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무림치매대응반 56
* * *
목적은 달성했으니, 마교의 위치와 풍경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고 공중수레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서장의 우리 토굴을 향해 남하. 생각해 보니 왔다갔다 왕복으로 한 사흘 날려먹을 것 같았으면 차라리 며칠 기다렸다가 폐관끝나면 같이 올걸 그랬다. 그럼 여기서 바로 사천으로 넘어가도 되는데.
공중수레는 별 다른 문제없이 순조롭게 서장으로 내려갔다. 중간에 마약빨이 떨어진 갈자윤이 지랄발광을 했지만 혈을 짚어서 재워버렸다. 아편 중독이 독하기는 독한지 수혈을 짚어 놨는데도 뒤척이면서 시뻘허게 충혈된 눈을 뜨고 온 몸을 벌벌 떨며 발작을 해대서 상당히 난감할…뻔 했지만 연이가 마혈까지 짚어버렸다.
중간에 혹시 잠시라도 제정신을 차릴까 싶어 몇 번 깨워봤지만 잠시도 온 정신을 찾지 못한다는 마의의 말대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태같았다. 유모 찾고, 당과 찾고, 아버지 찾고. 흠. 화란이나 린이와 다르게 독기가 완전히 잠식을 한 것 처럼 상태가 심각했다.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어? 끝났어?”
“네. 다행히 잘 끝났어요.”
무슨 관제탑 유도도 아니고, 어름어름 서장에서 출발했던 위치를 더듬어 가고 있는데 어느 산 봉우리에서 누가 공중수레로 올라탔다. 깜짝 놀래서 쳐다보니 린이였다. 린이도 서령이와 폐관수련을 하며 기도가 한층 더 깔끔해졌다. 뭔가를 더 얻었나보다.
“저쪽이에요. 혹시나 싶어서 마중나왔어요.”
“잘했다.”
근처에 가서 기감을 확장해 애들을 찾을 생각이긴 했지만 린이가 마중을 나와주어 한결 수월하게 토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구에요?”
“마중화 갈자윤.”
“마교가서 누구든 잡아 온다고 하시더니 제법 거물을 데려 오셨군요?”
“마중화 말고는 다 죽은것 같더라.”
“그래요?”
연이와 화란이 린이가 재잘거리며 갈자윤을 토굴 안으로 옮겼다. 나는 토굴 입구 근처에 공중수레를 숨기고. 이거, 느낌이 꼭 여자들 먼저 내려주고 아버지가 주차하는 모양새라서 웃음이 나왔다. 그 씨부럴것들을 쓸어버리고 나면 이렇게 살 수 있으려나.
“뭐해? 빨리 안 들어오고.”
“아, 잠깐 생각할게 있어서.”
향수병마렵네 진짜. 연이의 재촉에 바로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다 큰 천을 깔고 갈자윤을 눕혀놨다. 발작때문에 잠에서는 깬것 같은데, 마혈을 짚어 놓은 상태라 간헐적으로 바들거리고만 있었다.
“바로 치료할거야?”
“아편 중독 때문에 그냥 바로 진행해야 해.”
이번에는 기존 방식대로 독기의 샘플을 추출할 요량이어서 연이가 진행하기로 했다. 지금하는 구버전 치료법은 내가 직접 할 일은 없지만, 뇌 속에서 움직이는 기운을 보면 뭐라도 배울 수 있을까 싶어 옆에 바싹 붙어 기운의 흐름을 읽기 시작했다.
“그럼 오라버니, 바로 할게. 내가 이야기 하면 도와줘.”
“응 그렇게 할게.”
화란이를 치료할때나 린이를 치료할때나 결국엔 돌발상황이 생겨서 내가 옆에서 보조해야했었다. 도와달라는건 아마 그 이야기일거다. 연이는 누워있는 갈자윤의 머리맡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갈자윤의 머리 밑으로 손을 집어 넣고는 뇌호혈로 기운을 불어 넣었다. 일차로 독기를 감추고 있는 위장막을 날려버리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정심한 기운과 닮은 기운을 스스로 뽑아 올려 넣은 것이다. 순수하게 내가 가지고 있던 기운보다는 덜 했지만 그래도 야금야금 위장막 틈 새로 삐져나오는 독기를 느껴보면 내 기운을 흉내낸걸로도 충분한 위력이었다. 린이를 치료하기 직전에 이야기 했던 이제는 혼자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삼아.”
