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성!] -->
‘아니지,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한동안 레벨과 육체에 관한 상관관계를 머릿속에 떠올려보던 나는 문득 고개를 가로저으며 떨쳐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이러는 동안 그녀의 손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며 내 바지 주머니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내 스마트폰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유 서연은 지금 내가 그녀의 손길을 전혀 눈치 채지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윗옷을 벗은 탓에 맨 살이 들어난 내 피부는 그녀의 손길이 아주 조금만 스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쓰게 혀를 찬 나는 지나가는 투로 말을 열었다.
“손 좀 가만히 두시면 안 될까요? 등에 대고 있기 힘들면 어깨를 붙잡던가, 아니면 제 목에 두르세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손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의 큰 가슴이 내 등을 강하게 짓누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드러움을 전해주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두 개의 마시멜로 덩어리를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아……!”
그제야 서연도 내가 윗옷을 벗은 맨몸이란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짧은 탄성과 함께 황급히 손을 떼어내었다. 그리고는 살짝 민망한 듯 몇 차례 헛기침을 하고는 얌전히 내 어깨 위에 두 손을 얹었다.
‘흠, 어떻게 하지? 이대로 가면 계속 의심받을 텐데……. 이왕에 이렇게 된 건, 화난 척 따져볼까?’
물론 그랬다간 오히려 내가 더 의심받을 수도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오히려 내가 당당하게 따지는 것이 의심을 거두는 효과를 낼지도 몰랐다.
범인이 아니기 때문에 대놓고 따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도 안 먹히면 아주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조교의 방으로 불러내서 조교에 조교를 반복하는 것이다.
‘알게 뭐야.’
솔직히 말해서 참는 것도 슬슬 한계점에 달해 있었다.
이제까지 은하를 생각해서 꾹 참고 있긴 했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의심한다는 건, 결국 내가 뭘 어떻게 해도 계속 의심할 거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유 서연이란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쭉 의심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의심은 우리 앞에 범인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범인이?’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렸다.
“잠깐 쉬었다가 가죠.”
이리 말한 나는 그녀를 돌 위에 앉혔다. 그 후, 무릎을 꿇은 나는 서연의 발을 두 손으로 조심히 들어 올려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발은 어때요?”
“많이 괜찮아 진 것 같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의 하얀 발은 여기저기 상처가 난 탓에 빨갛게 부어올라있었다.
“……너는?”
문득 서연이 내게 물음을 던졌다. 이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양말을 신고 있어서 괜찮아요.”
“너 잘 때, 양말도 신어?”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자서 그래요.”
이런 내 변명에 서연은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의심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와 언쟁을 벌여보았자, 자신에게 딱히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내가 여기서 화를 내며 떠나버리기라도 하면, 그녀는 정말로 외톨이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방금 전처럼 고블린들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속수무책으로……. 그 때야말로 강간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그녀라면 분명 이 점을 숙지하고 있을 게 틀림없을 것이다.
‘뭐, 그 의심도 곧 끝이겠지만.’
그녀 몰래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서연의 발을 살펴본다는 핑계로 몸을 잔뜩 웅크린 뒤에 숲 쪽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덕분에 나는 서연의 시선을 피해서 고블린들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케르륵.”
그때였다.
숲 안쪽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와 서연은 흠칫 몸을 굳히며 숲 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들었어?”
“네, 들었어요.”
서연은 바들바들 몸을 떨며 입술을 거듭 달싹였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이대로 도망쳐야 된다는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아예 머릿속에 새하얗게 질린 모양이었다.
‘여자는 결국 여자인가.’
제아무리 똑똑하고, 비정상적인 여자라고는 해도 자신을 강간하려 했던 괴물들과 다시 조우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에 질릴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케르륵.”
“케켓.”
이렇듯 우리가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고블린 세 마리가 수풀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뛰어요!”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나는 재빠르게 몸을 일으킨 뒤에 서연의 손을 붙잡았다.
“으, 으윽…….”
그러나 그녀는 지금 상황에 압도된 모양인지, 몸을 일으켜야 된다는 생각도 못 한 채 울음을 끅끅 터트렸다. 얼굴색이 새하얗게 질린 것이 정말로 저 고블린들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으득 이를 갈고는 서연의 앞에 섰다.
“제가 시간을 끌 테니까, 먼저 도망치세요.”
“하, 하지만…….”
“하지만 뭐요? 어떻게 하려고요!”
무어라 반박하려는 그녀의 말소리에 내가 크게 소리치자, 서연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더 흠칫 떨었다.
“……도망쳐요!”
내 말소리와 동시에 고블린 한 마리가 날 향해 달려들었다.
“케켓!”
