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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76화 (76/122)

〈 76화 〉 무림치매대응반 76

* * *

“명분, 명분이라….”

“꼭 그리 나쁘게 볼 일은 아니에요 삼랑. 이걸로 당가는 확실히 우리편이니까요.”

아니 혹이 들러붙었잖아 혹이…. 사람을 쓸까 생각은 했지만 저걸 뭐 껄끄러워서 차 심부름을 시키겠어 어쩌겠어. 거기다 여기서 얻어 들은건 죄다 당가에 가서 나불거릴 거라는거 아냐. 나는 완전히 내 사람이 필요한거지. 아 거슬리네. 뭐 하나 풀린다 싶으면 걸리적거리고.

“그, 은공 제가 여기 온 것은 제가 청해서….”

“화란아.”

당가혜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을것 같아서 일단은 그냥 무시했다.

“네, 삼랑.”

“만복회주한테 좀 가자. 아무래도 오늘 무영문이 도착하면 바로 봐야겠어.”

“네?”

“그놈도 신용이 안 가.”

한 번 통수를 치려던 놈이니까.

“만복객잔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무영문에서 도착하면 바로 무영문을 만나보자고.”

“네, 준비할게요.”

“린이 너는 연이한테 좀 전해주고. 서령이나 자윤이 둘 중에 하나 올라오라고 해. 같이 나가게.”

“…네. 주인님.”

“당소저는 돌아가세요.”

“…네?”

“명분이 있어야 믿을 수 있는 관계라면 이쪽에서도 별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서 협박질이야 씨발. 아까 이야기 한 내용은 부르거나 말거나 알아서들 하시고.”

“저기, 오해를 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오해고 뭐고, 서로 주고 받기로 한 거잖아? 왜 거기에 명분을 들먹이는지 알 수가 없네?”

생각할 수록 괘씸하다. 치료는 해 줬고, 약도 주고 자료도 줬는데. 가라로 만들어 놓은 거긴 하지만 내 이름 팔아서 무림맹 본부랑 정파 수뇌부, 유력세가들한테 소문좀 내 달라는게 그렇게 위험부담이 크고 명분까지 따져야 하는 일인가?

한창때의 여식을 편하게 쓰시라고 붙여 놓는 저의가 결국 혈연으로 엮어보자는거 아냐. 좋지. 좋은데, 서로 하나를 줬으면 하나를 받고, 그 다음에 그 이야기를 해야지. 이미 값을 지불한 일에 대해서 그것도 충분히 큰 값을 지불한거에 비해서 작은걸 해 주면서 지랄 뭐 믿을 수 있다는 보장? 그것도 꼼짝없이 뒤질 가주를 고쳐놨는데?

“당가가 좀 말을 들었으면 해서 좋은 말로 하자고 치료를 해 줬는데, 돌아오는건 조건부라.”

하여간 씨바 입으로 은혜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내가 백날 방바닥에 앉아서 짱구를 굴리면 뭘 하나. 직접 안 움직이면 하나도 굴러가는게 없는데.

“린아, 연이한테도 준비하라 그래. 비급 들고 들어올테니까. 며칠 안 잤으면 좀 자놓으라고.”

“아, 네.”

지하에서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니, 아니다. 깝깝하고 짜증난다고 연이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일단은 무영문이다. 무영문부터 처리하자.

화란이와 준비를 하는 동안 서령이가 올라왔다. 음. 그냥 자윤이더러 올라오라고 할 걸 그랬나. 서령이도 어지간한 고수입네 하는 것들하고는 평수를 이룰 수 있는 실력이긴 한데. 내가 애를 너무 싸서 키우기는 하나보다. 린이랑 평소에 열심히 수련하고 있으니 금방 늘겠지 뭐.

“가자.”

“네. 삼랑.”

“응.”

당가혜는, 눈치가 있으면 집에 갈거고. 혹시 몰라서 약을 챙긴 후 화란이와 서령이를 앞세워 경공을 펼쳐 성도로 향했다.

성도 내부. 만복회 근처에서 작은 객잔을 잡으려다가 그냥 만복객잔으로 돌진했다. 뭐 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혹시나 배윤성이가 뒷통수를 치려는걸 잡으면 또 어쩔거고. 아니면 어쩔건가. 차라리 딴 생각을 할 엄두도 못 내도록 튀어나와서 기를 확 죽여 놓는게 낫지.

“이것 참. 급하신 모양입니다.”

“급하긴 해. 누가 또 길을 돌아가게 만들면 진짜 이번에는 내가 크게 살계를 열어버릴 것 같거든.”

“아…. 예.”

바로 만복회주의 집무실로 쳐들어와서 깔고 앉았다. 슬슬 오후쯤 되니까…. 늦어도 반나절 정도만 기다리면 되겠네.

“요기하실만한 거라도 좀 올릴까요?”

“주면 거절하진 않지.”

“잠시만 기다리십시요.”

배윤성이 지시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 섰다. 밖에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텐데 소리쳐서 부르면 될걸, 지가 왜 꼭 가 보겠다고 하는걸까.

“잠깐.”

“…예?”

이새끼 이거 목소리가 살살 기어들어가는거 보니까 뭐가 있네. 나는 건물 전체를 커버할 수 있도록 기감을 확장했다. 지하에 뭔가 있다. 정신을 집중해서 샅샅이 흝으니 대충 알겠다. 얘네가 무영문이구나. 만복회주가 데리고 있는 파락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체계적으로 수련한 무인이다.

