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무림치매대응반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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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화란이의 섬세한 필체로 현판도 걸고, 치료용 침상과 흰 천 이나 환자들이 입을 만 한 천옷, 깨끗한 물을 담아서 장기 보관할 수통과, 수통 밑에 불을 지필 수 있는 화덕 등등. 일단 닥치는대로 준비를 해 둔 해동장씨의문(가짜지만)에 성도 인근 명문대파들의 대표들이 방문했다. 배윤성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안내하다가 나를 보고 바짝 쫀다.
[하던대로 해라. 당분간은 네가 앞잡이를 좀 해야겠다.]
전음으로 날려주니 고개를 살짝 숙이고 다시 안쪽으로 안내를 이었다. 그렇게 본채 안에 있는 커다란 탁자 앞에 모여 앉고, 차가 준비되었다. 일단은 검후의 소문이 발단이 된것도 있고해서 우리쪽에는 나와 린이만 탁자에 앉았다.
“해동장씨의문의 문주 장 구라 합니다. 위명이 자자한 사천의 영웅들을 만나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일단은 손님을 맞이하는 입장이라 일어서서 눈을 하나 하나 마주치고 포권을 해 보이며 인사를 했다. 내가 자리에 앉고 린이는 앉은 상태에서 고개만 까닥이며 인사를 했다. 당연히 사나운 기세를 일으켜 스스로 검후임을 증명했고.
“그럼, 각자 소개를 좀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나 부터 하지. 당가의 가주인 당 각이요. 허울이나마 독왕이라 불리고 있지.”
“아미의 공혜입니다.”
“점창의 여일평이요.”
“전진에서 온 능허입니다.”
“청성 문하의 파신자요.”
흠. 진짜 다들 급하게 왔나보다. 그나저나 당가는 독왕이 직접 오다니 의왼데.
“다들 소문은 들으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시는 검후께서는….”
“아, 미안하오. 다들 마음이 급할텐데…. 사실 나도 급해서. 검후께서 회복하신것이 정말 해동장씨의문의 비술때문이오?”
독왕이 말은 미안하지만 전혀 미안하지 않은 기색으로 말을 끊고 들어왔다. 흠. 내가 어려보이거나 어쨌거나 일단은 내가 주인인데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말을 끊고 들어오면….
“죄송하지만 검후님의 회복은 저희 문중의 비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나는 장씨의문의 비술이 아닌 내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독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린이가 옆에서 거들어 주었다. 일단은 이게 독에 의한 것이라는걸 설명 해야 하는데, 끽 해봐야 각 문파에서 적당히 허리급이 올 줄 알았는데 가주인 독왕이 직접 왔으니 내가 직접 설명하는 것 보다는 린이를 앞세우는게 나을 것 같다. 린이에게 슬쩍 눈치를 주니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린이가 입을 열었다.
“허나, 장씨의문의 비술에 의해 제 상태가 분석되었던 것도 사실, 만복회주가 어찌 전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은 그렇게 만들어진 약을 시험하고자 모이시라고 청하였습니다.”
“그 약은 안전한 것입니까?”
눈을 내리깔고 있던 아미파의 공혜사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나 의심하는 것 처럼 보일까 주의하는 것 같았다.
“안전합니다. 검후의 이름으로 보증하지요.”
“허나 검후께서는 의술에 대해서는….”
“능허도장의 말씀도 이해는 갑니다. 허나 상태가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고 환수마의도 장담을 했습니다.”
“환수마의? 의술에 조예가 있다하나 마졸이 아니오? 우리 청성을 함정에 빠트리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을 합니까?”
아 거 새끼들 말 쥰내 많네. 대충 독왕빼고 나이가 마흔에서 쉰 사이 같은데, 린이보다 후대라서 그런건지, 지금 린이가 예쁘장한 젊은 처자의 모습이라서 그런건지 하나 둘씩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대체 원하는게 뭐야 이새끼들? 나는 손을 들어서 린이의 말을 끊고 주의를 모았다. 왜냐하면 린이가 지금 거의 다 빡쳤거든. 잘못하다가 송장치우는 수가 생긴다.
“잠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약을 쓰실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필요가 없으시면 일어나서 가시면 됩니다.”
필요 없으면 일어나서 가라니까 슬금슬금 눈을 피한다.
“아니, 어흠. 필요가 없다는게 아니라….”
“흠흠….”
“문제가 생길 때 보증이 필요하다는 거지….”
당가를 제외한 나머지 네 문파에서 나온 대표자들은 멋쩍은 듯 변명을 하며 헛기침소리를 냈다. 나도 슬슬 린이와 같이 빡치고 있는데 독왕이 탁자를 툭 내려치고는 혀를 차며 시선을 모았다.
“…노망난 노인네들이 다 그대들의 존장들일텐데 지금 그런 보증이 중요한가? 애초에 이 약이 독약이라고 해도 달라질 게 있나?”
“독왕께서야 당가의 가주이시니….”
“이보시오 문주.”
나?
“저 말씀이십니까?”
“이 자리에 문주가 또 있소이까. 민감할 수 있겠으나, 약의 제법과 약을 이 자리에서 보여주실 수 있소?”
어차피 뭐 전 무림에 공개하려고 들고왔는데 안될것 없지.
“연아.”
“네. 오라버니.”
면사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워낙 영롱해서인지 시선이 확 끌린다. 그치만 이미 까발겨진 린이 말고는 정체를 공개할 생각이 없다. 화란이야 만복회주가 알고 있지만 어디 가서 나불거리진 않겠지. 연이도 서령이도 갈자윤도. 특히 갈자윤은 천마신녀라는게 알려졌다가는 제법 소요가 있을 수 있다.
“여기 준비하였습니다.”
