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58화 (58/599)

<-- [황금기] -->

“실례하겠습니다.”

이렇듯 서연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별실 안으로 요리사 한 분이 들어왔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요리사는 공손한 태도로 우리에게 양해를 구하더니, 곧 조수로 보이는 젊은 요리사와 함께 별실 안으로 들어와 간이 테이블과 도마를 옮기기 시작했다.

‘오…….’

그리고 그 마지막엔 대야 안에 담겨있는 활어인 우럭을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어찌나 기운이 넘치던지, 요리사 분의 손에 잡힌 우럭은 펄펄 날뛰며 꼬리로 힘차게 도마를 때렸다.

“…….”

그 모습에 나는 꼴깍, 침을 삼키며 숨을 죽였다.

반면에 서연은 이곳에 자주 와본 모양인지, 시큰둥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따악!

이렇듯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수건으로 우럭의 몸통을 감싼 요리사는 식칼을 거꾸로 잡은 뒤에 칼등으로 머리를 내려쳤다. 그러자 아까 전까지만 해도 펄떡펄떡 날뛰며 저항하던 우럭이 별다른 맥도 못 추고 그대로 누워버렸다

‘한 방이네.’

그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술 마실래?”

문득 서연이 내게 물음을 던졌다. 이에 나는 우럭에게서 시선을 뗀 뒤에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다치기도 했고……. 되도록 안 마시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래?”

이런 내 대답을 들은 서연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식당 종업원으로 보이는 직원들이 별실 안으로 들어와, 각종 반찬이며 회를 싸먹을 수 있는 쌈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덕분에 탁자 위는 순식간에 여러 음식들로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어찌나 많던지, 이대로 상다리가 휘어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살면서 이런 상을 받아보게 될 줄이야.’

혀를 내두르며 반찬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덧 회 뜨기가 끝난 모양인지 요리사 분이 직접 우럭 회를 탁자 한 가운데에게 올려놓았다.

‘……이야.’

새하얀 생선살이 입맛을 당겼다.

특히나 접시의 모양에 맞춰서 둥그렇게, 거기다가 회를 뜬 요리사 분의 실력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생선살에는 어디 한 군데 모난 부분이 없었다.

전부 다 칼같이 썰려서는 한 입에 먹기에 딱 좋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많이 먹어.”

이렇듯 한 가득 담겨있는 우럭 회를 바라보고 있는데, 서연이 젓가락으로 접시를 두드리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잘 먹을게요, 누나.”

“그, 그래!”

이런 내 말에 서연은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애써 대답했다. 입 꼬리가 실룩실룩 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귀밑에 걸릴 것만 같아 보였다.

‘그렇게나 좋나?’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이내 개인 취향이려니 생각하며 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

초장도 안 찍고, 바로 입 안에 넣은 우럭 살은 몇 번 씹는 것과 동시에 혀에서 녹아 사라졌다. 달콤한 것 같기도 하면서 고소하기도 하고 그리고 묘하게 씹는 맛도 있었다.

심지어 비린내도 나지 않았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먹어본 회들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두 번째 회를 집어 들었다.

‘난 이제까지 쓰레기를 먹었어.’

서연에게 저녁밥을 사달라고 하길 정말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까 전까지만 해도 비싼 식사를 대접받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가슴 한켠에 확실하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되도록 이런 음식들을 많이 대접 받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종류의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오고 있었다.

“마음에 들어?”

문득 서연이 내게 물음을 던졌다. 이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맛있어요.”

이런 내 말에 서연은 두 눈을 반짝이며 다시금 물음을 던졌다.

“더 시켜줄까?”

“네?”

“사양 말고 말해. 얼마든지 사줄게. 아니다, 그냥 내가 시킬게.”

이리 말한 그녀는 호출 벨을 눌러서 종업원을 부른 뒤에 구이 종류를 더 시켰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생선 구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그 귀하다는 옥돔도 들어있었다.

“……많이 먹어.”

