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무림치매대응반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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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사건에 관이 개입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것과 별개로,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연이가 조제하려는 약은 말하자면 창의적인 개념이 필요한 것이지 난이도 측면에서 그리 대단하거나 구하기가 극히 힘든 특수 재료를 이용한 것은 아니라서, 마의가 보관하고 있던 것들로 이틀만에 충분히 제작이 가능했다.
연이는 마의와 합의해서 시험에 들어갔다. 동물 실험은 어차피 이게 인지 능력을 회복했는지 말았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으므로 머리 안쪽에 들어있는 독기를 효과적으로 약액을 써서 밀어낼 수 있는지 정도만 확인했고, 우리가 생각해낸 치료 보조용 약액은 계획한대로 동작했다.
“혹시 마옥에 범죄를 저지른 놈들이 있나?”
“따로 범죄를 저지른 놈은 없습니다만….”
“그럼 교도들이 들어 있는건가?”
“그때도 말씀 드렸듯, 자진해서 들어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이가 몇몇 있습니다.”
으으음…. 아무나 쓸 것을 생각해서 들이 붓더라도 상태가 더 악화되지는 않게 만들었다고 했으니, 죄책감 가지지 않고 데려다가 써도 될것 같다. 별 일 없을거다.
마옥에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었지만, 우리가 안전하게 샘플을 수집하고 치료한 후 다른 목적까지 도모하기 위해서는 고위급 여고수가 필요했기에 갈자윤을 확인한 뒤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었지만, 남녀 할 것 없이 범용으로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을 시험하려는 것이니 마옥에 있는 인원을 데려다가 쓰면 충분할 것이다.
“아직 살아 있는이가 있다면 조심히 데리고 나와서 치료를 시도해 보도록 하자.”
“응 오라버니.”
“명을 받들겠습니다.”
연이와 마의는 일단 그렇게 진행하면 될 것 같고…. 혁중모가 정리하다가 말았다던 천마비고로 향했다. 천마신교의 영역 안에 있는, 마옥보다 조금 더 산속으로 들어간 동굴속에 철제 문으로 굳게 보호되고 있던 비고가 지금은 그냥 훤히 열려있었다.
“일은 잘 되고 있냐?”
“오셨어요 주인님?”
마침 입구 근처에 있는 린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내 옆으로 뛰어와 반겨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엉덩이도 한 번 주물러줬다.
“뭐 좀 건질게 있어?”
“의외로 정파에서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무공들의 사본이 제법 있네요.”
“그거 말고는?”
“영약 종류같은건 보관이 잘못되어서 거의 못 쓰게 되었고….”
듣자하니, 갈자윤이 치매로 정신줄을 놓은 이후 교내 일부 세력에 의한 탈주가 몇 번 있었다고 한다. 비고 안에 기관진식으로 엄중히 보호되어 있는 영역은 거의 못 건드렸지만 자잘한 무구나 귀금속류 같은건 거의 다 들고 튀었다고. 삼엄하게 보호되고 있던 무공비급류는 마교의 비전들과 함께 중원 각지에서 모아온…. 사실 모아온건지 강탈해 온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비급들이 있어 린이와 서령이가 같이 흝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은거 익힐거 있으면 챙기고…. 천마신교의 비전들은 따로 보관 해 주고.”
“응. 삼아.”
응 삼아 하니까 응삼이형 생각나잖아. 전원일기 브금과 함께. 아 그립다 나의 고향. 나의 시대.
“우리한테도 별 필요 없고 그런건 한데 싹 뭉쳐서 중원갈때 들고 가자. 각 파에다 돌려주게.”
“혹시 분쟁이라도 생기지 않을까요?”
“그건 지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없어졌던걸 호의로 갖다 주는건데. 분쟁이 생기면 무림맹더러 알아서 중재하라고 떠넘길 생각이다. 내가 알게 뭐야.
“적당히 하다 늦기전에 문 닫고 내려와. 아직 시간 더 있으니까. 나중에 해도 되는거고.”
“네에!”
“응!”
두 사람을 양쪽에 끼고 꼭 안아준 다음 다시 천마신교의 장내로 돌아왔다. 보자…. 화란이가, 저기 있구나.
“쉬엄쉬엄 해.”
“아, 삼랑.”
역시 나를 보고는 내 품안으로 안겨든다. 이마에다가 가볍게 입을 맞춰주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값나갈 만 한건 별로 없네요.”
“어쩔 수 없지. 있는대로 다 뜯어 내 그냥.”
화란이가 담당하고 있는건 마교의 각 건물을 돌면서 가치가 있는 미술품이나 가구류를 감정하고 분류하는 일이었다. 아직 여기서 철수하지 않은 일부 마교 간부들이 화란이를 따라다니며 일을 돕고 있었다. 비고는 혹시 몰라서 내 사람들만 시켰는데 이건 누가 빼돌린다고 하더라도 뭐…. 적당히 눈 감아 줄 수 있으니까.
여기서 이제 사람이 산다고 해도 품위 따져가며 쓸 공간은 아니기 때문에 건물 내부가 살풍경해지더라도 돈되는건 다 들어내라고 했다.
