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무림치매대응반 57 (떡)
* * *
“가자 서령아.”
“잘 놀다와 오라버니.”
“서령이 너무 막대하지 마세요 주인님.”
린이가 또 정색을 빤다. 뭐. 왜. 정작 지 직전제자인 소검후는 작살을 내놓고 서령이가 무슨 제자라도 되는 것 처럼. 폐관수련을 봐 주면서 정이 들었나보다. 하여간에 서툴러서는….
“내가 뭐 애 잡으러 가니.”
“아우, 하여간 분위기 깨지 말고 빨리 가요. 얼른.”
“알았어 알았어, 때리지 마.”
연이가 등짝을 두들기면서 토굴 밖으로 나를 밀어냈다. 어째 이거 날이 갈수록 잔소리가 심해지는 것 같은데. 날잡고 확 서열정리를 그냥….
“저기, 그…. 어디로 가?”
“아, 미안. 산 꼭대기로 가자.”
아까 도착했을 때 벌써 늦은 오후여서 해가 서쪽끝으로 넘어가며 석양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마 잠시 후면 달이 뜨겠지. 아, 그전에.
“잠깐만 서령아. 잠깐만 기다려.”
바람같이 뛰어들어가 담요를 챙겨서 나왔다. 혹시나 서령이가 부끄러울까봐 공중수레에 던져넣고 서령이를 데리고 와 공중수레에 함께 올라탔다. 석양이고 나발이고 좋긴한데, 연이나 화란이 린이랑은 다르게 서령이는 아직 이런 보조도구가 필요하다. 온 몸에 숨쉬듯 자연스럽게 반탄강기를 펼칠 상황은 아니라서. 이러니까 꼭 떡치려고 고수가 되는 것 같잖아.
“이거 타고 가?”
“혹시 비라도 오면 지붕이 있는게 좋으니까?”
아예 산 꼭대기에서 밤을 보내고 올 생각이다. 중간에 들어오기도 애매하고. 그거만 쏙 하고 들어오기도 좀….
“가자 빨리.”
“…응.”
어차피 분위기 애매해 진거 후딱 산꼭대기로 이동하여 커다란 나무 밑에 수레를 내렸다.
“그….”
“아, 옷 벗을…까?”
아 놔. 분위기 어쩔거야 이거. 괜히 연이가 등을 떠밀어서 확 의식하는 상태로 와 버렸더니만. 여기서는 그래도 내가 리드를 잡아야지. 노친네들이야 처음이건 아니건 연륜이라도 있었다지만 서령이는 정말 처음이니까.
“아냐. 편하게 있자. 꼭 그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해남에서 떠나고 나서는 제대로 이야기 못 했잖아.”
떠나고 나서만 못 했나. 떠나기 전에도 못 했지. 연이가 괜히…. 아니다. 떠넘기지 말자. 연이는 또 지딴에 오지랖을 부린답시고 한건데.
“미안. 삼아.”
“뭐가?”
“멋대로 너 옆에 있겠다고 억지쓴거.”
“억지 아니니까 걱정하지마. 너 연이랑 애들이 얼마나 센줄 알지?”
“…응.”
“걔들이나 내가 억지라고 생각했으면 너 여기 못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우리 모두다 너를 가족이라고 인정하고 있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억지로 데리고 온 애한테 영약 먹이고 수련 봐주고 그러겠냐.”
“그래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떠 넘기진 않을거고 책임도 내가 질 거지만, 연이 너는 괘씸해서 안되겠다. 나중에 그럴 기회가 되면 제대로 괴롭혀줘야겠다.
“곧 있으면 해 넘어가겠다.”
“석양…. 예쁘다.”
수레의 벽면에 몸을 기대고 나란히 앉아 거의 다 넘어간 석양을 느긋하게 바라봤다. 아직은 조금 떨어져 있는 서령이의 어깨를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바짝 긴장하고 있는지 내 손이 닿은 것 만으로도 움찔거렸지만 버티지는 않고 내쪽으로 안겨왔다.
