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기] -->
“두 주먹을 꽉 쥐는 김 민서 선수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멋진 플레이를 했던 건지, 그리고 팀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던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죠.”
카메라에 비추어진 민서의 모습을 본 해설자가 마치 대견하다는 듯이 민서를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김 유리 선수가 벤치로 들어가고, 새로운 선수가 코트로 들어왔다.
“자, 이 혜민 선수가 들어와서 서브를 준비하고 있는 대한 건설입니다. 이번 시즌 서브 4득점이 있습니다.”
김 유리를 대신해서 들어온 이 혜민 선수가 서브를 준비하더니, 곧 낮게 점프하게 서브를 넣었다.
“장 영서 선수 잘 받아냈습니다. 이어서 리시브! 빠르게 정 문희가 속공! 하지만 이걸 유 은진 선수가 받아냅니다!”
이 혜민의 서브를 받아낸 장 영서 선수가 그대로 세터에게 리비스를 했고, 그 공을 다시 토스해서 정 문희 선수가 빠르게 속공을 이어나갔다.
그야말로 찰나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걸 또 유 은진 선수가 무릎을 꿇으며 공을 받아내었다.
“이어지는 언더바운드! 김 민서 강타!”
띠링!
그대로 높이 떠오른 공을 김 민서가 놓치지 않고, 곧장 발돋움을 한 뒤에 스파이크를 휘둘렀다. 그 일련의 행동이 어찌나도 빠른지, 상대편 선수들이 블로킹을 하기 위해 점프했을 땐 이미 공이 센터 선수들을 지나쳐 땅에 꽂힌 직후였다.
“방금 전에 김 민서 선수가 기회를 아주 잘 노렸거든요.”
“그렇군요. 지금 보니 처음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군요!”
리플레이 영상을 보며 해설자와 캐스터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혜민 선수가 다시금 서브를 준비하며 공을 바닥에 튕겼다.
“다시 한 번 더 이 혜민 선수가 신중하게 서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한 건설의 서브! 니엘입니까? 니엘입니까! 니엘 강타!”
이 혜민 선수가 침착하게 서브를 해보지만, 그걸 이번에도 GS 칼텍스 선수들이 잘 받아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아주 대놓고 니엘에게 토스를 하며 득점하도록 유도했다.
띠링!
“……하지만 이걸 김 민서 선수가 블로킹해버립니다! 점수는 15 대 19! 대한 건설이 네 발자국이나 더 앞서갑니다!”
그러나 니엘이 득점하도록 순순히 놔둘 민서가 아니었다.
민서는 곧장 두 손을 쭉 뻗어 니엘의 공을 손으로 막아내더니, 바로 상대편 코트에 떨어트려버렸다. 덕분에 카메라에 비추어진 니엘의 얼굴에는 낭패가, 그리고 그런 니엘의 공을 막아낸 민서의 얼굴은 환한 미소가 그러졌다.
“이건 다소 충격이 클 수밖에 없겠는데요.”
“니엘 선수의 가장 큰 장기가 볼 컨트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1:1에서 밀렸으니, 자존심의 상처가 많이 클 겁니다.”
“하지만 또 멘탈이 강한 게, 니엘 선수의 강점 아니겠습니까? 몇 번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할 선수가 아니죠. 자, 이번에는 타냐 선수가 서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 15 대 19. 대한 건설이 확연하게 앞서고 있는 중입니다.”
타냐 선수가 서브를 준비하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잠시 뒤, 앞으로 뛰면서 서브했다.
“타냐의 서브! 이야, 득점이에요!”
“서브 득점이에요!”
민서의 활약 이후 타냐도 자극을 받은 모양인지, 그대로 강하게 서브를 했다. 그리고 그 서브를 GS칼텍스 선수가 앞으로 슬라이딩하며 막아보지만, 그 공은 반동을 이기지 못 하고 그대로 코트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타냐 선수, 오늘 두 개째죠? 서브 2점째네요. 오늘 경기만.”
