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무림치매대응반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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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이의 숨소리가 적당히 잦아들고 평정을 찾은 다음 주선이의 나신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러면 내가 유하의 아버지가 되나?”
“...예?”
“그보다, 유하하고는 어쨌어?”
“계속 그렇죠 뭐….”
무영문의 소문주 진유하는 은월문에서 돌아온 후, 나에게 인질이 되었음을 통보받고 무영문 인원들에게 배정했던 토굴 안에서 두문불출중이었다. 뭐, 꼭 인질이 되었다는 것 만이 이유는 아니지만.
“제대로 이야기는 해 본거야?”
“귀식대법까지 펼치는 애를 제가 어떻게 이겨먹어요.”
“붙들고 이야기를 해야 할 거 아냐.”
주선이는 나한테 덤비는 이유이자, 노망이 나기 전 까지 가장 아쉬웠던 인생의 후회되는 포인트로 가족을 꼽았다. 뭔 소리냐면, 말이 안 통한다는거지 유하랑.
“걔 원래 제 말 안들었어요.”
“아니, 그래서. 그냥 그대로 둘거야?”
“유하도 다 컸는데요 뭐. 금제든 뭐든 해 버리고 놔 줘요. 제 인생 살게.”
주선이는 무영문의 비기를 제대로 전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망이 났다. 물론, 유하나 무영문의 문도들이나 다들 평범하고 어디 딱히 모난 구석이 없는 사람들이니 만큼 꼭 그 이유만 있는건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동창이 자꾸 압박을 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한 상황에서 세상에 둘도 없는 애틋함이 피어났다. 힘겹게 같이 사선을 넘어 탈출하고. 어찌됐건 어머니다. 문주님이다. 동창 썅노무 새끼들. 등등. 내부적으로 단단하게 결속할 수 있는 요소를 다 갖추고 있었던건데.
“아니, 내가 젊어진게 지랑 무슨 상관이라고.”
젊어지고 나서 이십여일. 주선이는 젊어진 몸에 잘 적응했다. 과할 정도로 적응해서 문제지. 세월을 거듭하여 다치고 깨지며 진중해진 성격까지 칠렐레 팔렐레 하던 젊은 시절로 점점 되돌아가고 있는거다.
연이를 봐도 그렇고. 확실히 사람이 늙으면 성격이 순해지긴 하는 모양이다. 젊어지면 성격도 미묘하게 돌아가는게 신기하긴 했다. 의외로 린이는 들었던거랑 다르게 완전 순종적인데, 잘 감추고 있는건지 아니면 연이와 화란이가 음해를 한건지.
어쨌거나 사람이 죽을때가 되면 참 어지간히 파탄난 인성이 아닌 이상에야 삶을 돌아보고 후회를 하기 마련이라, 그렇게 무영문과 전대의 무영신투는 애틋하고 아름답게 이별할 예정이었는데…. 그 판이 엎어진거다.
엄마가 자신의 신체나이보다 훨씬 어려진데다, 나랑 붙어먹겠다고 매달리는 꼴까지 본 유하는 그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엄마와 멱살잡이를 하고 말았다. 간병 생활이라는게 어디 서로 미안하고 애틋함만 있을까. 간병 삼년이면 천하의 효부도 국그릇에 침을 뱉는다는데. 주선이는 주선이대로 정신이 온전치 못할때 들었던 말들이 가슴에 쌓여 있었고, 유하와 문도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비전 전수도 다 못했던 무책임한 짐덩어리 문주에게 할 말이 많았을거다.
“그렇다고 새파랗게 젊은 딸이랑 드잡이질을 하냐?”
“그럼 어떻게 해요! 문주님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데.”
“살살 달래서 설득을 해야지.”
“누굴닮아서 그런지 어릴때 부터 고집은 지독했어요. 그리고 설득하나 안하나 크게 상관은 없잖아요?”
“가정이 후회된다던 사람이….”
“문주님과 언니들하고 만들 가정에 집중하죠 뭐.”