“…안돼.”
“응? 뭐가?”
“밤이 되면 내 몸이 잘 안보이잖아.”
어…. 나는 서령이가 처음이라서 부끄러워할까봐 오히려 시간대를 밤으로 골랐는데.
“괜찮아?”
“안 괜찮을건 또 뭐야. 나는 해남을 떠날 결심을 했을때 부터 네 소유물이었어.”
사람을 소유물이니 어쩌니 표현하는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 여자가 그렇게 이야기 해 주니 병신같지만 뿌듯한 느낌이다. 험험. 내가 왠지 모를 민망함에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는 동안 서령이는 일어나서 천천히 옷고름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그…. 내 몸, 별로 안 예쁠수도 있지만, 응….”
“아냐. 예쁠거야 분명히.”
“피이…. 본적도 없으면서.”
스물 넷. 나랑 동갑이다. 지금 시대에 그냥 보통의 여염집 아낙이었다면 애를 낳아도 둘은 낳았을 나이고, 여자의 매력이 본격적으로 꽃피는 이십대의 한창이다. 평소에 운동량도 많으니 그냥 옷 밖의 팔 다리만 보더라도 쓸데없는 군살은 하나도 없다. 아름다운 몸일것은 당연하다.
“그걸 꼭 봐야만 아나?”
“어쨌든. 후아. 부끄럽다.”
처음만 볼 수 있는 풋풋한 설레임이다. 정말 굴러들어와 박혀버린 내 어린시절의 친구지만 맞선봐서 결혼한 걸로 치지 뭐. 어차피 양가 어른들이 추진할 생각이었다고도 하니까.
“해 지기전에 벗어야지.”
“천천히 해. 나는 괜찮으니까.”
“아니, 보고 싶다고 해야지!”
“어휴. 마음대로 하세요.”
“씨이잉.”
툴툴거리는 말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고는 석양 아래에서 천천히 옷을 벗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었다. 속옷을 벗을때는 망설일 줄 알았는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벗어 내렸다. 그래도 부끄러운지 석양을 받아 붉게 물든 알몸에서 중요한 부위는 머뭇머뭇 하다 손으로 슬쩍 가린다.
“왜?”
“으으응…. 여기는 부끄러운 곳이라고… 엄마가 그랬어.”
“흠…. 나는 다 보고 싶은데.”
“알았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안 죽어. 죽기는 누가 죽어.”
양 손을 내리고 똑바로 선 서령이의 눈에 갑자기 왈칵 눈물이 차 오르더니 그대로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엄마야.
“왜, 왜 그래? 옷 입을래?”
“아니! 좋아서! 좋아서 그래. 이거 진짜, 꿈 아니지? 응? 정말 꿈 아니지?”
“꿈 아니야. 꼬집어주기라도 할까?”
“꽉, 꽉 안아줘.”
서령이의 체구는 다른 애들보다 좀 작았다. 여태 겨울옷이라서 잘 몰랐지만, 벗겨 놓고 보니 생각보다 더 아담했다. 석양으로 붉어졌는데도 그보다 더 붉게 물든 오밀조밀한 얼굴. 좁은 어깨. 그런주제에 가슴과 골반의 굴곡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허벅지가…어우야. 이건 반칙이지. 서령이는 가운데에 털이 하나도 없었다. 뭐지 무모증인가?
“빨리.”
“알았어. 자. 진짜지? 꿈 아니지?”
“으응…. 진짜야. 진짜 꿈 아니야.”
서령이는 내가 안아주자 나를 꽉 마주 안고 한참을 더 울어제꼈다. 옷 다 젖었네.
“미안해. 울기만 했네.”
“미안은 무슨. 나도 어차피 옷 벗을건데 뭐.”
어깨를 적신 서령이의 눈물을 내공으로 털어내고 옷을 벗어 수레 한켠에 밀쳐두었다. 경지가 오르고 나서는 몸도 점점 따라가는지 짬날때 마다 유산소 정도 하는데 잔근육이 울룩불룩한 무인의 몸이 되어간다.