“지난 다섯 번의 경기에서 서브 득점이 단 1점 밖에 내지 못 했던 타냐 선수가 오늘 벌써 2득점을 내고 있습니다! 그 말은 오늘 뭔가에 자극을 받았다는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타냐 선수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같은 팀 선수인 김 민서 선수에게도 적용이 된 모양입니다. 아주 좋은 현상이에요. 팀으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죠.”
그 말대로 타냐는 한데 모아서 묶은 금색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흔들릴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다시금 서브를 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대한 건설 선수들의 분위기 또한 첫 테크니컬 타임아웃을 빼앗긴 전과 후를 기점으로 무척이나 편안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반면에 GS칼텍스 선수들은 갑자기 폭발하듯이 엄청난 실력을 뽐내는 민서의 활약에 기가 죽은 모양인지, 이후로 변변찮은 활약을 하지 못 하고 계속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GS 칼텍스는 18 대 24의 상황에서 이 태영의 서브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 하면서 그대로 1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서브 득점으로 1세트를 이 태영!”
“GS 칼텍스가 확실히 초반에는 좋았는데, 테크니컬 타임아웃 이후 대한 건설의 김 민서 선수의 활약에 맥을 못 추는 느낌이에요. 좀 더 마음을 잘 추스른 뒤에 김 민서 선수에 대한 견제를 한층 더 심하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김 민서 선수에 대한 사전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소리군요.”
“네, 아무래도 그다지 활약하지 못 한 선수니까요. 하지만 오늘 활약을 보고 많은 팀의 감독님들이 김 민서 선수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알아보려고 들 겁니다. 그리고 또 오늘 서브 대결에서 김 유리 선수와 타냐 선수가 활약을 해주면서, 서브 대결에서 이겼다는 생각이 드네요.”
해설자와 캐스터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화면에 득점, 공격, 블로킹, 서브, 상대 범실 전적이 나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독 서브 득점 부분에서 대한 건설이 GS칼텍스를 상대로 압도하고 있었다.
‘무난하게 이기겠군.’
이제 막 1세트가 끝난 참이긴 했지만, 오늘 펄펄 날아다니는 민서의 모습을 보고나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이 싶었다.
‘……2세트부터 고전하다고 해도, 정기를 투자해서 능력치를 올려주면 그만이니까.’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는 채팅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채팅창을 보고 있는데, 어느덧 광고가 끝나고 2세트가 시작되었다.
2세트부터는 민서를 아주 철저하게 마크할 생각인 모양인지, GS 칼텍스 감독은 맨 투 맨까지 붙여서 민서를 견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개인기 60에 득점 결정적 77을 자랑하는 민서를 막아내기엔 상대의 기량이 다소 부족했다. 때문에 맨 투 맨으로 붙은 선수는 번번이 민서의 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GS 칼텍스는 민서의 연속 득점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 하고 2세트에 이은 3세트까지 허무하게 내주면서 3:0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반면에 완승을 거둔 대한 건설의 선수들은 저마다 부둥켜안으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오늘 김 민서 선수가 대활약을 펼치면서 3:0이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김 민서 선수의 활약도 활약이지만, GS 칼텍스 선수들의 소극적인 대처도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하면서 김 민서 선수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견제해야 되었는데요. 덕분에 타냐 선수도 서브 득점 이외에 수많은 득점을 올리면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데 한 몫 거들었습니다.”
이렇듯 캐스터와 해설자가 민서를 칭찬해주었고, 채팅창에서도 다들 민서를 칭찬해주며 팬을 자청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 모습을 보니, 민서가 스포츠 스타가 될 일도 얼마 남지 않은 듯이 싶었다.
‘하긴 몸매 좋지, 예쁘지. 그리고 실력도 보장됐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잖아?’
확실히 내가 생각해봐도 민서는 여러모로 매력적인 선수였다.
‘……이러다가 민서한테 푹 빠져버리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도로 화면으로 시선을 던졌다.
“2015 여자 프로 배구, 대한 건설 대 GS 칼텍스! 오늘 3:0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늘 그 경기의 주인공, 대한 건설 힐스테이트의 김 민서 선수를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자 캐스터가 민서에게 마이크를 내밀며 인사말을 건네자, 민서는 살짝 긴장한 듯이 뻣뻣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하긴 그녀에게 있어서 프로 무대 인터뷰는 생애 처음일 텐데,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주인공인데 일단은 승리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오늘 많이 긴장했는데……. 다들 절 믿어주고, 그리고 응원해주셔서 다행이도 긴장하지 않고 끝까지 경기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여기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누구의 응원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까?”
