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무림치매대응반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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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달랍궁보다 더 안쪽, 천축에서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는 대뢰음사에 들렀다. 정말 말 그대로 들르기만 했다. 종교라는게 참 사람을 독하게 만들긴 하는듯, 어떻게 천축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우회해서 여기까지 흘러들어온건지.
“가자. 소뢰음사가 새로 자리잡은곳은 여기서 멀지 않대.”
심지어 말도 잘 안통해서 중원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건 소뢰음사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여기서 통역이라도 구해서 가야 하려나.
우리가 공중수레를 타고 허공을 날아 서장을 관통하는 동안, 날짜상으로는 이미 춘절이 지났다. 아직 겨울이 끝난건 아니고 고지대라서 내공을 돌리지 않는다면 오지게 추운건 마찬가지지만 확실히 계절의 변화는 있었다. 이제 겨울이 반환점을 돌았다는게 느껴진다.
“언니, 아까 들었죠?”
“흐으음…. 정말일까?”
대뢰음사 경내로는 연이와 화란이만 들어갔다가 나왔다. 일행 모두가 들어갔다가 함정에 빠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나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는 대뢰음사를 께름칙해 했다. 나야 원래 여기 사람이 아니니까 그런거겠지만 중원인들의 세외에 대한 편견은 확고해서, 이 오지 중의 오지에 사는 사람들이 대뜸 처음보는 사람을 함정에 빠뜨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지만 잔뜩 경계를 하고서는 둘 만 다녀왔다.
대뢰음사에서 듣기로는, 연이가 소뢰음사의 기둥뿌리를 뽑아버린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뢰음사에 의탁했다고 했다. 애초에 소뢰음사의 탄생이 대뢰음사에서 이단으로 간주한 혈불 계파가 떨어져 나간것이라 도의적인 차원에서 보살펴 주었다고. 그래서 지금은 정말 그 이름처럼 대뢰음사 산하의 정상적인 불교 사찰로 대뢰음사가 있는 산의 반대편 자락에서 화전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놈들이 농사나 지으면서 염불을 외는걸로 만족하고 있을 것 같진 않은데.”
“너도 지금은 화산파의 제일매화가 아니듯이, 소뢰음사도 너한테 한 번 박살이 나고나서 아예 변한게 아닐까?”
“일단 가 보자.”
수풀속에 감춰두었던 수레에 다시 올라타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일다경만에 도착. 여기 대뢰음사까지 날아오는 데 거의 이주가 걸렸던걸 생각하면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도착이었다.
“다 같이 들어가자.”
“이번에는 왜?”
“저놈들이 뭘 꾸미고 있으면 한꺼번에 박살내버리게.”
그렇게 말하며 웃는 연이의 얼굴은 처음 반로환동했을 때를 떠올릴 만큼 싸늘하고 흉폭한 미소였다.
“말은 통할까?”
“그걸 왜 걱정해 오라버니.”
“말이 안 통하면 여기 온 의미가 없잖아.”
“그건 쟤들이 걱정해야지. 안 통하면 죽을테니까.”
연이가 턱짓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대체 이런곳에 왜 외부인이 왔지? 하는 생각을 하는게 뻔히 보이는 표정으로 승려 두명이 뛰쳐나왔다.
“소뢰음사에 묻고 싶은게 있어서 왔다!”
“….”
“….”
말이 안통하나 본데. 지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손을 들어 잠시 기다리라는 듯 흔들고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흐으음…. 확실히, 음험한 기운이나 사이한 기운은 풍기지 않는데.”
“일단 좀 기다려봐. 너 지금 기운이 너무 흉흉하다.”
“그건…! 아니…. 응.”
지금은 연이의 컨디션이 안 좋다. 저 정도의 고수라면야 컨디션이 난조고 뭐 그런거에 영향을 받지야 않겠지만, 정확히는 멘탈이라고 해야 하나. 해남에서 화란이와 둘이 나갔다 오고 나서 불같이 솟아오른 질투심에 본인이 갈팡질팡 하는 상황에서, 나까지 조바심을 내니까 스트레스가 심한 모양이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중원.”
“어떤일로 오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소뢰음사의 혈라마들에게 뭘 좀 물어보려고.”
안쪽에서 아까 사라졌던 두명 중 한명이 중원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다만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 보였는데, 한 쪽 다리는 나무 의족으로 대체되어 절뚝이고 있고, 소매도 한 쪽이 묶여 있었다. 말이 통하는 상대가 나타나자 마자 연이가 앞으로 나서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혈라마라…. 제법 오래 전에 사라진 이름이군요.”
“멀쩡한 척 하지 말고, 한 두놈은 있을거 아냐.”
이거 지금 뭐 구도만 보면 우리가 깡패다. 조용히 살고 있는 산골 마을에 쳐들어와서 과거를 들먹이는 무뢰배가 된 느낌인데.
“연아. 내가 이야기 할게.”
“으응….”
연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올리고 내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제서야 본인이 시종일관 시비조였다는 걸 알게되었는지 말 끝을 흐리며 뒤로 물러섰다.
“확인할 내용이 있어서 그러니, 꼭 혈라마가 아니라도 예전 강시술에 대해서 기억하는 분이 있다면 뵐 수 있을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통역을 맡은 노인이 라마승과 대화를 나누었다.
