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무림치매대응반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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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서 오시오 문주!”
독왕과 당가주 당진운이 나를 반겨 주었다. 들아가서 자리들이나 잡고 앉아 있지 무슨 마당에서 북적북적.
“안녕하십니까. 해동장씨의문을 이끌고 있는 장 구라 하옵니다.”
[장구? 웃기려고 지은 이름인가?]
정소소가 나한테 전음을 날렸다. 하놔. 오며가며 어쩌다 마주쳤다면 뭔가 서로 숨기고 탐색전이라도 할텐데. 너무 대책없이 마주쳤다. 시선은 전방을 보면서도 의념을 펼쳐서 정소소를 관찰했다. 정소소. 무림맹 남경지부에서 하루하루 똥칠을 닦으며 살아가고 있을 때 나름대로 큰 위안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나에게 독약을 먹이려고 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여기서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일단은 정소소를 무시하고 포권을 하며 장내에 모인 무림명숙들에게 인사를 했다.
“오…. 치료법을 연구하셨다는 장 대협이시구만! 무림의 홍복이요!”
“인사 나누십시요. 문주. 여기는 무림맹의 총 군사이신 제갈민 대협이십니다.”
“아! 천뇌 대협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영광입니다.”
“무얼! 그래봐야 책상물림인것을. 내 오늘 무림의 동량을 뵙게 되어 늘그막에 개안을 하는 느낌이구만!”
“무명소졸의 얼굴에 금칠을 하시옵니다!”
“으허허허허!”
천뇌 제갈민 역시 세수가 일흔이 넘었다. 우리 애들이랑 동년배다. 무림맹에서 사천으로 오는 인원의 총책임자로 온 것 같았다. 말이 좋아 총군사지 예전처럼 무림맹이 적대세력의 토벌 등을 이유로 대규모 무력행동을 하거나 하는게 아니니까 본인 말대로 책상물림이 맞긴 맞다. 본인의 능력도 기문진식쪽에 치중되어있고. 무림맹에 근무할 때 들렸던 평가로는 걸출한 관리자였다.
“진즉에…. 진즉에 알았어야 했음이야….”
제갈민은 진한 회한이 담긴 눈빛으로 세월을 곱씹는 듯 말을 잊었다. 맹주도 그렇지만 총군사도 제갈민은 기실 땜빵이나 다름 없는 인물이다. 전대의 총군사였던 제갈현묵은 제갈민과 나이차이가 제법 있는 동생으로, 노망이 날 당시에 50대 한창이었다. 환갑도 전에 노망이 나면서 온 무림맹 사람들 앞에 아랫도리를 덜렁거리고 말았다. 그 이후에 제갈민이 무림맹으로 올라와 총군사 자리를 잡았지만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제갈현묵은 안락사 당했다. 그걸 생각하면 제갈민 입장에서는 이게 조금만 더 빨랐으면 싶은거겠지.
“일단은 치료만 생각하십시요.”
“감사하오 문주…. 감사하오.”
“천만의 말씀입니다. 무공까지 살려낼 수 있다면 좋았을테지만….”
지금 무림맹에 제공되는 치료약과 치료법은 내공까지는 보존하지 않는다. 맨정신을 찾고 나서 노력한다면 가능하겠지만…. 보통 그 단계까지 가는 중에 근골이 다 상해서 죽을 때 까지 맑은 정신으로 사는 정도가 다였다. 원래라면 그런걸 뿌려놓고, 내가 만들 세력 밑으로 들어 올 사람들에게만 무공회복, 더해서 반로환동과 환골탈태까지 제공하려는 생각이었지만, 이대로 무림을 소멸시키고자 결심한 이상 그대로 두게 될 것 같다.
“치료가 모두 끝난 이후에 다시 뵙겠소.”
“아, 사람을 하나 빌려주시겠습니까. 저희 장원에 보관한 치료약과 치료법의 정리서를 마저 챙겨 오겠습니다.”
의도적으로 말을 꺼내며 정소소에게 눈길을 보냈다. 정소소도 눈치를 채고 조용히 손을 들어 따라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군사님.”
“그래. 부탁하지. 이 아이를 데려가면 될 게요 문주.”
“네. 그리하겠습니다.”
뭔가 데려온 고수들을 치료하고 당가랑 이야기 하는 동안에 내가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것도 같지만, 지금 나는 온통 소소에게 정신이 팔려있었다.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빨리 가서 가져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소소와 함께 당가의 장원을 빠져나왔다.
“삼랑?”
[바로 집에 가서 애들을 모아 놔. 한 시진이 지나도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저쪽에 보이는 산으로 와 줘.]
[네. 삼랑. 그렇게 할게요.]
[연이도 포함이야.]
[네.]
화란이에게 만일을 대비한 지시를 남기고 정소소에게 자리를 옮기자는 눈짓을 했다. 당연히 정소소가 부르는 곳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으니 내가 먼저 몸을 튕겨서 장원 근처의 야산으로 향했다.
“이봐 장삼.”
“…너, 정체가 뭐지?”
“내 쪽에서 해야 할 말 같은데.”
쭉쭉 앞으로 나가 산 등성이에 도달할 때 까지, 서로의 정체를 추궁 해 봤으나 별 무소용. 만난게 어처구니 없다고 해서 연혁을 줄줄 읊어줄 의리는 없을거다.
“오랜만이네.”
“그렇군.”
“죽은줄 알았어.”
“네가 죽이려고 했으니까.”
