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매니저 어플-36화 (36/599)

<-- [육성!] -->

한참 경기에 집중해서 영상을 보고 있는데, 불현듯 카톡! 하고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나는 잠시 영상을 멈춘 뒤에 내게 카톡을 보낸 사람을 확인해보았다.

“은하네?”

얘가 대체 무슨 일로 나한테 카톡을 보낸 걸까? 이리 생각하며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거기에는 ‘10분 뒤에 내려갈게요.’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10분 뒤라니…….’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졌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은하가 왜 여기로 오려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는데, 문득 한 가지 추측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혹시 밥 사주려고 하는 건가?’

마침 시간도 오후 6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어?”

시간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벌써 6시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점심 끼니를 때우고 있었는데, 배구 경기 몇 개를 보고나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어있었다.

‘한번 보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네.’

혀를 내두른 나는 영상을 끈 뒤에 곧바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 후, 집 밖으로 나가자 마침 은하도 2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던 모양인지 딱 하고 나와 마주쳤다.

“오빠!”

은하의 발랄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기분 좋은 울림.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들었다.

“밥 뭐 사줄 거야?”

“밥이요? 무슨 밥이요?”

“밥 사주려고 부른 거 아니었어?”

이런 내 물음에 은하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뚱한 얼굴로 나를 쏘아보더니 곧 거만하게 팔짱을 끼며 소리쳤다.

“아니거든요!”

동시에 턱 밑까지 내려오는 갈색 단발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렸다.

“그럼 왜 부른 거야?”

“서연 언니가 모이자고 해서요.”

“응? 아……. 아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대충 사정이 파악되었다.

어제에 이은 오늘도 범인 찾기에 나설 생각인 모양이었다.

‘헛수고일 텐데.’

속으로 쓰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디서 모이자고 했어?”

“언니가 오빠한테 카톡 안 보냈어요?”

그 물음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여자, 끝까지 나를 가면의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어제, 헤어지기 바로 직전까지 나를 보고 가면의 남자가 아니냐며 추궁하던 그녀였다. 그런 만큼 나를 쉽사리 믿어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아니.”

“그래요? 뭐……. 괜찮아요. 어차피 제가 알고 있는 커피숍이니까요! 저만 따라오세요!”

이리 소리쳐 말한 은하는 제 가슴을 쭉 내밀었다. 하지만 워낙에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었던 탓에 가슴이라던가, 가녀린 몸매가 딱히 드러나지 않았다. 완전히 어린애 취향이었다. 하지만 이 옷을 한 꺼풀 벗겨내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저은 나는 서둘러 헛된 망상을 떨쳐내었다.

“가자.”

그 후, 나는 은하와 함께 유 서연과 만나기로 한 커피숍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안 도착했나 보네요?”

나와 함께 커피숍 안에 들어선 은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서연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유 서연은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은 모양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나는 은하를 데리고서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난 오렌지. 너는?”

“전 카페오레요.”

이렇듯 커피를 주문한 나는 은하와 함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범인이 누구인거 같아?”

나는 자리에 앉는 동시에 넌지시 은하에게 물음을 던졌다. 이에 은하는 하얀 화병에 꽂혀있는 빨간 꽃잎을 바라보며 작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어요.”

은하는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가면을 쓴 남자가 누군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모양인지,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거렸다.

“그래?”

“네……. 오빠는 누구일 거 같아요?”

“글쎄.”

나는 짐짓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턱을 매만졌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 남자를 잡을 수 있을까요?”

그 때, 은하가 아까보다 조금 더 또렷하고 큰 목소리로 거듭 물음을 던졌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어지간히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때, 창문 너머로 들어온 노을빛이 은하를 감싸는 바람에 조금 눈이 부셨다.

“보니까 그 유 서연이란 사람, 뭔가 생각이 있어 보이던데?”

“하지만 이상한 사람이잖아요.”

은하가 삐죽 입술을 내밀며 부정했다.

“……게다가 오빠의 결백이 증명됐는데도 계속 의심하고요.”

이리 말하며, 마치 내 동의를 구하듯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은하의 태도에 순간 양심이 따끔따끔 거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 양심의 비명 소리를 간단히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하긴. 그건 좀 이상하긴 했지.”

“그렇죠?”

이렇듯 내가 동의해주자, 은하는 한층 더 신이 난 표정을 지어보이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나를 아주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러다가 나중에 내가 가면의 남자라는 게 밝혀지면, 은하가 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지…….

문득 그 표정이 궁금해지긴 했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로 만에 하나 내가 가면의 남자란 게 밝혀지게 된다면, 은하가 충격 먹는 것은 둘째 치고 유 서연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밤길 조심해야지.’

으스스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킨 나는 진동 벨이 울리는 것을 확인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피 가져올게.”

“저도 같이 가요!”

“넌 자리나 지키고 있어.”

이리 말한 나는 진동 벨을 가지고서 카운터로 갔다.

그 후, 진동 벨을 반납하고 커피와 음료를 받은 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어?”

자리로 돌아가 보니, 언제 온 건지 유 서연이 내 자리에 아주 자연스럽게 앉아있었다.

“뭐야? 너도 온 거야?”

그녀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꼬운 모양인지, 눈살을 와락 찌푸리며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내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은하가 양 손을 쭉 뻗으며 소리치듯이 말했다.