“곤란하다고 하시네요. 노스님들께서 그때 이야기는 엄중히 금하고 계신다고.”
“저희가 나쁜 목적을 가지고 찾아온 것은 아니니, 어떻게 좀 안되겠습니까.”
“그게….”
“아, 참 답답하네 오라버니.”
연이가 쿵 하고 발을 굴렀다. 땅바닥에 금이 쩍 하고 생기면서 흙먼지가 피어 올랐다. 그리고는 기운을 쭈우욱 끌어 올리는데…. 몽글거리는 기운이 유형화되어 보일 정도로 있는대로 패도적인 기운을 끌어올린다. 라마승과 노인이 벌벌떨며 뒤로 물러나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노스님들이라는거 보면, 아는 놈이 있는거 같은데. 빨리 나오라 그래.”
“잠시…. 잠시만 기다리시오!”
“나는 인내심이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야.”
중2병 스러운 대사지만, 주변을 다 때려부술 기세로 으르렁 거리면서 치니까 위압감이 장난없다. 라마승과 노인은 기다시피 일어나서 경내로 뛰어 들어갔다.
“쟤 왜 저러냐?”
“원래 저래요 언니는.”
하긴, 요즘엔 덜 하지만 날 만나고도 처음에는 ‘쓰읍….’ 하고 이를 악물고 심호흡하는 소리를 많이 냈었지. 원래 저렇게 화가 많은 스타일이었나.
“그거랑 별개로, 삼랑이 너무 답답하게 하시는 것도 있구요.”
“내가?”
아니, 만나면 서로 인사를 하고, 용건을 이야기 하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협상하고. 대체 어디가 문제라는 거야?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삼랑은 아직도 약자처럼 처신하고 계세요.”
“좋게 좋게 가자는게 그렇게 잘못된거야?”
“에휴. 삼랑께서 주변 사람 불안하게 조바심은 조바심대로 내시면서 일은 답답하게 진행하고 계시니까 언니가 저러는거죠.”
뭔가, 확실히 얘들이랑 내 사고방식은 다르다는게 확 느껴진다. 말만 강자존이 아니라 정말 무림의 강자존이라는건 피도 눈물도 없는거구나. 내가 화란이와 작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연이는 팔짱을끼고 인상을 점점 찡그리기 시작했다. 라마승과 노인이 들어가고 나서도 반응이 없으니 아무래도 점점 심사가 뒤틀리시는 것 같은데….
“연아 조금만 기다려 봐.”
“기다릴 필요가 없어. 오라버니랑 즐겁게 지내기만 해도 시간이 아까운데.”
연이가 앞으로 한 걸음 발자국을 옮겼다. 쿵. 하고 대기가 진동한다. 절간의 담벼락에 올려진 기왓장이 달그락거리고 현판이 삐걱거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시오! 금방 안내하겠소!”
“꼭 사달이 나기 직전까지 가야 말을 듣는다니까?”
“제가 몸이 불편하여 그랬습니다!”
“…빨리 안내나 해.”
몸도 불편하신 분께 너무한거 아닌가?
“연아 아무리 그래도….”
“하아…. 오라버니. 보통 세외에서 저런사람들을 만나면…. 아니다. 오라버니는 아직 기도를 면밀하게 살피기 까진 못할테니까. 린아 설명 해줘.”
“네 언니.”
노인의 눈이 혼탁하고 세맥에 깃든 기운이 사이한걸 보아, 사파계열의 무공을 익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원말을 어디서 후천적으로 배운게 아니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고, 팔 다리가 날아갔고 단전이 폐해졌으니, 필시 큰 죄를 짓고 도망친놈일 것이다. 라는 말을 길게 풀어서 설명 해 주었다. 아니, 그래도 죗값을 치르고 여기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것일지 어떻게 아나.
“보면 알아…. 저거 그런놈 아니야.”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긴 이 시대에 무림인이 죗값을 치른다거나, 피해자를 구제한다거나 하는 감각이 없긴 할거다. 여전히 내 가치관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지만 지금 당장 여기서 다툴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그만뒀다. 일단은 노인이 경내로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해서 천천히 그 뒤를 따라 소뢰음사의 경내로 진입했다. 몇 개의 문을 지나 작은 암자로 안내되었다. 라마승은 밖에서 시립해 있고, 우리만 노인의 안내를 받아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반갑긴.”
웃으면서 반갑다는 사람한테 왜 또 시비냐. 라마승 특유의 붉은 가사와 갈색 장삼을 걸친 노승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연이는 흉폭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지도 않고 주머니에서 흰색의 자기로 된 병을 띄워 올렸다. 손가락을 튕기자 자기병의 뚜껑을 감싸고 있던 밀랍 봉인이 터져나간다.
“혈기가 있고 중원말을 제법 유창하게 하는걸 보니 겁도 없이 중원을 넘보다가 크게 혼쭐이 났던 놈이렸다?”
“소승은 그저…. 아니외다. 이 또한 부처께서 내려주신 제가 마주해야 할 업보입니다.”
“업보는 지랄. 이거나 좀 보거라. 너희놈들의 것인지.”
자기병의 뚜껑이 열리고 그 안에서 까만색의 액체 방울이 떠 올랐다. 언제 봐도 경탄할만한 내공 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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