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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75화 (75/122)

〈 75화 〉 무림치매대응반 75

* * *

“늦어진 이유를 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당진운이 웃음기를 싹 빼고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알아야 할 내용이라도 있나요?”

“먼저 이걸 좀 보시지요.”

당진운이 눈짓을 하자 당가혜가 품에서 병을 하나 꺼냈다. 딱히 밀봉을 해 둔 것은 아닌데.

“내용물을 한 번 확인 해 보시겠습니까?”

당가에서 내미는 거니까 독이겠지. 일단은 혹시 모르니 기막을 두르고 기운을 움직여 당가혜의 손에서 병을 띄워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허공에서 뒤집어 독액을 허공에 퍼지게 만든 다음에 기운으로 다시 뭉쳐서….

“이건 저희가 드렸던게 아닙니까?”

노망독인데?

“부끄럽지만 저희 당가에 숨어 있던 변절자가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네?”

암약단체의 끄나풀이 숨어 있었다고?

“저희가 늦게 도착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거기다 묘하게 문주께서 주신 독과 형질이 달라서….”

다르다. 확실히. 머리속에서 뽑아낸 독기의 경우는 휘발성이 엄청나게 강해서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려고 날뛰는데…. 이게 하독 전이라서 이런건지, 아니면 몸 안에 들어가서 형질이 바뀌는건지.

“일단 저희쪽 이야기를 좀 더 말씀을 드리자면, 저희가 돌아간 날 바로 가문 내에서 변란이 있었습니다. 장로원쪽의 일부와 방계혈족이 저지른 일인데….”

어지간히도 방계를 천대했나보구만. 그때는 그렇게 가족애가 넘치는 것 같더니.

“조직이라는 것이 커지다 보면 그림자라는게 없을 수는 없다지만, 저희는 한 번도 방계라 하여 무공전수에 대해 차별을 한다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방계라고는 해도 모두 당씨 일족이고, 선대는 다들 직계니까요. 직계와 먼 혈족이 혼인을 하게 되거나 하여 다시 직계로 취급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일어 났어요.”

당가 내부의 사정은 사정인거고, 당가처럼 혈족으로 엮인 곳에도 변절자가 있었다. 당연히 사람이라면 뭐 매수를 당한다거나 가족을 인질로 협박을 당한다거나 그럴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검각이나, 연이의 종리세가나, 화란이의 진룡회나…. 아닌가? 무림맹 외당과 황궁 연회를 역시 의심해야 하나? 명확한게 없고 갑갑하기만 하네. 계속 떡밥만 단편적으로 떨어지고 있으니 아주 찐한 밤 고구마를 먹는 느낌이다.

“하독 수법은 알아 냈습니까?”

“하독 전에 발각되자 그대로 자진했습니다.”

또 꼬리가 싹둑. 짜증나네 이새끼들. 하기사 이러니까 50년 이상 암약단체로 활동을 한 거겠지만.

“이미 죽은 변절자의 뇌실에 독액을 직접 주입해 보았습니다만, 건네주신 독액과 비슷한 형태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특수한 하독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흠….”

“건네주신 독액을 변절자의 뇌실에 주입했을 때는 말씀해주셨던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 걸로 봐서, 하독과정에서 형질이 변한다고 보는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아, 그 추측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디서 어떻게 중독이 되었는지, 이런 세력들이 어디까지 뻗쳐있을지가 걱정이라서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저희 당가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연구, 개발의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 당가혜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연구개발이라.

이런 독을 개발했다면 글쎄. 이 시대에서 느꼈던건 뭔가가 진행되는게 굉장히 더디다는 거였다. 21세기의 미쳐 돌아가는 세상처럼 뭔가가 나왔다 하면 그것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더 발전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제껴놓고 있던 가능성인데, 흐음. 확실히 50년정도 했으면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할지도.

“어떤 가능성을 말씀하시는걸까요?”

“저희에게 전달해주신 정보로 볼 때, 50년 이상 이 독을 그 조직에서 썼다면 제법이나 하독법에 변화가 있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가설을 세우자면, 20여년 전에 검후님이나 저희 아버지께서 중독된 독과 지금 발견된 이 독은 같지만 다른 독이라는 거죠.”

단순한 하독법의 변화만 따질것이 아니라. 연구개발로 최근의 독은 다른형태일 수 있다는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느낌이 좀 이상하다. 나도 나름대로 여기 중원 무림에 떨어져서 20년 가량 살았는데, 이건 중원 무림의 방식이 아니다.

중원 무림의 방식이라면 독을 쓰더라도 사람을 대량으로, 문파의 핵심인력을 대량으로 쓸어버릴 수 있는 형태로 쓰고, 세력이 줄어든 적측을 일시에 들이쳐서 무력화 하는 방식을 쓸거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오년에서 십년 사이. 한 번 효능이 증명된 독을 개선하는 데 인력을 투자할 것 같지도 않다.