생글생글 웃으며 내 쪽으로 음식을 몰아주는 서연이다.

덕분에 나는 온갖 생선들을, 심지어 그 맛이 하나같이 일품인 생선들을 하나하나 맛보며 배를 채우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슬슬 배가 가득 찼을 때쯤 나는 서연에게 말했다.

“덕분에 잘 먹었어요, 누나.”

이런 내 감사의 말에 서연은 히죽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또 사줄게.”

“그럼 저야 좋죠.”

그 말에 나는 사양하지 않고 얼른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좋은 기회를 마냥 부담스럽다고 해서 거절하는 것은 미련 곰탱이나 하는 짓이었다. 더욱이 이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연상의 누나가 사주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행복에 겨운 상황이란 말인가?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니었다.

“그렇게 맛있었어?”

“네, 맛있었어요. 이렇게 맛있는 건, 정말로 간만인 것 같네요.”

아니, 어쩌면 난생처음일지도 몰랐다.

나는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를 띠우며 대답하고는 서연과 함께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 후, 차에 오른 우리는 주차장을 빠져나가 도로로 들어섰다.

“저기.”

그렇게 한참 가고 있는데, 문득 서연이 나를 불렀다.

“네?”

그 부름에 내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서연은 양 손에 잡혀있는 핸들을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힐끔 나를 쳐다보고는 이내 용기를 낸 듯이 말소리를 내었다.

“우리 집에서 차 한 잔 하고 가지 않을래?”

“…….”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설마 아닐 거야. 내가 잘 못 들었겠지. 이리 생각하며 부정해보지만,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서연의 시선은 내가 들은 게 맞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꼴깍 침을 삼키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지.’

솔직히 여기서 내가 할 말은 ‘아니요.’였다.

내 담당 간호사가 분명 나보고 8시 이전까지 돌아와 달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것이 유 서연의 함정일지도 몰랐다. 나를 방심시켜서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에 전기 충격기 같은 것으로 기절시킨 뒤에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서 고문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살해당할지도 몰랐다.

‘……는 개뿔!’

헛소리다.

여기서 내가 할 말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네, 그러죠.”

나는 언제 망설였냐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더없이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좀 더 속도를 내는 서연이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내가 좋은 모양이었다. 그래, 나는 여기서 확신했다.

라면 먹고 갈래만큼 확신했다.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속으로 쾌재를 외친 나는 그녀를 차를 타고, 그녀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가족들이랑 사세요?”

차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이리 물었다. 그러자 서연은 그대로 핸들을 꺾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

“아니, 혼자 살아.”

이리 대답한 그녀는 한적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는 시동을 껐다.

‘뭐지?’

점점 더 그녀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었다.

인턴이면서 차도 있고 집도 있다고?

물론 부모님이 전제로 아파트 집을 마련해주었다던가, 잠시 해외여행을 간 탓에 혼자 살게 되었다는 등의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본 서연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전혀 그렇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재벌녀?’

솔직히 말해서 이쯤 되면 이걸 의심해보긴 해봐야 되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서연과 함께 차에서 내린 뒤에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그 후, 엘리베이터 앞에 선 우리는 어색한 기류에 휩싸이고 말았다. 뭐라도 말을 해서 이 어색함을 풀어야겠는데, 좀처럼 꺼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해?”

문득 서연이 내게 물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띵 소리가 나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이에 나는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며 입을 열었다.

“아뇨,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

이런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서연은 하얀 이가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웃어보이고는 20층을 눌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층수가 점점 20층에 가까워질수록 내 가슴이 격하게 뛰었다.

뭐라고 해야 될까?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기에…….

솔직히 말해서, 남자로 태어나서 이런 상황을 겪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연상녀에게 유혹당해서, 집으로 초대되다니!’

이 얼마나 행복에 겨운 상황이란 말인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웃음을 애써 삼킨 나는 서연과 함께 20층에서 내린 뒤에 집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와.”

