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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54화 (54/122)

〈 54화 〉 무림치매대응반 54

* * *

린이와 서령이는 아직 폐관 수련이 끝나지 않았다. 폐관이 무엇인가. 아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으니 일이 생겨도 연락을 하기가 애매했다. 왜 그런거 있지 않나 막 뭔가 이룰 것 같은데 깨달음의 문턱에서 누가 말을 걸어서 날려먹는다거나 그런것들.

“여기 새겨놓고 갔다 오자.”

“그래 그럼.”

“화란아, 네가 글을 잘 쓰니 네가 쓰렴.”

“이거랑 그거랑 무슨 관계가 있나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우리는 생각난김에 바로 마교를 급습하기로 했다. 그냥 갔다가 혹시나 린이랑 서령이가 당황할까봐 벽에다가 글을 남겨두기로 했다. 돌벽에 글을 쓰는 정도야 종이에 연필로 쓰는 것 처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그런건 문제가 안된다. 그냥 내가 좀…. 아 솔직히 한자 그거 못해먹겠더라고.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없는데 뭔가 격식있게 쓰려면 좀 쪽팔린다. 지금와서 내가 고급어휘를 익히자고 또 공부하기는 귀찮고, 화란이 시켜야지. 예기라서 그런건 잘 하니까.

“다 썼어요. 가요.”

“이야, 명필이네.”

반은 못알아 보겠다. 마교가서 샘플하나 획득해 온다는걸 저렇게 거창하게 쓰는지.

“부끄러운 재주에요.”

니가 부끄러우면 나는. 헛기침을 하며 내가 못알아보는게 아니라는 티를 좀 내 준다음 연이와 화란이를 양쪽 옆에 끼고 땅을 박찼다. 단걸음에 토굴을 뛰쳐나와 공중수레에 올라탄 후 그대로 북쪽을 향해….

“…이쪽 맞나?”

“응 맞아.”

순간 아리까리해서 물어봤더니 이 방향이 맞다고 한다. 연이와 만난 후 돌아다니는 동안 내가 스스로 방향을 정할 필요가 없어서 방위를 보는법도 까먹은것 같았다. 그동안 완전 수동적으로 살았구나.

“오라버니, 어쩔거야?”

“뭘?”

“마교.”

우리가 명문대파에 가서 치매환자를 고쳐줄테니 내 놓아라 하면 문전박대를 당할거다. 라고 전에는 생각했었지만, 그거야말로 연이와 화란이가 지적한 약자의 사고방식이었다. 당금 무림의 전반적으로 약화된 전력이라면 마교가 아니라 마교 할애비가 와도 우리한테 개박살이 난다.

“그냥 가서 내놓으라고 하지 뭐. 처음에는 좋은말로 해 보고.”

“삼랑, 많이 컸네요.”

“오오…. 그러게.”

원래도 키는…. 같은 몹쓸 드립이 생각났으나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쨌거나, 너희들이 그렇게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 진짜 기분 이상하니까 그만 둬라.

“그, 혹시나 뭐 걔들한테 가서 ‘마교’라고 부르면 발작한다거나 그런거 아니지?”

“응? 왜?”

“뭔가 그 신교라거나. 존중하는 호칭이 따로 있나 해서.”

내가 뭐 대문을 박살내고 들어가서 마차바퀴보다 큰건 다 죽일것도 아니고. 어차피 좋은일 하러, 사람 살리러 가는건데 마찰없이 잘 끝낼 수 있으면 좋은거지. 힘을 가졌다고 막 휘두르는건 고수의 품격이 아니다. 약자일 수록 보호해 줘야지.

“아…. 정식명칭은 천마신교이긴 한데, 마교라고 불려도 크게 신경 안쓸거야 아마.”

“그래? 그럼 다행이고.”

“삼랑은 여전히 상냥하네요.”

아니 그러니까 ‘착한 아이구나’ 같은 느낌으로 쳐다보지 말라니까. 여기서 확 자빠뜨…려도 되잖아?

“이리와.”

“꺄악!”

