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무림치매대응반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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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 털이 목표였던 정보가 보관된 전각으로 돌아오니 주선이가 열심히 전각 밖으로 종이뭉치와 자잘한 책을 꺼내서 쌓아두고 있었다. 일단 기감을 펼쳐서 살펴 봤을 때 지하공간이나 더 숨겨진 뭔가는 없었다.
“오셨군요.”
“어. 정보는 다 빼냈어?”
“가져갈 수 있는것은 다 꺼냈습니다.”
아까 만들어 뒀던 넝쿨 밧줄로 묶을 수 있는건 죄다 틀어 묶었다. 정보 자체를 보는건 가져 가서 보면 된다. 태감새끼한테서 정보를 캘것도 있고.
“다 챙겼으면 철수하자.”
“응. 오라버니.”
연이는 경공을 펼쳐 공중수레로 올라갔다. 자윤이에게 이야기 하여 수레를 전각 옆으로 하강 시켰고, 우리는 챙겨나온 물건들과 기절한 태감을 수레에 실었다.
“그럼, 출발할게?”
올때는 연이가 몰았으니까 갈때는 내가 끌려고 했지만 화란이가 자진해서 자기가 끌겠다고 했다. 자윤이도 앞으로 공중수레를 쓸 일이 생길테니 교육까지 겸해서.
“…상상도 못한 방식입니다.”
“그야, 이런걸 공중에 띄워 올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추후에 동창이 직접 이곳을 조사하더라도 추적은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응. 그게 공중수레의 굉장한점이지.
“주선이 너도 충분히 이런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을테니 활용도를 잘 생각해봐. 너는 아무래도 은신이나 잠입을 주 목적으로 활동할테니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거다.”
“예….”
“다들 고생했고. 얼른 집에 돌아가서 쉬자.”
“응!”
“네, 주인님.”
다들 한결 긴장을 내려 놓은 기색으로 수레 위에 널부러져 있는데 연이가 슬금슬금 옆으로 기어와 내 어깨에 머리를 얹었다.
“오라버니, ‘천지환원기’ 말이야.”
“응?”
“아까 태감이 썼던 기운과 굉장히 많이 닮았어.”
그 부분은 나도 느꼈다. 본질적으로는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 느낌. 면역이라기 보다는 애초에 근본이 같은 기운이라서 태감이 가진 기운으로 흩어 놓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같은 기전으로 동작을 하는 것 같은데 기운의 순수성 측면에서 내쪽이 월등하다 보니 제풀에 지쳐 풀어진 느낌이랄까.
“돌아가면 이 놈을 제대로 닥달해 보자. 뭔가 얻는게 있을거야.”
“응. 부탁좀 할게.”
“이건 화란이전문이지.”
“맡겨두세요 삼랑!”
화란이가 헤실거리며 웃었다. 내용은 힘줄을 끊어 거동도 못하게 해 놓은 우리의 적을 열심히 고문해서 정보를 캐내겠다는 건데, 그건 쟤가 잘해요! 예! 제가 잘 할 수 있어요 하는 거니까. 음. 그래. 뭐. 잘하는거니까. 칭찬해 줘야지. 대차게 패 놓은 덕분에 수레가 다시 성도로 도착하는 동안 태감은 깨지 않고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고생했어. 연이는 주선이하고 바로 정보부터 확인하자.”
“응 오라버니. 가요 신투.”
“네.”
공중수레를 원위치 시키고 챙겨온 자료를 모두 무영문의 토굴로 내렸다. 무영문에다 전부 오픈할 생각은 없었지만, 전 무림에서 당가로 몰려들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확보 해야 했다. 결국 정보를 보고 행간에서 숨겨진 내용까지 읽어낼 수 있는 전문인력을 최대한 투입해야만 했다. 연이 역시 무림맹 외당을 굴리면서 현장에 필요한 정보는 다루었던 경험이 있으므로 딴 생각 못하게 잘 제어해 줄 것이라 믿었다.
“주선. 다른 생각 하지말고. 오늘 봤으니까 알겠지만….”
“염려 놓으시지요. 유하가 도착하면 바로 문주께 보내겠습니다.”
“으…응?”
면사 너머로 직접적으로 마주치진 않았지만 찌릿한 눈빛이 느껴진다. 오늘 우리 전력을 봤으면 딴생각 하지 말고 시키는거나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는데, 협박으로 받아들였나 보다. 그렇다고 유하가 오자마자 나한테 보낼 것 까진 없는데. 뭔가 오해를 한 것 같기도 하지만 뭐라 말 할 새도 없이 연이와 함께 지하로 사라져 버렸다. 굳이 쫓아가서 해명 할 필요도 없어보이니 일단 저건 저대로 두고….
“화란아. 토굴 하나 파자.”
“네. 삼랑.”
“린이하고 자윤이도 좀 도와 줘.”
어째 점점 장원의 지하가 개미굴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이제 진짜 고만 파야지. 뭔 일이 있을 때 마다 하나씩 팠더니만.
“같이 보시겠어요?”
“음…. 아냐. 그냥 아는것만 확실하게 긁어 내 줘.”
개인적으로는 엄마 젖 맛까지 밝혀내주겠다던 태감놈이 어떻게 당하는지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굳이 화란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화란이도 내가 있으면 본성(?)을 발휘하기도 힘들것 같고. 오면서 듣기로는 우리 마중화께서도 고신에는 일가견이 있으시다니 알아서들 하실거다.
태감에게서 긁어낼 정보도 연이와 주선이가 무영문과 함께 볼 정보자료만큼 중요했다. 연이가 무영문에서 가져온 비급을 보면서 진행한 ‘천지환원공’의 전반부를 찾는 작업이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는데 엉뚱한곳에서 의외의 단서가 터진거다.
