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무림치매대응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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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오늘은 이야기를 나눌만 한 상황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만 들어가시고 다음에 이야기 하시지요.”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은공. 사양하고 싶으나 아무래도 오늘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왕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했다. 괜찮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거려 주고 치료실에 펼쳐놨던 침통이나 수건같은 것들을 정리했다. 빨리 가라는 뜻이다.
“아, 당가에 있는 환자 수 대로 약을 좀 챙겨 가시지요. 화란아. 좀 챙겨드려.”
“네. 문주님.”
당씨 일가가 엉거주춤 서서 또 뭔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눈치라 그냥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하고 치료실을 빠져나와버렸다. 오. 나 방금 좀 의사같았다. 현대에서 이루지 못한 사자 직업의 꿈을 중원에서 이룬다.
“오라버니 좋은 아침.”
“이제 일어났냐?”
“안 잤거든! 오라버니 냄새가 잔뜩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을 뿐이야.”
“아, 그래.”
“반응이 뭐 그래.”
아니 그럼 거기서 내가 뭐라고 해. 내 체취도 좋아해줘서 고마워? 연이는 어느새 깔끔하게 몸단장을 마치고 본채에 앉아서 차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아주 팔자가 늘어졌구나.
“당가에서는 왔다 갔어?”
“응. 잘 치료 했어.”
“다른 문파는 안 오려나?”
“어제 봤잖아 그놈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데. 점창파 정도나 기대 해 볼까.”
나도 탁자에 마주 앉아서 차를 한 잔 따랐다.
“오라버니 오늘 할 일 있어?”
“혹시 점창에서 오면 모를까, 그 외에는 딱히?”
배윤성이 무영문은 며칠 뒤에 온다고 했으니까 당장 오늘 뭘 처리 할 일은 없다.
“그럼 자윤이 데리고 좀 나갔다 와. 그 사이에 지하 작업 좀 할테니까.”
“바로 하게?”
“오라버니 성격 엄청 급한거 내가 몰라? 냅두면 혼자서라도 팔 사람인데.”
내 성격은 전혀 급하지 않다. 그저 빨리빨리가 몸에 베어있는 김치맨이라서 그런거지. 애초에 니들이 너무 느긋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냐.
“하여간 갔다 와. 파 놓으면 당장 오늘부터 오라버니 거기서 뒹굴고 싶을거 아냐.”
“야, 야. 그 정도까지 급하진 않거든?”
“자윤이 고거. 달거리 거짓말이야.”
어째 피 냄새는 안난다 싶더라니. 기막을 두르거나 했다면 티가 났을거다. 그런 조치도 없는데 전혀 냄새가 없어서 좀 궁금하긴했는데. 그렇다고 그걸 물어 볼 수도 없잖아.
“혹시나 점창에서 오면 내일 다시 오라고 하거나 빈 건물 내 주면 되니까. 오늘은 자윤이부터 해결 해.”
“왜 거짓말을 했을까?”
“그건 오라버니께서 직접 알아 보시구요. 아, 애들 오네.”
당가의 식솔들을 배웅하고 치료실을 다 정리했는지 화란이와 린이, 서령이와 자윤이가 들어왔다.
“야 마중화.”
“…네.”
방금 으드득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왜, 뭐. 지금 어? 정실부인이 막 부르니까 기분 나쁘다 이거야?”
“…부인의 품위가 곧 주공의 품위입니다….”
“오라버니! 자윤이가 나보고 품위없대!”
“애냐….”
“어? 좋은 마음으로 좋은 기회를 줄려고 불렀더니. 확 그냥 못나가게 할까부다.”
이상하게 연이는 티안나게 갈자윤을 챙기면서도 얼굴을 맞대면 으르렁 거린다. 속마음은 정신줄 놓은 것 같다고 어떻게든 해 보라는 거면서. 츤데레인가?
“...네?”
“너 아무래도 싱숭생숭 해 보이니까. 그저께도 오라버니만 두고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웠는데 아무것도 안 했고.”
“그건….”
“무슨 생각하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빨리 결론 내. 아니면 그냥 생각없이 오라버니에게 맡겨보는 것도 좋고. 너 달거리 안하는거 다 알고 있으니까 빼지말고.”
“네….”
“얘좀 봐. 진짜 나 정실부인으로 모시게? 웃기지도 않는 짓 집어치우고…. 아니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자. 오라버니 얘좀 데리고 나갔다 와 얼른.”
애들이 들어와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불러세워서는 쏘아붙이듯이 다다다 제 할말만 쏟아내는 연이였다. 갈자윤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살짝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윤. 천마신교는 이제 없어. 천마신녀인 너도 없는거야. 그런거 이제 신경쓰지 마.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연아 마지막에 그건 안 하는게 좋을뻔했어.
“자. 빨리 가. 나머지는 나하고 할 일이 있으니까. 이리 오고.”
“네에~.”
연이는 다른 애들을 데리고 본채를 나가 버렸다. 진짜 바로 공사를 하려나보다.
“우리도 갈까?”
“…네.”
갈자윤은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지? 또 공중수레를 동원해야 하나? 그래도 처음인데 토굴은 좀 그렇고.
“주공, 주공만 괜찮으시면 주공의 침소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응? 내 방에서?”
멋드러진 별채가 있는 객잔이라도 하나 잡을까 했는데.
“다른 부인들께서는 어찌하셨는지를 들었습니다만, 앞으로 긴 시간 기거할 수도 있는 이곳 장원의 침소가 탐이 납니다. 천녀의 청을 들어주시렵니까?”
