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무림치매대응반 66
* * *
“…식사 하셔야죠.”
괜히 화란이가 내 눈치를 본다. 그럴필요 없는데. 나는 화란이를 끌어당겨서 엉덩이를 토닥거려줬다. 별 일 아니다. 우리가 힘이 없었으면 모를까. 사천 주변의 문파가 떼로 연합해서 덤벼도 쫄릴거 하나 없는 판에.
“그놈 족쳐 놓고 먹을게. 먼저 들어가서 먹어.”
“아냐 오라버니. 우리도 같이 있지 뭐.”
다들 집에 들어서면서 벗어 놓았던 면포를 다시 덮어 썼다. 아까 튀어나가던 속도로 보자면 얼마 안 걸릴 것 같은데…. 왔다.
털퍼럭
“잡아왔습니다 주인님.”
“고생했어.”
“아닙니다.”
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날이 저물기 직전의 석양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서령이가 옆으로 와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바위에 앉아있는 나를 기준으로 내 여자들이 이대 삼으로 늘어섰다. 짝이 안 맞아서 화란이를 데리고 와 내 무릎에 앉혔다. 보란듯이 면사도 까버리고.
“무…무슨일입니까 누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나? 화란이를 찾을게 아니라 날 찾아야지.”
“예, 예. 장 대협.”
린이가 분명히 나한테 주인님이라고 하는걸 들었을텐데.
“우리가 무영신투와 사천에서 만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나?”
“그, 그것이….”
“제대로 대답하는게 좋을거야 윤성아우. 우리 낭군님께서는 아주….”
아주 뭐. 협박을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화란아.
“제대로 설명하겠습니다 대인! 노여움을 거두십시요!”
호칭이 저번에는 소협이었고, 이번에는 대협이었는데, 또 대인으로 올라갔다.
“간신히 무영문에 접촉하기는 했습니다만, 무영문에서 내부 사정으로 의뢰를 거부했습니다!”
“왜?”
“그, 그게…. 무영신투가 노망이 나서….”
아, 그집도?
“후인은 있을 것 아닌가.”
“후인이 제대로 진전을 이어받지 못하여 봉문한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런 내부 사정을 자네한테 있는 그대로 전했다고?”
“정말입니다! 저희와 오래 연이 있기도 했고, 봉문이 아니라 폐문도 고려하는 지경이라 앞으로는 접촉을 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흠. 뭐 그래 그런 진의야 어차피 무영문이 와 보면 알겠지.”
그게 맞는지 아닌지는 어차피 내가 고려할 일은 아니다. 걔들한테 우리 정보를 흘린것도 괜찮다. 우리를 기만했는지 아닌지, 우리가 아니라 화란이를 기만했는지 아닌지만 알면 된다.
“송구하오나…. 그렇다면 저희가 중간에서 서로 원하는 것을 중개할 수 있지 않을까 주제넘은 생각을 했습니다.”
“노망에 걸린 무영신투를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주고, 그들은 우리의 의뢰를 받아들이고?”
“그, 그러하옵니다! 그 과정에서 저희가 조금은 이득을 취할 수 있겠으나….”
“내가 궁금한건 그게 아니야. 왜 여기 사천에 너희놈들이 자리를 펴고 앉았냐는 거지.”
그걸 중개해서 이득을 얻어가겠다 정도는 뭐, 우리 의뢰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랬다고 치자. 우리가 바란건 그냥 연락을 넣어달라였지 꼭 되어야 한다 그런건 아니었지만, 그게 설령 지 이득을 위해서 그런거라고 해도 남녕을 떠난 이상 우리를 찾을 방도도 없었을거고…. 근데 이해가 안되는건 그걸 이용해서 여기까지 세력권을 확장하려고 시도한 거다.
“오해이시옵니다! 무영문에서 의뢰를 수행하기 위한 협조를 구했습니다! 노망에 대한 치료법이 있을 가능성을 알게된 무영문이 간절하게 부탁을 해 왔습니다!”
“호오…. 다 무영문 탓이다?”
“의뢰를 수행하기 위한 결과물이 현재 운송중입니다. 이레 가량이면 도착할 겁니다! 믿어주시옵소서.”
“그리고 여기에 만복객잔을 차리는 과정에서 주변 문파들한테도 좀 흘렸을 것이고?”
“그, 그것이…. 허나, 아직 장대협이 도착하셨다는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땅바닥에 고개를 납죽 파묻고는 머리를 찧어댄다. 흐으음…. 아, 이새끼 죽일까.
“그러면 그 이야기를 왜….”
“...삼랑?”
“낮에 화란이에게는 하지 않았지?”
나는 적당히 위압감이 느껴질만큼 기운을 끌어올렸다. 적당히라고는 해도 배윤성의 경지에서 보자면 짐작조차 못할 까마득한 느낌일테다.
“그, 그것은 아직 무영문에서 의뢰 결과가 도, 도착하기 전이라!”
“진행이라도 이야기 할 수 있었을텐데…. 화란아, 저거 꼭 살려 둘 필요가 있냐?”
“사, 삼랑.”
“살려주십시요 대인! 살려만 주신다면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호오? 살려만 주신다면의 조건이 시키는대로라….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자신하나?”
