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무림치매대응반 85
* * *
“어이, 배윤성이.”
“…예, 문주님.”
“아, 화란아. 잠깐 자리 좀 피해줘.”
“네. 삼랑.”
어제 이야기 했던대로 화란이를 이용해 배윤성이를 불러들였다. 나름 어제 잘 대접해서 보냈는데 대체 이새퀴는 왜 날 또 아침부터 불러대는건가 싶은 짜증이 얼굴에서 살짝 묻어난다.
“너, 후계자 있냐?”
“예? 아들은 둘 있긴 합니다만….”
“어, 뭐야. 아들이 둘이었어?”
아 잠깐만. 이러면 이야기가 꼬이는데.
“안됩니까? 저, 제가 그 여식이 없는데….”
이새끼는 또 뭘 착각을 하고 있는거야?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라. 마누라는?”
“둘째 낳다가 죽었습니다.”
아. 그건 다행이…. 아니 시바 말 실수 할 뻔 했네. 말 조심 해야지. 아랫사람한테 말 실수 하면 진짜 큰일난다. 윗사람한테 한건 깨지면 되는데.
“그, 만복회를 물려받을 후계자가 있냐는 거지 내 말은.”
그러니까, 조직의 이인자?
“있습니다. 옛날부터 저 졸졸 따라다니던 놈이 있습니다.”
“자식들은? 남녕에 사나?”
“예…. 한 놈은 포목점하고, 한 놈은 만복객잔을 성내에 하나 더 냈습니다.”
“날 위해서,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냐?”
뜬금없는 소리라는건 안다. 그냥 지금 당장의 마음이라도, 좀 그런걸 보고싶다. 아니라고 해도 딱히 더 실망할건 없는데. 기왕 뭐 해주는거. 좋잖아?
“어차피, 문주님께서 거두고자 하시면 저야 방법이 있습니까?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매한가지니 욕이나 덜 먹고 가겠습니다. 다만, 문주님이 그리 모질지 않으신 분이라는것을 알고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 애들좀 잘 부탁드립니다. 만복회 애들이요.”
“자식은 괜찮고?”
“그놈들은 이미 각자의 일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걱정할건 아니지요.”
하, 이새끼 이거. 나한테 몇 번 당하고 나더니 진짜 군소리 없이 협력할 생각인가보다. 금제를 당한거야 당한거지만, 이런식이면 내가 어디 가서 뭘 하고 죽으라는 식이라서 개길줄 알았는데.
“좋다. 내가 너희 만복회는 반드시 책임지도록 하마. 만복회의 이인자는 누구냐?”
“…만복객잔에서 성붕문이를 찾으시면 됩니다.”
“오냐. 그럼 바로 시작하자. 시간이 촉박하다. 겉 옷만 벗고 뒤로 돌아 등을 내 밀어라.”
“…예.”
끝까지 순응이다. 아무리 자포자기라고는 해도, 정리할 시간을 달라거나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해준게 뭐가 있냐 그런 반응도 없다. 배윤성은 그냥 윗 옷을 벗어서 상체를 까고 등을 드러낸 다음 길게 한숨만 한 번 푹 쉬었다. 새퀴.
“입으로 소리내지 마라.”
“예. 대인.”
‘천지환원기’를 이끌어 배윤성의 몸으로 집어 넣었다. 치료의 과정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반로환동과 탈태환골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 한 번 테스트도 해 볼겸. 배윤성에게 젊음을 주기로 했다. 금제야 뭐, 다시 걸면 되는거고. 안된다고 해도 배윤성이의 몸은 깨끗해질거다.
나는 배윤성의 몸 속에 집어 넣은 기운을 움직여서 몸 안의 노폐물을 밖으로 다 끄집어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온 몸을 뒤집어가며 보이는 족족 몸 밖으로 보냈다.
“허억! 대, 대인!”
뚜두둑. 뚜둑.
슬슬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봐야 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폐물이나 닦아야 될 신세이므로 잽싸게 방에서 나와 화란이를 불렀다.
“화란아. 화란아?”
“네. 삼랑.”
“윤성이 입을만 한 옷좀 가져와라. 뜨신물 한 대야랑 수건도 좀 가져오고.”
화란이한테 필요한걸 부탁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윤성아. 들릴지 모르겠는데. 끝나고 나면 준비된걸로 몸을 박박 닦고, 옷 갈아입은 다음에 나한테 와라. 튀면 진짜 죽는다?”
사정없이 골격이 뒤틀리는 기색을 보면 알아 들었을 것 같진 않지만, 대충 눈뜨면 보이는 곳에다가 대야와 갈아입을 옷을 두면 바보가 아닌이상 눈치챌거다. 방 밖으로 나와 아까 부탁한걸 가지고 온 화란이에게 물건을 넘겨받고 적당히 안에다가 넣어 두었다.
“화란이 너는 여기 주변에서 혹시 배윤성이가 도망가는지 확인 좀 해주고.”
“네!”
“혹시나 튀려고 하면 즉시 죽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금제를 걸어 둬.”
“네, 삼랑.”
화란이를 단순히 감시에 투입해 놓기는 아쉽지만, 혹시나 배윤성이가 반로환동을 한 후 미쳐서 나한테 개기거나 밖으로 쨀까봐. 배윤성이가 심리적으로도 해를 입히기 꺼려지고, 물리적으로는 게임도 안되는 사람이 감시를 할 필요가 있었다.
