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무림치매대응반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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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무공을 폐하는건 논외다. 그렇게 해 놓으면 데리고 다리기가 너무 불편하거든. 빨리빨리의 민족인 내가 우리 애들하고 이 중원땅을 헤집고 다니면서 덜빡치는 이유가 경공과 공중수레인데, 무공을 못쓰면 공중 수레는 몰라도 도보이동시에 너무 걸리적거리는게 많다. 진짜다. 어흠. 그래서 안 폐하는거다. 당분간 금제는 해 두고 싶지만.
“대인…. 거두어 주신 목숨, 명이 다 하는 그날까지 신명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왜 그러냐 갑자기? 적응안되게.”
주지수는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지만 어쨌거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토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천형이나 다름없었던 황실의 굴레를…. 아니, 아닙니다. 구구절절 이유를 입에 올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곁에 두고 종으로 쓰소서.”
길게 읍을 하고는 바닥에 넙죽 엎어졌다. 캐릭터가 너무 급하게 바뀌는거 아니냐?
“일어나요 지수. 어서요.”
“예. 마님.”
“그런것도 하지 말아요.”
“하오나….”
바닥에 엎어진 주지수를 연이가 일으켰다. 일으켰다기 보다는 조금 더 감정이 실린 느낌으로, 잡아 챘다고 해야 하나?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는 주지수의 얼굴을 화란이가 손수건을 꺼내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연이언니 말 대로 해요. 우리, 그런거 평생토록 했잖아요. 누가 누구 위에 서고, 누가 누구를 부리고….”
“너는 누구의 핏줄이라서 불구대천의 원수다. 너는 어디 소속이니 죽어야 한다. 생각만해도 지긋지긋해요.”
화란이와 자윤이가 얼떨떨한 표정을 한 주지수의 신색을 수습하며 토닥거렸다. 보기 흐뭇하긴 한데. 모처럼 큰 마음먹고 개과천선 하겠다는 애 김을 빼 놓을 필요까지 있나 싶다. 사실 내가 그날 주지수를 목졸라가며 쑤셔박았을때 어느 정도 결론이 난 이야기이기도 했고....
“천천히, 남들처럼 그렇게 살아요 우리. 그러기로 했어요. 주인님이랑, 다른 언니 동생들이랑 하루하루를 듬뿍 맛보면서 그렇게 살기로 했으니까. 주 소저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서령이와 주선이는 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아무말 없이 꿩을 구워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도 웃는 낯이긴 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스스로 다시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이제 더는 싫다. 신물이 난다. 덤빈다고 죽이고, 맘에 안든다고 조지고. 아, 물론 나는 아니다. 나는 미래에서도 식물같은 남자였고 여기 와서도 비폭력 무저항 평화제일무사안일주의의 극치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다. 어쩌다 보니 주워다 놓은 여자들이 온통 칼밥먹는 여자들이라서 그렇지.
“분위기 어쩔거야 이거. 신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오라버니? 꼭 그렇게 분위기를 못 견뎌서 와장창 산통을 깨야겠어요?”
“아, 체질적으로 안 맞는걸 어떡하냐.”
연이와 툭탁거리고 있으니 금방 손질을 끝내버린 서령이가 꿩고기를 들고 흔들며 물어본다.
“바로 준비할까 삼아?”
“바로 먹자.”
“네. 문주님.”
함께 꿩을 손질하고 있던 주선이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열양지기를 끌어올려 순식간에 양손에 들고 있는 꿩을 익혀 버렸다. 서령이도 질 수 없다는 듯 기운을 뿜어 노릇노릇하게 꿩을 익혀냈다. 순식간에 토굴안이 고소한 새 기름 냄새로 가득찼다.
“굉장…하네요.”
“뭐가?”
“다들 거리낌없이 내공을 쓰고 있어서요.”
그야 우리는 생활전반에 내공을 펑펑 써대도 별 문제가 없으니까. 연이의 영향이긴 하다. 내가 슈퍼 내공맨으로 대오각성하기 전에 반로환동으로 고금제일인 급 내공통을 장착한 연이는 모든 생활을 내공으로 처리했으니까.
개개인의 전투력이 요즘 시대 기준으로하면 서령이도 이제 어지간한 문파 장문인들은 싸다구 날리는 급으로 몇 달 사이에 급격하게 강해졌고 해서, 일행중에 두 셋의 단전이 텅 비더라도 무림에 우리를 당할 세력이 없다. 애초에 내공으로 꿩 굽는 정도로는 내공을 꺼내다 쓴 티도 안나고. 물론 당금 무림에서 머릿수가 제일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절정과 초절정급 무인들은 꿈도 못꾸는 일이지만.
“그냥 팔자려니 해.”
“…네?”
“니들이 뭘 꾸몄어도 쟤들 손에 박살났을거야 결국엔.”
“그건….”
“에이, 그건 아니지. 오라버니.”
옆에서 지수와 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연이가 딴지를 건다.
“오라버니 없었으면 지수가 이겼을걸?”
“맞아요 삼랑. 애초에 삼랑께서 언니를 구해내지 않았으면 지금쯤 우리 모두 불귀의 객이 되었을거에요.”
“확실히, 문주님께서 다 끌어 모은거나 마찬가지죠. 저희 무영문만 하더라도….”
말이 그렇게 되나?
“결국 저는 대인께 진거로군요?”