“고마워. 자, 독왕께서 확인을 해 보시지요.”
연이가 쟁반에 받쳐들고 온 약병과 얇은 책으로 만든 제법을 독왕에게 넘겨주었다. 약병을 열어봐도 되냐는 신호를 보내서 손을 내밀어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흐으으음…. 일단 약 자체는 별 이상이 없군.”
“제법도 확인하시지요.”
“봅시다.”
저렇게 읽어서 뭐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기는 하나?
“과연. 일회성이로군?”
“오호….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이야, 과연 당가의 가주답게 그걸 알아 보네. 작용 기전에 대해서 좀더 독왕에게 설명하려는데 옆에서 지방방송이 끼어든다. 지금….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 아오 진짜.
“일회성이라니요 독왕?”
“이 약만으로는 치료가 끝나지 않는 겁니까?”
“그런걸 약이라고 할 수가 있나….”
“독왕께서 그럼 책임을 지는거요?”
뭐지 이새끼들? 입으로 뱉어내는건 분명히 불만인데, 표정은 갑자기 밝아졌다.
“좋소 내가 보증하지. 이 약만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나, 잠시간 정신이 맑아지는 효과는 있을것이요.”
“사천에서 당가의 보증이라면 그야말로 확실하지.”
“허, 흠. 해동장씨의문이라는 이름은 잘 모르겠으나 독왕께서 보증하셨다면….”
“부처의 보살핌입니다….”
부처 언급한 아미파 너, 내가 똑바로 봐 놨어. 내가 만들었다니까 왜 부처를 찾아.
“점창은 당가를 믿고 약을 써 보겠소.”
그나마 점창에서 나온 여 일평은 평범한 반응이었다. 이거 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말씀드렸듯, 결코 상태가 나빠지진 않을겁니다. 일단 약을 써 보시고 차도가 보이면 저희가 치료할 수 있는 노망이니 다시 본문으로 모시고 오시면 완전히 치료를 해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약을 시험해 보기로 했으니 클로징멘트를 쳐야겠다. 내 뒤에서 조용히 시립해 있던 연이, 화란이, 서령이, 갈자윤이 각 문파에 약을 두 병씩 건네주었다. 전진에서는 제법도 달라 그래서 까지말라고 했다. 당가야 우리가 약을 주면 분석해서 역설계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니까 그냥 까서 보여준거고.
“허흠. 부디 약효가 있었으면 좋겠군.”
“그래서 약효가 얼마나 가는거요?”
“예?”
“얼마나 가는줄 알아야 혹시나 듣지 않았을 때 며칠을 기다려야 할지 알 것 아니요.”
하, 이새끼들 진짜 뭐 맡겨 놓은것처럼….
“…이삼일은 갈겁니다. 허나 차도가 보이면 바로 본문으로 모시고 오십시요.”
“알겠소. 내 그리하지.”
약속이나 한 듯이 당가를제외한 네 문파는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황급히 떠났다.
“허허, 명문대파라는 것들이 저 모양이니…. 참으로 말세요 말세. 그렇지 않습니까 검후?”
“동감합니다.”
“저, 독왕께서는 어이하여 그리 역정을 내시는지요?”
궁금해서 못 참겠네.
“저놈들, 아. 점창은 빼고. 나머지는 아마 치료를 받겠다고 존장을 모시고 오는 일은 없을것이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회성이라니 아주 만면에 미소를 머금지 않소? 삼일이면 필요한 내용을 뽑아내기에 넉넉하겠구만.”
필요한 내용을 뽑는다라….
“주…문주님이나 저도 예상 못 했지만 아무래도 독왕의 말씀이 맞을 것 같네요.”
“나는, 내 아들놈이 노망이 나서 왔소. 나는 만독불침을 이루었거든. 그래서 독이 아닐까 생각했건만, 내 짐작이 맞았나 보군.”
린이가 습관적으로 주인님이라고 하려다가 황급히 말을 고쳤다. 검후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걸 들켜봐야 좋을건 없으니까. 쓸데없는 의심도 살 수 있고. 어쨌든 당가는 당가 전체는 아니라도 독왕 개인으로서 이 치매가 독에 의한 것임을 짐작은 하고 있었나보다. 다만 워낙 잘 숨겨져 있어서 독에 관해서는 따를자가 없다는 독왕도 딱히 증거를 잡아내진 못했던 것 같다.
“해동에서 오신 귀인께 중원 무림의 추악한 민낯을 보여드린것 같아 내가 다 민망하구만.”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요.”
“보증을 하라는 것도, 필시 귀문의 책임으로 돌리고 존장을 처리하려고 했을게요.”
“...예?”
“꼬장꼬장한 노인네들 뒷방으로 치우고 제놈들 마음대로 휘젓고 있을텐데, 꿀맛을 본 놈들이 제 머리위에 누가 다시 올라서는걸 참을 수 있겠소?”
허, 참.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서 진짜 육성으로 하하하하 웃었다. 결국 보증 어쩌고 했다는게 약을 먹이고 치매가 나으면 필요한 내용만 빼낸다음에 쓱싹 해버리고 우리한테 덮어씌우려고 했던거 아냐. 약을 먹였는데 차도가 없더라. 아니 오히려 나빠져서 문파의 큰 어른이 돌아가셨다. 이걸 그러면 만복회주가 약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을 때 부터 플랜을 돌렸다는건데….
“거기다 대고 일회성임을 보증 해 주었으니 놈들이 깨춤을 출 만 하지.”
“강호의 도리가 실로 진창에 처박혔다 하겠습니다.”
“애초에 그런게 어디 있었다고.”
린이가 검후모드로 독왕과 한탄을 한다. 옘병 그래서 일회성이라니까 그렇게 좋아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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