장담하는데 파탄난 관계의 책임 대부분은 주선이한테 있을거다. 얘도 성격이 종잡을 수가 없어서 큰일이다. 유하는 꼭 자기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일어나지 않겠다고 귀식대법을 펼쳐서 칩거에 들어갔다. 일영이나 그 휘하의 문도들도 문주가 젊어진건 젊어진건데, 뜬금없이 딴 남자가 생기고 무영문의 미래 같은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이러고 있으니까 뭔가 굉장히 깨는 느낌인 것 같고. 대충 듣기로는 굉장히 냉정하고 엄한 문주였다고 하던데.
“말 했듯이 무영문은 살아남았으니까, 다 괜찮아요. 제가 뭐 큰거 바라겠어요. 그냥 애들 다 몸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거지.”
그래도 관계를 가지기 전에는 내 앞에서는 좀 자제하는 것 같은 맛이라도 있었는데, 쌀이 익어 밥이 됐다 싶은지 말 하는 거나 널부러진거나 한결 편안해 보인다. 나름대로는 긴장이라는걸 하고 있었나보다.
“그럼 그냥 물려줘 문주자리.”
“네에…?”
“다른 애들도 다 놔버렸잖아. 무영문 무공 전수하는거 빼고는 공식적으로 문주직을 승계해 줘 버려. 린이가 아직도 검후냐 하면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꼼짝없이 정신줄을 놓고 하루하루 죽어가나 싶다가 맨정신 차린지 한 달도 못 됐다. 화란이나 린이처럼 뭔가 계기가 있었던게 아니니만큼 스스로 내려놓기는 힘들 수 있을거다.
“저어, 주공?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자윤아.”
나른한 표정으로 엎드려 있는 주선이에게 이불을 슬쩍 던져서 덮어주고 자윤이를 불러들였다. 나랑 주선이가 뒹굴고 있는걸 알았을텐데 무슨일로 온거지?
“주공, 당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당가에서? 무슨일이야?”
“무림맹에서 온 일행이 주공을 꼭 뵙기를 청한다네요.”
“일 없으니까 가시라 그래.”
“저, 그게 이미 세번째라서….”
삼고초려도 아니고 씨바. 삼고초려가 유명해서 그런지 세번 청하면 뭐 진짜 아버지가 돌아가신게 아닌 이상은 응해줘야하는 그런 암묵적인 거시기같은게 있다. 중원애들이 워낙 영웅호걸을 좋아하니까.
“어디에 있다는데?”
“당가장에 있다고 합니다.”
무림맹에서 사람이 도착하면 바로 우리 집 근처의 당가장원으로 보내기로 하긴 했는데…. 가서 또 말 섞고 하려니 귀찮다. 어차피 내가 무공을 다 거둬들이든 무공의 전수를 끊어 놓든 해야하는 사람들이라 보긴 봐야하는게 맞다. 다만 지금은 바로 지하 구석에 처박혀 있는 연이를 확 덮치려고 했는데 방해받으니까 좀 그렇다.
“꼭 와야한다니?”
“네, 꼭 좀 부탁드린다고 독왕께서 직접 서신까지 보내셨어요.”
뭔 씨 자빠지면 코닿을 거리에 있으면서 서신은. 가혜를 그렇게 돌려보내고 난 다음에 당가는 나랑 대립각을 세우는건지 눈치를 보는건지 하여간 독왕이나 당진운 같은 권력의 핵심라인이 우리쪽에 직접 접촉은 잘 안했었는데 왠지 모르게 똥줄이 타나보다. 시키는거 고분고분 잘 하는걸 보면 개기려고 하는건 아닌것 같기도 하고.
“주선. 그만 일어나서 연이한테나 좀 가 봐.”
“네?”
“지금 지하에 콕 처박혀 있으니까 내려가서 좀 달래고 있어. 금방 갔다 올테니까 어디 가지 말라고 하고.”
사실은 빡치는 마음에 조용히 내 경지를 관조하면서 그…. 이런걸 육합전성이라고 해야하나?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형태로 기파에 의념을 실어 보낼 수 있게 되어서, 아직 제대로 테스틑 못해봤지만 연이정도의 경지라면 수신정도로 문제가 될 일은 없을테니 직접 말할수도 있었지만 주선이를 보내기로 했다. 연이랑은 몸으로 풀거니까!
