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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92화 (92/122)

〈 92화 〉 무림치매대응반 92

* * *

딱히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도 얘들한테…. 라고 확정하기는 조금 이르지만, 어쨌거나 누군가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거고, 나만 딱히 뭐 다르다고 이런상황에서도 그래도 죽이는건 안된다. 불살을 외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런 생각도 위험하다. 혹시 내가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칼을 쓰진 않았는데. 머리 뒤의 뇌호혈에 대고 있던 손을 떼어내자 힘을 잃은 목이 머리를 지탱하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풀썩 젖혀졌다.

눈, 코, 입, 귀. 머리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은 졸졸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내부에 커다란 압력이라도 걸린 것 처럼. 스물이나 되었을까. 앳된 얼굴의 환관은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다. 눈이라도 감겨줄까 했지만 안구가 툭 튀어나와 피가 흐르고 있는 눈을 마주보고 있으니 손을 댈 용기는 나지 않아 그대로 전각 밖으로 빠져나왔다. 일단은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내 주변에 기막을 유지한 채 경공으로 땅을 박차 일번 전각의 남쪽에 도착했다.

“오라버니가 마지막이야.”

“어? 어어.”

“확실히 처리한 거 맞지?”

“응.”

“가자 그럼.”

“여기는?”

“오라버니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린이가 끝내버렸어.”

그것 참. 어쨌든,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고 하나, 곧 있으면 혈향이 퍼져나갈 수 있었다. 내공으로 적당히 청소 해 두긴 했으니 밖에 있는 경비병들이 맡을 정도가 되려면 한참 있어야겠지만 태감은 또 혹시 몰라서.

“가자.”

“응.”

먼저 연이가 튀어나가고 뒤를 이어 화란이와 린이가 따라 나섰다. 세 사람의 뒤를 지키는 형국으로 나도 그 뒤를 따랐다. 태감으로 추정되는 제법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내가 기막을 둘러치는것을 확인하고 연이는 호쾌하게 전각 안으로 뛰어들었다.

“웬 놈들이냐!”

“….”

대답하는 우를 범한 사람은 없었다. 만에하나 우리가 여기서 모종의 수단으로 탈출하는 태감을 놓치기라도 하면 단서만 주는 꼴이니까.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걸 보니 무림인입네 하는 개백정놈들이로구나! 필시 그 식지도 않은 피는 밖에 있던 아까운 아이들의 피렸다!”

태감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려쳤다. 쩍 소리와 함께 탁자가 갈라져 주저앉으며 한 켠에 있던 철선이 튀어 올랐다. 지필묵이며 책이나 연적따위가 어지럽게 날아 오르는 중에 태감은 허공에서 철선을 잡아채고 그대로 몸을 돌려 튕겼다.

“내 친히 너희놈들의 입에서 어미의 젖 맛까지 토해내게 하겠다!”

이야. 나도 모르는 모유맛을? 태감은 철로 된 접부채를 촤라락 금속성이 나도록 펼치고 연이를 향해 날아 들었다. 척 봐도 부채에 실린 기운이 보잘것 없다. 연이는 코웃음을 치며 밋밋한 철검을 뽑아들고 철선을 튕겨내…. 응?

“그저 좋다고 아귀처럼 탁기를 쌓아댄 너희 연놈들과는 격이 다르다!”

“크흣!”

연이의 검이 오히려 튕겨졌다.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언니!”

“오호라, 자매였더냐?”

지금 나는 방 안에 휘몰아치는 기운의 여파들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기막을 유지하느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화란이와 린이가 지원을 위해 뛰어들어 검을 찔러 넣었지만 태감의 손짓 한 번에 우르르 튕겨난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일개 태감…. 아니 태감이면 높은 사람이긴 한데.

“제놈들끼리 아웅다웅 천둥벌거숭이마냥 화경이니 현경이니. 모두 허상과 다름없음이라!”

셋을 감당하면서 태감이 공세로 나온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접철선인데 연이도 화란이도 린이도 감히 칼을 부딪칠 생각을 못한다.

[오라버니! 도와줘!]

[기막은?]

[이거, 에잇!]

“저 놈이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모양이로고?”

“하앗!”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이상하다. 안력을 끌어올려 기운을 살펴 보니 태감에게 짓쳐들기 직전까지 강맹하게 일어나는 내공이 공격 직전에 훅 하고 흩어져 버린다.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는데 사기네. 무영문에서 이야기 하던게 이거였나보다.

연이의 검격이 날아들자 태감의 철선이 검면을 때려 비껴낸다. 크게 한 바퀴 휘돌리며 하단으로 쓸어오는 화란이의 검을 막고 반동으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상단을 찌르는 린이의 출수를 흘렸다. 철선을 접어서 묵직하게 만들고 화란이를 향해 성큼 내 디뎌 찌르자 손이 꼬이며 속절없이 뒤로 물러났다. 후속타를 넣으려고 따라 붙는 태감의 뒷덜미에 연이와 린이가 칼을 휘두르니 축으로 삼은 다리를 바꾸어 별 것 아닌 퇴법으로 두 자루의 검을 어렵지 않게 튕겨냈다.

