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무림치매대응반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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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의 성도. 삼월 보름에 무영신투를 만나기로 했지만, 앞뒤로 간격을 넉넉하게 두고 움직여야 만나기가 수월하다. 아마 화란이가 가지고 있던 하오문의 라인을 탄게 아니라 만복회주 배윤성의 라인을 직접 태웠으니까 거기서 하오문을 통해 수소문 한들 우리가 직접 찾는거나 마찬가지일거다. 무영신투 같은 사람이 티나게 돌아다니지도 않을거고.
우리는 성도에 도착해서 성 밖에 널찍한 장원을 하나 샀다. 근처에 묘지가 있고 그래서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곳이고 비어 있던 시간이 제법 되는지라 상태도 썩 좋진 않아서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당연히 돈은 연이가 냈고.
“청소 하려면 한참 걸리겠네.”
“사람 부를까?”
“손이 몇갠데. 금방 끝나. 오라버니는 귀찮으면 그냥 쉬고 있어.”
여자를 하나 하나 늘리다 보니 어느새 일행이 제법 커져있었다. 여섯이라고는 해도 나 하나에 여자 다섯이라 평범한 일행은 아니었지만. 연이가 쉬고 있으라고 했어도 도와 줄 일이 있을까 싶어 팔을 걷고 나섰는데…. 다섯 여자들은 먼지도 내공, 빗자루질도 내공, 물청소도 내공, 환기까지 내공을 써서 순식간에 끝내버렸다.
“각자 방은 각자가 청소하도록 하고, 오라버니는 여기 가운데 제일 큰 별채를 쓰도록 해.”
“네가 쓰지 왜?”
“여기 모여서 다 같이 밥도 먹고 할거니까. 안채는 치료실 처럼 만들거야.”
아무래도 다 모이고 , 밤일도 즐기고 하려면 내가 제일 큰 방을 쓰는게 좋을것 같다. 그래서 그냥 그러마 하고 그 방에 짐을 풀었다.
“무영신투는 여기로 오라고 할까요 언니?”
“어차피 여기는 노출 시킬거니까 그렇게 하자. 괜찮지 오라버니?”
“음…. 그렇게 하자.”
연이는 이제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자기 의견대로 결정을 내리더라도 항상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형태를 취했다. 기특하기도 하지. 무영신투를 성도 안에서 만날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여기는 환자들을 모으고 치료사를 모아서 가르치기도 할 임시거점이었으므로 무영신투가 여기를 직접 방문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성도는 구파일방의 핵심세력들와 가깝게 위치해 있어서 당분간 여기 기거하면서 치료법을 전파할거야. 그놈들의 꼬리를 잡을 때 까지.”
“꼬리하니까 말인데 연아.”
“응?”
“무림맹에 있을 때, 그 왜 너 담당이기도 했었던 정소소 말야.”
“아…. 응 기억하고 있어.”
“아무래도 좀 꺼림칙 해.”
그때 연이의 말에 의하면, 소소는 나의 죽음에 대해 뭔가 특별히 이상한것을 느끼지 않은 것 처럼 행동했다. 침착하게 나의 사망확인을 했다. 보통 같이 일하던 동료가 어느날 갑자기 독살로 의심되는 형태로 죽었다면 뭔가 긴장한다거나, 좀 다른 반응이 나올법도 한데, 연이에게 전혀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지 못했을 정도로 침착하게 시체 확인을 했던거니까. 역시 내가 먹을 닭꼬치에까지 하독을 한 것은 정소소인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라버니가 뭘 의심하는지 알겠네. 그러게 나도 왜 그생각을 못 했지? 걘 오라버니의 맥을 짚어볼 때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어.”
“그래서, 우리가 치료법을 발표하는거와는 별개로 정소소를 좀 조사 해 봤으면 하는데.”
“합리적인 의심이야.”
킹리적 갓심이지.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가 여기서 정소소를 조사할 수단이 없어. 가서 잡아오거나, 사람을 시키거나 해야하는데….”
건재한 마교를 휘하로 들였으면 방첩활동이나 요인암살을 수행하는 조직도 있었을텐데. 지금은 손을 쓸 수가 없다. 으음….
“삼랑? 무영신투가 오면 의뢰해 보도록 해요.”
“그래? 그런 의뢰도 받아?”
“무영문은 돈 되는건 다 하니까요.”
어차피 무영신투에게 소문도 내 달라고 할 참이었으니 무영신투가 오면 부탁을 해 봐야겠다.
“우리는 저자에 나가서 물건을 좀 사올게. 오라버니는 집 좀 지키고 있어.”