“꺄악!”
“너는 나한테 몸 다 보여줘놓고 내 몸 보는게 뭐 어때서 그래. 이리 와.”
“으으응….”
준비해 온 담요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서령이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서령이가 자기 몸을 제대로 봐 달라고 했으니까 밝을때 미리 미리 봐 놔야지.
“우리 서령이 다 컸네?”
“애 취급…하지 마.”
“어릴땐 진짜 쪼끄맸는데.”
“삼이 너도 엄청 작았었거든?”
서령이나 나나 동네 또래 중에서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아. 생각난다. 확실히 우리 둘이 또래 애들 중에서 심지어 우리보다 어린 애들 까지 해도 작은 편이라서 둘이 자주 놀았었지.
“여기는 아직 애기네.”
“아..아냐! 거기는….”
슬그머니 연이의 가랑이 사이로 몸을 일으켜 보지를 손바닥으로 쓸어올렸다. 진짜 털이 없네. 민거 같지는 않은데.
“우리는 실전 초식이 많아서…. 털을 잡아 뜯는 기술도 배우거든. 그래서 어릴때 부터 털이 안나게 하는 약을 발라.”
보통 외공을 중심으로 하는 문파라도 거기까진 잘 안하는데 기본기 탄탄하게 배웠나 보다.
“이상하지?”
“아냐, 오히려 좋은데?”
“…언니들이랑 비교하면 어때?”
“에이 뭘 비교를 하고 그러냐? 나한테는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예쁜 사람들이야. 쓸데없는 걱정 하지마.”
“그치만, 언니들은 피부도 매끄럽고, 가슴도 엄청크고, 다리도 길고….”
“너도 충분히 예쁘니까 괜찮아.”
“나는 흉터도 많고….”
아, 그러고 보니까 서령이는 몸 여기저기에 자잘한 흉터가 많이 있었다. 제대로 금창약을 바르지 않았던 건지, 깊은 상처였던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너도 경지가 오르면 환골탈태 시켜줄게.”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거야?”
“우리애들 다 내가 시킨거야.”
“그럼 나도 나중에 예쁘게 만들어 줘야해?”
내가 무슨 의느님이냐. 원판은 못 고친단다. 그 신체가 가졌어야 할 최적의 밸런스는 맞춰주지만. 물론 서령이의 지금 얼굴도 굉장히 예쁘다. 나랑같이 해남을 뛰쳐나왔으니 망정이지 모르긴 해도….
“해남검파 안에서 찝적거리는놈은 없었어?”
“왜 없었겠어. 그저 여자만 보면 추파를 던지느라 바쁜놈들.”
“아닐걸.”
“뭐가?”
“여자만 보면이 아니라 네가 특출나게 예뻐서 그런걸거라고.”
“에이…. 안 그래. 너도 나 어릴때 맨날 못생겼다 그랬잖아….”
“아니 내가 언제! 이런 천벌을 받을…. 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그냥 아주. 어? 나쁜놈이구만!”
꼭 끌어안고 코가 닿는 거리에서 서령이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살짝 가볍게 입을 맞춰 주었더니 눈을 감고 기분 좋은 숨소리를 내 뿜는다.
“나, 삼이랑 혼인하고 싶다고 아버지한테 말씀은 드렸는데 못생겼다고 네가 싫어 할까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얜 진짜 무공만 익혔다 뿐이지 그냥 시골마을에 살던 코찔찔이 마인드 그대로구만.
“그래서…. 삼이 네가 조금…. 조금만 나중에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운다. 또 울어. 내 품에 꽉 끌어 안아서 등을 토닥여 진정시켰다.
“나 때문에, 내가 그런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뚝. 그런거 아냐.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잖아. 응? 괜찮아. 괜찮아.”
진짜 이거 뭐 스토커였나 싶을정도로 처음 봤을때 미친듯이 격렬한 반응이 오더니만, 그런 죄책감 때문에 멘탈이 가루가 되어있었던 상태였구나. 딱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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