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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 어플-5화 (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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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점에라도 가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에 대리점에 갔다가 방금 전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뱉은 나는 이내 체념하기로 했다.

일단은 이렇게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배고프네.’

이렇듯 체념하고 나니, 이번에는 공복감이 몰려왔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벌써 오후 5시…….

“어?”

순간 나도 모르게 놀란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은하를 닮은 여성을 조교하면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스마트폰에 표시되어 있는 시간은 5시 19분이었다.

내가 체감한 시간의 흐름이 맞는다면 적어도 6시는 되어야 했는데 말이다!

“……진짜로 홀린 거 아냐?”

이쯤 되니 미칠 노릇이었다.

방금 전에 내가 꿈을 꾼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도 내 손에는 여성의 신체를 만졌던 감각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특히나 손끝에 미묘하게 남아있는 물기……. 이것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미치겠네.”

마치 세수를 하듯이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나는 이내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어야봐야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이리 생각을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집 밖으로 나간 나는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야, 좀 기다려!”

“빨리 와!”

그 때, 동네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태권도 복장을 입고 있는 걸 보아하니,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큰일 날 텐데…….

“아!”

아니나 다를까, 여자 아이 한 명이 짤막한 탄성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그 모습을 본 나는 재빨리 여자 아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하지만 워낙에 거리가 떨어져 있다 보니, 여자 아이가 넘어진 뒤에야 잡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나.’

이리 생각하며 발걸음을 멈추려고 하는데, 돌연 휘잉!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여자 아이 앞에 섰다.

“우왓!”

동시에 여자 아이가 내 가슴에 부닥치며, 어떻게든 땅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바동바동 댔다. 이에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여자 아이의 몸을 단단히 잡아준 뒤에 똑바로 일으켜 세워주었다.

“우와, 봤어? 형, 개쩔어!”

“아이언 맨 같아! 막 엄청 빨리 왔어!”

이렇듯 내가 여자 아이를 일으켜주고 있는 사이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잔뜩 흥분한 듯이 소리쳐대었다.

‘뭐, 이런 미친…….’

그 말소리를 대충 들어보니, 내가 단기간에 여자 아이가 있는 곳까지 뛰어온 모양이었다.

‘……뭐지?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오빠, 어떻게 한 거예요?”

“개쩔어! 형, 막 초능력 쓰는 거야?”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질문 공세에 나는 그만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나도 몰라, 이 자식들아!’

마음 같아서 이리 소리치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 했다. 특히나 주변에서 걷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었다.

괜히 시선을 주목 받으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시발!’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나는 그대로 아무 방향으로 뛰었다. 그걸 본 아이들이 저마다 탄성을 내뱉었지만, 나는 그것을 간단히 무시하고는 계속 뛰었다.

그리고 숨이 턱 끝에까지 차오른 순간, 나는 탁 하고 숨을 내뱉으며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방금 막, 슝 하고 이동했는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나는 문득 스킬을 떠올렸다.

‘맞아, 분명히 고속 이동이라고 했지.’

그 말이 정말이라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애당초 게임에서 주어진 스킬이다. 적용되어야 될 대상은 게임 속의 내가 되어야지, 현실 속의 내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고개를 가로 저은 나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 했다.

물론 머릿속 한편에서는 매니저 어플이 내 현실에 영향을 주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즉, 어플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 전부 현실이라는 말이다.

‘그럼 내가 정말로 은하를…….’

말도 안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이리 생각해보지만, 내 추측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은하를 조교한 것이었다.

“망할.”

나도 모르게 상소리를 입에 담고 말았다.

이 미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는 말인가?

‘은하에게 사과해야 되는 건가?’

아니, 하지만 은하는 내가 한 줄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은하를 조교하는 동안 입도 뻥긋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은하가 눈치 채기라고 한다면…….

걱정이 태산같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직 확정된 건 아니잖아.’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은 상황에 나도 모르게 현실을 외면하고 말았다.

물론 이게 나쁜 버릇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시민에 불과한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말인가?

머리를 부여잡고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이내 고민을 내려놓아버렸다.

“천천히 생각해보자.”

이리 결정을 내린 나는 근처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다.

원래 목적했던 식당은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 어디라도 같을 것 같았다. 애당초 지금 상황에서 맛을 음미하면서 먹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배만 채울 수 있다면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어서 오세요!”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날 향해 인사했고 이에 나는 고개를 한번 꾸벅이고는 창가 쪽 빈자리에 앉았다.

그 후, 7000원짜리 김치찌개를 시킨 뒤에 천천히 현재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도대체 왜 내 핸드폰에 이런 어플이 깔린 거지?’

내가 술에 취한 사이에 누가 몰래 깔은 걸까?

아니면 악마가 찾아와서 깔고 가기라도 한 걸까?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거 참 신세대 악마가 아닐 수 없었다. 요즘 세대에 맞춰서 전자 기기를 다룬다는 걸까? 램프의 요정보다 훨씬 진보된 악마가 아닐 수 없었다.

‘차라리 램프의 요정이 더 낫지. 아니면 도깨비 방망이라던가.’

그거라면 적어도 내 눈으로 확인 할 수라도 있으니 말이다.

쓰게 혀를 차며 스마트폰의 바탕 화면에 깔려있는 매니저 어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옆 테이블에서 여성의 신경질적인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이거 어쩔 거야?”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금방…….”

얼핏 보아하니, 식당 아주머니가 손님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음식 국물을 쏟은 모양이었다.

오피스 룩을 입고 있는 여성은 인상을 팍 쓰며, 아주머니에게 막말을 쏟아냈다.

“시발, 이게 얼마짜리 옷인 줄 알아? 진짜, 내가 더러워서……. 아줌마, 이거 어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세탁비를 드릴 테니까.”

“세탁비는 무슨 세탁비야! 이거 김치 국물 들어가서 얼룩 다 졌는데!”

화가 나는 상황이란 건, 이해가 가지만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에게 반말을 찍찍 싸대며 욕설을 내뱉는 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주인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식당 주인아저씨는 딱히 도울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그저 멀뚱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미친…….’

가게 꼴 참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 그냥 옷 값 물어줘요. 그렇게 사과만 하지 말고.”

그 때, 오피스 룩 여성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성이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친구로 보이는 그녀는 당사자보다 좀 더 유순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떠올라있었다.

‘누구 나서는 사람 없나?’

나는 잠자코 그 광경을 구경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 한 명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밥을 먹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방관할 뿐이었다.

하긴 나부터가 방관을 하고 있는데, 그 누구에게 기댄다는 말인가.

‘……나도 참 한심하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아주머니를 돕고 싶었지만, 가난한 학생에 불구한 내게는 저 옷값을 대신 내줄 돈이 없었다. 차라리 내가 금수저였다면……. 아니, 애당초 금수저였다면 이런 식당에서 밥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줌마! 죄송하다고만 말하지 말고, 옷값이나 물어내라니까?”

다시금 오피스 룩 여성의 언성이 높아졌다.

‘말릴까?’

계속해서 막 나가는 여성의 태도에 참다 못 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문득 내 손에 들려있던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왔다.

‘……아.’

그걸 본 순간, 내 머릿속에 마침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매니저 어플이 정말로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건지, 아닌지 말이다.

========== 작품 후기 ==========

조교 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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