“지금 바로 안내해라. 지하에 있네.”

“저, 장 대인 그게 아니라….”

이거 미리 안 와봤으면 큰일날뻔 했네. 배윤성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오체투지를 했다.

“진짜로…. 진짜 방금 도착했습니다! 누님께서 다녀 가신 다음에 정말 바로 왔습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냥 바로 안내나 해. 누가 널 죽이기라도 한다더냐.”

이미 화란이가 무슨 금제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금제도 해 놓은 상황이다. 그래도 살살 속여가며 통수칠 방법이 없는건 아니니까 또 대가리를 굴렸겠지만….

“지금 무영문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어서, 요기라도 좀 하시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자 그랬습니다. 살려주십시요.”

안 죽인다니까. 누가 보면 내가 뭐 맨날 죽인다고 협박한 줄 알겠네.

“무영문사람들이 지금 상태가 안 좋아?”

“좀, 심각합니다. 의원을 불러 놓은 상태입니다.”

“일단 가서 보자.”

“예. 대인. 감사합니다.”

이번 건은 내 오해가 맞는것 같은데 니가 감사할 일이 뭐가 있냐. 자꾸 이렇게 신나는 갑질 생활을 즐기다가 버릇될 것 같다. 급발진좀 자제해야지.

“이쪽입니다.”

­ 똑.똑.똑.

“만복회주요. 의뢰주가 오셔서 잠시 실례하겠소.”

만복객잔 사천점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분위기가…. 패잔병이네 이거. 왜들 이렇게 다쳤어?

“어…. 이거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배윤상이 그러게 내가 말 했지 않냐…. 같은 느낌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아니, 이 상태인줄은 몰랐지.

“…무영문의 소문주 진유하라 합니다. 의뢰하신 물품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 예. 해동장씨의문의 문주 장 구라 합니다. 어쩌다가….”

당장에 진유하라는 처자도 팔과 다리에 피가 묻은 붕대를 감고 있다. 제법 큰 지하실에 무영문의 사람이 열댓은 넘어 보이는데 성한 사람이 없다. 아, 하나 있네 노친네.

“…무영문의 내부 사정입니다. 의뢰물품을 전달 드리기 전에 어머니의 회복을 확인받고 싶습니다.”

무영문이 간절하게 부탁했다면서? 배윤성이 이새끼 이거….

“의뢰물품은 확실한겁니까?”

“일단 무영문이 가지고 있던 훼손된 비급은 모두 싸들고 나왔습니다….”

“비급의 존재는 확인해야 할 것 같소이다.”

아무리 그래도 서로 물건이 있는지는 확인 해야지. 잠깐 눈싸움을 하다가 보여주는것 정도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풀고 뒤로 손짓을 했다. 어차피 내가 힘 한번 쓰면 그냥 다 뺏을 수 있는데 참아준다 진짜. 밑으로 넣을거니까. 아니, 그 밑으로 넣는거 말고. 휘하에 둘거라고.

“일영(一?). 궤를.”

“예. 소문주.”

일영이라고 불린 무뚝뚝한 남자가 묵직한 궤짝을 들고 왔다. 부피때문에 괜찮나 싶었는데 공부가 얕은것은 아닌듯 적절하게 내공을 끌어올려 완력을 발휘했다.

“자, 여기 있습니다.”

“흠…. 예, 뭐.”

일단 내가 본다고 뭘 아는건 아니니까, 반쪽자리 비급을 성도로 가지고 온다는 의뢰는 확실하게 수행을 해 준 거다.

“그래서 의뢰 보상은 어떤걸로 드리면 되겠습니까? 돈?”

“…. 치료 여부를 확답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치료는 할 수 있소. 지금 바로 드릴 수 있는 약도 들고 왔지. 서령아.”

“네. 문주님.”

나도 좀 있어보이게 목소리를 깔면서 뒤로 손짓을 했다. 서령이가 알아듣고는 품안에서 약을 꺼내 보여준다.

“그럼 의뢰품을 전달 해 드리겠습….”

“잠깐만. 이야기 해 둘게 있는데. 이 약은 사흘정도 당신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는 정도야.”

“…예?”

“완전한 치료를 받으려면 우리 해동장씨의문에서 장씨일가 비전의 치료법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지.”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당연히 의뢰비용정도로 퉁치기에는 너무 큰 가치가 아니냐는 거지. 사흘짜리면 몰라도.

“상태를 보아하니 이미 발병하신지 오래 된 것 같은데. 고작 반쪽짜리 비급들만 가지고 완벽히 치료해 달라는게 무리인건 말 안해도 이해가 가지?”

“…귀한 약재와, 쉽게 찾을 수 없는 비전의 기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전혀 그런거 없다. 이 치매약도 사실 마의가 와서 시설만 갖추면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 비전의 기법은 무슨 오히려 치료하다가 반로환동 안 시키려면 조심해야 되는 판에.

“우리도 그 비급이 필요한건 맞지만 그렇게 까지 간절한건 아니야. 솔직히 그 안에서 우리한테 필요한걸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줄 수 있는건 이 사흘짜리 약이 전부다.”

“…문주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말씀 해 보시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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