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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
한참 곤히 자고 있는데, 창문 너머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 나는 슬쩍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야채 따위를 가득 실은 트럭이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아하니, 벌써 시간이 오후를 향해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보자.”
도로 이불 위에 드러누운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오래도 잤네.”
어제는 꽤 일찍 잔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오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러다가 방학 끝나고, 학기 중에 매일 같이 지각하는 건 아닐까 덜컥 걱정이 될 정도였다.
쩝쩝, 입맛을 다신 나는 습관처럼 밤새 나한테 온 카톡이 없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내게 따로 개인적으로 온 카톡은 없고, 그저 단톡방에서 떠드는 메시지만 한 가득 했다.
역시라면 역시였다.
‘밥이나 먹을까?’
이런 생각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문득 스마트폰 상단에 하나의 알림문구가 떠올랐다.
[매일매일 출석체크! 매니저 어플에 접속해주세요!]
“미친……. 출석체크도 있는 거야?”
이건 꽤나 강렬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타 모든 게임에서 출석 체크로 얻는 보상은 꽤 후한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무엇보다도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저 하루에 한 번 접속했다는 것만으로도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유저 입장에선 꽤나 매력적인 일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매니저 어플을 실행했다.
‘그래, 뭐 잠깐 출석 체크만 하는 거라면…….’
라고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다독여보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이 게임의 마수에 걸렸다는 것을 말이다!
[축하합니다!]
[출석 체크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아이템 상자가 주어집니다.]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요]
“오…….”
비록 마수에 걸리긴 했지만, 보상은 꽤 좋은 것이었다.
물론 랜덤 스킬 상자를 주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랜덤 아이템 상자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뭐가 나올라나?’
나는 사뭇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랜덤 아이템 상자를 수령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직위 상승 (1회)’을 획득하셨습니다!]
[효과 : 목록에 저장되어 있는 여성의 직위를 한 단계 상승시킵니다. (단, 사용자보다 높은 직위로는 상승시킬 수 없습니다.)]
[유효한 시간 : 1시간]
“직위 상승?”
나도 모르게 조금 놀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설마하니 이런 아이템이 존재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직위 상승이라면 설마 그건가…….’
구체적으로 표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 맞는다면 분명히 직업에 관련된 것이 틀림없었다.
가령 예를 들어 이 아이템을 대학생인 은하에게 적용시키면, 바로 그 위에 단계인 인턴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은데?”
만약에 내 레벨이 더 높았다면 어느 회사의 부사장을 내 목록의 여성으로 넣어, 사장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레벨이 높아야 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사장까진 솔직히 실감이 가지 않는데.”
혀를 내두른 나는 일단 이 아이템을 누구에게 쓸 것인가 고민해보았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아껴두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유효한 시간이 붙어있었다.
‘은하에게 써볼까?’
아직 2학년 밖에 되지 않긴 했지만, 좋은 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은하에게 꽤나 좋은 기회가 될 게 틀림없었다.
‘……아니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 목록에 저장되어 있는 여성은 은하가 아닌 가상의 은하였다. 이런 상태에서 은하에게 직위 상승을 써준다고 해서 잘 먹혀들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더욱이 설혹 내 목록에 저장되어 있는 여성이 은하라곤 해도,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임에 은하를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럼 남은 건, 김 민서와 유 서연인가.’
한 사람은 배구 선수 지망생이었고, 또 한 사람은 직장인 인턴이었다.
만약에 여기서 내가 직위 상승 아이템을 사용한다면 민서는 배구 선수 연습생 정도가 될 테고, 서연은 정사원이 될 게 틀림없었다.
“그럼 역시 이쪽이 나을라나.”
∴ ∵ ∴ ∵ ∴
“민서야, 전에 내가 말한 거 생각해봤어?”
“네…….”
“그래, 어쩔래? 지금이라도 코치로 전환해볼래?”
감독의 물음에 민서는 턱 끝에 매달린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솔직히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더욱이 설상가상으로 나이까지 차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감독님의 제안대로 코치로 전환해서 선수 육성에 힘을 쓰는 게 최선이었다.
“좀 더……. 좀 더 해보면 안 될까요?”
“민서야, 요즘 너 붙잡고 있기가 힘들어.”
“죄송합니다.”
“아니야,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서 너한테 이러는 게 아니야. 민서야, 내가 너 아끼는 거 잘 알잖아? 그러니까 슬슬 포기하자? 응?”
꽤나 직설적으로 말하는 감독의 말에 민서는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독이 밉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동안 자신을 보살펴주던 감독님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솔직히 그녀가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다 감독님이 자신을 믿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민서 또한 그런 감독님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기만 시작하면 제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씩 경기를 치른 횟수가 늘어난다면 충분히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팀 내에서 바닥을 쳤고, 결국 강등당해 여기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이런 그녀의 말에 감독도 더 이상 보챌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알았어. 하지만 그렇게 많이는 못 줘. 알지?”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이 말과 동시에 민서는 다시 코트로 복귀했다.
‘앞으로 두세 경기……. 아니, 어쩌면 한 경기인가.’
앞으로 치룰 경기를 보고서 감독님은 민서, 자신을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그녀 스스로도 선택을 해야 되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코치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팀을 알아보며 선수생활을 계속 할지 말이다.
‘……나도 저 얘들처럼 잘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민서는 자기보다 어린 선수들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저 선수들은 금세 여기서 벗어나서 프로 무대를 밟겠지? 물론 자신처럼 도태되는 선수도 몇몇 있을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다들 프로 무대를 한번쯤 경험할 게 틀림없었다.
‘그에 반해서 나는…….’
프로 무대조차 밟지 못 하고 떨어진 민서였다. 물론 아마추어 리그 같은 곳은 많이 가보았지만, 그 때마다 성적이 좋지 못 해서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인터넷 상에선 그녀가 얼굴 때문에 배구 선수가 되었다고 힐난하기 일쑤였다.
‘……아니야,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다음 경기에서 증명하는 거야!’
그녀는 이를 악 물었다. 분명히 스스로가 생각해도 재능이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프로 무대에 선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내보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 예전에는 늦은 나이가 자신의 기량을 뽐낸 선수가 몇 명이나 있었다.
짝! 짝!
이리 생각하며 양 손으로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린 민서는 한 걸음 크게 내딛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그녀의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어? 이, 이건……!’
그 낯익은 풍경에 민서는 서둘러 양 손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저항이 무색하게도, 양 손과 다리는 의자의 구속에 꼼짝없이 묶이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어서와, 민서야.
조교의 방은 세번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