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무림치매대응반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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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이 된 주지수를 결국 씻고 닦고 보듬어서 주거공간쪽으로 데리고 갔다. 어처구니가 없다 정말. 딱히 불쌍한 구석도 없구만. 내가 보기엔 니들이 더 불쌍한데.
“…결국, 황성을 떠날 수 밖에 없었지. 아무도 원하지 않았으니까.”
지수의 경우는 타이틀도 거창하게 노평대장공주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은 명 세종이 황제가 될 예정이 없이 사가에서 꿀을 빨던 시절에 하녀를 건드려서 태어난 아이로…. 그냥 뭐, 본인 말대로 흔한 이야기다. 결국 뭐, 세종이 본인을 그렇게 괄시하거나 하진 않았고 그냥저냥 살면 충분히 평온한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본인이 그런 정통성이 없는 만큼, 아버지가 정통성때문에 엿을 먹는 걸 두고볼 수가 없었다나 뭐라나….
세종의 경우는 뜬금없이 황제가 되어서 자기 아버지를 역대 황제 목록에 올리려고 한참을 또 싸워대야 했으니 그걸 옆에서 본 주지수 입장에서는 묘한 인정욕구가 또 투영이 되어서 지지고 볶고….
“그래도 이렇게 살아남았으니 잘 한걸세. 잘 한거야.”
“황상께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으련만….”
저기 그렇다고, 니들까지 급 노친네 말투로 돌아갈 필요가 없거든? 젊을때는 서로 독도 풀고 드잡이질도 하고 그랬던 사람들이 무슨 오랜 친구마냥. 한껏 안쓰러워하는 표정으로 지수를 다독이던 연이가 고개를 들고 내쪽을 본다.
“그래서 오라버니는 어쩔거야?”
“어?”
“여기 노평공주가 동창이랑 자리를 만들어 주면 어떻게 할 거냐고.”
“어쩌긴 뭘 어째. 좋게 좋게 간다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좋게 좋게?”
“이봐, 주지수. 무림맹에서 이번에 온 사람들 중에 제일 윗사람이 누구냐?”
“아까 보지 않았나.”
“누구? 제갈민?”
“그렇네.”
총군사 정도면 짬으로도 밀어볼만 하다. 지금 무림맹주는 어차피 한 배분 아래니까.
“됐어 그럼. 너는 동창이나 불러.”
“…그리하지.”
“아, 너 휘하에 세력이 있기는 있다고 했지?”
“지금은 안가를 마련했을 호위 몇을 제외하고 모두 남경에 있네.”
“음…. 그럼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호위들과 접촉해서 무사하다고 하고, 동창을 호출 해.”
“알겠네.”
“연이하고 린이는 나랑같이 주지수를 데리고 당문으로 가자.”
“응?”
“네, 주인님.”
“아까 무림맹쪽에 얘가 동창 끄나풀이라고 연락했잖아. 가서 오해라고 해명하고 무림맹에서 온 인원들 기선제압 좀 하자고.”
“응? 오라버니…. 그 말은?”
“제일매화와 검후라면 배분으로도 밀릴 일 없겠지.”
독왕은 검후가 우리쪽에 있다는걸 알고 있고, 이는 아마 제갈민에게도 전달되었을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제일매화까지 얹으면 총군사 타이틀을 달고 있더라도 당장에 뭔가 행동으로 옮기기는 힘들겠지. 설사 의심을 하더라도.
“흐흥…. 배분을 꺼낼 필요도 없지.”
연이의 주변에서 아지랑이처럼 기운이 피어 올랐다. 린이야 검후라 쳐도 무림맹 일에 자주 나서지 않아서 어떨지 모르지만 연이는 외당의 당주였다. 지금은 없는 외당이지만. 가능하다면 화란이도 딸려보낼까 했는데 화란이는 윤성이와 함께 다른 볼일을 맡겨야 할 것 같다.
“화란아. 가서 바로 윤성이좀 잡아놔라. 내일 접촉하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네. 삼랑.”
주선이에 이어 주지수까지 조졌더니 벌써 어둑해지는 시간이긴 하지만, 좀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대충 정리하자면, 무력시위야. 나 참. 원래라면 동창이나 황실쪽에 쓰려던 무력이었는데 말이지.”
“그 이야기는, 역시 무림맹을 상대로?”
무림맹이, 정파 무림의 대표는 아니다. 걔들을 휘어잡는다고 사실 뭐가 어떻게 되는 일도 아니다. 그야말로 상징성만 남아있으니까. 그 외에도 소림이나, 무당이나 명문대파는 즐비하다. 윗대가리들만 싹 쓸어모아서 잡을 수 있으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터다.
“응. 동창과 협의해서, 적어도 혈겁은 막아봐야지.”
“무림인들이 말을 들을까 모르겠네.”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거지. 그거까지 내가 모두 챙길 수는 없으니까.”
천명이고 나발이고.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결국 역사에서 무공과 무림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겠지만 떼거지로 죽어나가는건 막을 수 있으면 막고 싶었다. 적어도 막을 수 있는 만큼은.
“무림인들을 어디론가로 이주시키고, 이권은 죄다 넘길 생각이야. 죽는것 보단 나을거고, 그걸 거부하면 비대해진 동창이 결국 무림문파들을 집어삼키겠지.”
