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성!] -->
퇴폐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방 안의 풍경에 민서는 식은땀을 흘렸다.
‘왜 여기로……?’
어째서 여기로 불려와진 걸까? 자신이 무언가 잘 못을 한 걸까? 아니면 어제 자신이 무언가 말실수를 했던 건 아닐까?
두려움에 질린 그녀는 다리를 한껏 오므렸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가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무슨 수를 내어야만 되었다.
끼이익.
하지만 그녀가 미처 무얼 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김 민서 씨.”
동시에 괴상한 가면을 쓰고 있는 사내가 방 안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이에 그녀는 이를 딱딱 부닥치며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애를 써보았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속의 힘이 한층 더 강해진 듯싶었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당신께 한 가지 제안을 하려고 찾아온 것이니까요.”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아니, 그 전에 한 가지 따질 일이 있군요.”
“힉!”
그녀의 앞 선, 그가 돌연 고개를 숙여 민서와 시선을 마주쳤다.
“어제는 제법 발칙한 짓을 하셨더군요. 유 서연 씨에게 우리의 일을 이야기할 줄이야……. 솔직히 실망했습니다.”
“그, 그건…….”
“그건?”
그녀의 끝말을 따라하면서 다음 말을 보채는 그의 태도에 민서는 흠칫, 몸을 떨면서도 어떻게든 변명을 하기 위해서 말소리를 뽑아내었다.
“서, 서연이를 납득시키려고……. 서연이를 납득시키려면 그것 밖에 없었어요!”
“납득이라…….”
“정말이에요! 정말로 그 방법 밖에 없었어요! 안 그랬으면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는걸요!”
민서의 외침이 그에게 닿은 모양인지, 그는 가면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뒤,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상체를 똑바로 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은 믿겠습니다.”
“하아…….”
이러한 그의 말에 민서는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어깨에 힘을 풀었다.
‘다, 다행이다.’
혹시라도 그가 또다시 자신의 엉덩이를 때리거나 하지는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아프다거나 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폭행에 익숙해져 있는 그녀였기에 엉덩이를 맞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실제로도 선배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기합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낯선 사내에게 자신의 엉덩이를 훤히 내보인 채로 손바닥으로 얻어맞는다는 수치심 때문이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경험해보지 못 한 그녀였기에……. 더욱이 엉덩이를 맞으면서 느끼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굴욕감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그럼 오해도 풀렸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제가 당신에게 제안하려는 것은 직업에 관한 것입니다.”
“지, 직업이요?”
“그렇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당신의 직업을……. 지금보다 훨씬 나은 위치로 올려드리려는 겁니다.”
“그, 그게 무슨…….”
그의 제안에 민서가 도무지 믿을 수 없단 목소리로 반문하자, 그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정말입니다. 당신만 허락한다면, 저는 당신을 프로 배구 선수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소리가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려와서, 순간 민서의 머릿속이 어질어질 거려왔다.
정말로 자신을 프로 배구 선수로 만들어줄 수 있는 걸까? 여기서 그의 물음에 ‘네.’라고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프로 배구 선수가 된다고? 머리로는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해보지만, 자신의 몸은 어서 그의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라면 틀림없이 자신을 프로 배구 선수로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정말로 악마인 걸까?’
확실히 그는 기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코트에 서있던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오질 않나, 시간을 멈추질 않나……. 악마가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민서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대, 대가는 뭔가요?”
“대가요? 음……. 그렇군요. 모든 일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리 중얼거린 그는 곧 옅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대가로 당신의 정기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저, 정기요?”
“그렇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그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 고민하더니, 곧 민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을 제 노예로 삼겠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서까지 당신을 노예 취급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필요할 때, 이곳으로 와서 제 상대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사, 상대라고 하면……?”
“가령 예를 들어 키스라던가, 펠라치오가 있겠군요.”
이런 그의 말에 순간 민서의 양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그런!”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강제로 섹스를 하거나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하지만……!”
“키스나 펠라치오도 어디까지나 예시에 불과합니다. 생각해보세요, 김 민서 씨. 저는 지금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당신에게 키스를 받으려면 부득이하게 가면을 벗어야 됩니다. 그 말은 즉, 제 정체가 탈로난다는 겁니다. 그건 제 입장에서 그다지 원치 않는 상황입니다.”
“…….”
“그리고 펠라치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펠라치오란 건, 상호 간에 신뢰가 바탕 되어야 하는 겁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 여성이 제 성기를 물어뜯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그건 한 명의 남성으로서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설명에 민서는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럼……. 뭘 시킬 건가요?”
“구체적으로 원하십니까?”
“구체적으로 원해요.”
단호한 민서의 말소리에 남자는 어쩔 수 없단 듯이 어깨를 한번 으쓱이곤 대답했다.
“일단은 로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자위 정도는 해보셨겠죠?”
“…….”
노골적인 그의 물음에 민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답이 없으시군요. 뭐, 경험이 있다는 것으로 알아 듣겠습니다.”
이리 말한 그는 서랍장 위에 올려져있는 로터를 가져와 입을 열었다.
“……오늘 저는 이걸로 당신을 괴롭힐 겁니다. 자, 그럼 이걸로 궁금증이 해결되셨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제 제안에 동의하십니까?”
그 물음에 민서는 한동안 고민하는 기색을 내보이다가 이내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동의할게요.”
========== 작품 후기 ==========
후후, 악마의 계약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