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무림치매대응반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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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국에 반역이다 역모다 사람이 떼로 죽어나가서 좋을것이 있습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
해외 세력이 활발하게 오가고 물동량이 많은 지역은 그래도 괜찮다지만…. 명 조정 자체가 이미 슬슬 명운을 다 하고 있는 와중에 아무리 무림인이라도 신나게 죽어나가면 좋을게 없다.
“저는 동쪽 끝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렇게 깊게 생각한건 아니었지만, 블라디보스톡도 괜찮고, 사할린쪽도 지금은 무주지나 마찬가지다. 후금이 곧 제대로 대청을 표방하고 일어서서 병력을 보내지만 사할린 자체가 뻥좀 보태서 남한땅 만 한데 그걸 무슨수로 지들이 먹겠다고. 로스케 애들도 시베리아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은 더 있어야 한다.
조선도 왜도 지금 거기까지 신경을 쓸 형편은 아니고…. 가서 깃발 꽂고 내땅이다 질러 놓으면 근현대가 되더라도 직접적으로 전화가 미치는 동네는 아니라서 좆같이 추운것만 빼면 대체역사물, 영지물 찍기는 나쁘지 않다. 내가 작정하고 끌고 갈 세력만 해도 어지간한 동네 하나는 쌈싸먹지.
“그렇다 해도 무공을 익힌 자들이 모이겠다는 것은 우리로선 마땅치 않네.”
“하면 무공을 폐하시지요?”
“…따르겠는가?”
“단전 자체를 폐하지 않는다면야…. 산공독이든 뭐든 십수년간 연공을 방해할 방도 정도는 동창에서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거기까지야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최대한 많이 살리고 싶은거지 다 살리겠다는건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내 밑의 세력은 당연히 제외다. 말 안해도 알거다. 계속 언급하지만 내가 작정하고 깽판 놓으면 서로 피곤하니까.
“가솔들까지 때죽음을 당하는 것 보다야 낫다는 건 그치들도 잘 알겠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은 법인데.”
“반발도 반발이고…. 무공자체가 후대로 전달되는 것 또한 마땅치 않군.”
“그거야말로 소탐대실입니다.”
새끼들 이거 그냥 날로 먹을라고.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를 내 줄줄도 알아야지. 어디까지나 내 예상에 불과하지만 아마 큰 반발은 없을거다. 전설로 전해 내려오던 시절처럼 문파에 대한 충성심이 그렇게 높은것도 아니고.
문파에 소속되어 있어도 다들 먹고 사느라 바쁘다. 슬슬 자본이 돌고 개인의 무력이 중요한 시대는 끝나간다. 각 지방에 뿌리내린 거대세가나 명문대파들이면 모를까 저기 해남에 있는 우리집 처럼 동네 태권도장 같은 꼴이 아니면 거진 그냥 그모양 그꼴이다. 말이 무관이지 하는일은 보표나 동네 머슴이다. 옛날처럼 개인의 무력이 높은 수입으로 연결되는 시대가 아닌거다.
그런 상황에 동창이 에지간히 이름난 문파들의 윗대가리들한테 장난질을 쳐 놨으니…. 무림의 낭만이란게 그냥 박살이 나서 시궁창에 박히는거지. 소속감도 없고, 유대감도 없고, 뽕도 없고. 먹고사는건 힘들고. 지금 시대에 그런 통계는 없겠다만, 무림인의 혼인비율 변동이나 출산율 변동 추이 같은걸 그래프로 찍어보면 볼 만 할거다.
“그간 소비된 많은 군비로 인해 폐해가 큰 줄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 무림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게 되면 서로간에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 한들, 불안요소를 변방에 두고 어찌 황상께서 편히 잠을 이루시겠는가?”
“불안요소가 중원의 구석구석으로 숨어드는 것 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끄으응….”
“그보다, 태감께서는 오늘의 결정을 조정에 전하시면 관철하실 수는 있으십니까?”
“으음? 내가 말 안했던가? 이런. 늙으면 이렇다니까. 내가 동창의 제독, 병필태감 연화일세.”
“…예?”
“정송은, 내서당때부터 친교가 있던 친구였지…. 내 후계라 할 수 있었어.”
안 좋은 기억이 떠 오르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뭐, 그건 개인적으로 유감이다. 미안은 하다. 그렇다고 이미 으슥한데 갖다 묻어버린 친구를 다시 꺼내다 줄 수도 없고…. 서로 칼밥먹는 처지에 연화라는 이 양반도 추궁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만 좀 민망하긴 하다.
“후. 어쨌거나 말일세. 여기 파주는 아주 중요한 지역이란 말일세. 반란이 난김에 지방세력을 싹 일소하고 중앙이 직접 관심을 가질정도로. 더해서 무림인들이 바글바글한 사천을 쓸어버릴 계획까지 있었으니 그만큼 중요한 인원이 내려와 있었단 말이지…. 그가 없으면 내가 와야 할 만큼.”
“…그렇군요.”
“…무림인들 입장에서야 우리가 눈엣가시 같겠지만…. 에이. 되었네. 말해 무엇할까. 나이가 드니 중언부언 말만 길어지는군.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주겠네.”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서로의 입장이 있는데, 그래도 늙은이라고 험하게 대하진 않으니 그것만으로도 자네의 성정을 능히 알겠네. 부디 중원을 벗어날 때 까지 얼굴을 붉힐 일이 없으면 좋겠군.”
