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성!] -->
“아, 아는 사람이요?”
여성의 물음에 은하는 저도 모르게 떨떠름한 목소리로 되묻고 말았다.
“왜? 없어?”
“아뇨, 그건 아닌데…….”
은하는 말꼬리를 늘어트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으면서, 내가 아는 남자라곤 유현 오빠뿐인데…….’
머릿속으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유현 오빠가 그 가면의 남자면 어떻게 하지?’
은하는 슬쩍 눈앞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한 눈에 보아도 가면의 남자에게 아주 큰 원한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을 듯이, 유현 오빠에게 무슨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유현 오빠가 가면의 남자가 맞는다는 전제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 유현 오빠가 그럴 리가 없어.’
유현 오빠가 그럴 리가 없었다.
더욱이 은하가 보았을 때, 유현 오빠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리고 자기 일도……. 자신을 그저 아는 동생으로만 여길 뿐, 이성으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에 자신을 이성으로 보았었다면, 어젯밤 치킨을 먹으면서 술을 마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나야만 되었다.
“왜? 뭐가 문제야?”
다시금 여성이 은하를 보챘다. 이에 은하는 재빨리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아니에요! 얼른 가죠!”
이리 소리쳐 말한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여성과 함께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그 후, 자취방이 있는 빌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야?”
“네.”
“남자는?”
“2층이에요.”
“몇 호?”
“201호요.”
“가자.”
유현이 살고 있는 자취방의 주소를 알아낸 여성은 곧바로 성큼성큼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그 후, 문 앞에 선 여성은 초인종을 눌렀다.
띠동.
“…….”
초인종을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안쪽에서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없나?”
고개를 갸웃한 여성은 주먹을 꽉 쥔 다음에 문짝을 세 차례 두드렸다.
탕탕탕!
“…….”
꽤 세게 두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안쪽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없나 봐요.”
은하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이에 여성은 흠, 하고 침음성을 내뱉더니 곧 은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전화해봐.”
“네?”
“일단 만나봐야 될 거 아냐?”
“그, 그래도…….”
“전화번호 몰라?”
“아뇨…….”
“그럼 빨리 전화해봐.”
어서 빨리 전화해보라며 보채는 여성의 태도에 은하는 우물쭈물 댔다.
‘이렇게 갑자기 전화해도 될까?’
그것보다 전화를 건 의도가 무척이나 불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현을 가면의 사내로 의심해서 전화를 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화내지는 않으실까?’
전전긍긍해하며 갈등하는데, 돌연 저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은하야.”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기에는 유현 오빠가 서있었다.
∴ ∵ ∴ ∵ ∴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우리 집 앞에 서있는 은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은하야.”
나는 오른손을 들어 은하에게 손 인사를 했다. 그러자 활짝 개인 얼굴을 하고서 입술을 뻐끔뻐끔 거리는 은하다.
“안녕하세요!”
은하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기분 좋게 울렸다.
딱 듣기 좋은, 활기찬 목소리였다.
나는 은하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당신이 201호 사람?”
그 때, 한 명의 여성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검은색 계통의 오피스 룩을 입고 있는 미인이었다.
‘유 서연?’
순간 나도 모르게 당황하고 말았다.
‘……왜?’
발끝이 저릿저릿 거려왔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낀 나는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요? 누구시죠?”
“…….”
이런 내 물음에 그녀는 두 눈을 치켜뜨고서 나를 쏘아보았다.
마치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의 눈초리 같았다. 그저 이렇게 마주 서있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또 이것과는 별개로 내 앞에 서있는 유 서연은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동양인답지 않게 긴 속눈썹은 솔직히 예뻤다. 전형적인 서구적인 미인이었다. 거기다가 까만 오피스 룩은 그녀의 매혹적인 몸매를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들어갈 곳 들어가고, 나올 곳 나온 그녀의 몸매는 잡지 속 모델들과 비교하더라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쿵쿵, 뛰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누구시죠?”
나는 재차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일순 그녀의 검은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냈다.
“알고 있잖아요.”
“글쎄요. 저는 그쪽을 처음 보는데요?”
“끝까지 시치미 뗄 건가요?”
집요하게 나를 물고 늘어지는 여성의 태도에 나는 은하에게 도움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은하야, 이 사람……. 아는 사람이야?”
“네? 아, 네.”
내 질문을 받은 은하는 어째선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네가 데려온 사람이야?”
“오, 오빠……. 그게 그러니까…….”
은하답지 않게 우물쭈물 대는 모습이 순간 처음 조교의 방에서 마주했던 은하의 모습과 겹쳐서 보였다.
‘설마…….’
일순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처음 보았던 은하가 정말로 은하였다고?’
아닐 거라고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되뇌어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은하에 대한 미안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어떻게 하지.’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은하와 서연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서연이 내 쪽으로 바짝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스마트폰 내놔.”
“그게 무슨…….”
“확인할게 있으니까 잠깐 내놓으라고.”
이리 말하며 내게 손을 내미는 서연이다.
‘미친…….’
그녀의 하얗고 고운 손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얼른 내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 서연은 그 찰나의 내 표정을 본 모양인지, 한층 더 의기양양해진 표정을 지어보이며 손을 까닥 까닥 댔다.
‘용서를 빌까?’
지금이라도 당장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면, 서로 좋게 넘어가지 않을까? 운이 좋다면 뺨따귀 한 번으로 끝날지도 몰랐다.
‘……아니, 서연의 성격상 그렇게 간단히 끝날 리가 없지.’
입술을 깨문 나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도망칠까?’
확실히 여기서 내가 도망쳐 버린다면, 하이힐을 신고 있는 유 서연이 나를 따라잡기란 무리였다.
‘……아니, 이 여자라면 밤새도록 나를 기다릴 거야.’
더욱이 내가 여기서 도망치는 순간, 내 죄를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었다.
‘조교할까?’
가장 그럴듯한 방법이긴 했지만, 과연 내가 매니저 어플에 접속하고 유 서연을 조교의 방으로 이동시킬 시간을 벌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여러 가지 알림문구가 떠오르는 매니저 어플의 특성상 적어도 20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니 말이다.
“내놓으라고!”
그 때, 갑자기 유 서연이 날 향해 덤벼들었다.
“윽!”
그 탓에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복도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물론 나를 향해 달려들었던 유 서연 또한 내 품에 안긴 채로 넘어지고 말았다.
“여기 있지?”
“이, 이봐요?”
하지만 유 서연은 나와 몸이 뒤엉겨다는 것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내 가슴 주머니부터 시작해서 바지 주머니까지 더듬더듬 손으로 만져대기 시작했다.
“……당신 미쳤어요?”
성추행에 가까운 그녀의 행동에 크게 소리쳐보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내 스마트폰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곧 그녀는 결국 자신이 찾던 스마트폰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잠금 풀어!”
“이봐요, 당신…….”
“어서 풀라고! 왜? 쫄려?”
이리 소리쳐 말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확신이 가득 차있었다.
========== 작품 후기 ==========
유서연 : 쫄리면 뒈지시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