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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59화 (59/122)

〈 59화 〉 무림치매대응반 59

* * *

나는 고수다. 내공을 돌리면 체력도 샘솟고, 정력도 샘솟는 고수다. 그런데 지금 이 느낌은 뭘까?

“오라버니, 좀 자.”

“아냐. 고작 하루 저녁 했는데. 하. 하.”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지금 내 경지면 칠주야를 잠안자고 무공을 펼치더라도 끄떡없는게 정상이다. 그런데 눈꺼풀이 왜 자꾸 떨어지냐.

“으이그, 그러게 작작좀 하지.”

“야,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수레의 한쪽 구석에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린이와 서령이가 꺄르륵 소리가 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똑같이 밤새도록 못 잤는데 쟤는 왜 얼굴에 빛이 나고 나는 다 죽어가는지. 쟤보다 내가 경지도 훨씬 더 높은데. 기를 쭉 빨린 느낌이다.

“흥, 나한테는 그렇게 안 해주면서.”

“야 내가 너한테 안 해준게 뭐가 있냐?”

“아 몰라, 늙은것도 서러운데. 결국 뭐 젊고 어린애들이 좋은거지. 난 성격도 드세고….”

“에이 왜 또 그러십니까 누님….”

짐짓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연이를 품안에 끌어서 안아 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갈자윤의 표정이 발그레해 진다. 어험. 민망하게스리.

갈자윤은 아름다운 청색 눈동자를 가진, 전형적인 위구르족 미인이었다. 길쭉길쭉하고. 늘씬하고. 가슴도 빵빵하다. 젊어졌으니 뭐 그 팽팽함이 이루 말할 수 없겠지. 혈통상 황백혼혈같은데, 미래기준으로 보면 우즈벡쪽에 가까운 느낌이다. 과연 장모님의 나라. 그 조상쯤 되는 혈통이니까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날 보고 얼굴까지 붉히니까 얼마나 예쁜지.

“아, 왜에! 꼬집지마!”

“또 눈 돌아가지 어? 날 끌어안고서는, 지금 어? 눈이 돌아가?”

“아니래니까!”

억울한 마음을 담아 연이를 꽈악 안아 주었다. 아마 연이는 십중팔구 어제밤에 내가 서령이랑 뒹굴고 있는걸 본 걸거다. 그렇다고 연이한테 뭐 관음이나 그런 쪽의 성벽이 있는건 아니고. 걱정되서 따라나왔을거다. …그렇겠지? 아오 옆구리아파. 이거 나한테도 딜이 들어올 정도면 연이가 철근을 꼬집었어도 손 자국이 났을거다.

“기다려 오라버니. 중원에 넘어가서 치료법을 공개하고 난 뒤에 하루 그냥 날 잡는거야. 알았지?”

이, 이짓을 또 하라고?

“대답안해?”

“기뻐서 그러지 나는…. 우리 연이가 그렇게 오라버니를 원한다니….”

“두고볼거야 내가. 흥.”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 품안에서 빠져 나간다거나 나를 밀쳐내려는 기색같은건 전혀 없다. 이렇게 꽉 끌어 안아 주면 금방 흐물흐물해질거면서 심술은.

우리는 지금 갈자윤을 태우고 다시 마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고 있었다. 내가 어제의 여파로 조금, 아주 조금 피곤해서 만일을 위해 화란이가 운행을 하고 있었다. 서령이도 슬슬 이동할때는 운항 스케쥴에 넣어야겠다.

“마중화께서는…. 혹 남은 치료에 대해 들으셨는지요?”

“허, 이제 아주 당당하다 오라버니?”

와 이게 불과 얼마전까지 영웅은 호색이고 삼처사첩이라며 온동네 여자는 다 찍어붙일 기세로 들이밀던 여자의 대사란말인가. 거기다 아까부터 왠지모르게 둘 사이에서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것이….

“뭐. 왜. 뭐. 지금 어? 오라버니 눈에 마구니가 그득하거든?”

“잡소리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좀.”

연이를 누르듯이 끌어안고 다시 갈자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죄송하지만 은공, 저는…. 천마가 아니라면 통정을 할 수 없는 몸입니다.”

“예?”

“아마, 제일매화께서는 아시겠지만 천마신교는 본시 초대 천마 이후 모계로 적통이 이어지는 교단입니다.”

그건 또 뭔소리야. 모계로 적통이 이어진다니.

“야, 하던대로 해라? 은공은 무슨….”

“여전히 그 주둥이는 시궁창이군요. 화산에서도 내 놓은 망나니가.”

“누가 들으면 네년은 주둥아리에 옥구슬이라도 물고 있는줄 알겠구나?”

연이가 내 품에 안긴채로 강한 기운을 폭사시켰다. 내가 다 상쇄할수는 있었지만 마치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는 듯한 날카로운 기도는 그대로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인가?

“하아…. 오라버니, 나 상처 받았어.”

“은공께서 불편해 하시는줄도 모르고, 여전히 품위라고는 없는 사람이네요.”

“아, 잠깐만 둘다 기다려. 둘이 서로 아는 사이야?”