“왜? 같이 안가고.”
“흐으음…. 감당할 수 있겠어?”
여자들 다섯이 쇼핑을 간다. 아마 식기류부터 시작해서 당분간 사용할 살림살이를 몽땅 사와야 할텐데. 그걸 하나하나 고르는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음. 별로다. 그냥 조용히 집에 박혀서 마교의 비고에 있던 비급들이나 흝어 보는게 나을 것 같다.
“…다녀와.”
“아, 자윤. 너는 남아서 오라버니하고 같이 있어.”
“네에….”
“응? 자윤이는 왜?”
[쟤 지금 마교 벗어나고 부터는 계속 마교쪽 방향만 쳐다보면서 우울해 하는데, 오라버니가 좀 잘 달래줘.]
“그냥. 피곤할 것 같아서. 갔다올게!”
연이는 화란이와 린이, 서령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졸지에 둘이 남겨지게 된 갈자윤과 나는 멀뚱히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내원의 바위 위에 걸터 앉았다.
“그….”
“네! 에….”
고함을 꽥 지르며 대답하려다가 슬그머니 말꼬리를 흐리고 내 눈치를 본다.
“천마신교쪽을 계속 보면서 생각이 많은 것 같던데.”
“아…. 정마대전시기 이후에는 마교의 영역을 벗어나 본적이 없어서요.”
“그렇구나.”
그렇다는데 내가 무슨 이야기를 더 해. 지금도 무슨 말이든 하라는 듯이 나를 보며 집중하고 있다는 기색을 팍팍 뿌리고 있다.
“천마신교가 없어진건 미안하게 됐어.”
“아닙니다. 지존의 결정이셨는데요. 저희는 그저 따를 뿐입니다. 거기다, 아예 없애버리신 것도 아니잖아요?”
천마신교의 현판은 내가 직접 내렸다. 그렇다고 불태우거나 하지는 않았고. 천마신교의 뒷산 천마비고가 있던 위치에 전대 천마, 신녀들의 유골과 현판 기타등등 천마신교의 역사가 서린 물건들을 다 때려박고 조사동처럼 만들었다. 언제든 돌아가서 갈자윤이 천마신교를 추억할 수 있도록.
건물도 쓸데없는 사치품들만 뜯어냈을 뿐, 마의와 마의의 제자들이 대전을 치료소로 운영하고 마을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불러 모아서 교내에 거주시켰다. 가급적이면 농사와 함께 의술공부를 할 수 있도록 마의에게 지시했다. 일종의 의료도시처럼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혁중모와 마교에 남아있던 몇몇 각주들에게 사치품을 죄다 넘겨주고 연이가 전표도 몇 장 남겨줬다. 그거면 몇 년은 큰 부족함 없이 먹고 살 수 있을거라고 판단했다. 그 이후는 환자를 받아서 치료하면서 살아가라고 했다. 그게 싫으면 알아서들 개척하겠지.
“천마신교의 역사아래 흘러내린 많은 피에 대해 속죄하라는 뜻임을 저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딱히 그런건 아니고, 육로 측면에서 신강이면 백년 이내에 동구권과 접촉이 생기게 될텐데, 의술로 다가갈 수 있으면 명맥을 이어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조치한거지 뭐. 걔들이 직접 죽인것도 거의 없을텐데 속죄는 무슨.
마의는 마옥에서 건져올린 치매노인들이 최종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하고 사천으로 넘어오기로 했다. 기다렸다가 같이 출발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먼저와서 자리잡고 준비를 해 놓고 마의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최종확인을 하고 출발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무영신투가 왔다가고 나서 소문을 내고 사람을 모으기까지는 넉넉한 시간이 있다.
“지존 그거 하지 말라니까.”
“그러면, 저도 주인님이라고 여쭈어도 될까요?”
“끄응…. 아냐. 그건 린이한테도 못하게 할 생각이니까 하지말고. 하여간 지존만 하지마라.”
“그러면 주공으로 모시겠습니다.”
“주인님이나 주공이나….”
핀잔을 줘도 그냥 잔잔하게 웃을 뿐이다. 음. 얘 괜찮나 모르겠네. 불과 며칠사이에 인생이 확 뒤집어져서.
“몸은 괜찮아? 이상있는데는 없고?”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치료하고 나서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마교를 정리하는 것 때문에 계속 바쁘게 움직여서 걱정이네.”
갈자윤의 경우에는 치료 이후 깨달음을 얻고 내 기운을 섞는 과정을 건너뛰긴 했지만, 그래도 어거지로 반로환동을 하고 환골탈태를 했기때문에 어느 정도는 휴식을 취하면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마교를 다 정리하고 성도에 와서 오늘부터 정리를 하며 쉬면 되겠지만….
