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성!] -->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산 너머 산이라더니, 지금 상황이 딱 그 짝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신 예은은 우리가 앉아있는 자리까지 다가와서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 인사말에 유 서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 네가 오늘 나한테 전화한 신 예은이지?”
“네.”
“그래, 일단 여기에 좀 앉아봐.”
이리 말한 서연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예은이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에 예은은 그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며 자리에 앉았다.
“……가볍게 자기소개부터 해볼까? 나는 유 서연. 27살이고 회사원이야. 그리고 저쪽은 이 은하, 김 유현. 둘 다 대학생이야.”
그 소개에 나와 은하는 예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은하에요. 2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김 유현입니다. 대학생 4학년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소개를 들은 예은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배도 피해자인가요?”
“아니요. 저는 범인 찾기를 도와주려고 온 겁니다.”
나는 차분하게 대답하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최대한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걸로 그녀의 호감을 이끌어내기란 다소 역부족이었던 모양인지, 나를 바라보는 예은의 시선에는 티클 만큼의 호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은이 나를 불쾌하게 여긴다거나,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저 무감정.
딱 나를 대한민국의 널리고 널려있는 수많은 남자들 중에 한 명으로 바라봐주고 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네.’
솔직히 말해서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유 서연이 특이한 거였지.’
재수가 옴 붙어도 단단히 옴 붙었다고 할 수 있었다.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그녀는 곧 우리를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전 신 예은이에요. 2학년이고요. 잘 부탁드려요.”
딱 의례적으로 자기소개를 끝마친 예은은 서연을 바라보았다. 이에 서연은 무언가 흉계를 꾸미고 있는 듯이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은아, 너는 저 남자를 보고 뭔가 안 떠올라?”
“글쎄요?”
“그 가면 쓴 변태 새끼 같다는 생각이 안 들어?”
“…….”
이러한 서연의 말에 예은은 다시 한 번 더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 한 모양인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닮았다고 생각되지 않아?”
“물론 닮긴 닮았죠. 하지만 저렇게 흔하게 생긴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요. 당장 여기 카페 안에만 해도 세 명은 되는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대로 나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남자는 이 카페 안에만 해도 족히 세 명은 되었다.
“그럼 저 남자가 그 가면을 쓴 변태라고 가정한다면?”
“왜요?”
“뭐?”
“그쪽 참 이상한 사람이네요. 왜 저한테 그런 걸 강요하죠?”
“아니…….”
“선배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있나요?”
“그, 그건 없지만…….”
“그럼 선배가 스스로 자기가 범인이라고 밝히기라도 했나요?”
“…….”
“우리 지금 범인을 잡으려고 모인 거 아니었나요? 왜 다짜고짜 선배를 의심하나요? 그리고 아까 들어보니까, 선배는 우리를 도와주러 오신 것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건가요? 만약에 제가 남자였다면 저도 의심할 생각이셨나요?”
속사포처럼 쉼 없이 쏘아대는 신 예은의 말소리에 유 서연은 적잖게 당황한 모양인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곧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어째선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설마 도와달라는 건가? 아니면 분해서?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입을 열어 예은을 말렸다.
“그나저나 범인은 어떻게 찾을래요?”
이런 내 말소리가 내 옆에 있던 은하가 맞장구치며 소리쳤다.
“그래요, 우리 범인이나 빨리 찾아봐요!”
이렇듯 나와 은하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치자, 그제야 예은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동시에 서연은 형편없이 구겨진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동안 창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이윽고 마음이 진정된 모양인지 입을 열었다.
“그래, 범인이나 찾자.”
반쯤은 자포자기한 듯한 목소리로 이리 말한 그녀는 은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부탁한 거 있지. 그것 좀 꺼내봐.”
“아, 네.”
그 말에 은하는 가방 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여기서 아는 이름 있어?”
은하가 꺼낸 종이에는 여러 남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 중에는 내가 아는 이름도 여럿 있었다.
“몇몇 있네요.”
그 때, 예은이 종이에 적혀있는 남자의 이름을 손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에 수연은 볼펜을 하나 꺼내, 예은이 가리킨 남자들을 하나하나 동그라미 쳤다.
“좋아, 그럼 이 사람들부터 찾아가보자.”
