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무림치매대응반 110
* * *
“주공, 제가 처리 하겠습니다.”
“어, 으으음….”
나도 꼴이 엉망이었다. 지수도 엉망이고.
“큷…. 커흙.”
일단 당장 죽을 것 같은 지수를 자윤이가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어떻게든 숨은 몰아쉬고 있었지만 정신은 못 차린 모양이다.
“잠시 숨을 돌리시지요.”
“그래…. 그래야겠다.”
여기 있다가 진짜 죽여버릴지도 모르겠다. 엄한 애…는 아니지. 어쨌든 날 죽이려던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년이니까. 그러나 효용이 없냐…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현자타임에 돌입해서 그런지 자꾸 저년을 써먹을 일이 떠 오른다.
“일단 뭘 하진 말고, 정신이나 제대로 챙기게 만들어.”
“예.”
일단은 지수를 자윤이에게 맡겨놓고 토굴을 빠져나왔다. 몸에 묻은 이런저런 체액들은 허공으로 털어버렸지만 목이 탔다. 거주 구역쪽 토굴로 빠져나와 일단 물을 한 잔 마셨다. 아. 허공에서 수분을 끌어내도 되는데. 고정관념이라는게 이렇게 무섭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응. 너흰 여기서 뭐하고 있냐?”
지하라 서늘하게 보관되어 있던 물통에서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한숨을 내쉬는데 거실 공간쪽에 모여 있던 내 여자들이 쭈뼛거리듯 눈치를 보며 내 쪽으로 우르르 다가왔다. 거 아까 흩어져서 할 일 하라고 했는데.
“린이 너는 당가쪽에 이야기 했니?”
“네.”
“별 다른 말은 없었고?”
“무림맹쪽에서 조금 불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당가가 나서서 잘 조율했습니다. 조사결과는 꼭 전달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옷 꼬라지도 말이 아니고, 아마 내 표정도 제법 지쳐 보일거다. 그래서 그런지 연이와 화란이가 달라 붙어 물 적신 수건으로 천천히 닦아주었다.
“자윤이한테 들었나?”
“뭘?”
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이야기냐고 되물었다. 자윤이는 그냥 그 앞에 계속 대기하고 있었나보다. 전파가 안된걸 보니.
“저거, 노평공주라네.”
“…뭐?”
“정말요?”
내실에서 새 옷을 꺼내오던 주선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왔다.
“무림맹에서 활동하던 정소소는 역용까지 동원한 위장신분이었고. 실체는 남경에서 소실된 금천황룡공을 탐색하던 노평대장공주였어. 자윤이가 젊을때의 노평공주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서 확인할 수 있었지.”
“…믿기 힘든 이야기네…. 그런데 무림맹에서 그 역용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글쎄….”
아마도, 일이 힘들고 좆같기로 소문난 보감대였으니까 수월하게 입맹할 수 있었을거고, 고수중의 누군가가 눈치를 채고 역용이다 어떻다 소리를 질러봐야 영감님 또 이러시네 정도의 반응밖에 안나왔을거다.
“그냥 말하는 투만 보자면, 동창과도 각을 세우고 있는 것 같던데.”
같은게 아니라 각을 세우고 있는게 맞을거다. 은룡보국신공을 가진 동창 입장에서는 금천황룡공이 황실로 돌아가는 일을 반드시 막고 싶었을테니까. 물론 그걸 대놓고 방해했다가는 대역죄인 직행코스니까 은밀하게…. 흐음….
“황실에서도 금천황룡공에는 크게 관심 없는거 아닌가?”
“그럴 가능성도 있을거라고 봐요.”
화란이가 옷을 걸쳐주며 동의를 표했다. 음. 지금 저렇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황상을 보면…. 딱히 금천황룡공을 찾아야겠다 뭐 이런건 없는 것 같은데. 이건 아무래도 본인한테 직접 들어야 할 내용 같다.
“주공, 노평공주가 신색을 회복하였습니다.”
“제대로 제압은 해 놨지?”
“네.”
나는 내 주변에서 제대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는 서령이를 품으로 끌어당겨 쓰다듬으며 자윤이를 맞이했다. 흠.
“어때? 아직도 반항적인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습니다.”
“흠…. 그럼 화란이하고 주선이만 날 따라와.”
“오라버니! 나도!”
“…그래.”
연이도 손을 들고 일어섰다. 음…. 거 참. 토굴이 작아서.
“다른사람들도 들을거면 따라와. 밖에 있든 뭐…. 알아서 하고.”
유혈 낭자한 전통의 고문은 할 생각이 없어져서 그냥 다 같이 가도 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딱히 뭐 우리끼리 숨기고 할 내용도 아니고…. 내 옷을 다시 말끔하게 다듬어준 화란이와 주선이의 머릿결을 쓰다듬어 주고 다시 주지수가 매달린 토굴을 향했다.
“일행이 거창하시군?”
“무얼, 동창만 하겠어?”
그…. 음. 옷이라도 좀 입혀놓지. 목을 조르면서 열심히 쑤셔대놓고 이런말 하긴 뭣 하지만 막상 내 여자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이렇게 보려니 좀 민망했다.
“춥진 않지?”
“춥다면 담요라도 내 줄텐가?”
“협조 여하에 따라서?”
“되었다…. 어차피 내 명줄이 오늘 끝날것인데.”
“흠흠. 묻는말에 성실하게 대답한다면 황상께 황룡을 돌려드리는것도 고려하겠다.”