압박의 강도를 더 올렸다. 배윤성의 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모습이 보인다. 이 새끼가 오늘 산 집 정원에….
“살,살,사,살려….”
“…삼랑. 그래도 저놈이 뒷통수를 치지는 않았잖아요. 죽이면 괜히 귀찮아지니까 살려두시는게 어떨까요?”
“귀찮아도 제놈들이 귀찮겠지 내가 알게 뭐야.”
“그래두요.”
“흐음…. 이대로 뒀으면 우리 대리인인것 마냥 날뛰었을것이 빤 한데….”
“추호도 그런 생각은 없, 없습니다. 대인!”
“…좋아. 화란이를 봐서 한 번은 넘어가지.”
그렇다고 그냥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모양빠진다.
“네놈이 알량한 잔머리로 장난을 놀려던것을 인정하렸다?”
“예! 대인!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여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화란아.”
“네, 삼랑.”
“저놈이 너를 기만했으니, 처분을 너에게 맡기마.”
“금제를 걸도록 하겠나이다.”
“누, 누님!”
어디서 누님이야 이새끼가. 확 기운을 끌어올려 압박감을 가중시키고 기운으로 마빡을 때렸다.
“잘도 누님 소리가 나온다. 금제가 싫으면 뭐, 그냥 여기서 죽을래?”
“아닙니다! 금제를 받겠습니다!”
“자꾸 두번 말하게 하지마라. 알량한 목숨이고 세력이고 그냥 다 파묻어버리는 수가 있다.”
“가,각골난망하겠나이다!”
괜한꼬투리는 아니다. 우리가 실력이 업고 어수룩했다면 뼛골까지 쪽쪽 빨렸을 수 있다. 노망 치료 셔틀로. 당연히 린이가 있으니까 그렇게까지는 안 번졌겠지만, 어쨌거나 그 사이에서 우리한테 뭐 해준것도 없는 놈 배를 불려줄뻔 한건 빡치는 일이지.
“근 시일내로 인근 대 문파의 대표자들과 회동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라.”
“예…예?”
“네놈이 노망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약을 팔았을것 아니냐. 시험삼아 약을 먹여볼까 하니 비싸게 받을 준비나 하라고.”
“주,준비하겠습니다!”
“화란이 너는, 네 얼굴봐서 살려놓는 거니까 확실하게 금제를 해 두도록 해.”
“네, 삼랑.”
“우리는 들어가서 저녁이나 먹자. 화란이 너는 정리하고 들어오고.”
[확실하게 처리해.]
[네, 삼랑.]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해 놓으면 아마 화란이가 큰 문제 없이 처리 할거다. 내가 하다가 잘못해서 원한이라도 사면 어떡해. 화란이도 진룡회를 이끌었던 사람이니 하오문의 룰 안에서 적절하게 처신하겠지. 어쨌거나 저놈이 화란이를 기만한건 사실이니까. 디질라고.
내가 칼로 사람을 죽여본적도 없고, 앞으로 죽이고 싶지도 않다. 물론 어버버 하다가 내 사람을 잃기라도 하면 미쳐서 중원을 멸망시켜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러기전에 필요하면 제깍제깍 죽여야지. 불살의 노선을 걷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마차바퀴보다 큰건 다 죽이는 패도의 길을 걸을 생각은 없다는 거고. 그래서 사고칠까봐 화란이한테 맡긴거다.
화란이와 배윤성을 내원에 남겨두고 본채로 들어왔다.
“저, 오라버니.”
“응?”
“화났어?”
“화가 나지 그럼. 화란이가 옛 인연이라고 믿고 맡겼는데.”
화란이 입장에서는 우리 일행에 검후가 있다는걸 배윤성이 눈치챈 시점에서 아는사이고 뭐고 모가지를 날려버린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화란이나 나나 충분히 흔적을 남기지 않고 빠져나올 수도 있었고.
“대문파 대표자들은 만나서 뭐 하게?”
“아, 원래는 마의가 오면 마의의 보증을 받아서 치료를 시작할까 했는데. 배윤성이 저놈이 이미 나발을 다 불고 다녔다잖아.”
그럼 꼭 마의의 보증을 받고 할 필요가 없다. 소문 잘 나라고 무영문 끌어들이고 마의 끌어들이려고 한건데 지들이 알아서 치매 치료제가 확실하다고 믿고 꼬여들어 준다면야. 공증이니 뭐니 할 것 없이 그냥 냅다 질러도 문제 없을거다. 누가 음해를 하면 박살내 주면 되고.
“아마 배윤성이가 써먹으려고 소문을 냈으니까 어떤놈들인지 몰라도 이 일을 벌린놈들도 곧 걸려들거야. 어떻게 소문을 내야 자연스러울까 고민을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어.”
운이 좋군.
“너무 마음쓰지마.”
“엥? 마음 안쓰는데?”
“…뭐? 왜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낸거야?”
“혹시 화란이가 민망해 할까봐.”
기감에 화란이와 배윤성이가 장원에서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제자리에 갖다 놓고 오려나보다. 배윤성이가 각 문파 대표자들과 최대한 빨리 자리를 주선해 주면 얼른 치료법을 까고 암중세력의 목줄을 틀어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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