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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114화 (114/122)

〈 114화 〉 무림치매대응반 113

* * *

“오, 어서 오시오 장 대협.”

“괜한 혼선을 빚어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무래도 현 당가주인 당진운 보다는, 배분상 맞먹을 수 있는 독왕이 응대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내가 의자에 자리하고 독왕 당각과 천뇌 제갈민이 마주 앉았다. 그 외의 수행인원이나 당가 인원은 뒤로 물러났다.

“먼저 소개 할 사람이 있습니다.”

“예?”

“반갑군 천뇌. 오랜만이야.”

“으응?”

주변 인물은 다 물러나는데 내 뒤에 서 있는 세 사람. 연이와 린이, 주지수는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내 뒤를 지켰기에 안그래도 제갈민과 당각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날세.”

“…종리연?”

“죽은게 아니었나?”

“죽을 뻔 했지. 우리 가가가 아니었다면.”

“호오오? 장대협, 검후에 이어서 무림제일화까지?”

연이가 면사를 걷고 정체를 깠다. 제갈민과도 안면이 있었는지 젊은시절의 무림제일화를 금새 떠올릴 수 있었나보다. 린이도 보란듯이 면사를 걷어버리고 슬그머니 기운을 끌어 올려 좌중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압박이라기 보다는 내 말에 힘을 실어 주고자 하는 이야기겠지.

“어떻게...?”

“그건 알 필요 없고. 보감대의 정소소는 동창의 끄나풀이 아니었어.”

“흐으으음…. 허나….”

지금 현재는 무림맹 외부에 나온 조직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니까, 애매할거다. 일행중의 하나가 뜬금없이 동창의 끄나풀이라고 잡혀갔다가 일행에 다시 합류하게 되는거면 여러모로 일이 복잡하다. 물론, 그럴거라고 예상은 해서 연이의 얼굴을 먼저 까긴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연이는 그냥 상황을 대충 씹어버렸다.

“됐어 그럼. 보감대에서도 나를 돌봐주던 아이니 내쪽에서 거두지. 그럼 불만 없지?”

“알겠소. 그리하시오. 믿어도 되는거겠지?”

“어차피 현재 무림맹에서는 대응할 여력도 없지 않나?”

“끄으응….”

아니 아무리 현재 무림맹이 개판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걸 그렇게 까버리나. 정소소를 다시 무림맹쪽에다 합류시키는게 제일 모양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있으나 없으나 한…. 음. 아니, 보감대 인원이면 그래도 일손에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할텐데 신경쓸 여력이 없기는 없나보다. 뭐, 동창쪽이랑 연락하려면 무림맹에서 떨어져 그냥 우리쪽에 붙어 있는게 나은 상황이기는 했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야. 관군이 사천으로 밀고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그 이야기라면 막 하고 있는 중이었네.”

당각이 이미 전달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다. 무림맹의 말단이었던 정소소는 돌아온 무림제일화 앞에 어물쩍 넘어가버리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정소소의 정체가 동창 끄나풀이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무림맹 입장에서는.

이게 어차피 그쪽에서 하독한 독이라고 해도 대응할 여력도 없었고, 무림맹의 내부에 동창의 검은 손길이 뻗쳐 있다고 한들, 뭘 어디서부터 찾아서 동창과 일전을 벌인다거나 그런 옵션이 사실상….

“황실쪽에서 나온거라는 이야기는 들었을테고….”

“뭘 그리 뜸을 들이십니까?”

“있어보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이야기라서 그러네.”

감당이 안된다고 하더니 연이는 담담하게 현재 무림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뭐, 배경설명이 복잡해서 그렇지 결론은 간단하다.

“…해서 전 무림이 풍전등화라고 할 수 있네. 풍전등화는 차라리 낫지. 호롱에 기름이라도 남아있을테니. 바람이 지나면 다시 불을 붙일수는 있을거 아닌가.”

“…허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독왕께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사천의 대문파들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마는, 잠재적인 위협이 아니라 전 무림이 이렇게 금방 위험에 처할거라는건 오늘 처음 듣습니다….”

내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릴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다들 알게 될 이야기니까. 당각은 설상가상이란 표정이었고, 제갈민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쉽게 수긍을 하는걸 보면 확실히 연이의 짬이 보통 짬은 아닌 모양이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시오 장 대협.”

“저는 동창쪽과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그게 무슨?”

“그쪽에서 응하겠습니까?”

“응하게 만들어 봐야지요.”

무림인들이 스스로 이권을 놓고, 그를 통해 조정이 과도하게 소비했던 전비를 벌충할 수 있다면 적어도 얼굴은 볼 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자리에만 앉히면 어떻게든 비벼봐야지. 만약에 내부에 비대하게 축적된 군부의 감축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내전이든 뭐든 반드시 벌어져야 하는 상황이니까 불가능 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면 진짜 답은 야반도주 밖에 없다.

“사실 현재 무림의 상태로 보자면, 수십만의 관군앞에 백기투항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으으음….”

제갈민이 고뇌하는 표정으로 수염을 쥐어뜯는다. 내가 어떻게 말을 이을까 고민하는 사이에 연이가 치고 나왔다.