흐음…. 나쁠것 없지. 갈자윤이 여기다가 일종의 영역표시를 해 버리는 것도. 어차피 애들은 지하에 있을테니까.
“그러자 그럼.”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집 놔두고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 없다. 나는 갈자윤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본채를 나왔다. 그대로 걸음을 옮겨 내 방으로 가려는데…. 왜 애들이 다 내 방에 모여있지?
“…니네 여기서 뭐하냐?”
“공사하려고.”
“여기서?”
“…입구는 만들어야 할 거 아냐 오라버니.”
그냥 다른 곳으로 갈까 하다가 뭐 하는지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갈자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으로 들어가 물어봤다. 입구를 왜 여기에 만들어?
“하아…. 오라버니가 원하는게 뭔지는 알겠는데. 다른 사람들 눈이라는게 있거든? 오라버니가 사람도 쓰자고 했다면서. 그럼 한꺼번에 우루루 지하고 들어가고 우루루 나오고 그럴거야?”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네.
“그럼 일단 다른 방들 입구부터 부탁해. 자윤이하고 집에서 놀 거거든.”
“...여기서?”
“응. 그러고 싶대.”
“…하긴 어디 나갈곳도 마땅찮기는 하네. 알았어 그럼. 화란아. 네 방부터 가자.”
“네 언니.”
연이가 애들을 이끌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가면서 귀엽게 얼굴을 찡그려 보인다. 어험. 여자가 많으니까 이거 서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자꾸 민망하고 그렇다. 얼른 확 다 벗겨놓고 뒹굴어야 이런 이야기도 편하게 하지.
“하아….”
“왜 한숨이야?”
“정말, 괜찮을까요?”
“뭐가?”
“저는, 마교 사람이니까요. 누군가 알아 보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계속 신경쓰고 있었나 보다.
“아까 연이 말 들었잖아? 정마대전 이후로는 중원쪽으로는 영향력 행사도 못 했다며?”
“서로 죽고, 죽이고…. 젊을때는 그것이 그저 옳은 일이라고만 생각했고…. 정파놈들의 손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거야…. 뭐 당연하지 않을까. 그때는 그런 입장이었던 거지.”
“이 병이 발병하기 전에도 어떻게든 마지막 탈마지경의 마도인을 찾아 극천마기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탈마지경이라는 건 자윤이가 폐경이 왔기때문에 천마신녀의 맥이 끊기는건 확정적이었으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중원 무림에 타격을 주고 싶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이 원한을….”
신녀의 의무를 수행하는게 결국 불가능 하게 되고, 진짜 악으로 버티면서 살았을거다. 평생을 바치고, 아버지에게 부탁받은 마교도 자기대에 문을 닫게 되었으니까 그런 원동력이라도 없다면 애저녁에 정신줄을 놓았겠지.
“주공을 모실 결심은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주공의 행보에 누가될까, 시간이 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매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뭐가 마찬가지라는 거지?
“솔직히, 그녀가 저를 왜 치료 해 준건지 모를정도로, 그녀도 저희 교도들을 많이 죽였고 저도 그녀의 동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지금이야 그녀가 노출되지 않았으니까 괜찮지만…. 만약 제일매화 종리연이라는 것이 세인에게 알려진다면 저로 인해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으으음….
“아냐, 들어봐, 내가 생각하기에 그럴것 같진 않아. 왜 그러냐면….”
일단 지금 배분상 연이에게 테클을 걸 수 있는 인원이 죄다 죽었다. 치매때문에도 죽었고. 노환으로도 죽었고. 연이나 자윤이 나이가 있으니까…. 그 밑이야 그냥 깔아뭉개도 되고. 연이는 또 현재 무림에서 죽은걸로 처리되었으니까 신분 세탁을 해 버려도 상관없고. 솔직히 닮았거나 그 집안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누가 헉. 비슷하게 생긴걸 보니 반로환동해서 신분을 바꿨구나 하고 생각할 것인가.
거기다 더해서 연이는 지금 절대강자라는 것. 나도 공격력은 시원찮다지만 탱은 연이랑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위협이 안된다면 그런 여론같은건 다 뭉갤 수있지.
“…거기에 더해서, 누가 그런걸로 뭐라고 하면 그냥 내가 널 전리품으로 삼았다고 해.”
“전리품이요?”
“천마신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필요하다면 내가 천마신교의 현판을 내린 사실도 명분을 위해서 이용할거야. 그 과정에서 천마신녀를 노리개로 삼았다고 하면 뭐, 누가 뭐라고 하겠어.”
나는 앞으로 중원 무림의 성자가 될텐데.
“걱정하지마. 그런건 아무 영향 없어. 있더라도 우리가 다 같이 너를 지켜줄테니까. 그게 가족아니겠어?”
“…가족….”
물론 가족끼리 이러는거 아니라지만….
“역시, 주공이시네요. 우둔한 천녀의 불안을 이리 덜어주시니….”
“이제 좀 정리가 됐어?”
갈자윤의 입장에서는 나름 일리있었던 걱정이다. 거기다 중원에서 떨어진 마교, 그것도 세력이 다 쪼그라진 상태로 바깥 소식도 거의 못 듣고 처박혀 있었으니….
“네, 주공. 이제 마교를 토벌한 영웅께서 이교도의 신녀를 노리개처럼 다루어 주세요….”
도발적인 대사 치고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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