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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71화 (71/122)

〈 71화 〉 무림치매대응반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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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후의 주인이라니. 흐뭇하긴 한데. 아직은 우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건 좀 피하고 싶다. 헛점투성이로 보여야 낚일거 같아서.

화란이와 서령이, 갈자윤도 옷을 갖춰입고 면사를 다시 뒤집어 썼다. 그냥 쉬고 있으라니까 치료실에서 같이 있겠다고 해서 그냥 그러라고 했다. 아직 제대로 가구가 갖춰지지 않은 치료실이 영 살풍경했지만 빨리 마의가 와야 뭐라도 갖다 채우지. 지금은 기본적인 것만 있어도 충분하다. 사람을 치료하긴 하지만 진짜 의원은 아니라서.

“문주님 들어가겠습니다.”

“어서오십시요 독왕님.”

“환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독왕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사람을 쳐다봤다. 아들이라고 하더니 과연 독왕 당각과 똑 닮았다. 아예 어린 사람같으면 잘생겼다 어쩐다 칭찬이라도 해주겠는데, 독왕의 아들도 쉰은 가뿐하게 넘어 보였다. 독왕과 아들 말고도 젊은 남녀가 같이 들어왔다. 아들 내외인 모양이다.

“당진운이라 합니다.”

아. 들어본 적 있다. 어쩐지 당가의 가주가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들인 무혈독수 당진운이 노망이나면서 아버지가 대행한 모양이다. 당진운의 아랫대는 아직 가주위를 받을 만 한 수준이 안될테니까.

“지금은 좀 어떠십니까?”

“머리가 아주 맑고 기억도 또렷합니다. 그 동안에는 정신이 돌아오더라도 흐리멍텅했지요.”

“앞으로도 계속 그러실겁니다. 자, 이쪽으로 누우시지요.”

당진운을 침상에 눕도록 지시했다. 그냥 눕는게 아니라 침상 밖으로 머리가 튀어나오도록 정확히는 뇌호혈이 침상 밖으로 있어야 시술을 하기가 편하다. 여기다 침을 찌를거니까. 아, 그렇지.

“린아. 병 좀 꺼내줘.”

“네 주인님.”

독왕의 눈이 꿈틀 했다. 아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거 하지 말라니까.

“이거 말씀하시는 거죠?”

“…고마워.”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 내가 평소처럼 린이를 불러버린거니까. 검후님 하고 불렀어야 되는데 치료할 생각에 이런 등신짓을.

“어흠. 당가에서도 연구를 진행하시려면 필요할테니 뽑아낸 독기를 담아서 드리겠습니다.”

“그, 그리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에이 민망해라. 독왕도 나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걸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저기 서 있는 젊은 친구들은 린이가 반로환동한 검후인지는 모를…. 아니, 같이 오면서 들었나? 젊은 남자의 눈빛이 당황스러운걸 보니 들었나보다. 아니, 린이가 부끄럽고 뭐 그런건 아닌데. 반로환동하고 젊어져서 남자를 만난다고 하면 아무래도 린이가 구설수에 오르기 좋으니까.

“…문주님?”

“아, 잠시 생각할게 있어서요.”

에라 치료나 하자.

“자 편안하게 눈을 감으시고, 이미 약을 통해서 독기는 모여 있는 상태니까, 독기를 끌어낼 수 있는 기운을 투입해서 몸 밖으로 끄집어 낼겁니다.”

미량의 ‘천지환원기’를 끌어 올려 누워있는 당진운의 뇌호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으으으음….”

“잠시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금방 끝나요. 많이 불편하시면 소리내지 마시고 손만 들어 주세요.”

불편할 건 없는데, 그냥 이 대사 한 번 해보고 싶었다. 불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진운의 얼굴에 긴장이 서린다. 나는 머릿속의 독기에 집중하여 뇌의 아랫쪽으로 밀려나온 독기를 싹 흝었다. 나야 내가 가지고 있는 기운 전체가 ‘천지환원기’나 다름 없으니까 수월하다. 기운을 뇌 속에서 한 바퀴 돌리면서 독기를 싹 끌어다가 다시 뇌호혈 쪽으로 몰았다.

“서령아, 바늘.”

“네. 문주님.”

아까도 서령이를 부를 걸. 서령이는 센스 있게 문주님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래 남들 앞에서는 좀 가려야지. 서령이가 뜨거운물에 잘 소독된 장침을 건네주었다. 거창한 침술은 필요 없고 그냥 빵꾸만 하나 내면 된다. 이걸 푹 찔렀다가 척추쪽 라인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냥 빠져 나오는 통로만 만드는 정도면 충분하지.

“오오오….”

침으로 구멍을 내고 독기를 쭉 끌어 당겼다. 당진운의 머리카락에 닿지 않도록 통로를 확보하고 그대로 기운으로 붙잡아 허공으로 빼 올렸다.

“…미처 문주님의 경지를 알아 보지 못했구려.”

“별것 아닌 재주입니다.”

“그 나이에 이리도 능숙한 격공섭물이라니.”