이리 말한 그녀는 날 먼저 집 안으로 들였다. 이에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집 안을 들어섰다.

20평정도 되어 보이는 집 안은 서연의 성격과는 다르게 제법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아기자기 한 것이 여자가 사는 집이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금방 차 끓여줄 테니까, 앉아있어.”

“아, 네.”

그 말에 나는 소파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연은 커피포트에 물을 넣은 뒤에 찬장에서 티백을 꺼냈다.

‘엄청 긴장되네.’

무슨 말을 해야 될까? 역시 내가 남자답게 먼저 리드해줘야 되는 걸까?

나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있었던 일들을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군대에 입대하는 동시에 머리가 리셋 되어버린 모양인지, 여자 친구와 있었던 일들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생각은 나고 있는데 그 때마다 번번이 서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진정을 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렇게 결국 아무 생각도, 방비도 못 한 채 서연과 마주하고 말았다.

그녀는 내게 찻잔을 내밀며 물음을 던졌고, 그 물음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아뇨……. 집이 참 좋네요.”

“그렇지? 내가 전부 다 꾸민 거야.”

이런 내 칭찬에 서연은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남의 집에 왔을 때는 집을 칭찬해주는 게 최고였다.

“저기…….”

“근데…….”

그렇게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말문을 떼는데, 그것에 맞춰 서연도 말문을 열었다. 이에 우리 둘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도 못 하고, 그저 두 눈만 깜빡이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정신을 차린 나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누나, 먼저 이야기하세요.”

“아……. 으, 응.”

이리 말하며 자리를 비켜주자, 서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덕분에 이전에는 못 느꼈던 그녀의 달짝지근한 체취가 맡아지는 듯했다.

더욱이 찻잔을 두 손에 꼭 쥐고서 연신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워 보였다.

서큐버스인 엘레노아가 서양의 정점이라고 한다면, 유 서연이란 여자는 동서양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형태라고 볼 수 있었다.

“……고마워.”

“네?”

불현듯 내게 고맙다고 하는 서연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반문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내 반문에 서연은 쓰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내가 미웠을 텐데……. 구해줬잖아.”

“…….”

“나라면 절대로 안 구해줬을 거야.”

“아뇨, 누나라면…….”

나는 그 말에 무어라 부정하기 위해서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서연은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인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나였다면 얼씨구나 좋다면서 죽게 놔뒀을 걸? 안 그래도 날 귀찮게 하던 상대였잖아. 안 그래?”

“…….”

“더욱이 범인이었다면……. 절대로 죽게 놔뒀을 거야.”

으득, 이를 깨물며 분을 삭이는 서연이다.

“비약이 지나친 것 같은데요.”

“너 너무 착해빠진 거 아냐? 그걸 보고 사람들이 호구라고 부르는 거야.”

나를 호구라고 부르는 서연의 말소리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즉각 반박했다.

“호구라뇨? 이게 평범한 건데…….”

“내가 너였으면 집에도 안 들여보내주고 내쫓았을 걸?”

“그 땐 은하가 있었으니까 믿고 들여보내준 거죠. 제가 은하랑 지낸지가 몇 개월인데요.”

“많이 친해?”

“많이 친하죠. 가까이 사는데다가 성격도 싹싹하니까요. 그런 애는 요즘에 드물어요.”

이런 내 말에 서연은 쿡쿡,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 드물긴 하지.”

후루룩,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힐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미안해. 이제까지 의심해서.”

“아뇨, 괜찮아요. 사실 저였어도 의심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변태 자식……. 꼭 잡아야죠.”

이리 말한 나는 서연을 똑바로 마주보며 힘 있게 말했다.

범인인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게, 다소 우습긴 하지만……. 이 말을 해서 내게 걸려있는 의심을 풀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천성이구나. 그 호구 같은 성격은.”

쿡쿡, 웃음을 터트린 서연은 처음으로 내게 눈웃음을 보여주었다.

========== 작품 후기 ==========

눈웃음을 신뢰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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