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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67화 (67/122)

〈 67화 〉 무림치매대응반 67

* * *

“다녀왔어요 삼랑.”

“응 고생했어. 얼른 밥 먹자.”

애들이 낮에 나갔다 오면서 사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막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화란이가 들어왔다.

“죄송해요. 삼랑.”

“뭐가?”

“낮에 확실하게 추궁을 했어야 했는데.”

“응. 미안 오라버니. 나도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

그런거 아니라니까 화란이도 연이도 내 눈치를 본다.

“사과할 일 아니라니까. 우리가 세외를 돌아다니면서 좀 느슨하게 생활한 것 때문에 그런거야. 솔직히 여기서 서령이 빼고는 자는 중에 누가 칼질을 한다고 해도 별 문제 없잖아?”

“…삼아? 나도 문제 없거든?”

“아, 그래. 미안.”

내가 서령이를 과소평가 했네.

아무래도 지금 우리 멤버 구성이 책사형이 없다. 자윤이가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가는 타입이라고 해도 사실상 내치쪽으로 스탯을 찍은 군주형이나 마찬가지고. 화란이는 대외협상용. 연이, 린이, 서령이는 뇌까지 근육으로 가득찬 무투파다. 연이가 그 나마 그 셋중에는 머리를 쓰긴 하는데, 같이 지내보니까 무공에 관련된 것 외에는 영 약하다. 간만에 21세기 현대인의 잔머리가 빛을 발했다고나 할지, 통수가 난무하는 현대의 추억이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미리 배윤성을 잡아다가 족칠 수 있었다.

“…똑똑한 애가 하나 있어야 될 것 같긴 하다.”

내가 똑똑하지도 않은데 계속 일행에서 머리를 쓴다고 굴리면 안될 것 같았다.

“오라버니, 나 똑똑하거든?”

“분야의 문제야.”

“아, 그렇다면 응…. 아무래도 눈치싸움이나 판세를 읽는다거나 하는건 좀 자신 없으니까.”

처음엔 지능도 찍은 캐인줄 알았는데.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

“주공께서 먼저 드세요.”

장유유서가 거꾸로 섰구만. 역시 실랑이를 해 봐야 말 안듣는다. 그냥 내가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어욱 씨. 매워. 사천음식 맵다 맵다 하더니만 어우. 식도에다가도 기운을 둘러야겠다. 이대로 그냥 퍼먹다가는 쓰릴 것 같다.

“그래서 만복회주는 뭐래?”

“회동 날짜를 최대한 빨리 정해서 내일 찾아 오기로 했어요.”

“흐음…. 얼마나 걸릴까?”

“그자의 말대로, 온 무림이 달아올라 있으면 이, 삼일 후에 잡히겠지요. 어차피 여기서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니까요.”

“일단 그 동안 치료실을 좀 꾸미고, 필요한 것들도 좀 더 갖추자.”

당분간은 여기를 치료거점으로 쓸 생각이니까 진료실 이라거나, 약재실같은 기본적인 시설은 갖춰 놓을 필요가 있다. 나나 다른 애들이 그걸 다룰 수는 없더라도 마의가 오면 필요할거다. 마의가 계속 있지는 않더라도 신강으로 복귀하면 제자라도 하나 보내 놓으라고 해야지.

“화란이는 내일 현판 하나 써라.”

“어떤...?”

“해동장씨의문(?????門)”

일단은 사람을 고치니까 의문이라고 해도 되겠지 뭐. 그럴싸한 현판 하나 걸어놓고 있어야 쓸데없는 설명을 할 필요가 줄어든다.

“왜 해동이야 오라버니?”

“그런거 있어.”

반도출신이 중원에 왔으면 무조건 해동이 국룰이다.

“저기, 삼아. 오늘은 누구랑 잘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서령이가 밥을 먹다 말고 뭔가 결연한 눈빛으로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목소리를 쫙 깔고 물어본다. 약속이나 한 듯, 다들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는다거나, 옷 매무새를 만진다거나, 헛기침을 한다거나. 왠지 모를 압박감에 나도 젓가락을 놓았다. 뭐…. 뭐야 이 분위기. 혼자서 잔다는 선택지는 없는건가?

“그…. 아무래도 오늘은 정리도 덜 됐으니까 혼자….”

“네에?”

“뭐어?”

“…삼랑.”

순서대로 린이, 연이, 화란이. 말이 없는 두 사람은 눈만 데록데록 굴리고.

“혼자…자는건 너무 쓸쓸하겠지 그렇지?”

“…오라버니?”

“잠깐만, 잠깐만 있어봐. 어? 자윤이가 아직이잖아. 모처럼 장원을 마련했으니까.”

연이와 화란이, 린이, 서령이가 대놓고 김샜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뭐 꼬우면 둘씩 하면…. 아니 아직은 그건 좀 미뤄놓고. 일단은 갈자윤이지. 마교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축 처져 있어서 건드리기가 미안했거든.

“저, 주공. 제가 오늘아침부터 달거리를 시작해서….”

“어…. 그래?”

그건 몰랐네. 오는 동안에 침울한것 처럼 보이던건 월경전증후군이었나? 연이의 말 대로라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의념을 강하게 가져야 다시 달거리를 시작한다는 것 같았는데, 아. 내가 극천마기를 보여줬을때 그 때부터 강력하게 원한거였나. 대체 얼마나 신녀의 후대를 잇고 싶었던거야? 이 주제가 나오니 또 화란이와 린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이것 참.

“오늘은 그럼 린이하고 쉴게.”

린이하고 단 둘이서 느긋하게 밤을 보내 본 적이 없으니까.

“흐으음…. 그래 뭐. 오라버니의 선택이라면.”

“네. 삼랑.”

“그래 삼아.”

