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언니랑 드세요. 대신 내일 저녁은 제가 살게요.”
“오, 내일도 와주게?”
“왜요? 싫어요?”
이리 물으며 나를 바라보는 은하다. 이에 나는 환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싫긴 왜 싫어! 오히려 좋지! 언제든지 와.”
이러한 내 말에 은하도 그제야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요. 그럼 내일 저녁에 또 올게요. 약속 비워두세요.”
“그래, 알았어.”
“가볼게요. 그리고 오빠, 몸 조리 잘하고요.”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는 은하의 태도에 나는 짐짓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걱정 마. 건강 빼면 시체니까.”
“벌써 시체 되셨네요.”
키득거리며 농담을 건넨 은하는 발치에 놓여있던 가방을 집어든 뒤에 병실을 빠져나갔다.
∴ ∵ ∴ ∵ ∴
병실을 빠져나간 은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헛걸음했네.”
입술을 삐죽 내민 은하는 조금 원망스러운 듯이 유현의 병실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병실 안에 있는 유현 오빠는 자신을 잡으러 나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지금이라도 유현 오빠가 병실 밖으로 나와서 ‘역시 은하, 너랑 같이 먹는 게 좋겠다. 서연이 누나한테는 다음에 먹자고 말해둘게.’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
혹시나 하는 헛된 희망을 품어보지만, 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설 때가지 유현은 병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은하는 실망감만 얻은 채, 엘리베이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바보지.’
저렇게 둔감해서 연애나 한번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보다 고백마저 자기가 먼저 해야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쉰 은하는 어느덧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에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 때, 카톡! 하고 알림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은하는 혹시나 유현이 오빠는 아닐까 싶어서 서둘러 카톡을 확인해봤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카톡은 그녀의 친구인 지현이었다.
[장 지현 : 유현이 오빠랑 데이트 중?]
지현의 카톡을 본 은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 ‘아니,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지현이한테서 카톡이 왔다.
[장 지현 : 왜? 외출 못 할 정도로 아픈 거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다고 생각하는 은하였다.
[이 은하 : 아니,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대]
[장 지현 : 약속? 오늘 저녁은 너랑 먹기로 약속한 거 아니었어?]
[이 은하 : 저녁 먹자는 약속은 따로 안 했었어]
[장 지현 : 그게 무슨 소리야! 병문안 가면 저녁은 기본이지!]
“…….”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드는 은하였다.
확실히 지현이 말대로 병문안 가면 저녁 식사는 기본이 아닌가?
부글부글 끓는 심정에 은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지현에게 전부 일러바쳤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지현이는 맞장구 쳐주며 열심히 유현이 호박씨를 깠다.
[장 지현 : 그 오빠도 은근 눈치 없다니까]
[이 은하 : 맞아. 진짜 없어]
[장 지현 : 그냥 네가 고백해]
“고, 고백이라니!”
고백하라는 지현이의 말에 순간 은하는 저도 모르게 빽 소리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변에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은하는 입술을 꾹 다물고서 전속력으로 지하철역까지 달렸다.
그 후, 지하철 안으로 들어선 은하는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카톡을 보냈다.
[이 은하 : 고백하면 받아줄까? 거절하면 어떡해? 나 그럼 무슨 얼굴로 오빠를 봐?]
[장 지현 : 그냥 봐.]
[이 은하 : 네가 몰라서 그래! 난 못 봐! 게다가 유현이 오빠는 나랑 같은 빌라에 산단 말이야!]
[장 지현 : 그럼 유현이 오빠가 너한테 고백할 때까지 기다리려고? 그러다가 너 평생 연애 한번 못 한다?]
그 말에 은하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확실히 지현이 말대로 이대로 가다간 유현이 오빠랑 사귀기는커녕 연애 한번 못 하고 끝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 은하 : 거절하면 어떡해?]
[장 지현 : 뭘 그렇게 고민 하냐?]
[이 은하 : 남 일이라고 그렇게 말하기야?]
[장 지현 : 보는 내가 답답해서 그런다. 너 이러는 게 벌써 반년 째야. 솔직히 슬슬 마음 정할 때 되지 않았어? 사귀던가, 포기하던가 해!]
[이 은하 : 그냥 오빠가 고백하길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은하는 은근 기대를 걸면서 물었다.
지현이가 평소처럼 ‘그래, 좀 더 기다려봐.’라고 카톡을 보내주길 기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현이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단호하게 답장을 보내왔다.
[장 지현 : 백날 기다려봐라. 고백해주나!]
“나쁜 년.”