“내가? 내가 저 미친년을 어떻게 알아.”

“저도 저렇게 품위없는 사람은 모릅니다.”

연이는 마교에서도 천마신녀라는 이름을 듣고 단번에 갈자윤이라는걸 짐작했다. 전에 내가 물어봤을 때 마교의 영역에서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한 걸 보면, 젊을때 푸닥거리라도 찐하게 한 판 한거 아닐까. 어쨌거나 마교라는 께름칙한 조직이기도 하고 연이는 내꺼기도 하니까 연이에게 안심하라는 뜻을 담아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여간 그러시다면 통정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 봐야겠군요.”

“은공이시니 말씀을 드립니다만…. 하, 별 상관없겠군요. 어차피 이제 신교는 몰락하였으니….”

“지랄, 분위기 잡기는….”

“은공을 봐서 참습니다 종리연.”

“안 참으면 어쩔건데? 안 참으면 어쩔건데?”

연이는 마치, 너의 감정을 내가 지배할 수 있다고 외치기라도 할 것 처럼 갈자윤을 자극하고 있었다.

“연아. 시끄러우니까 잠깐만 가만히 좀 있어.”

“허, 오라버니가 어쩜 나한테.”

“마중화께서도, 실제 마중화를 치료한것은 연이이니 감정이 있더라도 조금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는 편하다 이거지 이제? 응?”

늙으면 애가 된다더니. 하여간 갈자윤이 하겠다는 이야기나 좀 듣자 연아.

“…마중화말고 일단은 신녀라 불러주시지요. 화(花)자가 들어간 별호를 면전에서 들으니 민망합니다.”

“그러겠습니다.”

신녀도 거창하고 민망할것 같긴 매한가지지만, 그렇다고 어르신이라거나 이름을 부르기도 애매해서 그냥 원하는대로 해 주기로 했다.

“그러면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갈자윤은 어찌보면 천마신교의 치부일수도 있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동안 마교에서 천마가 나오지 않은것은 단순히 탈마의 경지에 접어든 고수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천마신녀는 대대로 어머니로부터 천마신녀의 자리를 물려받는다. 이는 초대 천마의 안배로 이루어진 조치다. 초대 천마의 은퇴즈음에 이대 천마의 발탁과정에서 다른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못한 초대 천마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만들자마자 반으로 쪼개지게 생긴 마교를 보고 격분한 천마는 자신의 모든것을 뭉쳐 딸에게 집어 넣어 버렸다. 원한다면 천륜을 어기고 누이를 취해보라고.

이것이 신녀지단. 천마는 탈마의 경지를 증명한 후 신녀의 몸 안에 있는 신녀지단을 깨어 초대천마가 남긴 극천마기를 흡수해야만 완전한 존재로 인정받았다. 신녀는 자연히 당대 천마의 여자가 되고, 천마와의 사이에서 딸만 낳을 수 있었다. 천마가 죽으면 극천마기는 딸 중에 적합한 이의 몸 속으로 들어가 다시 신녀지단을 형성한다. 그렇게 또 다음대 천마를 선택하는 구조였다.

아, 그 아버지한테 덤볐던 이대천마는 결국 미쳐서 자진했다고 한다.

“체질상, 신녀가 되고 나면 극천마기를 지닌 완전한 천마 이외의 남성과 통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남성이 죽어버리고 말지요.”

정조대 성능 확실하네. 초대 천마는 무공도 강력했지만 부적이나 주술에도 독보적인, 뛰어난 방술사이기도 해서 후대에도 해주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고 한다. 개파조사인 초대 천마의 의도도 존중하는 겸. 그렇다고 해도 모계로 쭉 이어져 내려오다니 신기하다. 거의 모든 무림문파는 부계로 내려오는데.

“하여, 은공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감시 천녀가 짐작할 수 없사오나, 마공을 익혀 탈마의 경지를 이루신 것이 아니라면 저와 통정하는 순간 목숨을 잃게 되실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전대 천마의 사망 이후 그 긴 시간동안 천마가 안나와서 처녀였고, 결국 지금의 약화된 마교의 전력으로는 탈마의 경지에 든 천마 후보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이니 망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천마신녀도 분명 폐경이 왔을테니까 그 시점에서 천마가 나와본들, 후대로 극천마기를 전달할 컨테이너가 없는거지. 그래서 흑백마노가 당당하게 샷다를 내릴거라고 했었던거구나….

“다, 제가 못난탓이지요.”

“예?”

“본시 남자라는것은 취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한계따위는 몇 번이고 넘어버리는 존재입니다. 그런 이가 없다는 것은 결국 마중화니 어쩌니 해도 제가 못난 탓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걸 그렇게 해석할 문제는 아니긴 한데요….

“제 대에서 천마신교의 장구한 역사가 끝을 맺게 되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연이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 본다. 아니 지금 저기 갈자윤이 죽은눈이 되어가고 있는데. 파란색이라서 그런지 더 무섭다.

[어떻게좀 해봐.]

“어?”

이런 얼빠진 대답이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제 치료 끝나고 나서부터 내가 계속 박박 긁어대고 있는데 틈만 나면 저 상태야.]