일종의 퍼포먼스다. 이런게 불가능한, 우리가 앞으로 양성할 치료사들에게 치료를 받으면 적어도 뇌호혈 부근은 머리를 밀어야 한다. 독액이 머리카락에 다 묻고 난리가 날테니까. 나한테 깔끔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특별한 인맥이 될거다. 돈도 많이 내야 할거고. 문주의 VIP서비스를 받는 보람이 있어야지.

“자. 보십시요 독왕님.”

“잠시 관찰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취급에 주의만 하시면 괜찮습니다.”

당가가 연구해줬으면 하는 내용은 하독에 관한 부분이다. 대체 이걸 어떤 전달체로 어떤 타이밍에 하독을 했는지를 모르겠다. 음식에다 섞은건지, 독무 형태로 살포를 한건지. 그걸 추측해낼 수 있으면 배후세력을 특정하는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자, 병에 담아서 드릴테니, 밀봉을 신경쓰십시요. 휘발성이 강해 금방 날아가고 맙니다.”

“그거라면 걱정마시지요 문주. 독을 취급하는 것이라면 천하에 우리 당가를 따라올 자들이 없습니다.”

“믿음직스럽군요.”

당진운의 머리를 다시 내려 놓고 손을 닦았다. 손에 아무것도 묻은건 없지만. 세균감염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큰 상처를 낸 것도 아니고. 나는 당진운의 몸에서 뽑아낸 기운을 당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허공에 띄웠다가 다섯개의 병에 나누어 담았다.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화란이들이 병을 잽싸게 밀랍을 녹여 밀봉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아버지.”

“네가 고생을 많이 했지. 잘 버텼다. 잘 버텼어.”

당진운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굵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어서 따라온 젊은 남녀도 눈물을 흘렸다. 이게 전염이 되는지 괜히 나도 눈물이 찔끔 나는게…. 가끔씩 온정신으로 돌아올 때 마다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을까.

“이렇게 사느니 죽어야지…. 죽어야지, 했는데도 차마 나이드신 아버지를 두고 자진을 할 수도 없고. 하아…. 참….”

“예, 뭐 이제 괜찮을테니 앞으로 남은 효도 열심히 하십시요.”

아,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이렇게 회복을 하고 가족과 기쁨을 나누는 광경은 처음 봤구나. 다들 워낙 치료하자 마자 상황이 미쳐 돌아 가서. 나는 면사 아래에서 훌쩍이고 있는 화란이, 린이, 갈자윤을 힐끔 쳐다 봤다. 니들은 대체 인생이…. 어?

“문주님…. 문주님은 영원토록 저희 당가의 은인이십니다.”

“예를 받아 주십시오.”

독왕 당각을 필두로 당진운과 젊은 남녀도 진료실 바닥에 오체투지를 했다. 아니 그냥 저, 중독 좀 치료해 준 거 치고는 사례가 과하신 것 같은데요.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알겠으니까 일어들 나십시요. 마음만 받아 두겠습니다.”

“하오나 은공….”

“아직 당가에 환자들이 더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회복 할 때 마다 이러시면 당가 사람들 무릎이 남아나질 않겠습니다. 그만들하시고…. 화란아. 약 가져와라.”

“예. 문주님.”

“오늘 치료로 아마 앞으로는 문제가 없을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이 치료법을 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므로 삼일에 한 번씩은 약을 드시고, 보름 뒤에 한 번 더 오십시요.”

범용 치료법이다. 나야 ‘천지환원기’를 주로 사용하니까 괜찮지만 이후에 치료법을 전수 받을 사람들은 티끌만한 ‘천지환원기’를 기반으로 자신의 내공을 걸러서 치료법에 사용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한 것 처럼 깔끔하게 독기를 뽑아내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침으로 따 내고 나서도 환부에 직접 병을 대고 독기를 받아야 할거고, 뭐 기타등등의 이유로 나처럼 깔끔하게는 안될게 확실하다. 그래서 약을 좀 더 복용하고, 이주 뒤에 한 번 더 시술을 하는 식으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아드님이신가요? 아버님께서 제때 약을 드시도록 옆에서 잘 챙겨드리세요. 아마 당가역시 약이나 독에는 익숙하셔서 잘 하시겠지만.”

익숙하기만 하겠는가. 당가에 있는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 알아서들 잘 연구하고 적용할거다.

“이런 경황이 없어 소개가 늦었습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경우가 없습니다 제가. 인사올리거라. 해동정씨의문의 문주님이신 장 구 대협이시다.”

맞다. 내 이름 장 구로 알고 있지. 당각은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당진운을 안고 있던 젊은 남녀를 재촉했다.

“은공, 인사가 늦었습니다. 당가의 당 병용이라 합니다. 아버지를 치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울지말고 똑바로 말해.

“은공, 아버지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생의 은공으로 모시겠습니다. 당 가혜라 하옵니다.”

둘다 나한테 인사는 하고 있는데 즈그 아버지 쳐다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뭐. 이해할 수 있다. 노망나서 죽는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돌아왔으니 다른게 눈에 들어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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