우리가 돈이 부족한건 아닌데, 진정이 된 혁중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천마수호대 애들한테 퇴직금도 제대로 못 챙겨 줬다고 한다. 천마신교의 교도들과 그 식솔들로 이루어진 마을도 농사를 짓기 때문에 서로 십시일반 도우다 보면 당장에 굶어죽을 걱정은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군기와 충성을 보여준 천마신교의 은퇴자들에게 다만 은 몇냥씩이라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하여간 괜찮아 보이는 예술품 비슷한건 다 들어내서 팔아버리자고 했다.
“고생하고, 적당히 하다가 저녁 먹자.”
“네에.”
화란이를 전각안에 두고 대 연무장쪽으로 걸어 나왔다. 저기 산 아래 입구쪽에서 올라오는 사람은…. 중모다. 어디 갔다…. 아, 어제 이야기했었다. 여기서 살 사람들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지존 어찌 나와계십니까!”
“낮에는 따뜻한데 뭐. 호들갑 떨지마. 고생들 했다. 누구 온다는 사람들은 있어?”
중모는 식솔들이 사는 마을에 내려가서 현황을 파악하고, 혹시라도 천마신교의 경내에 들어와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 혹시나 주거환경이 좋지 못한 교도들이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다들 서로 들어오겠다고 난리라 제비를 뽑기로 했습니다.”
“그거 괜찮네. 혹시 모르니 못 들어온 사람도 이 주변에서 경작을 하거나 집을 짓는건 말리지 말도록 해.”
“그리 하겠습니다.”
마교 해산…. 이라고는 해도 이렇게 역사가 깊고 멋드러진 건물들을 죄다 자빠뜨릴수도 없으니 우리가 여길 떠나고 나면 들어와서 살 수 있도록 조치했다. 건물이라는건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망가지니까.
마지막 코스로 내가 들여다 볼 곳은 천마신교의 울타리 서쪽에 있는 조사동이었다. 내가 직접 하기는 뭐해서 자윤이에게 전대 천마나, 전대 신녀들의 무덤을 사람들과 함께 이장하라고 지시했다. 부장품역시 쓸 것은 쓰고 팔 것은 팔려고. 여기에 이제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게 된다면 언제 어느순간에는 소유권이 불분명해지는 시기가 온다. 그러면 조사동은 초토화가 되고 도굴꾼들이 제 멋대로 파 헤치게 되겠지.
“오셨습니까 지존.”
“정인에게 지존이 뭐냐 지존이.”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건 많겠지만 그래도 잘 부탁해.”
추스를것만 따로 챙겨서 비고에 넣기로 했다. 보관영역만 잘 지키면 더 상할 일은 없을거다. 어차피 시신이나 화장하고 난 골분이니까. 나중에 생각나면 자윤이가 찾아와서 향이라도 피울 수 있게는 해 놓아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여기를 떠나고 나면 들어와서 살 마교의 식솔들이 계속해서 마교도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갈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최대한 기존 천마신교와 연관되어 있던 흔적들을 지우고, 당분간은 당장 먹고 살 돈이 없더라도 괜찮을 수 있게 정리한걸 전부 상단에 넘기고 돈을 받아서 지급하기로 했다.. 이후의 살길은 뭐, 각자도생하겠지.
“오라버니! 차도가 있어!”
“어 그래?”
다시 경내로 나와. 어정거리고 돌아다니는데 산 속에서 연이가 날아와 나에게 답싹 안겼다. 자기가 생각한게 맞았다고 아주 기고만장한 표정이다. 독기를 약액으로 밀어낸다는 발상은 내가 먼저 아이디어로 제공한거 아니냐?
“그럼 오늘 내일 중에 상태 확인이 되겠지?
“응 아마 그럴거라고 생각해.”
지금 차도가 있는 것 같아도 아직은 모르는 이야기다. 약기운이 퍼지는 것도 상당히 느리기 때문이다. 일단은 범용 치료법으로 치료를 시도했고, 나머지는 차차 상태를 지켜보면서 치료법을 정리하면 된다.
“마옥에 있던 노인의 치료가 끝나는 즉시 중원으로 갈 수 있게 준비 해.”
“응. 미리미리 정리 해 놓을게.”
치료법도 준비하고, 약의 조제법도 정리해서 공개해야 한다. 처음에는 무영신투를 만나겠지만 우리는 무영신투를 통해서 소문을 뿌려 치료사를 영입할 예정이었다. 치료법을 공개한 후, 치료법을 사용하는 방법도 공유하고. 치매에 걸린 환자들을 사천으로 직접 불려 치료 할 예정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분명히 암중단체놈들이 튀어나올거다. 지금은 일단 그걸 기대하는 수 밖에 없을듯.
“중원으로 돌아가자.”
“이제 복수의 피바람이 부는거야?”
“피바람은 무슨.”
연이의 반문에 피식하고 김빠진 소리를 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중원으로 돌아가 그놈들의 계획에 재를 뿌리고 하나하나 엿을 먹일 예정이다. 연이도 같은 심정인지 표정은 부드럽게 웃는 표정인데 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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