녀석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나무 몽둥이를 나를 향해 휘둘렀고, 나는 그것을 피할 생각도 못 한 채 팔을 들어 막는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내가 여기서 옆으로 피해버리게 되면, 바로 뒤에 있는 서연이 몽둥이에 맞게 되는 것이었다.
퍽!
“아악!”
순간 살이 뜯겨져 나가는 듯한 통증이 내 팔을 타고 전해져왔다.
얼마나 아픈지, 내 입술 사이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대로 혹시 죽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더럽게 아프네!’
마음 같아서는 의심이고, 신파극이고 뭐고 전부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애써 인내심을 발휘하며 크게 소리쳤다.
“도망치라고!!”
이런 내 외침에 그제야 서연은 끅끅 소리를 내며 홀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고블린들은 좀 더 나를 두드려 팰 생각이 모양인지, 아주 단체로 달려들었다. 어찌나 빠르게 달려들던지, 이번에는 별달리 막아내지도 못 한 채 등이며 어깨를 몽둥이로 얻어맞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힘 조절을 해준 모양인지, 아까처럼 그렇게 아프게 느껴지진 않았다.
“케켓. 주인님, 그 여자 도망쳤습니다.”
“케르르. 쫒을까요?”
이렇듯 몇 분간의 매타작이 이어진 끝에 고블린이 몽둥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
반면에 나는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채로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온 몸이 다 아프네.’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나마 괜찮은 곳이라고 한다면 얼굴 정도라고 할까? 그렇게 한동안 땅바닥에 드러눕고 있던 나는 이내 처음 나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던 고블린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저한테 무슨 억한 심정이 있으십니까? 왜 그렇게 세게 때리셨습니까?”
이런 내 물음에 고블린은 살짝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이내 자기 뒤통수를 슬슬 문지르며 대답했다.
“케륵. 주인님이 먼저 제게 돌멩이를 던지지 않으셨습니까? 케륵케륵.”
“…….”
그 말을 듣고 보니 할 말이 없어졌다.
‘인과응보네.’
끄응, 속으로 침음성을 삼킨 나는 이내 몸을 일으킨 뒤에 입을 열었다.
“그 때, 죄송했습니다. 설마 저도 그렇게 세게 날아갈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렇듯 내가 고개를 숙여가며 사과하자, 고블린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케륵케륵! 아닙니다. 케륵! 지금 생각해보면 영광입니다! 케륵!”
그 말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고블린의 뒤통수를 슥슥 어루만져주었다. 그 후,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용케 안 깨졌네.’
마구잡이도 매타작을 받는 와중에 스마트폰이 깨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스마트폰은 멀쩡했다. 오히려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스마트폰처럼 깨끗했다. 역시 이 스마트폰……. 매니저 어플에 보호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하여튼……. 시작해볼까?”
이리 생각한 나는 초기 화면으로 넘어간 뒤에 조교 항목을 넘어갔다.
[현재 사용자의 레벨은 ‘5’입니다.]
[반경 10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여성들만 조교할 수 있습니다.]
[조교 할 여성을 골라주세요.]
[목록에 저장되어 있는 여성이 존재합니다.]
[목록을 열람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역시.”
내가 생각한대로 이계 퀘스트를 진행하는 와중에 조교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이에 옅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네를 눌러서 목록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조교할 대상으로 엘레노아를 선택했다.
[엘레노아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당연히 Yes였다.
[바로 조교의 방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이번엔 주의 항목이 나타나지 않네? 흠……. 노예의 경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단 건가?”
아무래도 목록 속 여성과 노예를 똑같이 취급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하긴 노예가 왜 노예겠는가? 쿡쿡, 웃음을 터트린 나는 곧바로 네를 눌러서 조교의 방으로 이동했다.
========== 작품 후기 ==========
서연 스토리를 버리고 가고 싶은데, 버리고 가면 버리고 가는데로 찝찝해서...
일단 마무리 짓고 민서로 넘어가겠습니다.
민서가 최고죠. 민서!
생체실험샘플 님 : 제가 너무 난해하게 썼나보네요. 앞에서 서연이 얘들을 찾아야 된다고 말한 건, 일종의 떠보기였습니다. 주인공에게 다른 얘들도 오진 않았을까? 하고 떠본겁니다. 만약에 범인이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그럴리가 없어. 안 왔을 테니까. 라고 말하거나 우리 둘 밖에 없어.라고 단정지어 말했겠죠. 뭐...이건 3인칭으로 바꿔서 해야했는데, 아무래도 1인칭으로 쓰다보니 설명이 다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화에서 이 점 언급하겠습니다.
+그런데 언급을 못 했어요. 죄송합니다. 제 능력 부족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