기본적으로 무인이라면 예전에는 전성기도 짧은편이고, 온갖 은원에 의해 제명에 못 죽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슈퍼김치맨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백성들에 비해서는 성격이 급한편이다. 그런 인간들이 이렇게 초 장기의, 아주 그냥 온 중원을 다 포함한 빅픽챠를 그린다는게 영 상상이 안 간다.

“...문주님?”

“아,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흐음…. 그러면 연구개발에 의해 변경된 독으로 중독된 감염자가 있을 수 있으니 당가에서도 한 40대 이상 되시는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전수조사를 합시다.”

“예?”

“뭐, 일종의 건강검진이지요.”

여기와서 팔자에도 없는 건강검진을 하게 생겼네.

“일단은 다양한 하독법에 대해서 계속 분석을 진행 해 주시고, 당가의 환자분들은 내일부터 바로 치료를 진행하는걸로 하시죠.”

“참…. 어쩌다 당가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지금부터라도 바로잡으면 되는 일입니다. 아, 그리고 가주님.”

“예.”

“무림맹에 소속된 명문대파와 세가들쪽으로 연통을 좀 넣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떤….”

“지금 무림명숙들이 앓고 있는 노망은 특정 세력의 음모이며 이에대한 치료를 성도로 오면 받을 수 있다고.”

“예...?”

“성도의 해동장씨의문을 찾으라고, 당문은 그냥 저희의 치료를 보증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마의도 곧 도착할테고. 무영문을 내 밑으로 넣건, 고용을 하건 일단은 써먹을 생각을 한다. 만약 무영문이 안되면 아쉬운대로 만복회의 지원을 받으면 된다. 당가도 요 옆에 공사중인 장원이 어지간히 끝나가니까 인원 지원이 가능하겠지.

“지금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는데 바로 문주께서 정면에 나서시면….”

“일거에 끌어내고자 합니다. 최대한 화려하게, 위기에 빠진 무림을 구하기 위해 단결하자는 느낌으로 격문처럼 날려 주십시요. 수뇌부에게만 확실하게 들어가면 됩니다. 일반 문파원들에게 소식이 들어가는건 제가 따로 손을 쓰겠습니다.”

돈을 들여서라도 하오문쪽 네트워크를 써서 여론몰이를 할거다. 치료법이 있다는데 왜 수뇌부는 손을 쓰지 않는지.

“아, 치료약이 한정적이니 최대한 빨리 와야 한다고도요.”

무림맹 수뇌부가 제대로 움직여 줘야 할텐데. 이렇게까지 하고도 안 움직이면 뭐. 무림맹 남경지부로 다시 따고 들어가야지.

“알겠습니다. 지시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지시라뇨. 부탁드리는 겁니다. 혹여나 당가에 피해가 생길까 저어하신다면 물러나 계셔도 무방합니다.”

싫다는 양반 끌고갈 생각 없다. 자칫하다가 통수맞으니까. 그렇게 되면 아미와 점창을 비롯한 그 때 왔었던 문파를 습격해서 환자들을 빼와야겠지.

“그럴리가요. 이번 일로 당가도…. 저를 포함해서 이번 뿐만이 아니라 오랜시간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되갚아줘야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움직이시죠. 할 일이 많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가혜야.”

“은공. 오늘부터 제가 해동장씨의문에 기거하며 잔 일을 거들겠습니다.”

…예?

“간단한 연락이나, 정리와 같은 문제는 가혜를 시키시지요. 매번 검후께서 직접 움직이시는것도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예?”

뭐래는거야.

“아뇨,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외부에 노출하기 곤란한 내용들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외부인은 껄끄럽습니다.”

“그런 내용은 저를 빼놓고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은공께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받아 주십시요.”

당가혜가 그 자리에서 납죽 엎드린다. 아니 대놓고 거슬린다고 말 했는데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지금.

“문주님의 심기를 상하게 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저희쪽에서도 일종의 그, 증표로서.”

그러니까 지금 어? 당가 믿고 일을 진행하시라고 인질로 맡겨 놓겠다는건가? 지 딸래미를?

“알겠다. 그렇게 하지.”

“청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뭐라고 말 할 사이도 없이 린이가 나서서 수락해 버렸다. 당진운은 내가 무르기라도 할까봐 잽싸게 고개를 숙이고는 장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런 염병. 린이 너….

“주제넘게 나서서 죄송해요 주인님. 그치만….”

“대체 왜…. 아, 당 소저는 들을 필요 없는 이야기니까 나가서 바로 당가로 돌아가요.”

“은공, 제가 여기 있어야 당가의 지원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건 또 뭔 소립니까?”

“말 그대로에요 주인님. 당가 역시 우리가 지시한대로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를 믿을 수 있다는 명분이 필요한 거에요.”

“뭐?”

하놔 씨팔 진짜. 복잡하게들 산다 복잡하게들 살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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