날 부르는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서령이가 서 있었다. 이야. 이제 어디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네.
“많이 좋아졌다.”
“…응!”
내가 해 주는 칭찬이 기쁜지 얼굴을 붉히면서 웃는다. 기특하기도 하지. 아무리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 영약을 먹고 기운을 갈무리 한 다음 경지를 올렸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게 보통일은 아닐것이다. 이, 무공이라는게 아무리 옆에서 주입식으로 떠먹여줘도 결국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진짜 그냥 고만고만한 이류에서 머물게 되기 쉬우니까. 어떻게 아냐고? 이 경지를 찍고 나니 그냥 알겠다.
“린이가 많이 괴롭혔어?”
“으응…. 아니. 검후님이 엄청 친절하고 자세하게 봐 주셨어.”
호오. 린이는 젊음에 대한 질투와 개떡같은 인성으로 본인의 문파를 거덜내버린 전적이 있는데. 린이 본인에게 말하면 슬퍼할테지만 혹시나 그런 감정을 담아서 서령이를 수련시킬까봐 조금 걱정한 건 있었다. 기특함을 담아서 린이를 쳐다보는데 린이가 얼굴을 굳히고 싸늘하게 정색을 한다. …왜?
“언니.”
“네...네에?”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어.”
“네에….”
아, 서령이한테 제대로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말을 안들어먹나 보구나. 서령이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노친네도 보통 노친네들이어야 말이지.
“주인님은 서령이하고 같이 주변이라도 좀 돌아보시고 오면 어때요?”
“음…. 아냐, 지금은 연이가 고생하고 있으니까 치료가 끝나고 갈자윤의 상태가 안정이 되고 나면.”
그러면 서령이의 처녀를 받으러 가야지. 산 정상에서 은은하게 달빛을 받으면서. 생각만해도 아랫도리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요새 좀 무절제한 느낌인가? 그냥 마음 내키는대로 살자고 작정을 했더니 결정에 너무 고민이 없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사소한거 하나 결정하는것도 머릿속에서 난리가 났었는데. 지금은 너무 극단적인것 같기도하다. 이런생각을 하는거 보면 기본적으로 내 인성이 변한 것 같진 않은데.
“으으으우우우으으!”
깜짝이야. 옆에서 가만히 있기 뭐해서 갈자윤을 보고 있는데 입이 열리면서 지옥 밑바닥에서 울려퍼지는 듯한 신음소리가 튀어나온다. 기운이 움직이는걸 다시 관찰해 보면 지금 갈자윤의 머릿속에서 연이가 독기를 천천히 끄집어내고 있는데. 음. 굳이 고생할 것 없으니까 좀 도와줘야겠다.
“오라…버니?”
“어, 괜찮아. 받아들여. 지금 어차피 그 독기 빼내는데 고생할 필요 없잖아.”
어차피 샘플 확보용이다. 약액을 만들고 나서 할 실험은 어차피 따로 있는거고. 지금은 그냥 갈자윤의 치료과정에서 독기만 얻으면 되는거니까 연이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기운을 몇 가닥 길게 뽑아서 연이가 기운을 밀어 넣고 있는 통로로 비집어 넣었다.
“맞아.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빨리 끝내고 쉬자. 독기만 잘 챙겨.”
이…. ‘천지환원기’라고 일단 대충 이름붙인 기운을 그대고 연이가 끌고 다니는 기운에 실어 갈자윤의 뇌 속을 휘저었다. 독기는 연이가 빼낼테니까 나는 갈자윤의 몸에 들어 있는 노폐물들이나 밀어내야겠다. 기왕 집어 넣은 기운이니까.
“독기는 다 빼냈어.”
“귀중한 시료니까 잘 보관해 둬.”
“응. 바로 밀봉해야지.”
하나 지적하려고 했는데 연이도 이미 생각한 모양이다. 뽑아낸 독기를 한 병에 넣지 않고 작은 자기병 여러개에 나눠서 넣었다. 그래야 시험에 조금씩 쓰려고 뚜껑을 땄을때 날아가는걸 막을 수 있으니까.