“네에….”
“자윤아 옷 좀.”
“네. 주공.”
자윤이가 젖은 수건을 가져와 내 몸을 닦아 주고 옷을 찾아 준비하는 사이에 나는 기감을 쭉쭉 넓혀서 당가의 장원까지 감시 범위에 두었다. 혹시나 내 감시를 눈치챌 사람이 있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펼쳤는데, 하나가 딱 걸린다. 오우야. 이건, 연이급은 되겠는데? 대체 누구지? 지금 무림에 연이랑 비빌 수 있는 무인이 있다고?
“왜 그러세요?”
“음? 아냐. 무림맹쪽에서 대단한 고수가 한 분 오신것 같아서.”
일행이 많은지 기감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얽혀서 콕 잡아내기가 애매하긴 했다. 아무래도 직접 가서 봐야 확실하게 누군지 집어낼 수 있을것 같은데.
“자, 팔 들어주세요.”
“응. 고마워.”
“별말씀을요.”
자윤이가 살풋 웃으며 옷을 입혀줬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흐트러진 머리도 다시 만져주고. 내 여자들끼리 비교하자는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주선이는 연이랑 죽이 잘 맞는걸 보면 화란이와 린이, 자윤이로 이어지는 순한맛은 아닌 것 같다. 연이랑 스테레오로 잔소리 하면 어쩌지?
“할 거 없으면 같이갈까? 당가쪽에 아는 사람도 많을텐데.”
“화란이가 같이 갈거에요.”
그동안 자윤이가 마의와 함께 당가 사람들을 치료했으니까 안면도 있고 할 것 같아서 데려가려고 했더니 자윤이는 베시시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화란이와 함께 가는것도 나쁘지 않다. 화란이도 옛날 무림맹 외당 소속으로 혹시 모를 협잡질이나 무림정치에는 익숙한 사람이니까. 누워있는 주선이를 다시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자윤이와 함께 침소에서 나섰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늘 괜찮았거든?”
“다행이네요.”
뭘 자기 혼자 납득을 하고 그러고 있어. 말없이 손을 뻗어 자윤이의 허리를 감싸 안고서 본채로 돌아오니 화란이가 얼굴에 면사를 내리고서는 나갈 채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삼랑.”
“잘 차려 입었네.”
빈말이 아니라, 정말 화사하게 차려 입었다. 딱 봄날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도록. 어차피 가기로 결심한 거 질질끌 필요도 없어서 자윤이의 배웅을 받으며 화란이를 거느리고 당가의 장원으로 향했다. 가까이 갈 수록 아까 느꼈던 커다란 기운이 점점 진해진다.
“어? 문주님.”
“무림맹에서 오신 분들이 안에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안내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예.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요.”
당가장원 정문 옆으로 각각 한 명씩 서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나를 알아 본 모양이었다. 내가 도착하면 들여보내라는 기별이 있었는지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정문경비를 맡기고 나를 안내해줬다. 점점 커다란 기운을 가진 고수가 가까워지고 있다. 정문경비의 인도에 따라 외원 한 켠으로 이동했다. 주변을 둘러가며 뭐가 있는지 파악을 해 보려고 했지만 별 거 없어보여서 그냥 뒷통수만 보고 따라갔다.
“아, 저기들 모여 계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여기서 말씀 끝내실 때 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내가 못 그러라고 해도 따를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말았다. 기감을 다시 한번 넓게 흩어서 아까 오며 느낀 고수를 찾으려고 했다. 무림맹에서 나온 사람들과 당가 사람들이 뒤섞여 북적이는 장소로 들어가며 기감을 뿌렸다. 다행이다 내 착각일까봐 걱정을 했는데 아직 이 안에 남아있었다. 엉킨 실 뭉치를 풀듯이 한 가닥 한 가닥 잡아가며 기운을 거슬러 올라 갔는데….
“장…삼? 어떻게?”
맙소사. 정소소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정소소가 왜 연이급의 고수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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