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무림치매대응반 114
* * *
당가의 장원에서 무림맹 사람들을 만나고 온 지 하루가 지났다. 우리는 호북으로 거점을 옮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장원을 빼지는 않기로 했다. 이거 팔고 정리하고 하는게 더 귀찮아서. 여기는 당문때문에 시정잡배들이 없다니, 당가쪽에 양해만 구하면 윤성이네 애들이 짱박혀 있기는 좋을 것 같아서 만복객잔과 함께 만복회 애들이 관리하도록 두고 짐을 챙겼다.
“오라버니, 어디로 갈 생각이야?”
“글쎄. 조정이 뭘 원하는지 들어보고 결정하려고.”
최악의 상황이라도 조정에 한 방 먹이고 우리 몸은 뺄 수 있다. 여기 앉아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있기도 지겹고.
“우리, 다 같이 갈거지?”
“…버리면 버려지긴 하냐 니들이?”
이제와서 나한테 딸린 식솔들이 많다고 부담스럽네 어쩌네 해 봐야 얘들을 떨궈놓을 수도 없을거고. 진짜 정착할 만 한 데를 찾으면 그냥 다 데리고 살아야지. 그러고 보니 연이를 날 잡아서 좀 갈구려고 했는데, 주지수 때문에 얼결에 대충 유야무야 되어버렸다.
“너도 애들 데리고 준비좀 해.”
“우리야 뭐…. 딱히.”
나도 크게 챙길건 없지만 그래도 옷가지 같은걸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어머, 주인님. 두세요 저희가 챙길게요.”
“아냐, 내 짐인데.”
“그냥 두시라니까요. 어차피 저희가 챙겨야 필요한게 있을 때 꺼내드리기 편해요.”
그거야…. 그렇긴 하다만.
“삼아. 방해되니까 나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있어.”
“알았다. 알았어.”
결국 린이가 서령이와 함께 들어와 나를 내쫓아 버렸다.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이고 연이와 함께 본체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있으니 자윤이가 손에 뭘 잔뜩 들고 본채를 지나간다.
“도와줄까?”
“아뇨 괜찮아요 주공. 거의 다 끝났어요.”
마의와 치료약 제조 인원도 일단은 여기 남는다. 동창이랑 뭐가 틀어져서 관군이 들이닥치게 되면 알아서들 숙일거다. 일단은 의원의 간판을 걸고 있고. 마의 자체가 뛰어난 의원이기도 하니 적당히 위장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무림맹의 인원들은 당가의 장원에서 바로 치료약의 확인에 들어갔다. 인체실험이나 마찬가지의 용도로 따라온 인원들은 바로 치료를 받았고, 현재는 회복 중이다. 어차피 제갈민을 제외하고는 간부급이라 할 만한 인원은 없었던터라. 여기서 뭘 결정할 수 있는 내용도 없었다. 그렇다고 걔들 또 사천으로 불러 모으자면 답 않나오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갈테니 기동성 넘치는 우리가 공중수레를 끌고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문주님. 저희도 모두 정리 끝났어요.”
“지시는 확실하게 해 놓은거지?”
“네. 그럼요.”
주선이도 무영문쪽 애들 교통정리를 끝낸 것 같았다. 유하를 남기고 사천의 일들이 해결 될 때 까지 정보수집을 한 후 은월문으로 철 수 할거다. 사실상 이제 무영문의 문주는 유하에게 넘어가는거다.
“주지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내원에 있을걸요?”
“와서 보고 하라 그래.”
“네 문주님.”
주선이가 빠져나가고 차를 한 모금. 다시 탁자위에 내려 놓는데 주지수가 들어온다. 여전히 표정을 모르겠다.
“호위들한테는 다 이야기가 된건가?”
“그렇네.”
“동창은.”
“현재 준의군민부에 새로운 인원이 보충되었고 태감급도 하나 온 걸로 알고 있네. 급한대로 사천쪽 일은 그쪽과 협의할 수 있을 것 같더군.”
“협의라….”
일단 우리는 그쪽을 신나게 습격해서 목을 다 따버렸다. 태감 정송의 일도 있고 해서 어떻게 이야기가 될까는 잘 모르겠다. 아, 우리 정보는 이미 저번에 확인한 대로 동창에서 상세하게 알고 있으며. 의외로 지난번 우리가 거길 털어먹고 온 것도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으로 특정해놨다고 한다. 그런데도 협상 테이블이라니. 사람 일 모르는거다.
“삼랑. 윤성이에게 모두 전달했어요.”
“지양회는?”
“무림맹 본산에서 같이 만나게 될 거에요.”
“좋아. 일단은 준의로 가자.”
배윤성과는 그저께 무림맹 사람들을 만나고 와서 이야기를 정리했다. 당분간은 만복회고 나발이고 깝치지 말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본진을 사수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거기는 거의 월국이랑 가까운 위치니까.
만복회의 본거지를 정리한 후, 해남으로 가서 우리가족을 끌고 차후에 합류하기로 했다. 조정과 협의한 후가 되겠지만, 우리가 떼몰살을 당하는게 아니라면 어디론가 떠나게 될 확률이 컸다. 그렇게 되면 그쪽으로 합류시킬 예정이었다. 가족이 생 이별 할 수는 없지않는가.