“어떻게 해남의 촌 무지렁이가 치료법을 찾은거지?”
“그런 너야 말로, 남경지부 보감대 소속의 동급무사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강한 것 같은데.”
서로 알고 싶은 내용에 대해서 순순히 말해줄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문답무용이로군.”
“그 말이 딱 맞네.”
공기가 팽팽하게 달아오른다. 다만….
“합!”
소소는 좌장을 앞으로 내밀며 내게로 달려들었다. 연이급의 고수로 느껴졌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내가 뭔가 생각을 하고 대응하기 전에 소소의 손바닥이 내 가슴을 가격하고 있었다. 퍼엉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났지만 기운이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어렵잖게 흩어 낼 수 있었다.
“…네놈…!”
“동창소속이냐?”
“…어째서?”
그때 태감과 맞서 싸웠던 경험에 미뤄볼때 딱 그거다. 은룡보국신공이었나.
“와라.”
“차앗!”
소소가 나에게 독을 쓴 흉수이고, 이 노망의 끝에 동창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마도 동창 소속일 것임은 예상했다. 무림맹 내에 잠입해서 똥이나 치우고 있어서 말단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정도의 고수라니. 솔직히 내가 은룡보국신공과 상성에서 우위에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승부를 장담 하지 못했을 것 같다.
“흐압!”
소소의 손이 원을 그리며 옆구리쪽으로 휘어져 들어온다. 안력과 기감을 끌어올려 공격의 도달점에서 그녀의 손을 맞받아 쳤다. 사실 받아 쳤다기보다는 그냥 내 손을 거기다가 갖다 댄거지. 어쨌거나 접촉점을 만들 수 있으면 ‘천지환원기’ 아니지, 이제 ‘금천황룡기’라고 해야겠지. 하여간 내 기운을 침투시킬 수 있었다.
“어, 어째서…!”
“어디 할 수 있는 만큼 마음껏 해 봐.”
“이이익!”
한층 더 소소의 공격이 거세진다. 딱히 막을 필요도 없지만 손 끝으로 기운을 보내는 것이 편해서 손을 마주쳐 줬는데 그럴 때 마다 본인의 속이 진탕되는걸 느꼈는지 노골적으로 내 손을 피해서 덤벼왔다. 그래 본들 뭐 상관이 있나. 전신으로 팍팍 발산하면 되는데. 기운의 소모야 심하겠지만 내가 지금 그런거에 구애받을 경지도 아니고.
“대체 누구냐 네놈은!”
“보감대 소속의 장삼이지. 이제는 해동장씨의문의 문주고.”
그때 소소가 나한테까지 독을 타지 않았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내 성격상 무림맹에 남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도망쳐도 소용없다. 네놈들의 계책은 모두 간파당했으니까.”
계책의 간파…까지는 빈말이고. 도망쳐도 소용 없는건 맞다. 이 배후에 동창이 있고, 동창은 사천 무림을 밀어버리려고 하고. 당가와 연대하여 모든 진실을 까발기며 온 무림에 선동질을 때리고 황궁으로 밀고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무림은 관군과 함께 거의 공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되겠지. 뭣도 모르고 끌려온 무지렁이 관군들도 상당수 죽어나갈테고.
“나는, 나는 여기서….”
도망쳐도 소용 없다는 이야기를 블러핑으로 받은건지, 아니면 그렇다고 해도 도망을 쳐야 한다고 판단한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소소는 크게 손을 휘둘러 나를 밀어 낸 다음 몸을 돌려 도주를 시도했다. 잠깐 거리가 벌어지긴 했지만 있는대로 기운을 모아 몸을 튕겨 소소의 앞을 막아 섰다.
“글쎄, 못간다니까.”
“크흐윽!”
정소소를 당가에서 마주치고, 딱히 기대는 안했지만 이렇게 쉽게 걸려들 줄이야. 멍청한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마 무림맹 동급무사 장삼 시절의 선입견도 남았고, 내가 경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도록 기운을 감추고 있었던 것도 원인일 것이다.
거기다 본인이 직접 죽음을 확인했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으니까, 최근에 무림에 퍼지고 있는 노망독의 치료사례까지 포함해서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엉킨거겠지. 본인의 경지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자신있게 덤벼든거겠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제대로 임자 만난거지.
“놔…놔라.”
“내가 놔도 도망은 못 간다니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이익….”
“팔다리의 힘줄을 끊는다거나, 골반을 가루로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얌전히 있지?”
소소의 도주경로만 차단한게 아니라 손목을 잡고 혈맥에 기운을 있는대로 쏟아 부었다. 이 정심한 ‘금천황룡기’라면 혈맥이 다치거나 하진 않을거다. 나는 조용히 소소의 안을 관조하며 차근차근 기운을 흩어 나갔다.
“무슨 짓을 하는거냐 대체….”
“이렇게 안 하면 아까 말한대로 해야 할 것 같은데?”
“흐으윽…흣…. 그, 그만….”
“얌전히 있어.”
솔직히 그냥 절단을 내놓고 싶은데, 못하겠다. 무림맹 남경지부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사람이었고, 나름의 호감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미련이라도 남은건가 싶지만….
“흐으응! 아흑!”
“야, 야. 이상한 소리 내지마.”
소소의 몸 안에 있는 기운을 하나하나 파헤쳐가자 소소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는 잠시 뒤에 우드득 우득 하고 뼈 갈리는 소리가 나더니 소소의 온 몸이 꿈지럭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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