“연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짐작 하시듯, 정마대전의 시기에는 서로의 목숨을 노리던 앙숙이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서로 살아서 만난걸 보니 둘 다 실패했나보네.”
“…그렇죠. 이렇게 인연이 닿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둘이 현역으로 날뛰고 있을때는 살벌했겠지. 저번에 보니까 둘이 서로 쌍욕박는게 가감이 없더만.
“이제는 정실부인으로 모실터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요.”
“누가 정실이냐 누가.”
“본인 입으로 그러던데요?”
“그런거 없어. 다 똑같이 중요하니까 걱정하지마. 나중에 재산도 똑같이 나눠줄거야.”
비록 지금은 내가 연이의 재산에 빌붙어 살지만, 기왕 사천에 임시 거점도 잡았고 먹여살려야할 식솔들도 있으니 장르를 무림영지물로 바꾸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언제까지 마누라한테 손 벌리고 살 수는 없잖아?
“너는 뭐 의심 가는거 없어?”
“어떤 의심을 말씀하시는지….”
“독에 당한거 말이야.”
“말씀 드렸듯, 저는 정마 대전 이후에 교를 벗어난 일이 없습니다. 제가 독에 당한것이라면 그 이전에 당했거나, 교내에 침입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흐으음….”
이 부분에서 연결고리가 조금 애매하다. 연이와 화란이, 린이의 경우는 황궁에서 베푼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휘발성이 강한 독을 제조현장과 가까운 장소에서 막 제조하여 하독 했다는 가설을 세웠는데. 갈자윤이 정마대전이후 교 밖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면 황궁으로 불러 하독했다는 전제가 깨지는 거지.
연이들이 황궁에 방문했다는게 약 이십삼년전 정도라고 치면, 잠복기가 20년전후라는건데…. 아 물론 연이와 린이의 발병시기를 따지면 거의 이년의 차이가 있으므로 이게 오차인건지 린이는 그때 안 당하고 이후에 당한건지 등등 상당한 의문이 또 생겨나긴 한다.
잠복기간 이십년을 어떻게 정확하게 조절하냐. 라고 하기에는 또 뇌 속에서 뇌조직에 들러붙고 독약 성분끼리 일정 단위용량 이상은 서로 밀어내는 정교한 기작을 볼 때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황궁쪽이 좀 수상하기는 한데.”
“황궁말씀이십니까?”
“중원에 사고칠만한 놈들을 걸러내고 나면, 황궁밖에 남은게 없어서.”
“그러고보니, 정마대전 직후에 황궁에서 사람이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으응? 그게 지금부터 몇년쯤 전이야?”
“으으으음…. 사십년쯤 될까요?”
사십년이면…. 잠복기 이십년 가설은 아예 나가린데 그러면. 그냥 샘플이 적어서 경향성이 파악안되는건지 아니면 전혀 생각못한 다른 공통점이 있는건지는 아직 판단이 불가능하다.
“당시 노평공주 주지수가 직접 신강으로 와서 은밀하게 만났습니다.”
“누구라고?”
“지금은 노평대장공주겠군요. 현 황상의 대고모님이니. 천마신교를 해산하고 중원으로 돌아오라는 밀지를 가지고 왔었습니다.”
마교의 근원이 되는 세력은 이미 명대 초에 제대로 갈라섰다. 불구대천의 원수로. 그런데 그걸 거기까지, 그것도 당시 황제의 딸이던 공주가 직접 신녀와 접촉을 한다? 그것도 비공식으로. 으으으음…. 냄새는 풀풀나는데. 딱히 잡히는 물증이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네.
거기다 진짜로 황실이 무림을 포함한 지방 토호 세력을 조져서 황권을 공고히 하려는 수작이었다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황실을 쓸어버리면 백성들에게 가해질 혼란이 너무 크니까. 어차피 대충 삼사십년 뒤면 청나라에 털려서 남명으로 쪼그라질 운명이긴 하지만…. 흠.
“따로 그때 뭘 같이 먹었다거나 그런건?”
“잠시 잠깐 밀지만 전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연히 저희는 황실과 같이 할 생각이 없으니 거절했고 상투적인 협박을 남기긴 했습니다만….”
“어떤 협박?”
“교로 올라오는 길목을 차단하고 상당기간 농성을 하다 돌아갔지요.”
지금 느낌에 딱히 이상한 것은 없다. 농성기간동안 혹시 거기서 독을 조제했다면 그럴 가능성은 있어보이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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