“내가 이 정도도 생각 안했을까봐?”
“아니, 커흠. 그냥 나도 막 생각이 나서.”
“고마워.”
“아냐 뭘….”
안다. 여자의 심리. 어. 내가 지 하는일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 줬다는게 고마운 거겠지. 얼굴 화끈거리게. 나는 얼굴을 돌려 갈자윤에게 집중했다.
마중화라…. 이제는 뭐 반로환동에 환골탈태를 강제로 촉발시킨다고 생각하면 무슨 복권을 긁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갈자윤의 눈동자는 청색이던데…. 모계가 색목인이었나?
“흐어어어윽!”
갈자윤의 몸에 있는대로 ‘천지환원기’를 때려박고 무작정 돌렸다. 혈맥을 다치게 하지 않는 기운이니 크게 신경쓸것도 없고. 드디어 환골탈태가 시작되는지 뼈마디가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몸 여기저기가 뒤틀리고 갈자윤에게 뚫려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죄다 흑갈색의 노폐물이 꾸역꾸역 밀려나오기 시작한다. 실내에 퍼지는 고약한 냄새를 기운을 움직여 입구쪽으로 몰아 내 버리자 화란이와 린이 서령이까지 들러붙어 옷을 벗기고 바닥에 깔아둔 큰 천으로 몸을 닦았다.
“오라버니도 고생했어.”
“독기는 잘 챙겼고?”
“완벽해.”
연이가 자기 병 중의 하나를 들고 웃어보인다. 병이 몇개야 한개 두개 세개…. 아니 저 정도쯤 되면 뇌척수액이 죄다 독액인거 아냐? 저걸로 죽은사람 두개골을 한 번 열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어쨌든, 우리의 제대로된 첫 치료가 끝났다. 화란이와 린이는 각각 중간에 사고도 있었고, 완전히 우리의 의지가 개입된것도 아니었고. 온전히 연이와 내가 협의한 판단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프로세스로 사고없이 안정적으로 끝낸 치료가 처음이라는 이야기다. 일단은 이 치료법을 공개할때는 연이가 단독으로 했을 때 처럼 ‘천지환원기’를 흉내낸 기운을 이용하는 형태로 공개가 되겠지만, 하나 정립한게 어딘가. 겨울 전에는 연이도 나도 무림맹 남경지부에서 소리소문도 없이 죽어 재가 될 팔자였는데. 그래서 더욱 지금 순간이 감회가 새로울지도 모른다.
갈자윤의 치료는 끝났다. 갈자윤 본인이 무공을 회복하기를 원한다면 나와 몸을 섞으면서 한 번 더 온 몸에 기운을 돌리는 과정을 거쳐야 할테지만 지금 상태에서도 뇌에 남아있는 독기는 아주 미약한 정도다. 그냥 대충 살기에는 문제가 없지. 그건 정신을 차리고 나서 물어 볼 일이다. 원하는대로 해 주고, 원하는 곳으로 보내 줘야지. 겸사겸사 마의의 공증을 받는것도 도움을 받고.
“화란이 니가 마중화를 좀 도와 드려.”
“네 그럴게요 삼랑.”
갈자윤과 대화를 나누는건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다음에 하기로 하고…. 잠시 쉬었다가 서령이를 데리고 나가봐야겠다.
“짐을 싸 둘까요 주인님?”
“아, 그렇지. 마교를 잠깐 들를거긴 한데, 이제 사천으로 들어갈거니까.”
약액을 제조하는 실험을 여기서 할까 했는데 그냥 마의한테 가서 하는게 나을것 같다. 도구도 많이 있을거고. 약액을 만들거나 시험해보는 환경도 훨씬 괜찮을거고. 무엇보다 토굴은 등잔불을 아무리 켜놔도 어두컴컴해서 마음에 안든다. 갈자윤을 끌고 마교로 넘어가서 마의한테 보여주고 협조를 구할거다. 그리고 마의하고 같이 약액을 제조해서 마의를 데리고 사천으로 갈 계획이다.
자, 그럼 대충 자리도 정리된것 같고. 아까부터 내 얼굴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안절부절 하는 서령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