“이것도 간만이네요.”
“그러게.”
공중수레를 끄집어내고, 인원이 늘어난 만큼 나름대로 새 단장을 했다. 운용할 인원이야 이제는 서령이도 혼자서 너끈히 끌만해졌으니까.
“자, 다들 이동하자고.”
“그냥 이렇게 바로?”
“그럼 뭐.”
“아니 그래도…. 으음….”
연이는 나름대로 이 사천의 장원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기사. 아주 제 세상이긴 했지. 장원을 아예 폐쇄하는것도 아니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돌아올 수도 있겠지.
“아, 지하는 잘 정리했지?”
“일단 지하로 통하는 입구는 다 흙으로 다시 막았고, 우리 흔적도 없앴어. 그냥 토굴처럼 보일거야.”
“잘했어. 자. 갑시다. 들.”
“네!”
주지수는 처음이라 그런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연이의 기운으로 바퀴없는 수레가 하늘로 떠오르자 그제서야 아, 하고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주지수도 내가 제압해 놓은것을 푼다는 전제하에 반로환동 직후의 연이 정도 경지는 되니까 대충 기감으로 흝어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바로 눈치 챌 수 있을거였다.
“일단 준의군민부 근처로 바로 가서, 쉬었다가 밤에 들어가자고.”
“응. 오라버니.”
부드럽게 떠오른 수레가 사천 성도를 벗어나 파주를 향해 움직였고. 금방 도착해 버렸다. 오랜만에 외유를 하게 된 연이가 신이나서 풀 악셀을 밟은 탓이었다.
“너무 빨리 도착해버렸네. 날 저물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잠시 쉴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늦게 출발했지.”
“뭐 어때.”
말 그대로 뭐 어때다.
“예전에 한참 돌아다닐 때 생각나네요. 린이하고 가서 요깃거리라도 준비 해 올게요.”
“부탁해.”
수레를 적당히 위장해서 풀숲에 짱 박고 토굴을 팠다. 날이 저물때까지 기다리면서 사천에 들어가기 전 처럼 오리라도 구워먹지 뭐. 화란이와 린이가 예전처럼 식량을 구해 오기 위해 몸을 날렸다.
“자윤이 하고 서령이는 노평공주님좀 잘 감시하고 있어.”
“예. 주공.”
“응!”
우리애들이 신경을 쓰거나 말거나.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죽여없애든가 해야겠다. 솔직히 나도 사람이라 자꾸 의식이 되기도 하고. 살아온 인생에 관심이 가기도 한다. 강제로 취했어도 이미 몸을 섞은 사이고. 후환이 되기전에 빨리 처리 해야지.
“소소라거나, 적당한 호칭으로 해 주게. 밖에서 공주니 뭐니, 낯부끄럽구만 그래.”
“그러든가.”
동창과 잘 협상할 수 있으면 조정쪽과 선도 닿을거다. 동창쪽에서 친한 황가의 인물도 당연히 있겠지. 그렇게 되면 주지수의 효용은 딱 거기까지다. 아, 물론 연결이 안되면 조금 더 살려 놔야겠지만.
“아니 그래도 오라버니.”
“그만. 지금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야.”
“으응….”
또 오지랖 넓은 연이가 드릉드릉 시동을 걸려고 했지만 얘는 그거때문에 나랑 그렇게 투닥거리고도 저러고 싶은가. 인상을 쓰고 단번에 제압해버렸다.
“주선이는 지난번에 우리가 털러 갔던 곳 기억하지?”
“네. 문주님.”
“거기 가서 우리 도착했으니까 오늘 밤에 준비하고 있으라고 알리고 와. 혼자 가도 괜찮지?”
“그럼요.”
무영문주라도 걱정되는건 걱정되는거다. 은룡보국신공에 대해서 특출난 효과가 있긴 하지만, 기존 무공체계에 대해 거의 뭐 EMP급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밖에서 엄하게 그런걸 마주칠까봐 좀 걱정된다. 당대의 금천황룡공 사용자가 아마 나 밖에 없으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만.
“흐음…. 제가 만약에 밖에서 문주님을 만나더라도 이제 제 몸 하나는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녀올테니 저 먹을것도 좀 남겨놔 주세요!”
“그래. 조심하고.”
“꿀이 뚝뚝 떨어지는구만 아주 그냥.”
“다 팠냐?”
“파긴 진작에 다 팠지.”
얘는 뭐, 꽁냥거리고 있으면 날을 세우고, 밀어내려고 하면 또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그러고. 아, 물론 전 처럼 짜증나는것도 아니고 조금만 정색해도 금방 눈치보고 쭈구리가 되긴 해서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그냥 제 나름대로의 본처어필이겠거니 싶어서 귀여워해주면 또 눈이 헤실헤실 풀리면서 바보가 되니까.
“들어가 있자.”
“응!”
최근에 그래도 얼굴만 보면 정색을 하다가 좀 풀어주니까 바로 팔짱을 끼고 온몸을 비벼온다. 자윤이나 서령이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라 미소를 머금고 보고 있지만 주지수는 어째 못 볼 꼴이라도 본 것 마냥 속이 더부룩한 표정을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