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무림치매대응반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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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여, 역용이….”
역용? 동창 소속이니 예상은 했지만 소소의 지금 모습은 본 모습이 아니던것 같다. 하긴. 내부에 침투해서 활동하는데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직장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역용이든 축골공이든 이용해야만 했을터다.
“크으…. 네놈이 어째서…. 설마 정말로…?”
“아까부터 자꾸 속 알맹이는 다 생략하고 말을 하는데…. 똑바로 이야기 안할래? 가급적이면 아는 얼굴이고 해서 살려놓고 싶은데.”
“언제 이런 고수가…. 거기다 이 내공은 뭐냐!”
“대답해줄 이유가 있나?”
“크윽….”
거의 뭐 분위기는 ‘크윽, 죽여라.’같은 느낌인데. 바닥에 앉아 고개를 숙인 소소의 턱을 붙들고 젖혔다. 치욕적이라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놔주지 않았다. 워…. 이게 원판인가? 뭐가 이렇게 예뻐? 잠깐만. 혹시?
“너, 몇살이냐?”
“아,아녀자의 나이는….”
“지랄말고 살고싶으면 묻는말에 대답이나 똑바로 해. 몇 살이야?”
“내후년 이면 이립….”
“이립같은 소리하고 있네. 야, 너 반로환동 했지?”
“무, 무슨 말도 안되는….”
“똑바로 대답해!”
서령이와 다른 애들을 비교해 보면 티가 나는게 있다. 육체의 나이테라고 해야 하나, 성장의 흔적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서령이도 어디 내놓으면 빠지지 않는 미녀지만 자세히 보면 잡티라거나, 사춘기를 지나며 생긴 뾰루지 흉터라거나 그런게 있다. 무인이니까 당연히 달고 사는 자잘한 흉터도 있고.
그런데 반로환동을 하며 환골탈태를 거친 몸은 그런게 거의 없다. 일단 경지가 경지라서 자잘한 상처를 거의 입지 않기도 하고. 신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언밸런스함이나 그런게 신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마치 해당 유전자가 원래 가지고 있어야 할 극한의 상태를 뽑아내는 것 마냥 그렇게 바뀐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는 소소의 얼굴이나 목덜미, 쇄골어림에는 전혀, 하나도 그런 흔적이 없다. 인위적일 정도로 깨끗하다.
“어차피 나한테 제압당한 이상 탈출은 불가능하다. 아직 못 느끼겠나?”
“치잇….”
“왜 어려운 길을 가려는지 모르겠군 그래.”
후려칠 것 처럼 소소를 잡고 있지 않는 반대손을 높이 치켜 들었다.
“마, 말하겠다.”
“다음은 봐 주는거 없어. 대답을 망설이면 바로 손부터 날아갈거야. 자. 반로환동 했지?”
“그렇다….”
“나이는?”
“올해로 예순 아홉이다….”
“오래도 살았네. 무림맹에는 왜 붙어 있었던 거야?”
“…으음….”
아무래도 말로 해서는 감이 안오나보다. 죽이면 죽였지 가혹하게 다룰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시범케이스를 보여 줄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발을 들어올려 있는 힘껏 정소소의 허벅지를 짓밟았다. 기운이 제법 실려 있었으니 나에게 제압당해 일반인 수준으로 떨어진 신체능력으로는 버텨낼 수 없을거다.
“아흑!”
“두번 말 안한다고 했지?”
“크으으읏….”
내가 발 뒷꿈치로 허벅지를 조져 놓자 개구리가 전기라도 먹은 것 처럼 온 몸을 움츠리고 신음소리를 흘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다시 손을 뻗어 정소소의 머리채를 잡고 고개를 젖혔다.
“눈빛에 불만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아니, 아니다…. 말…하겠다.”
“뭐 하나 물어볼 때 마다 이런 반응이면 피차 곤란해질거야.”
나도 곤란하다. 지금 이걸 여기서 패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으니까.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목소리를 들으면 무심한듯한 표정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정소소가 생각난다. 거기에 더해서 천연덕스럽게 독을 바른 닭꼬치를 전해주던 표정도 생각나고. 혹시나 만나게 된다면 별 동요 없이 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잘 안된다.
“무림맹이, 독을 눈치 채는지…. 치료법을 찾는지. 고수들의 진전이 전해지는지 그런 것들을 감시하기 위해….”
“자꾸 말 끝 흐리지 말고. 똑바로 이야기 안하지?”
다시 발을 올려 짓밟는 시늉을 했더니 한 번 움찔하고는 눈을 내리 깔았다.
“독, 독의 효과를 보다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감시 임무였다.”
“여긴 어떻게 따라온거야?”
“무림에 치료법이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치료법을 전수받을 인원을 뽑는데 지원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아마 뭐, 보감대주를 구워삶았거나 뭔가 방법을 쓰긴했겠지. 동창쪽 라인을 쓸 수 있었다면 외압이나 청탁을 넣기도 편했을거고.
“소속은?”
“도,동창….”
“이름.”
“이름은 정소소가 맞다….”
아닌것 같은데. 얼굴까지 바꿀 정도로 조심스럽게 잠입했던 반로환동의 고수가 본명을 사용했을 것 같지 않은데. 나는 아까 밟지 않았던 쪽의 허벅지를 강하게 짓밟았다.
“아흐으윽!”
“이름.”
“저, 정소소….”
아닌데. 분명히 아닌데. 지금 눈빛을 보면 억울함보다 불안함이 더 심하다. 흠….