이 물음에 민서는 살짝 당황한 듯이 양 볼을 새빨갛게 붉히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혹시 가족이나 남자 친구 분께서 응원을 와주신 건가요?”
“아, 아뇨…….”
“그럼 누구신가요?”
수상한 반응을 보이는 민서의 태도에 캐스터가 집요하게 물음을 던지자, 민서는 한동안 어쩔 줄 몰라해하다가 이내 입술을 열어 대답했다.
“사, 사실 어느 분이 있습니다. 제게 큰 도움을 주신 분이고……. 사실 지금도 보고 싶습니다.”
“혹시 짝사랑인가요?”
“아,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리 말하며 마치 나를 쳐다보듯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민서다.
“그럼 한 마디 하시죠.”
“네?”
“오늘 경기를 훌륭하게 끝마친 선수의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과 동시에 캐스터가 마이크를 민서에게 넘기자, 민서는 잠시 얼떨떨한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이며 말소리를 내었다.
“보, 보고 싶습니다!”
덜덜 떠는 목소리로 애써 크게 소리쳐 말하는 민서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말소리가 내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이거……. 날 부르는 거지?’
그 부름에 한동안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이던 나는 이내 정신을 수습한 뒤에 곧바로 매니저 어플을 실행했다.
[GS 칼텍스를 상대로 승리했습니다! 경험치 4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를 정산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김 민서는 현재 640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누적 경험치의 양 640)]
“헛…….”
매니저 어플을 실행한 순간, 경험치가 정산되며 화면에 누적 경험치 640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표시되었다.
역시 연습 경기보다 실전에서 얻는 경험치의 양이 월등히 많았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곧바로 확인을 누른 뒤에 조교 목록을 불러왔다.
[김 민서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지금 민서가 애타게 나를 부르고 있는데, 이런 거에 시간을 할애 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나는 곧바로 네를 눌러서 민서를 선택한 뒤에 조교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 후, 벽에 걸려있는 가면 하나를 골라 얼굴에 쓴 나는 망토까지 몸에 두른 뒤에 1번 방 안으로 들어섰다.
“주인님!”
내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부르는 민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김 민서 씨.”
“보, 보고 계셨군요!”
“아주 잘 봤습니다. 김 민서 씨의 활약,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나는 그녀 쪽으로 한걸음씩 다가서며 이야기했다.
“……득점도 득점이었지만, 니엘 선수의 공격을 김 민서 씨가 막아냈을 때는……. 솔직히 좀 감동이었습니다.”
이렇듯 내가 그녀가 경기에서 보여준 활약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줄 때마다 민서의 얼굴에는 황홀함이 깃들었다. 그리고 이윽고 내가 그녀의 앞에 딱 서자, 민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주인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마치 한 마리의 강아지를 보는 듯했다.
만약에 이런 강아지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난 아마도 평생 집 밖으로 나가지 못 할 게 틀림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셨으니, 특별히 상을 하나 주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이런 내 물음에 민서는 조금 놀란 듯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입술을 오물오물 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에 나는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어 올리게 만든 뒤에 입을 열었다.
“……김 민서 씨, 그렇게 작게 이야기하면 제대로 안 들립니다. 제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똑바로 말해주세요.”
“하읏…….”
내 손에 이끌려 고개를 들어 올린 민서는 작게 신음성을 내뱉으며 벌벌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몸을 가볍게 전율시키며 말소리를 내었다.
“……주세요.”
“어떤 걸요?”
나는 좀 더 그녀 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음을 던졌다. 이에 민서는 수줍음 가득한 얼굴로 내 눈을 몇 번 쳐다보더니, 이내 잔뜩 용기 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절 안아주세요, 주인님.”
========== 작품 후기 ==========
우후후, H씬이다!
50화만에 제대로 된 H씬이 나오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