“네. 곧 정리해서 보고 드릴게요.”
“응. 부탁할게.”
화란이와 자윤이, 린이도 지하로 사라졌다. 화란이의 방쪽으로 들어가는걸 보니 저기서 파고 들어가려나 보다.
“고생했어 삼아.”
“안 자고 있었어?”
“마의가 있다고는 해도 나 혼자 장원을 지키는거나 마찬가지였는걸.”
서령이는 무영문의 토굴에 있었나보다. 그렇게까지 신경쓸 건 없었는데, 호위 겸 감시로 그냥 밑에 내려가 있었던 것 같다. 연이가 주선이를 데리고 내려갔으니 서령이가 교대한 듯이 올라온거겠지. 슬슬 동이 터 온다. 오는길에 잠깐 눈을 붙여서 딱히 졸리진 않았는데 정보가 나올 때 까지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서령이랑 같이 뒹굴거려야겠다.
“정리하는거 도와줄게.”
“그럼 고맙지.”
서령이와 함께 내원에 작게 불을 피우고 오늘 입고 갔다온 옷가지나 복면, 밧줄따위를 불태웠다. 혹시나 추종향이라도 있을까 신경써서 흝기는 했지만, 그래도 필요한 정보자료들 이외에는 모두 태워버리는게 깔끔했다. 내공을 이용해 금방 확 태워버릴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캠프파이어 분위기가 나서 장작쪼가리를 줏어다가 집어 넣고 내원에 있는 바위위에 걸터 앉았다.
“흐으응…. 난 빨리 좀 더 강해져야 겠어.”
“음? 왜?”
“내가 강했으면 오늘 나도 함께 다녀왔을텐데.”
“에이 그래도 누군가는 남아야 했는걸.”
“그치만, 내가 린이 언니나 자윤언니보다 훨씬 더 강했다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거였잖아?”
그야…. 음. 서령이를 두고간건 무공의 특이함 때문이긴 하지만, 확실히 그런걸 다 씹어먹는 경지였다면 딱히 서령이가 남아야만 할 이유는 없었지. 그렇다면 아무래도 마기가 노출이 될 수 있는 자윤이가 남는게 맞는 수순이었으니까.
“그냥, 나한테 조금 아쉬웠어. 다른 언니들은 다들 확고한 자신의 영역이 있는데, 나는 아직 그런게 없잖아?”
왜 없어. 너는 앞으로 우리 중에서 출산을 담당할….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상처받겠지 아마.
“피곤하지 않아?”
“난 별 거 안했어.”
“그래도, 들어가서 쉬어.”
“너는?”
“린이언니 한테 가서 과제 받아야지.”
서령이는 늘 매일매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다. 영약과 약간의 깨달음을 타고 동년배에서는 따를자가 없는 경지를 이룩했지만 아직은 좀 더 벽 너머를 봐야한다. 오늘은 그냥 나랑 뒹굴거려도 괜찮을텐데.
“그래. 고생해.”
“좀 쉬어둬. 요즘 생각도 복잡해 보이는데.”
서령이가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지하로 내려갔다. 거 참. 티가났나.
사실 아까부터 계속 태감의 무공이 생각났다. 그때 연이는 고수를 양산하기 위한 심법이라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역시 동창에게 딱인 물건이 아닌가 싶어서. 연이는 전반부에 이 ‘천지환원기’를 운용하는 무공에 대해 있을것으로 추정했다. 이 기운을 바탕으로 무공을 펼친다면 아마도 확실히, 기존 무림에서 통용되던 무공들은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을거다. 으음…. 그런데 또 그런것 치고 내가 가진 ‘천지환원기’와 태감놈이 쓰던 기운은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주인님?”
“어? 무슨일이야.”
“서령이가 올라가 보라고 해서요. 계속 고민하고 계신것 같다고.”
“아니 딱히 고민은 없는데.”
“하지만, 주인님께서는 오늘 처음으로 살수를 쓰신날이 아닌가요?”
일렁이는 장작불을 보면서 불멍을 때리다가 동창의 무공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린이가 올라와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아, 그러게. 그걸 잊고 있었네. 나 오늘 사람 죽였지.
“그거야 뭐…. 무림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생각했던것 보다 그렇게 충격적이진 않았다. 막, 내가 어, 사람을 죽였어 이 손으로! 하면서 땅을 파고드는 기분도 아니었고. 그냥 그렇구나 하는 느낌. 여전히 21세기 현대인의 자아가 주를 이루고 있는 내 입장에서 아 잘 죽였다. 시원하게 죽였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망설임없이 썰고 다녀야겠다. 그럴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첫 살인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멘탈에 금이가고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지. 오히려 지금 신경이 쓰이는건 그 동창 태감의 무공이다.
“하지만 주인님. 그런것들은 언제고 심마(心?)가 되어 주인님을 해롭게 할 수 있어요.”
“그 정도는 아닐것 같은데.”
그래도 나름 정신연령이 사십줄이다. 스스로를 정당화 하고 그런 심적 충격을 완화 시킬 정도의 연륜은 갖고 있다 생각한다. 애초에 날 대적하려는 놈들을 조지려고 마음먹었으면서 이런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것도 아니고.
“으흠. 그래도 그럴때는, 그…. 여체를 탐한다거나….”
“그게 목적이구만? 어?”
그러고 싶으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 말고 말을 하면…. 좀 민망하긴 하겠네. 린이를 안아준지도 꽤 됐으니까 정보 분석의 결과가 나올때까지는 느긋하게 린이랑 뒹굴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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