“직접 나오기 전에는 절대 들어가지 말고. 알았지?”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옷이 다 찢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상태로 나오다가 나한테 걸리면 그냥 뒤지는거다. 어딜 우리 예쁜 화란이 눈에 혐짤을. 화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지하로 내려갔다. 우리방 말고 무영문애들 있는곳으로.
“나다. 일영.”
“오셨습니까 문주님.”
“무영신투께서는 일어나 계신가?”
“네.”
일영이 안내해 줄…것도 없다. 열댓명 누워있을만한 토굴이 뭐 커봐야 얼마나 크다고.
“오셨습니까.”
“편히 쉬셨습니까. 아무래도 환경이 열악하지만 양해를 좀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오갈곳 없는 저희를 거두어 주셨는데요.”
오늘 아침 소문주 진유하는 은월문을 향해 출발했다. 아직 유하에게 약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동창의 정보 수집에 대해서 은월문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지 한 번 물어보라고는 했다.
“현재 무영문의 인원은 어디까지 동창에 노출되어있습니까?”
“여기 있는 인원들은 주요 동창의 간부들에게 노출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혹시 그래도 정보 수집이 가능하겠습니까?”
“무리입니다. 바깥에서 동향을 살피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 안으로 다시 잠입하는 것은 유하정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이미 저희를 경계하고 있을겁니다.”
무영문의 무공은 특성상 강한 화기나 태양광아래에서 위력이 반감된다. 조명기구 자체가 한정적인 현 시대에서는 유효하나, 동창쯤 되는 조직이 무영문에 대해서 경계대책을 만들어 놓았다면 일반 문도들의 수준에서는 답 안나오는 상황이라는 거지.
“흐으음…. 정보가 필요한 상황이긴 한데….”
“죄송합니다. 현재 제가 이런 상황이라.”
무영신투의 ‘이런’상황은 해소를 해 줄 수 있는 부분이긴 한데. 이건 다른 애들하고 좀 논의를 해 봐야할것 같다. 일단은 무영문이 회복을 하는게 우선이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 정도만 확인하러 왔습니다.”
지금 애들 상태도 씹창인데 여기서 지휘 계통을 확실하게 정하자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하루에 한 두번 정도 얼굴을 내밀면서 구성원들과 서로 익숙해져야지. 만복회? 만복회 애들은 무인도 아니고 윤성이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니 크게 상관없다. 원래 그런놈들이 자기 윗사람이 나타나서 굽신거리면 아, 새로운 윗사람인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성향이기도 하고. 무영문은 앞으로 정보를 담당해 줄 애들이니까 좀 더 신경을 쓰는거지.
“쉬십시요.”
“문주님, 유하가 돌아오면 제대로 정리해서 찾아뵙겠습니다.”
“예. 뭐. 그때 다시 이야기 하시죠.”
아마 무영신투도 내가 뭣때문에 왔는지는 눈치챘겠지. 한 문파의 수장으로 오래 살았을거니까. 무영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위로 올라왔다. 마의가 도착했다는 이야기만 듣고 아직 얼굴을 못 봤는데 마의한테나 가 볼까.
기감을 펼쳐 장원을 쭉 흝었다. 치료실에 자윤이도 있고 마의도 있고 환자도 있네. 대기실로 사용하는 전각에도 사람이 잔뜩 있는걸 보면 당가놈들 치료 받을 사람을 잔뜩 보냈나보다. 어제 당가혜까지 묶어서 돌려보냈더니 혹시나 치료를 안해주면 어쩌나 싶었겠지. 린이와 서령이는 지하에서 칼질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연아?”
“오라버니!”
“야, 야.”
갑자기 시야의 사각에서 불쑥 연이가 튀어나오더니 나를 뒤에서 끌어안고는 몸을 비비적거린다. 그리고는 그대로 나를 떠밀어 지 방으로 쑤셔넣듯이 들어와서는 문을 닫았다.
“왜?”
“짜증나서!”
“뭐가 그렇게 짜증이 나셨을까?”
“아, 몰라. 그냥 여기서 퀘퀘한 비급같은걸 보고 있으니까 너무 답답해.”
어제는 세상천지에 대의를 따져도 그렇게 따질 사람이 없겠더니 오늘은 왜 또 짜증이 폭발을 할까? 진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달거리할때가 된건가? 지난주에 지나갔던것 같은데.
“지금은 찬찬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니까,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없는거야.”
“오라버니. 그냥 동창한번 쑤시고 올까?”
“나도 그 생각을 안해본건 아닌데….”
“응? 어차피 우리인줄만 모르면 되는거 아냐.”
그렇긴 하다. 기존에 의심이가도 동창을 담그기 부담스러웠던건 혹시 모를 변수로 이새끼들이 미쳐날뛰면 어쩌나 하는거였는데. 실제로 미쳐날뛰고는 있어서.
노망독의 배후가 아닐까 추정만 했을때는 그 추측만 가지고 동창을 조지긴 애매했지만 관군을 끌고 밀고 내려온다니까 일단 조져버려도 될 것 같기는 하다.
“얘기 듣고 보니까 좀 끌리긴 하네.”
“그치?”
괜히 여기서 시간끌고 뭐 세력갖추고 협의하고 지지부진하게 머리굴리느니 그냥 여기 파주에 나와 있는 동창놈들 뚜껑부터 따버려도 될 것 같고.
“그 전에, 오라버니. 이제 지하 한 번 봐야지?”
“니가 지금 몸이 달아 오른게 아니고?”
“그거느은…. 내가 짜증이 좀 풀리면 비급도 빨리 볼 것 같은데. 응?”
비급은 어제 밤에 보면 다 본다고 했던것 같은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나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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