서로간에 대충 체면을 살려주고 있으니 오고가는 말이 순한거지, 막말로 내가 이 양반 멱살잡고 질질 끌고 다녀도 사실 여기 있는 규모의 인원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주변에 몰려 있는 관군을 다 때려죽일 생각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움직일건 아니었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는 그냥 싹 쓸어버리고 우리 애들하고 몸을 빼는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이 인간을 여기서 때려죽였다가는 나도 해골이 복잡해진다. 어지간하면 떼로 죽어나가는 일 없이, 솔직히 명문대파들은 잘 모르겠고 내 여자들과 관계 있는 세력들 그러니까 보타암쪽이나, 진룡회, 만복회, 무영문에다가…. 뭐 포함하자면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은월문도 있고.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로 안전하게 몸을 빼려면 조용히 가는게 최고다. 간신히 동창쪽이랑 불가침조약을 맺을랑 말랑 하는데 판을 깨 봐야 나만 피곤해진다.
“제 쪽에서 할 말입니다. 저도 최대한 정파쪽이라도 설득을 해 보겠습니다. 적당히 이권을 챙기는 선에서 떠나는 이는 잡지 마시고, 남는 이는 핍박하지 마십시요.”
“…유념하지.”
“다만….”
“음?”
이걸,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긴하지만….
“혹시나, 충돌이 발생하면 말입니다…. 물론 그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만….”
“뭔가?”
“금의위나 동창, 군부의 무공이 아니라 화포를 이용하여 최대한 잔혹하게 진압해야 할 것입니다.”
“그건 어째서인가?”
어째서긴 뭘 어째서야. 괜히 복수네 어쩌네 개길 여지를 주지 말라는거지. 무림인들 덜 죽이겠다고 동창제독이랑 협상테이블까지 펼친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는 참 이율배반적인 상황이지만….
“단체, 그리고 관군의 힘을 보여줘야 뒤탈이 없습니다. 화포를 중점으로 한 화력을 일거에 투사하여 한 번의 충돌로 몰살에 가까운 결과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칼의 시대가 끝난 것을 알겠지요.”
“과연….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구만 자네.”
“시대가 이러니 어쩌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겁니다마는….”
“무슨말인지 알겠으니 내 그 부분도 신경쓰도록 하지.”
내 입으로 이야기 해 놓고도 입맛이 쓰다.
“명년 봄 까지면 되겠는가? ”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산해관에서 만나지.”
“누르하치는 괜찮겠습니까?”
동쪽 끝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산해관 밖은 여진의 영역이다. 극동으로 건너가려면 필연적으로 그쪽을 지나가야 하는데, 쪽바리들이 조선을 들쑤시는동안 명도 조선도 그쪽으로는 전혀 신경을 못써서 지금 한창 지지고 볶고 난리통인 상황이다.
“병력을 좀 붙여주시죠.”
“흐으으음….”
아직은 명군도 비벼볼 만 하다. 얼마 안가서 명군이 청군에게 개박살이 나긴 하겠지만 기억하기로 그건 서기로 1610년은 지나서다. 외웠는데 전혀 기억이 안난다. 주입식 교육의 폐단이란…. 어쨌거나 동쪽으로 넘어가서 본진을 깔거라면 지금이 절호의 타이밍이란 소리다.
“어차피 감시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네만….”
그렇긴 뭘 그래. 곧 있으면 청에 쥐어 터지느라 정신도 없을텐데.
“무공을 유지한 상태라면 모르겠습니다만, 무공을 폐하고 공력을 흩은 상태에서 노인, 어린아이, 아녀자들까지 끌고 만주를 횡단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자네 휘하의 세력들이 있지 않나.”
“한 손이 열 손 못 당하는 법이지요. 오랑캐놈들이 또 좀 독살스럽습니까? 비대한 일행을 끌고서는 아무래도….”
또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고민이 될만 한 상황이다. 병력 안 붙여준다 그러면 직감적으로 내가 개판을 만들걸 아는거지.
“일단 명년 봄의 상황을 보고 움직이도록 하지. 자네들이 어디에 정착을 하는지도 알아야 하거니와 조정에서 자네들의 무공을 감시할 필요도 있으니까.”
“비록 세외로 떠난다 하나, 모두 명의 백성들입니다.”
아니게 될거지만 지금 그런 꿍꿍이를 말 해줄 필요는 없지. 정착을 이유로 물자같은것도 최대한 뜯어낼 생각이다.
“알겠네 알겠어. 내 명문화 하여 증좌를 남기도록 하겠네. 그러면 만족하겠는가?”
“더할나위 없지요.”
처음에는 좀 긴장을 하더니 이제는 한결 편하게 말을 하는 태감이다. 눈치도 안 보고. 까짓거 실속만 내가 챙겨갈 수 있으면 어르신 대접이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상황이 달라지면 그때가서 짝다리를 짚어도 늦을거 없다.
“우리쪽 요구사항은 간단하네. 노평공주의 신변과, 금천황룡공.”
“둘 다 말씀이십니까?”
주지수야 바로 줘버려도 상관 없지만, 금천황룡공은 지금 줄 수 없다. 적어도 극동에 가서 자리를 펴고 난 다음에야 가능하다.
“아니, 둘 다 필요없으니 자네가 절대 중원으로 돌려보내지 말라는 이야기일세.”
“아 예….”
예상한 내용이긴 하다. 둘 다 있어봐야 동창에게는 걸림돌일 뿐이니까.
“그게 아니라도 골치아픈 일은 충분히 많으니…. 지금은 어처구니 없지만 해동장씨의문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군.”
연타석 암군에, 국내외의 정서까지…. 실질적으로 행정조직의 수반이 동창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니까 충분히 윈윈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생각해보면 막장은 막장이다. 어떻게 제일 또라이같은 황제 둘이 재위기간도 제일 길다. 그야말로 명의 천명이 다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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