은하는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서 지현이를 욕했다. 하지만 마음 속 한켠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지현이의 말이 맞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이 이 상태로 백날 기다려봐야 유현이 오빠가 자신에게 고백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장 지현 : 아니면 이미지 변신을 해보던가]
[이 은하 : 살 뺄까?]
[장 지현 : 미친년! 네가 무슨 살을 빼? 거기서 뼈만 남기려고?]
[이 은하 : 그럼?]
[장 지현 : 아이돌 프로젝트에 참여해봐. 유현이 오빠가 그거 이야기 하는 걸 보니까, 딱 자기가 관심 있으니까 해보란 거 같은데]
[이 은하 : 미쳤어? 내가 거길 왜 해?]
[장 지현 : 왜? 네가 뭐 어때서? 나도 준비하고 있는데]
“뭐?”
자기도 준비하고 있단 지현의 말에 은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조금 크게 내고 말았다.
때문에 지하철에 타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은하를 쳐다보았고, 이에 은하는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고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 은하 : 너 아이돌 되려고?]
[장 지현 : 난 뭐 아이돌 되지 말란 법 있냐? 내가 누구냐? 서코에서 1등 먹은 여자 아니냐? 이런 것쯤은 껌이지. 니코니코니, 한 번 해주면 사람들이 껌뻑 죽어나갈 걸?]
“…….”
그 말에 은하는 예전에 지현이가 자기가 서울 코믹월드인가 어디에서 코스프레 콘테스트 1등 했다면서 자랑했던 것을 떠올렸다.
확실히 이런 쪽으로 유별나게 관심이 많은 지현이긴 했었다.
[장 지현 : 할 거면 나랑 같이 하자. 나도 혼자 가는 건 좀 그렇거든]
[이 은하 : ㄴㄴ]
은하는 최대한 자신의 진심이 내비치도록 단호하게 말했다.
[장 지현 : 혹시 알아? 유현이 오빠가 은하, 너의 새로운 모습에 반할지?]
[이 은하 : 혐오할 거 같은데]
[장 지현 : 야! 그럼 내일 물어보자! 나도 같이 간다!]
[이 은하 : 뭘?]
[장 지현 : 아이돌 프로젝트!]
그 말에 은하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카톡을 껐다. 그리고는 맞은편, 지하철 유리창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이돌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인기가 있어 본 적이 없었던 은하였다.
수수하고, 남자 아이 같은 게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다.
은하, 스스로도 자신이 여자로서 매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대학에 와서도 딱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사귀게 될 수 있을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1학년 내내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을 때, MT 자리에서 전역하고 돌아온 유현이 오빠를 처음 보았다.
훤칠한 키에 누구에게다 다정하게 대해주던 오빠였다.
남들하고 떨어져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서 처음으로 이야기를 건네준 것도 유현이 오빠였고, MT 자리에서 끝까지 은하를 신경 써주던 것도 유현이 오빠였다. 그런 호의는 난생처음 받아보았기에 설렜다.
이런 기분은 정말로 처음이었다.
더욱이 유현이 오빠와 같은 빌라에서 자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게 운명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유현이 오빠가 좋아할까?’
확실히 지현이 말대로 관심이 있지 않았다면 말을 꺼내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 어느 정도 관심이 있으니까, 아이돌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으읏…….”
남들 앞에 서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려왔다.
더욱이 그걸 유현이 오빠가 볼 거라고 생각하니, 이대로 곧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아이돌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부들부들 몸을 떨던 은하는 어느덧 지하철이 역에 도착했음을 깨닫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도망치듯이 지하철역을 빠져나가는데 문득 올라가는 계단 옆에 붙어있는 거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그 모습을 본 순간, 은하는 자기도 모르게 예쁘게 치장된 옷을 입고서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말았다.
‘바, 바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은하는 홱 하니 고개를 돌리고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갔다.
숨이 턱 끝에 차오를 때까지 정신없이 뛴 은하는 빌라 앞에 잠시 선 뒤에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천천히 가슴을 쓸어내린 그녀는 마치 세수하듯이 자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유현이 오빠, 바보!!’
∴ ∵ ∴ ∵ ∴
‘귀가 간지럽네.’
담당 간호사 분에게 외출 허락을 받은 뒤에 서연이 누나하고 병원 밖으로 나가는데, 귀가 간질간질 거려왔다.
“왜 그래?”
“귀가 간지러워서요.”
“내가 귀 파줄까?”
킥킥, 거리며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분홍색 매니큐어로 칠해진 자신의 손톱을 내 눈 앞에서 까닥거렸다.
“그거 말고 귀이개로 파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정중하게 부탁했다.
========== 작품 후기 ==========
좀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