어차피 이걸 타고 업그레이드 된 나의 내공제어로 전속력을 내도 하루 정도는 걸릴테니까 내공제어를 수련도 할 겸, 아니. 수련이 진짜 목적이다. 나는 아직 더 강해져야 하니까. 진짜다.

위성항법장치가 있는것도 아니라서, 수레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대충 어림짐작으로 이쯤 하면 되겠다 싶은 곳에서 서행을 시작했다. 신강과 청해의 경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으니까. 인적이 드물더라도 어쨌거나 고공에서 정찰을 하면 작은 화전민촌 같은 곳은 찾을 수 있었다. 몇 군데를 들러서 마교의 위치를 확인했다.

“여기 사람들은 한족이 아닌가봐?”

미래에서는 위구르 자치구라 불리는 곳이다. 소수민족 탄압으로 유명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확실히 복색이나 피부색, 이목구비가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달랐다.

“그래서 마교의 후기지수들은 알아보기가 쉽죠.”

“하긴. 저러고 중원을 돌아다니면 금방 티가 나긴 하겠네.”

심지어 지금이 명대니까, 아직 신강은 중화권에 속하지도 않는다. 마교 자체가 중원에서 쫓겨나듯이 신강으로 넘어갔기에 중원 무림의 한 축으로 인식되지만 본거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은 세외나 마찬가지다. 현지인과의 결합으로 인종적인 특성마저 한족과 차이가 나기 시작했으니까 이제는 격리되었다고 봐야겠지.

천마신교(???). 종교임을 뜻하는 ‘교’가 들어간 단체이지만 특정 신이라기 보다는 인간에게 마(?)를 내려주는 존재인 천마를 섬기는 단체였다. 인간 본연의 내면에 내제된 ‘마’를 그대로 받아들여 극복하고 벗어나 등선에 오르는 길을 추구한다고 한다.

결국 위치를 확인하고 진입하려 했으나 애매하게 저녁먹을 시간과 겹쳐서 하루를 더 소모해 아침일찍 천마신교의 본산에 들어섰다. 커다란 바위에 힘찬 필체로 새겨진 천마(??)라는 글자가 절로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중원인들이 여기는 무슨 일인가.”

“돌아가라. 너희놈들이 올 곳이 아니다.”

뭐, 씨 들어오라고 열어 놓은 문으로 들어왔더니만. 그럼 누가 올 곳이란 말인지. 보통 문지기를 세울때는 정말 할 일 없는 친구들, 별 볼일 없는 친구들을 세워놓는데 천마신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복면을 쓰고 그림자처럼 문 앞에 떨어진 두 사람의 제법 기세가 날카로웠다.

“말 좀 물읍시다.”

“…뭐냐.”

“혹시 귀교에 노망난 고수는 없소?”

이걸 실제로 물어볼줄은 몰랐는지 옆에서 기우뚱거리는 연이와 화란이의 신색이 느껴진다. 아니 왜. 물어볼 수도 있는거지. 물어보는데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 없소. 돌아가시오. 지금 돌아간다면 죄를 묻지 않겠소.”

이새끼들이…. 지들이 뭔데 죄를 묻는다 만다 해?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것은 아니나, 찬찬히 뜯어보면 옷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이나, 복면으로 가려지지 않는 푹 꺼진 눈 밑이…. 니들 밥은 먹고 다니냐?

“사해가 동도라 하였는데, 비록 걷는 길이 다르다 하나 천마신교에 드리운 암운을 모른척 할 수 없어 지나가다 들렀소.”

“…오라버니?”

“왜 그러세요 사…앙공.”

내 이름을 부르려다 마는 화란이와 오글거림에 몸부림치는 연이를 슬쩍 곁눈질로 보고 기운을 끌어 올렸다.

“약속하지. 귀교에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네. 면피가 필요하다면 오시게. 사정을 두겠네.”

여기는 대협의 느낌으로 가 줘야 한다. 좋게 좋게. 원래 지나가던 머머가 제일 센 캐릭터니까.