“해서, 가가께옵서는 무림맹에서도 협상장에 앉길 바라시네.”

“제일매화께서는, 그것이 진정 옳다고 생각하시오?”

“해동장씨의문이 움직이는것은 순전히 호의네.”

“…네?”

“가가를 비롯해 우리 식솔들만이라면 충분히 몸을 뺄 수 있네.”

연이는 무력시위를 하듯 잔뜩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이에 질세라 린이도 묵직하게 깔아놓은 위압감에 더해서 기운을 뿜어댔고. 왠지 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적당하게 기운을 돌리니 지은지 얼마 못된 새 건물이 우르릉 거리며 천장에서 흙먼지를 떨궜다.

순수 백프로 선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굉장히 귀찮은 일을 하려고 하는건 맞았다. 그냥 우리끼리 대충 변방으로 빠져서 먹고 살아도 큰 문제는 없는게 맞고. 물론 천명이 있긴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사람들을 살려보고 싶은건 내 의지인거니까.

“그만! 그만하시오!”

“…흥.”

솔직히, 백기투항하자고 하면 누군가라도 나서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박을 하고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검토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리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거기에 쐐기를 박듯 제일매화와 검후의 살떨리는 기세를 마주한 사람들이 기가 팍 죽어서는 침 삼키는 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실내가 고요해졌다.

“알겠소. 동석하리다.”

“진작에 그럴것이지.”

“사안의 무게가 혼자 결정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지않소!”

“지금 무림맹 수뇌부에 또 누가 결정할 사람이 있는가?”

“험, 험. 그래도 자리는 다 채워 놓았소”

“퍽이나.”

“커흠. 장 대협. 혹시 황실쪽에서 정한 선에 대해서는 아시는 바가 없소이까?”

선. 접촉을 하고 협상장을 장만하면 먼저 선을 물어보긴 해야한다. 산짐승이나 도적들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 무공을 익힌 표국이라거나, 동네 무관같은 것 까지 다 때려잡자고 결정했으면 답이 없는 상황이다.

“차차 알아봐야겠지요.”

“끄응…. 이것 참.”

“회담장소는 최대한 무림맹으로 해 보겠으나…. 그쪽에서 다른곳을 고집한다면 끌려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시오.”

“혹시 무림맹쪽에서는 조정쪽에 접촉 가능한 선이 있으십니까?”

썩어도 준치라고, 무림맹 타이틀이 있는데 어떻게 무림맹 자체의 인맥이 아니라도 조정쪽에 댈 수 있는 줄이 있으면 로비라도 할 수 있을까 싶어 물어봤다.

“솔직히 우리나이대의 사람들이나 가능하지, 아래로 내려갈 수록 무림과 엮이고 싶지 않아합니다. 특히 중앙이요. 해당 대파가 소재한 지방의 지방관이라면 모를까…. 최근 십수년은 군부쪽으로 진출한 무림인들도 거의 없는 상황이니 크게 기대할 수 있는 인맥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 써먹기가 좀 애매하다. 지금 황제나 동창쪽에 무림은 건들지 맙시다 하고 읍소를 해 봐야 씨알도 안먹힐거다. 모가지나 안 날아가면 다행이지. 열과 성을 다해 실드를 쳐 줄 인맥이 있어야 하는데 안될거야 아마.

이 사람들이 현역으로 달릴때하고는 상황이 아무래도 다르다. 수십년전과 비교해서 해외와 교역이 일어나고 화약무기가 막 퍼지는 상황에서 무림문파의 영역은 수축되기 마련이니까. 결국엔 무림문파가 만지는 돈도 줄어드는 거고 연쇄적으로 인맥 관리도 안되는거지. 인맥 관리가 안되니까 조정에서 실드칠 사람도 없어지고.

“치료약과 치료법은 당가를 통해 지속적으로 공급하겠습니다. 함께 호북으로 가시지요.”

“…장 대협. 허면 사천은….”

무림맹 본산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하니 당각이 화들짝 놀라 내쪽을 돌아본다. 동창애들더러 여기로 오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걔들이 올 이유가 없는데.

“반드시 협상에 성공하여 관군을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허어….”

“당 대협께서는 협상이 실패했을 때 몸이라도 바로 뺄 수 있도록 대비만 해 두십시요.”

“…그리 하리다.”

까놓고 당가도 개기려고 작정하면 개길 수 있다. 당가하면 독인데, 21세기 대한민국도 북한의 생화학전력을 경계하듯 일종의 비대칭 전력이니까. 진짜 독하게 마음먹고 깽판을 치자고 하면 저승길 동무는 핵인싸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근데 못 그러는거지. 정당방위라는 명분은 있어도 그 끝에 남는게 없을테니까. 부자 망해도 삼대간다고 젊은 사람들 사이에도 고수가 아예 없는건 아니니 무림 전체의 전력을 끌어 모아보면 일전이 가능하긴 하겠지만, 힘의 규정은 깨졌다. 대량의 화약 무기까지 동원된다면 어우야.

“제갈대협께서도, 무림의 다른 문파들과 총의를 모아 주십시요. 강압은 아닙니다만 의미 없는 결사항전은 후대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설득 해 주십시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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