“마음대로 하거라. 어차피 여기서 네놈이 확답을 한들 나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째 또 그 사이에 마음이 바뀐듯 지수의 눈빛이 텅 빈게…. 다 내려놓은 분위기다. 생각보다 멘탈이 많이 털린건가? 아니면 숨이 막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죽음의 공포가 생긴건가. 알 수가 없네.
“먼저 묻고 싶은게 있는데. 당금의 황상께서는 금천황룡공에 관심이 없으신가?”
“…단순히 추측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알고 하는 소리인가? 뭐…. 상관없나. 그래. 네 말대로 황상께서는 황룡공에 관심이 없으시네. 정확히는 만사에 관심이 없으시지만….”
“하오면, 공주께서는 동창과 적대하고 있는 상태인가요?”
옆에서 화란이가 질문을 이었다. 다 데리고 오니까 이건 편하네.
“동창과 적대라…. 세상일이 그렇게 딱 끊듯이 결정되는게 아닐세. 어떤것은 협력하고…. 어떤것은 마찰이 있고…. 뭐 그런게지.”
“그렇다면, 혹시 공주께서는 현재 세력이….”
“그래. 없네. 따르는 이가 아주 없는것은 아니지만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지.”
“동창과 독자노선을 취하고 있나보군?”
이런 시벌. 어째 좀 편하게 갈 수 있나 했더니. 끈떨어진 연이었나보다. 젠장할.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무림을 약화시키는 것에는 협조하고 있었지만, 금천황룡공을 찾아내는 일은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네. 동창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 틈만 나면 찌르려고 노리는 중이지.”
“그래도 황실의 큰 어른이신데….”
“허울뿐일세….”
주지수는 현재 자신의 세력 현황을 간단하게 이야기 했다. 금군을 중심으로 퇴역한 군부의 인사들이나 옛날에 무림을 약화시키기 위해 암약하던 시절에 안면을 터 둔 약간의 지지세력은 있지만 뭔가 궁 밖에서 크게 일을 도모할 수 있는 규모는 아니었다. 젊을때 무림을 조져댈때는 동창휘하의 인력을 동원했었고, 결정적으로 혼인을 통한 자기세력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은 별 것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오로지 황상께 황룡을 다시 돌려드리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네만…. 그래. 이제는 지치는군.”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본인이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치가 있다면 뭐, 살려주기라도 할 심산인가? 알량한 동정인지, 간교한 술수 인지 모르겠으나…. 늙은이를 너무 희롱하지 마시게. 그리하지 않아도 아는것은 모두 알려주겠네.”
아니 왜 이렇게 휙휙 상태가 바뀌는지 알 수가 없네. 뭔가 이게 그, 지지세력도 별거 없고 황실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된 상태로 오래도록 단독노선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치고 지치다가 선을 똭 하고 넘어서 멘탈이 다 터져버린 그런 상태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옆에서 세상 다 그런거 아닙니까 힘좀 내십쇼 할 수도 없는거고.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지금 사천 무림을 말살하고자 밀려드는 관군을 물릴 수 있겠나?”
“…내가? 무슨수로?”
“아니 그, 황상께 주청을 드린다거나….”
“사사로이는 내가 황상의 고모가 되기는 하나, 글쎄. 존안을 뵈올수나 있을런지.”
“금천황룡공을 준다고 하여도?”
“장삼 네놈이 방금 지적하지 않았더냐. 나의 오랜 숙원이긴 하나 이젠 황실에서도 진짜 그런게 있는지 반신반의 하는 구전같은 이야기가 되었네. 황상의 눈 앞에서 동창을 제압해 보여도 황상께서 관심을 가지실런지 모르겠군.”
아, 이거 생각보다 쓸모가 없는데 노평공주.
“하면 동창은 어떨까요 삼랑?”
“응?”
“관군을 물리지 않는다면 황실에 금천황룡공을 전하겠다고….”
호, 그거 왠지 설득력이….
“이래서, 칼밥먹는 연놈들이란….”
알몸으로 매달려 있는 주지수가 화란이의 말을 듣고는 멍청해서 상대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이거, 생각보다 기분나쁘네.
“이보시게, 환관이나 관군이나 뒤에 있는 놈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이권일세. 무림인입네 나대고 있는 지방의 파락호 무리들을 일소하고 그 이권을 나눠 먹겠다는건데 고작 그걸로 물러 나겠는가?”
“금천황룡공이 그렇게 가치가 없다고?”
“있지. 분명히 큰 가치가 있어. 그런데, 그걸 그 놈들이 모르니 말일세. 가치가 있는건 맞지만 협상의 재료가 될 수는 없지.”
“무슨….”
가치가 있는데 협상의 재료가 못된다는게 뭔 소린가 싶어서 되물어 보려는데 옆에서 서령이가 부연설명을 붙여 주었다.
“공주께서는 당장 위협이 될지 말지 모르는 금천황룡공보다 눈앞의 이권을 우선할거라고 보시는군요?”
“그렇지. 황상이 믿을지 말지도 모르는 금천황룡공보다야…. 또 황상께서 그걸 익히신다고 하여 동창을 모두 도륙을 내겠는가 어쩌겠는가? 금천황룡공을 익힌 장삼이 몰려드는 수십만의 관군으로 시산혈해를 만들 수 있겠는가?”
그건 그렇다. 내가 독심을 품고 다 쓸어버릴 수도 없는거고. 그렇다고 해도 결국 누군가에 의해서 군이 움직이기만 하면 대규모의 유혈사태는 확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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