화란이가 그 틈을 노리고 검을 던져 넣었지만 검에 실린 기운도 태감에게 닿기 직전 흩어져 태감의 손짓 한 번에 평범한 쇠몽둥이 처럼 되튕겨진다. 와 씨. 환골탈태를 이룬 피지컬과 검격의 신묘함, 일대 삼이라는 숫적 우위로 버텨내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힘들 것 같다. 내가 나선다고 해서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기막을 유지한 채로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 싶어서 기운을 몇 줄기 뽑아 비수를 쥐었다.

[오라버니!]

[잠깐만 있어봐!]

“놈, 그냥 기둥서방인줄 알았더니 제법 수작을 부리는구나!”

뽑아낸 기운을 담아 비수를 그대로 태감의 정수리쪽에 떨궜다. 이 쯤 들어가면 내공이 흩어질 테니까…. 어?

­ 카아앙!

“…네놈. 뭐하는 놈이냐?”

그냥 정신만 사납게 해도 목적 달성일 것 같았던 비도에 의외로 태감이 거칠게 접철선을 후려서 튕겨낸다. 어라?

[오라버니! 지금 뭐 했어?]

[삼랑!]

[주인님!]

이게 이 전음이라는게, 기본적으로 일대일 채널이다 보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오디오가 마구 씹힌다. 날 볼게 아니라 집중을 해야지.

“흐랏!”

애들이랑 눈짓을 주고 받는 순간에 태감이 부채를 접고 일직선으로 몸을 날려왔다. 설마 이 ‘천지환원기’는 이놈이 내공을 흩어놓기 위해 부리는 수작에 면역인가?

­ 카아앙!

반사적으로 내 뻗은 내 손과 태감의 접철선이 만나자 금속성이 거칠게 튀어 올랐다. 확실히 내가 두르고 있는 기운은 태감의 기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럼 대협답게 도발이지.

“탁기니 어쩌니 하더니, 본좌가 보기에는 네 놈도 똑같은 버러지로고.”

“무…무어라?”

그렇지. 이게 그렇게 이러다 이새끼가 연이나 화란이 린이 셋중에 하나를 뚫고 째면 골치아파질 수 있을것 같았다. 나는 기운을 뽑아 세명에게 이어 주었다. 아마 ‘천지환원기’의 평소 용법대로라면 이것만으로도 딜이 박힐거다.

“그 알량한 사술(??)은 이미 파훼가 끝났다. 네 것이 아닌것을 네 것인양 으스대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구나.”

쯔쯔쯔. 혀까지 몇 번 차주자 꼭지가 돌아간 태감이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다시 한 번 달려 들었다. 이뮨인걸 알고나니 마음이 놓인다. 다행이다. 일 꼬이는 줄 알고 겁나 긴장했네.

“이노오오오옴!”

“수준이 맞지 않으니 아해들이랑 놀거라.”

날아드는 철접선이 내 어때를 때렸지만 정말 물리적으로 빠따를 맞은 정도의 욱신거림 정도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 반응이 없는 내 얼굴을 보고 흠칫 놀라 얼어붙는 태감의 가슴팍을 발로 까서 밀어냈다.

[연아. 내가 보내주는 기운으로….]

[말 안해도 알아.]

연이도 눈치챈 것 같다. 연이가 작은 기합성과 함께 튕겨나간 태감에게 달려들었다. 태감은 접은 부채를 앞으로 내밀어 튕겨내려 했지만 연이는 나에게서 받은 ‘천지환원기’를 기반으로 내공의 성질을 변화시켜 놓았다. 본인 스스로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이미 익숙해졌고. 태감의 철 부채는 언제 연이를 몰아붙였었냐는 듯 깨끗하게 반토막이 났다. 소리하나 없이.

“무, 무슨!”

태감이 몸을 돌려 화란이와 린이 사이로 뛰어들었다. 아직 그쪽에는 먹힐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두 사람도 나긋나긋한 몸매와 다르게 노괴들이 속에 들어있다. 연이의 칼질이 먹히는 순간 무슨일이 벌어졌는지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내 기운을 듬뿍 받아들여 몸 안을 청소했던 기억을 떠 올린듯 ‘천지환원기’를 운용했다.

“캬흑!”

남성 호르몬이 부족해서 그런지, 주름진 얼굴을 화장으로 가린 태감이 기분나쁜 비명성을 울리며 화란이의 발길질에 나동그라졌다. 순간적으로 눈짓을 주고 받은 연이와 두 사람은 신속하게 태감에게 칼을 휘둘렀다. 실낱같은 파육음과 함께 태감의 팔 다리가 축 늘어진다.

“끄으으으으….”

팔 다리의 근육이 말려드는걸 보면 힘줄을 끊은 것 같았다. 점점 피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신다. 피 냄새 나겠는데.

“얘들아 얼른 가자.”

“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태감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수혈을 짚고 패든가 하지 그걸…. 기운을 이용해서 바닥에 떨어진 피를 날려버리고 태감의 방에 있는 물건들은 닥치는대로 끌어 모았다. 혹시 서랍 같은곳에 숨겨둔 공간같은거라도 있을까봐 사방팔방을 거의 터뜨려 버리듯이 흝었다. 빼낼 수 있는것은 최대한 빼서 다시 가운데에 있는 전각으로 복귀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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