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무림치매대응반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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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
“꼭…. 꼭 돌아와야 한다 삼아.”
“걱정마세요. 혹시나 싶어서 조심하는거니까요.”
“어딜가든지 몸 건강해라….”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겼다. 말이 아침이지 느긋하게 식후 차 까지 다 하고 났더니 해가 중천이다. 서령이는 자기딴에는 잘 이야기 하고 왔다고 하는데…. 혹시 몰라서 아버지께 백 아저씨가 이상한 의심 못하시게 잘 단도리를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 전달해드릴 내용이 꽤 있었다. 고수…라고 하지는 못해도 어쨌거나, 무림인들이 덤벼들었을 때 버틸 수 있는 내공정도는 갖추게된 일이형에 대한 내용. 우리 가전무공이라고 들고 있던 무공의 전반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 혹시나 수상한놈이 와서 나를 찾으면 바로 해남검파에 요청하라는 내용 등.
“나오지 마세요. 누가 봐요.”
“그래 아가….”
“에헤에이. 어머니.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왔잖아요. 이득본 셈 치세요. 일만 해결하고 나면 집에와서 나가래도 안 나갈테니까.”
“그래…그래그래….”
말은 그러마 하시지만 부모 마음이야 뭐. 말해 무엇할까. 아버지는 자꾸만 먼산을 보고 계시고, 일이형과 이형은 나와보지도 못했다. 어디서 말이 새어 나갈까봐 무관에 온 사람들을 응대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가 놓고는 연이와 화란이 린이 서령이를 한 번씩 안아 주었다. 한 방에 며느리가 넷이라니. 맙소사. 뭐 그리 할 이야기가 많은지 금방 헤어지는 분위기처럼 흘러가다가 또 서로 이야기를 하고, 또 붙들리고. 아버지와 나만 어색해져서 슬슬 뻘쭘한 지경이 되어 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역정을 내셨다.
“거, 부인. 큰 일 하러 가는 아이들 마음 무겁게…. 그만 하고 보내 주구려.”
“…마음이 그렇게 안되는걸 어쩝니까….”
어머니는 가는길에 먹으라며 손수 아침일찍 준비하신 전병같은 간식거리를 잔뜩 싸주셨다. 흠. 전병은 잘 말려 놓으면 나름 장기 보존도 가능하니까 어머니 생각날 때 하나씩 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가거라. 삼이를 잘 부탁한다.”
“예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결국 연이가 어머니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며 우리 일행은 다시 한 번 강호로 나섰다.
공중수레를 타고 해남을 떠나서 저녁이 되기전에 광서성 남녕에 도착했다. 수풀속에서 끄집어낸 공중수레를 보고 서령이가 기겁을 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일단 타고 움직이기 시작해서는 많이 잠잠해졌다.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모양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고소공포증은….
“어떻게 할까 오라버니?”
“뭘?”
“객잔에서 자? 남녕을 떠나고 나면 당분간은 사람 구경 못할텐데.”
“화란이가 얼마나 걸리느냐지 뭐. 굳이 오래 있을 필요는 없잖아?”
세력의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적게 잡아도 최소 50년 전 부터 무림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면, 지금 우리측 전력이 아무리 말도 안되는 수준의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세를 불릴 필요가 있었다.
중요한건, 결국 이런 독을 풀어서 그놈들이 얻는게 뭐냐는 건데….
“오라버니?”
“아, 미안.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화란이가 금방 끝난다면 바로 움직이자.”
“그래 그럼. 화란이는 어때?”
“바로 성 안에 들어가서 처리하고 올게요.”
“오라버니가 함께 움직여 줘.”
“내가?”
화란이가 혼자 움직이는쪽이 훨씬 빠를텐데.
“아무래도 성내에서는 경공으로 이동하기 힘드니까, 성 안에서는 걸어다녀야 할텐데 어디 화란이 미모가 면사로 가린다고 가려져야 말이지.”
딴에는 그럴싸한 이유긴 하다. 충분히 기운을 끌어서 이목을 피하고 기타 등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수야 있겠다만, 남녕이면 난징과 맞먹는 대도시다. 거기서 그러고 돌아다녔다가는 혹시나 이쪽을 알아챌 수 있는 수준의 고수가 있을 경우 괜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그냥 둘이 좀 갔다와. 백 소저하고 이야기할 것도 있고 해서 그래.”
“아, 뭐. 그런 이유라면….”
괜스레 자리를 비우고 주변을 어정어정 돌아다니기도 뭣하니 그냥 화란이를 따라 남녕안으로 들어가는게 나아 보였다.