“우, 우리 다 같이 범인을 찾기로 했잖아요! 언니도 그 때 동의했잖아요? 네?”

“…….”

그 외침에 나와 서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은하에게로 향했다. 이에 은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자, 오빠. 여기 앉으세요.”

이 말과 동시에 안쪽으로 들어간 은하는 내게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 배려에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 앉은 뒤에 내가 마시려고 사온 오렌지 주스를 유 서연에게 내밀었다.

“드세요.”

“안 먹어.”

사람 무안하게 단칼에 거절하는 그녀의 태도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람이 주면 그냥 받아주면 안 돼요?”

“내가 뭐 하러? 그리고 네가 그 주스에 뭘 탔을지 누가 알아?”

“제가 범죄자입니까?”

“그럼 아니야? 변태 가면.”

아주 확정을 지은 모양인지, 자연스럽게 나를 변태 가면이라고 부르는 유 서연이었다. 이에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고는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들이켰다.

“언니! 유현 오빠는 가면 쓴 남자가 아니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그리고 그 이야기 이미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야.”

“네?”

“넌 그 변태 가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

갑작스런 서연의 물음에 은하는 잠시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 글쎄요……. 젊은 남자라는 거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 정도요.”

이러한 은하의 태도에 서연을 피식, 비웃음을 날리며 대답했다.

“그럼 그 세 가지를 종합해서 저 남자한테 대입해봐.”

“네? 대, 대입해보라니요?”

“네가 봤었던 그 변태 가면의 모습하고 저 남자의 모습을 비교해보란 거야.”

“어, 억지잖아요! 이건 다른 사람한테 대입해도 비슷하게 보이는 걸요!”

이 말에 서연을 쳇 하고 혀를 차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몇 가지 더 추가해 볼까? 그래, 가령 예를 들어서…….”

잠시 말끝을 늘린 그녀는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남자에게 이걸 씌우는 거야.”

이 말과 동시에 그녀는 자기 가방 안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아!”

그 순간, 은하의 입술 사이로 탄성이 새어나왔다.

물론 나 또한 그 물건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탄성을 터트릴 뻔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 물건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수로…….’

그녀가 가져온 물건은 바로 ‘가면’이었다.

그것도 내가 조교의 방에서 쓰던 가면과 똑같은 가면을 말이다.

‘……어떻게 구한 거지?’

조교의 방에만 있는 물건이 아니었나? 설마 유 서연도 매니저 어플을 손에 넣은 걸까?

나는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뭐죠, 이게?”

태연을 가장해서, 애써 물음을 던진 나는 유 서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이런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나를 협박하는 것처럼 말이다.

‘피해선 안 돼.’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유 서연의 시선을 받았다.

“그 변태 가면이 쓰던 가면이야.”

“이걸 어디서 찾은 거예요, 언니?”

서연의 입술 사이로 대답이 흘러나오기가 무섭게 은하가 덜덜 떠는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이에 그녀는 검지로 가면을 슬슬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만든 거야.”

“네?”

“너하곤 다르게 나는 그 변태 새끼한테 세 번씩이나 당했거든? 이 가면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고……. 심지어 꿈에도 나오는데, 어떻게 잊겠어?”

뿌득뿌득, 이를 갈면서 가면을 쏘아본 그녀는 이윽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거 써봐.”

이리 말하며 내게 가면을 내미는 유 서연이다.

‘미친.’

그녀가 내민 가면을 본 순간, 절로 욕 소리가 새어나왔다.

“왜 그래? 안 쓸 거야? 쫄려?”

나를 도발해 오는 그녀의 말소리에 나는 짐짓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제가 왜 이걸 써야하는데요?”

“그냥 한번 써보는 거잖아. 왜? 네가 그 변태 가면이란 게 들통날까봐 무서운 거야?”

“아니……. 들어보니까 이게 그 변태 자식이 쓰고 있었다는 가면 같은데, 제가 왜 이걸 써야 된다는 겁니까? 그리고 이걸 보고 상처받을 은하는 생각하지도 않는 겁니까?”

이리 말하며 은하를 두둔해주자, 내 옆에 앉아있던 은하가 무척이나 감동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곧 서연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맞아요, 언니! 왜 자꾸 오빠한테 이런 걸 씌우려고 하는 건데요!”

“야.”

“언니, 지금 엄청 말도 안 되게 트집 잡고 있는 거 모르세요?”

“하…….”

이런 은하의 말에 서연은 머리가 다 아프다는 듯이 이마를 짚으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유현 오빠는 이제 그만 의심하고, 우리 범인이나 잡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딱 대화를 원위치 시켜버리는 은하의 말재주에 나는 속으로 만세 삼창을 외쳤다.

역시 은하를 걸고넘어지길 잘 했다.

“…….”

반면에 유 서연은 그저 분하다는 듯이 이를 갈며 나를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이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숙여 발신자를 한번 확인해 보더니, 곧 의기양양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뭐, 좋아. 범인이나 잡자.”

이리 말한 그녀는 전화를 받은 뒤에 입구 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곧 상대방도 이쪽을 발견한 모양인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내 눈동자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신 예은……!’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여성은 어제 점심 때, 내가 조교했었던 다섯 명의 여자들 중에 한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빈유든, 거유든, 폭유든 무엇이 문제란 말입니까?

다 같은 가슴인 것을요.

전 그저 가슴이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