눈을 빛낸 것 치고는 의외로 순순히 물러난다. 의아함을 담아 둘러봤더니 대표로 연이가 말을 꺼낸다.

“그냥. 오라버니가 선택하기 전 까지야 경쟁이지만, 그 다음에는 뭐.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삼랑,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이런 생각 하시면 화낼거에요?”

“그건 또 왜?”

할거면 공평하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삼랑께서 정말 저희를 공평하게 원해서 그런거라면 괜찮지만….”

“응. 삼이 네가 누군가를 동정해서 배려해준다면, 엄청 슬플것 같아.”

그건 니들 생각이지. 내 입장에서 누구 하나라도 빼고 생각한다는건 있을 수 없다. 당장 여기서 뭐 어떻게 하자 이야기를 해 봐야 아직은 서로들 경쟁하는 관계처럼 느끼는 부분이 있을테니까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알겠다. 알겠어.”

그래도 나는 공평하게 할거다. 대체 이 구성을 공평하게 즐기지 않을 이유가 있나. 어쨌든 그렇게 정해졌으니, 먹던 밥을 마저 먹으면서 적당히 수다를떨고 차를 마시고, 집 안을 둘러보며 내일 치료실로 작업할 곳과 필요한 가구들을 살폈다. 다들 치료원에 대해서 아는게 없어서 린이와 서령이가 성도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둘러보고 오기로 했다. 그럴싸하게 갖춰줘야 마의도 일 할 맛이 나지.

“그럼, 오라버니. 즐거운 밤 보내.”

말은 어쩔 수 없다면서도 왠지 이를 악물고 있는 것 같은 반응이다.

“삼랑, 내일 뵈어요.”

“삼아 잘자.”

“그럼 주공, 편안히….”

이거 참. 오늘은 이러저러해서 린이랑 같이 자기로 했다 설명을 하기도 구질구질하고. 이렇게 밤에 잘 때 마다 따로따로 떨어져서 자면 점점 더 경쟁심만 심해질 것 같은데.

“가요 주인님.”

“그래.”

린이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내 침소로 지정된 별채로 들어왔다. 오늘 사온 침구를 벌써 방에 깔아 놓아서 등잔에 불만 붙였다. 방 안이 온화한 느낌의 불빛으로 가득 찼다.

“린아, 저기 미안한데.”

“무슨말씀 하실지 알아요 주인님.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아무래도 오늘은 아직 정리가 다 끝나지도 않았고. 애들이 보여준 반응 때문에 머리도 복잡해서 그냥 린이를 옆구리에 끼고만 자야겠다. 왠지 오늘 신나게 해버리면 큰 일 날것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우리, 시간 많으니까요.”

“응. 고맙다.”

“별말씀을요.”

린이는 처음 만났을 때 보다 확실히 인격적으로 좀 더 성숙해진 느낌이 든다. 이게 깨달음에 의한 경지상승 때문인지, 아니면 젊음을 되찾아서 생긴 여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천사다. 나와 린이는 옷을 벗고 침상에 올랐다. 새로 사 온 보송보송한 이불의 감촉과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린이의 여체가 근래 들어 처음 느껴본 최고의 포근함을 선사해 준다.

“으으음…. 좋다.”

“저두요.”

꼭 물고빨아야 좋은건 아니지. 어찌보면 이런 여체를 옆에 끼고서 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하는 것도 엄청난 사치가 아닌가. 나는 린이를 꼭 끌어 안고 가슴을 조물거리며 잠을 청했다. 불침번은 뭐, 아무나 알아서 서겠지.

아침이 밝았다. 중간에 한 번 깼지만 굳이 깨 있을 필요는 없어서 린이를 한 번 더 꽉 끌어안고 다시 잤던 기억이 있다. 어제 낮잠을 잤는데도 자려고 마음먹으니까 아주 푹 잤다. 고수가 아무리 잘 필요가 없다고 해도 이런 꿀 잠이라면 얼마든지 자야지. 등잔불의 흔들림을 뚫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린이의 나신이 매끄럽게 빛난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가슴을 한 번 조물락거렸다.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곤하게 자는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순간적으로 아침을 맞이하여 기운차게 일어선 똘똘이를 사용할 뻔 했지만, 아침에 그러기는 좀 민망해서 대충 옷을 걸쳐 입고 나왔다.

“좋은아침이에요 삼랑.”

“응 화란아. 좋은…. 아침?”

아침이라기엔 해가 완전히 중천에 떴다. 정오가 지났겠는데 이거.

“시간이 이렇게 흘렀으면 깨우지 그랬어.”

“곤하게 주무셔서 그냥 기다렸어요.”

린이도 나도 그 동안에 긴장하고 있던게 있었던건가? 머리는 상쾌하고 몸은 날아갈듯 가볍지만 의아할 정도로 오래 잤네. 그나저나 볼일 볼 거 보지 화란이는 왜 날 기다린거지?

“혹시 벌써 기별이 온거야?”

“네. 어제 밤에 바로 각 문파에 사람을 보냈나봐요.”

역시 겁을 줘야 말을 듣는다니까.

“그래서, 회동은 언제 하자는데?”

“오늘 밤이요. 이쪽으로 데리고 온다고 했어요.”

“흠. 빠릿빠릿하네. 생각해보니까 어제 그냥 약을 들려서 보낼걸 그랬어.”

“그것도 괜찮았을 것 같네요.”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약은 투여할 경우 중독에 의한 치매인 경우에 한해 반나절 안에 제정신을 찾는다. 물론 독기를 빼내는 적절한 처리가 없다면 길어야 사흘안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약의 효과와 치료법의 증명에는 무리가 없을거였다. 괜히 한 번씩 더 왔다갔다 하게 시간을 쓸 필요가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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