어쩐지, 연이가 앞뒤없이 미쳐 날뛴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이유에서였구나. 극천마기라. 이름이 거창하긴 한데. 혹시 이걸 말하는건가.

“그, 신녀. 극천마기라는게 혹시 이건가요?”

나는 어제 갈자윤의 몸 속을 ‘천지환원기’로 들쑤시면서 거치적거리는 모든것을 날려버렸다. 반로환동이든 환골탈태든 어쨌거나 혈맥에 남아 있는 똥쓰레기 같은 노폐물들. 태어나서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기운들을 싹 날려버리는것에서 시작했으니까.

신녀지단이라는게 무슨 기단처럼 뭉쳐있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뭔가 굉장히 파괴적이고 패도적인 기운이 갈자윤의 몸 속에 있다는것은 알고 있었다. 갈자윤 스스로가 익힌걸로 보이는 내공과는 좀 다른 성질이라 혹시 중독이라도 당한건가 싶어서 일부를 떼어 기억해 놓았다.

경지가 경지인지라, 그런 단순한 기운은 얼마든지 내 ‘천지환원기’를 써서 흉내낼 수 있다. 나는 그 기운을 온 몸 가득히 뽑아올리며 기세를 내뿜었다. 이렇게 쓰는게 맞나?

“어, 어, 어떻게…. 은공이 극천마기…를!”

갈자윤의 크고 푸른 눈이 저러다 튀어나올까 걱정될 정도로 크게 찢어졌다.

마기는 마기라는 걸까. 내가 극천마기를 끌어올리며 패도적인 기세를 뿌린 순간 수레 안에 있는 여자들의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천마의 기운이라고 했으니까 정마대전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민감할 수 밖에.

“오라버니, 어째서 오라버니가 마기를 가지고 있어?

“삼랑….”

“…주인님.”

서령이는 뭐가뭔지 모르는 상태고, 갈자윤은 경악에 몸을 부들거리는 상황. 연이, 수레의 운행에 집중하던 화란이, 서령이와 수다를 떨던 린이가 눈을 흡뜨고 나를 쳐다본다. 아우 얘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진짜.

“그, 그럴리는 없겠지만 오라버니가 천마의 전인이라고 해도…. 응.”

“그랬던거군요 삼랑…. 그래도 저는….”

“한 번 주인님으로 모셨으면 주인님이죠.”

연이가 그런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내 품속으로 더 강하게 파고든다. 아니, 되게 감동적인 상황이긴 한데.

“뭔 소릴 하는거야?”

“그래서 그런 걸 할 수 있었구나. 흐응…. 날 속였다고 해도 괜찮아.”

아놔. 답답해 죽겠네.

“난 이거랑 아무런 상관이 없거든? 그냥 신녀를 치료하다가 몸 안에 있던 기운을 내가 흉내낸거야. 봐!”

“에?”

연이의 얼빵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연이에게 순수하고 정심한 ‘천지환원기’를 보여주었다가 극천마기를 보여줬다가. 양손으로 꺼낸 다음 섞었다가 흩었다가 해 보였다.

“어, 어째서? 어째서 오라버니가 마기를 다룰 수 있는거지?”

“왜? 그러면 안되는 거야?”

“마기는, 특히 극천마기는 당대의 천마 이외에는 누구도 다룰 수 없는 기운입니다지존(??).”

지존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뭔가 상당히 골치아픈 상황인것 같은데. 내가 이거 꺼내면 안되는 거였나? 갈자윤은 오체투지자세로 바닥에 바싹 엎어져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극천마기는 아닐걸요? 제가 흉내낸것에 불과하니까.”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극천마기는 결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롯이 홀로 완전한 패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우. 오글거려. 누가 옛날 분 아니시랄까봐. 하지만 역시, 무림이라면 이런 맛이 있어야지. 대협의 마음가짐으로 받아쳐드리고 싶지만 또 연이가 발작을 할테니까 그만두자.

“…아니지 오라버니?”

“아니래니까!”

­ 빠악

“악!”

…살살 때릴 생각이었는데 딱밤 한방에 연이가 악 소리를 낸다. 조심해야겠다. 살짝 얄밉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연이한테까지 딜이 들어가는 정도라면 어우, 끌어올렸던 극천마기를 흩어 버리고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애들을 둘러봤다.

“애초에 기운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어차피 의념을 담은 종지에 불과한 것을 이리 재단하고 저리 맞추는것은 결국 사람이 아니더냐? 네들 눈에는 이것이 마기로 보이더냐? 내가 보기에는 산들 바람 한 자락 이니라 요녀석들아.”

에헴 까지 덧붙여줘야 할 것 같다. 거창한 소리는 아니다. 그냥 약간의 심득을 담아 나누어 주었을 뿐이다. 나도 모르게 현기가 담길까봐, 혹시나 아직 더 발전해야 할 서령이가 깨달음이랍시고 뭘 건져서 휘둘리기라도 할까봐 컨셉질로 개드립을 섞어 쳤는데 그런데.

“….”

서령이를 포함한 다섯여자가 그대로 눈을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요샌 안 그러더니 왜 또 이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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