단신으로 따고 들어가서 무위를 보이고, 치료가 가능한 신비문파인척 하는게 내가 생각한 그림이었다. 얘들도 중원에서 넘어온 정파무림인들이 경내를 휘젓고 다니는걸 반기지도 않을거고. 문파 이름도 비밀이라고 하지 뭐. 애초에 연이하고 처음에 강호행을 시작할때도 일인전승 신비문파의 후인이라고 둘러대자고 했던 적도 있으니까 그냥 그 계획의 연장선이라고 보면 된다.

“흐아아압!”

“하앗!”

영 매가리가 없다. 진짜 피죽도 못먹고 다니나. 손을 뻗을 필요도 없이 양쪽에서 찔러 오는 검의 옆면을 후려 튕겨나가게 하고 양 손바닥으로 한 명씩 턱을 툭 쳤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 뻗어버렸다.

“오라버니? 뭐야 지금?”

“뭐가?”

“낯간지러워서 정말….”

“니가 전에 신비문파인척 하자면서.”

“아니 그거야….”

“그렇다고 막아서는 애들 다 죽여?”

주 목적은 샘플 수집이고, 기왕이면 높으신 분으로 골라 잡아가서 나중에 암약단체랑 다이다이뜰때 우리측 세력의 하나로 협조시키려는게 추가 퀘스트 아니었어?

“요즘 누가 그런 말투를 쓴다고 그래….”

아니 내가 솔직히 댁들한테 그런 핀잔을 들을 나이는 아니지 않나. 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몸을 돌려 마교 안으로 들어섰다. 확실히 이름에 ‘마’가 들어가서 그런지 산세부터 시작해서 경내까지 음울한 기운이 맴도는 것 같다. 아 거, 화제좀 돌리려니까 꼭 거기서 팔짱을 끼고….

“알았다. 알았어. 기분 좀 내보려고 했더니.”

“진지하게 하세요 삼랑….”

“진지하다니까?”

나는 장난기를 버리고 기운을 끌어 올렸다. 주변에서 알 수 있을 만큼 팍팍. 자연스럽게 반탄강기가 형성되고 내가 한 걸음 움직일 때 마다 길에 부스러진 낙엽조각이 날아 오른다. 여기서 느긋하게 산행을 즐길것도 아니라서 경공을 펼쳐 인적이 느껴지는 곳 까지 단번에 진입했다.

“이게 다 뭐야.”

“우리가 정문에서 사람을 쓰러뜨리고 왔으니까 그렇겠지.”

거기서 정말 단숨에 왔는데, 그래도 별도의 통신라인과 견시병과가 있는지 천마신교의 본산은 빠르게 대응 중이었다. ‘천’자가 새겨진 커다란 광장에 검은옷과 붉은옷을 입은 무인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자신의 병장기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와 얘들 군기가 바짝 들었네. 못해도 사람이 백단위는 넘어보이는데, 마교의 본산이니까 인원은 그렇다고 치고 개인의 수양이 주가되는 무림에서 무슨 사설 군대 처럼 부대행동을 훈련시켜놨다니, 보기드문 일이다.

“어디에서 오신 고인이십니까!”

그 병력과 나 사이에 반쪽은 검은머리, 반쪽은 흰머리를 올려묶은 노인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착지하는 모양새를 보건데 녹록한 인물은 아닐것 같다.

“…흑백마랑.”

연이가 안면이 있는 인물인지 나지막하게 별호를 읊었다. 랑…이라기에는 좀 나이가 많으신 것 같은데. 젊은시절 정파쪽과 충돌이 있을때의 별호겠지? 일단 당장 흑백마랑을 조져버릴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 정중함을 담아 포권을 해 보였다. 기운을 흩지는 않고.

“지나가다 천마신교에 변고가 있어 보여 잠시 들렀습니다.”

“귀인들께서 본 노(?)를 알아보시는 구만. 지금은 흑백마노라는 허명으로 불리고 있소.”

일단 우리 기세가 보통 기세는 아니었기에 흑백마노도 나름의 정중함을 가장하여 주먹을 감싸 앞으로 내 밀었다. 다만, 그 눈동자는 이게 대체 무슨일인지 당황으로 가득차 흔들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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