“그럼 가시죠 삼랑.”
“따로 준비할 건 없고?”
“다 챙겼어요.”
화란이는 내 앞에서 확인 해 보듯이 작은 주머니에서 물건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두꺼비가 그려진 동패 하나와, 접어 놓은 종이 조각. 종이조각은 접힌 부분에 밀랍으로 단단하게 봉인이 되어 있었다. 이거면 되는건가? 그 동안 등짐 안에서 동패는 못 봤는데 따로 들고 다녔던 모양이다.
남녕성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공중수레를 내렸다. 수레를 지붕삼아 토굴을 만들고 연이와 린이, 서령이는 기다리기로 했다. 화란이와 나는 가지고 있는 옷 중에 최대한 튀지 않는 옷으로 갈아 입고 남녕성 안으로 들어왔다.
“위치는 알고 있어?”
“남문근처에서 만복객잔을 찾으면 된다고 하던데….”
“흔해보이는 이름이구만….”
확실히, 화란이는 겨울용의 외투를 걸쳐서 몸매도 많이 가려졌고, 얼굴은 털모자와 면사까지 써서 가리고 있는데도 주변에서 음흉한 시선이 날아든다. 으으음…. 화란이랑 이렇게 걸어다니는 것도 좋으니까 별 상관은 없다.
“아, 저건가보네요.”
운이 좋군…. 이라는 대사를 쓰기에는 만복객잔이 너무 컸다. 아니 대체 하오문 무리 주제에 왜 저렇게 거창하게 장사를 하고 있는건지.
“음…. 이번에는 정확하게 하오문…이라고 할 만한 조직을 움직이는건 아니에요. 무영신투의 문파. 무영문에 받아야 할 빚이 있어요. 마침 연이 언니가 무영신투를 지목했으니까.”
“너무 딱 맞아 떨어지는거 아냐?”
“아마, 연이언니가 다른 조직이나 고수를 언급했다면 제가 무영신투 이야기를 꺼냈을거에요. 결론은 같은거죠.”
“그렇다면야.”
여기 무림에서 느꼈던건, 의외로 흐리멍덩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럭저럭 굴러간다는 거였다. 명년 팔월 보름. 광주에서 만나자! 같은 약속이 통한다는거다. 내가 있던 21세기의 대한민국처럼 바로바로 통신하고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수단은 없지만, 어쨌거나 저런 약속이라면 칠월 말 부터 광주에가서 숙소를 잡고 날마다 광주를 돌아다니는 식이다. 유명한 숙박업소 마다. 아, 물론 저 정도까지 개막장은 아니고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다.
“이층으로 모시겠습니다.”
“회주님을 뵙고 싶은데요.”
“물건은 가지고 오셨습니까?”
“동병상련.”
그 말과 함께 주머니에서 아까 화란이 내게 보여주었던 두꺼비 동패를 꺼내 점소이에게 건넨다.
“이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잠시 멈칫했던 점소이는 다시 우리를 이층에 있는 자리로 안내 해 주었다. 객잔이 크다보니 당장 눈에 보이는 점소이만 하더라도 너댓은 되어 보이는데, 이 많은 인원들이 저런 신호를 모두 교육받고 있는건가? 보안상의 문제든 안전상의 문제든 제한된 인원만 회주를 만나게 할 거라면 그냥 점소이 하나 잡아다가….
“최소한의 약속이에요. 방금 입구에서 우리에게 다가왔던 점소이는 저와 같은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들에게만 붙는 사람이죠.”
“음? 어떻게?”
“수신호에요. 객잔에 들어서면서 옷에 특정 문양을 새긴 점소이에게 약속된 신호를 주죠. 그러면 이렇게 최소한의 음어를 확인하고, 기별이 올라가는 구조에요. 별 것 없죠?”
“그걸 다 교육을 한단 말야?”
“별 다른 일이 없으면 평생 일 하니까요.”
아. 심심하면 회사에서 잘리고, 이직하고, 전업하는 현대사회를 기준으로 생각을 했나보다. 그렇지. 여기는 점소이도 평생직업이다. 독립해서 자기 장사 할 사람은 하고, 아닌 사람은 그냥 평생 객잔일을 하면서 살아가는거다. 그러다 시간이 나면 어디 가서 심부름을 해 준다거나, 소일거리나, 농번기에는 품도 팔고. 이 시대의 도시 노동자라면 그럴 수 있다.
“객잔 이름에서 이미 아셨겠지만, 여기 남녕의 남쪽 권력은 만복회가 가장 세력이 강해요.”