“자, 잠깐만요!”
이러한 서연의 말에 은하가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왜?”
“설마 또 어제처럼 무작정 그러시려는 건 아니죠?”
그 말에 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 문제라도 있어?”
“당연히 있죠! 어제는 오빠가 착했으니까 봐줬지만,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미 경찰서까지 갔다고요!”
“그럼 어떻게 알아내려고? 설마 거기에 가서, ‘혹시 가면을 쓴 변태세요?’라고 물어보려고? 그럼 퍽이나 그 사람이 ‘네, 제가 범인입니다.’라고 대답해주겠다!”
“…….”
이러한 서연의 말에 은하는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 한 모양인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에 잠자코 있던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보니까 몇몇은 제가 아는 애들이니까,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얻어내 볼게요.”
“그럴 수 있어?”
“아마도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일단 가보자.”
이렇듯 결정이 내려지자, 우리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은하가 뽑아온 남자 목록에서 예은이도 알고 있는 남자들부터 찾아갔다.
“어? 형, 무슨 일이세요?”
첫 번째는 우리 학과 후배인 장 석훈이었다.
은하와 마찬가지로 2학년인데, 제법 싹싹한 성격이라서 가끔씩 만나서 같이 술을 마시곤 하는 사이였다.
“야, 내가 여자 한 명 소개시켜주려는데 어때?”
“예뻐요?”
“예뻐.”
이리 말한 나는 녀석을 문 밖으로 끄집어낸 뒤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자 세 명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여자 세 명은 당연히 은하와 서연, 그리고 예은이었다.
은하와 예은이는 둘째치더라도 유 서연은 두 말 할 것 없이 미인이었기 때문에 나는 자신 있게 예쁘다고 할 수 있었다.
“어? 은하 누나랑 예은이네? 어어? 형, 혹시 저 여자에요?”
석훈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연을 바라보았다.
“어때?”
“저야 좋죠!”
크게 소리쳐 말한 녀석은 나보고 어서 빨리 저 여자를 소개시켜달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봐.’라고 말한 뒤에 서연에게 손짓했다.
“…….”
이러한 내 손짓에 그녀는 무척이나 아니꼬운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순순히 계단을 따라 올라왔다.
“아, 안녕하세요.”
유 서연이 우리 앞에 딱 서자, 석훈은 녀석 답지 않게 목소리까지 떨며 인사했다. 이에 서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녕.’이라고 대답했다. 꽤나 무성의한 대답이 아닐 수 없었지만, 녀석은 그 인사말조차도 흥분된다는 듯이 더더욱 기분 좋게 웃어보였다.
어찌나 헤벨죽 웃어대던지, 입 꼬리가 귀밑에 걸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뭐, 본격적인 소개팅은 나중에 하고 전화 번호부터 교환하는 게 어때?”
“아, 네! 그러네요! 저 번호 좀 찍어주실래요?”
이리 말한 석훈은 자기 스마트폰을 서연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서연의 표정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설마하니 이런 방법은 스마트폰을 얻어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본래의 목적을 떠올리고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저, 저기…….”
단순히 번호만 적어주면 되는데, 꽤 오랫동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서연의 태도에 석훈이 석연찮아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녀석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입을 열었다.
“야, 원래 미인의 번호를 따는 건 오래 걸리는 일이야. 좀 참아.”
“으음…….”
이런 내 말에 석훈은 썩 내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일단 학교 선배인 내 앞이기도 했고 눈앞에 미인이 서있기도 해서 더 이상 무어라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서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서연은 더 이상 의문점을 찾지 못 한 모양인지 스마트폰을 석훈에게 돌려주며 입을 열었다.
“별거 없어.”
“못 찾았어요?”
“응.”
이리 말한 그녀는 미련 없이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석훈이에게 ‘야, 다음에 형이 술 살게.’라고 말한 직후, 서연의 뒤를 쫓아갔다. 그 후, 그녀의 옆에 선 나는 입을 열었다.
“집 안 뒤져봐도 되요?”
“딱 봐도 아닌데 내가 뭐 하러?”
흥, 하고 가볍게 콧방귀를 뀐 그녀는 그대로 쌩하니 지나쳐 갔다.
========== 작품 후기 ==========
곧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