지수는 이제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해서 시원하다면야….
“정답이에요 지수. 주공께 패배한거에요.”
“맞아요 언니. 삼이는 굉장하다구요.”
“굉장하지. 응.”
뭘 또 맞다는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냐 린아.
바닥에 기름종이를 펴고 꿩을 늘어 놓았다. 어차피 토굴안에 식탁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냥 고기를 잡고 북북 뜯어먹으면 되니까. 근데 이러고 있으니 꼭 어디 산적패들 같다. 여기 오기 전에 봤던 영화에서 면사장님이 이러고 계셨던 것 같은데.
“이제 무림맹으로 가면 되겠지?”
“응 오라버니. 거기가서 콱 그냥 오라버니가 무림맹주 해 버려.”
“그런거 안 한다니까.”
애초에 무림이 없어지는데 뭐. 맹주는 지랄.
“근데 니들은 혹시 뭐 껄끄럽고 그런거 없냐?”
아마 우리애들 지금 상태를 보면 별 문제는 없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은원이 얽히고 섥힌 무서운 무림이다. 당장에 우리 무영신투 신주선이만 하더라도 정체가 밝혀지면 거품물고 뛰어올 놈들이 한 둘이 아니고…. 마교의 아이돌인 천마신녀 자윤이도 있고….
“껄끄러우면 지들이 어쩔거야.”
“너는 그…. 으흠….”
특히 연이는 이제까지 전혀 생각도 안하고 있었던 그, 가족이라거나. 음.
“어허, 오라버니 또 엄한 생각한다. 우리 다 과거랑 작별한 사람들이야. 따지자면 금분세수지. 꼬우면 지들도 반로환동하라 그래. 난 새로 태어났으니까 오라버니의 종리연으로 살거야. 애도 키우고 오라버니랑 같이 늙어가고 그럴거라고.”
“지금 우리 경지에 늙어가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살다 보면 늙겠지 뭐. 우리라고 천년만년 살겠어? 그러니까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에잇!”
연이가 먹던 꿩 뼈다귀를 집어 던지고 냉큼 내 품속으로 날아와서 안겼다. 익숙한 냄새지만 또 훅 체향이 풍겨온다.
“삼랑은 걱정거리를 자꾸 만드는 것 같아요.”
“그건 아마, 삼이가 심심해서 그런게 아닐까?”
“확실히, 주공께서는 가만히 두면 망상증이 도지시는것 같긴 합니다.”
내 품에 안겨서 꼼지락거리는 연이를 보며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좌중의 타골격이 아프다. 이게 잔 걱정을 안 하려고 해도 사람 천성이라는게 예전에도….
“주인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일단 문주님을 벗기죠.”
“야, 야.”
뭔가 살짝 생각이 아리까리 날까말까 하는데 눈이 돌아간 린이와 주선이가 슬그머니 들러붙어 옷을 벗기는 바람에 바람에 등잔불 꺼지듯이 피식 꺼져버렸다. 이런 젠장.
“아무래도, 오라버니가 생각할 틈을 주면 안되겠어. 그치?”
“네. 언니.”
아직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주지수만 꿩고기를 야금야금 뜯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왜. 뭐. 요 며칠 노닥거리는걸 보긴 했잖아.
“쉿. 오라버니. 여기 봐.”
어느새 홀라당 벗겨진 내가 이불 위로 옮겨지고 사지말단에서 몰캉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움….”
내 가슴팍에 들러붙어서 입술을 빨아대고 있는건 연이지만, 기둥끝을 물어오는 이 느낌적인 느낌은 아까부터 눈빛을 빛내던 주선이같다. 일행중에 합류가 늦은 만큼 젊어진 몸을 만끽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상태가 좀 안좋을 때 같이하기 시작해서 제대로 신경을 못 써주긴 했으니까.
“잠깐, 잠깐만.”
“왜?”
“다 같이하게?”
연이의 얼굴을 피해 토굴안을 둘러보다가 은근슬쩍 옷을 벗고 있는 주지수와도 눈이 마주쳤다. 너까지 참전하겠다고?
“그 동안 오라버니가 우리를 방치한 벌이야.”
“야 벌은 니가 받아야지!”
사천에서 떠나기전 얼마간 연이에게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했었는데, 주지수가 얻어걸리면서 흐지부지된 감이 있었다. 어윽. 야 잠깐만.
“잠, 깐만.”
“츕…. 말씀 나누세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언제 차례돌아오는거 기다려?”
아, 우리연이. 맞지. 원래 얘 이랬었지.
“이렇게 팽팽한 처자들을 하루라도 그냥 방치한다는건 사내 대장부로서… 글쎄?”
이게, 그. 의무방어전인가 하는 그건가.
“어차피 주인님께서 안 해주시면, 혼자 위로해야 한답니다?”
슬금슬금 무릎걸음으로 다가온 린이가 언제 알몸이 되었는지 내가 누워있는 옆으로 와서 다리를 활짝 벌렸다. 이미 홍수가 난 것 처럼 애액이 방울져 흐르고 있다.
“그럼 그냥…. 흐으응…. 옆에서 지켜보다가 주공의 손길이라도 한 번 더 받는게…. 핫! 낫죠.”
반대쪽 손에서 질척한 느낌과 자윤이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거 이러면 몇P야 대체. 말은 손길이라도 한 번 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쥐어짜내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눈빛들인데….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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