어떻게 보면 내가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어도 무림은 소멸한다. 원 역사에도 없었고. 이걸 살려서 나더러 뭘 하라는 모양인데. 글쎄.
“화란이는 윤성이를 통해서 지양회쪽에 접촉해봐. 우리가 직접 발로 뛸 수는 없으니까 동창이 차례차례 대문파들을 쓸어버릴거라는건 알려주고. 연락할 곳 있으면 연락들 하라고.”
“예.”
“못 믿겠으면, 무림맹쪽에다가 확인하라고 하고.”
사천에서 너무 오래 있었다. 여기서 총군사를 끌어 들이고 호북에 있는 무림맹의 본산으로 가야겠다. 동창을 끌어들일거면 거기서 보는게 격이 맞겠지. 거창하게 토굴까지 파 놨지만 결국 여기 정착할 팔자는 못되나 보다.
“자윤이는 마의하고 같이 계속 약을 준비해 주고….”
“네, 주공.”
“주선이하고 서령이는 주변 정보를 수집 해. 필요하다면 무영문을 전원 동원해서 다시 한 번 동창의 움직임을 파악 해줘.”
“…말 처럼 그렇게 쉬운게 아니란 말이에요.”
“열심히 해볼게 삼아!”
“아니, 딱히 열심히 할 건 없고. 그냥 동창애들이랑 관군이 혹시나 우리하고 관계없이 움직이는지만 파악하면 되는거니까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몸을 빼.”
“응!”
오케이. 대충 일 분배는 다시 조정한 것 같고. 머리까지 깔끔하게 만져서 신색을 회복한 나는 다른 사람들을 두고 연이와 린이, 주지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돌아가면, 다시 말투 조심하고.”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진짜 뭔가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우리쪽 명분이 약해질 수 있으니까.”
“흐음…. 유의하지.”
“연이가 스스로 자신을 밝히고, 네가 연이 담당이었어서 의심했었다고 덮으면 별 문제 없이 넘어갈거야. 문제 삼을 틈을 안 줄테니까. 혹시 네 호위가 알아 챘을까?”
“아니. 지금쯤 여기 있으면서 사용할 거점을 확보하고 쉬고 있을거야. 잡일이라도 구하고 있겠지.”
“잡일?”
“무림맹 보감대의 급여로는 개인 호위를 유지하기 힘들거든. 그저 오랜 인연으로 함께 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일 뿐이네. 거창한게 아니야.”
아니 왜 베일속의 흑막 같은 사람이 이렇게 궁상맞아.
“흠. 하여튼. 다시 정소소를…. 아, 역용.”
내가 아까 후드려 패면서 기운을 다 조져놨더니 정소소로 분장하고 있던 역용이 풀려버렸다.
“그거라면 괜찮네. 어차피 보감대의 말단이라 주의깊게 본 사람이 있을까. 환자를 보느라 마차에서 나온적도 없는데. 자네 말 대로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면 유야무야 넘어갈테지.”
“들어가자 마자 몰아쳐야겠구만….”
“흐흥. 오라버니.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제일 잘 하는거니까.”
“제일매화께서는 이 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나?”
“젊은 기분도 나고, 뭐 나쁠것 없지않나?”
“차라리 검후처럼 주인님이 낫겠군.”
“마음대로 해.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으니까.”
“호오…. 장 구 대협은 나이든 노독물에게만 반응하는 취향인가? 듣자하니 다들 붙어 먹은 모양인데.”
뜬금없이 당가장원에 다 와가는데 뭔 미친소리야 저게.
“말 조심해라.”
“아니, 농일세. 못 들은걸로 하게.”
“우리 애들이 유하게 대해주니까 정신 못차리나 본데, 명심해. 네 목줄은 아직 내가 쥐고 있어.”
“우리 애들이라….”
또 피식거리는 표정이라 다시 쏴 주려다가 당가장원에 도착해서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개기는 것 치고는 딱히 반항적이진 않아서. 저 안에서 뽀록나면 본인만 손해지 뭐. 우리야 명분이 조금 애매해지긴 해도 다 잡으면 된다. 저기 있는 인원이 다 덤벼도 연이 하나를 못 당할테니까.
“안쪽으로 기별을 좀 부탁 드립니다.”
“아, 문주님이시군요.”
내 얼굴을 금방 알아 본 당가사람들이 금방 안쪽으로 기별을 넣어 주었다. 어차피 피차간에 아는 처지라 밖에다가 둘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거의 기별과 동시에 안쪽으로 안내되었다.
“오, 장 문주. 가셨던 일은 잘 되셨습니까?”
“그게, 저희쪽의 오해였던 모양입니다.”
“아니, 동창쪽의 인물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들어가서 말씀드리지요.”
내원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독왕이 거의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독왕의 어깨를 감싸고 방 안으로 이끌었다. 안쪽에서는 차라도 나누고 있었는지 무림맹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황실과 동창의 위협에 대해서는 말씀 나누셨습니까?"
"아직입니다. 치료 이후에 모시고 온 분들께서 이지를 찾으시면 함께 지해를 모아보고자 했습니다."
뭐 좋은 이야기라고 또 질질 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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