“여기서는 바른말을 안 할것 같으니 자리를 옮겨야겠군.”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될 것이다….”
“그건 그쪽에서 걱정할 일은 아니지.”
나는 겉옷을 벗어 소소에게 덮어 씌우고 들어올려서 옆구리에 끼웠다. 어떻게 무마할지 고민을 좀 했지만, 당가에 떠넘기기로 했다. 당가는 어차피 우리가 동창이랑 맞다이를 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일개 보감대 대원 정도야 첩자로 몰아서 처리할 역량은 충분히 있을거다. 이후의 일을 고민하면서 제압되어 축 늘어진 소소와 함께 장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라버니!”
“응? 한 시진 동안 안 오면 이라니까.”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잖아….”
기척을 감춘채로 장원에 떨어져 내렸다. 나름 고공에서 내려왔으니까 아마 목격자는 없겠지. 마침 정원에 애들이 다 모여 있었다. 흉흉한 기세와 함께. 아까 화란이를 집으로 보내고 소소랑 푸닥거릴 한 것이 대충 한 식경정도 되었으려나.
“얘 그렇게 안 세. 잘 해봐야 연이 정도?”
“오라버니, 나 정도면 엄청 강한거거든?”
“무공만 따지면 그렇긴 하지.”
상성으로 보내 내공으로 보내 나한테는 못 미치지만.
“이거 신문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저번에 정송을 처리했던 토굴이 남아있나?”
“아, 네. 주공.”
지난번에 태감 정송을 작업(?)했던게 자윤이라서 자윤이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겉옷에 싸 놓은 소소를 자윤이의 손에 넘기고 흐트러진 옷을 갈무리 했다.
“린아. 당가에 가서 보감대 정소소는 동창의 끄나풀이라 우리쪽에서 신문하기로 했으니까. 알아서 처리하라고 해.”
“네. 주인님. 전달하겠습니다.”
담 밖으로 몸을 날리는 린이를 배웅하고 박수를 쳐서 모여 있는 애들의 주의를 모았다.
“자. 상황 대충 해결했으니까. 할 일들 마저 해.”
“정말 별 일 없으셨던 거죠 삼랑?”
“아무 문제 없었다니까. 자, 얼른 해산!”
“네에….”
화란이도 서령이도 주선이도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처럼 긴장하고 있던 기도를 흘려버리고는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갔다.
“오라버니.”
“왜?”
넌 다시 가서 근신해야지.
“…아니야.”
얘 꼭 이렇게 궁상떨면 사고 치던데.
“연이 너,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 생각에 대해서 지레짐작도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니가 나서서 뭘 바꾸려고도 하지마. 알겠어?”
“…그렇게 할게.”
“너 탓하는것도…. 아, 너 탓하는게 맞긴한데. 그렇다고 너를 다시 안 본다거나, 따로 갈길 가자거나 그럴일은 절대 없어.”
“으…응….”
“질질짜지마. 어떻게 벌을 줄지 고민중이니까. 하여간 사고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
“내가 뭐 맨날 사고만 치나….”
처음엔 안그러더니 지금은 움직였다하면 대형사고시거든요?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약간의 불안감은 가신듯한 눈빛으로 자기 침소를 향해 들어갔다. 그러면 보자…. 자윤이의 위치가…. 저번에 정송을 조질때는 참가하지 않았어서 지하에 있는 자윤이의 위치를 더듬어 입구를 찾아야 했다. 어차피 한번 싹 흝으면 그만이니까 금방 찾았지만.
“아, 주공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말해라 장사아암! 네놈, 마교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거지!”
아이고 깜짝이야. 토굴로 들어서자 마자 자윤이는 다급한 눈빛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허공에 매달린 소소는 사자후를 뿜어냈다.
“아무것도 안 꾸민다. 왜 저래 저거?”
“주공. 저 사람….”
“왜?”
“…노평대장공주입니다.”
엥? 잠깐만 그러니까, 동창에서 의도적으로 금천황룡공비슷하다는 단서를 흘려서 움직이게 하려고 했던, 남경에서 짱박혀 있는걸로 추정되던 세종 황제의 딸이자 현 황상의 고모님이신 노평대장공주가, 정소소라고? 진짜?
“진짜로?”
“네…. 제가 젊을때 직접 대면한 적이 있어서….”
“이봐 소소! 너 금의위도 끌고 왔냐?”
“…마졸들과 나눌 말은 없다.”
“묻는말에 대답 안하면 피차 곤란해진다고 했지?”
일이 꼬인다. 노평공주가 사천에 도착하면 만나 보려고는 했지만, 이런 형태가 되어서는 안되는 문제였다. 노평공주가 애초에 소소인줄 알았으면 간단했겠지만, 그걸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지금 우리가 여기 사천에 짱박혀서 남경의 상황을 살필 수 있는것도 아니었고. 으으음….
“이렇게 된 이상 죽여야 하나?”
“이런 벼락맞아 죽을것들!”
그냥 일개 무림맹 치매병동 조무사라면 동창의 끄나풀이다 하고 끌고 왔어도 까짓 그만이지만…. 얘랑 같이 움직이는 금의위가 여기까지 따라왔으면 일이 좀 골때려진다.
내가 무림을 없애버릴 생각을 했다고 쳐도.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는걸 보고 싶진 않았다. 애초에 노평공주가 이쪽으로 온다는걸 알고 만나려고 했던건 우호관계를 쌓아서 금천황룡공을 빌미로 관군을 빼려는게 목적이었기도 한데…. 이렇게 첫 단추가 뒤틀려서야.
“…어쩌지?”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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