같은 하오문도라고 해서 나와바리 다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주의 진룡회가 그렇듯, 어지간해서는 큰 성이나 도시 하나를 통으로 먹기는 힘들다. 이해관계라는게 있으니까.
“마침 회주께서 시간이 되신다 하니 바로 올라가시지요.”
“가요 삼랑.”
어째 음식 주문을 안 받더라니, 아까 그 점소이가 올라와서 바로 안내를 해 주었다. 나무임에도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 없는 계단을 올라 회주가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과연 만복이라는 이름답게 풍채가 넉넉한 중년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그래…. 만복패가 돌아왔으니 만나봐야지. 십칠번 패라…. 장부상에는 진룡이던데 소주에서 먼길 오셨군?”
“그렇습니다 대인.”
아까 그 동패가 여기 만복회에 뭔가 오더를 넣을 수 있는 코인같은거였나보다. 몇번 패를 어디다가 줬는지 기록하고, 돌아오면 진위 여부를 파악해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구조같다.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모양이다. 화란이 이야기 했던 남녕에 가면 무영신투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게 이거였나 보다.
“반갑네. 만복회주 배윤성일세.”
“소주에서 온 초유화 입니다.”
화란이는 천연덕스럽게 가명을 대고 날더러 인사를 하라는 듯 슬쩍 곁눈질을 해서 나도 어설프게 포권을 해 보였다.
“해남의 장 구라 합니다.”
“장 소협, 초 소저 로군. 그래, 앉지. 어쩐일로 날 보자고 하셨을까.”
나도 가명으로 제곱을 해서 장씨네 아홉째가 되었다. 어차피 서로 뭐 통성명에 목숨걸 일도 아니니까. 만복회주는 차를 권했지만 화란이가 입에만 대고 내려놓는걸 본 후 나도 입술만 슬쩍 적셨다.
“무영문에 전할 내용이 있습니다.”
“호오…. 무영문이라.”
“여기….”
역시 아까 보여줬던 것 중에 밀랍으로 봉해진 종이조각을 만복회주에게 넘겨 준다. 반쪽짜리 비급을 가지고 사천으로 오라는 내용이겠지.
“알겠네. 반드시 전하지.”
“한 달 안에 전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런, 누군가는 춘절을 즐기지 못하겠군.”
만복회주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차를 홀짝거렸다. 그럼 이제 용건은 다 끝난건가?
“소주에서 온 초 소저…. 혹시 말일세. 들은게 있어서 말이야.”
“하문하시지요.”
“일행중에, 검을 잘 쓰는 모용씨가 있나?”
이런 젠장. 나도 모르게 화란이를 쳐다봤다. 만복회주는 내쪽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자 마자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만 병신짓을 하고 말았다.
“있군.”
“그렇다면요?”
화란이의 기세가 변했다. 순간적으로 방 안이 긴장감에 휩싸이고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검각에서 나서고 하루를 잤으니까 대충 엿새. 해남에서 이박 삼일. 그리고 오늘. 계산이 안된다. 넉넉잡고 열흘인데. 그 사이에 절강에서 광서까지 정보가 날았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진정하게. 적대할 생각은 없어. 자네들을 여기서 겁박했다가는 생사경을 이룬 검후의 칼이 날아들텐데.”
아니, 검후가 경지를 이뤘다는 건 또…. 아! 젠장. 검각 생각을 못했네. 아니 화란이 말로는 하오문이 정보조직도 아니라면서 뭐가 이렇게 빨라. 내가 패닉에 빠져있는 사이에 만복회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낯 뜨거우니까 면사는 벗으시지요 누님.”
“들켰군.”
뭐야, 심지어 구면이었어?
“아, 혹시 장 소협께 누님 나이 말씀안하시고….”
“허어, 사람 참. 내 모든것을 아시고도 받아들여주신 낭군님일세.”
“그러면 누님, 배분이 어떻게 되는겁니까?”
“나를 누님으로 모실거면 상전이고, 초 소저로 부를거면 장 소협이지.”
“외통수로구만! 으하하하!”
말을 그렇게 하는 것 치고 표정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긴장을 좀 놓아도 되는건가?
“어떻게 된거요 누님 도대체?”
“그보다 불과 열흘전에 보타암에서 있었던 일을 자네가 알고 있는게 더 궁금하군.”
“지금 온 중원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무슨 소문?”
“노망났던 검후가 생사경을 이루고 반로환동해서 검각을 봉문시키고 은거했다고.”
놀랄 헐이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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