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무림치매대응반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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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앙!
날카롭운 금속성이 울려퍼지고 다시 한 번 서령이가 뒤로 튕겨졌다. 철벽같은 표정으로 린이가 검을 다시 늘어뜨리고 손짓한다. 내가 봐도 이건 답이 없는 싸움이다. 살아온 세월만 따져도 거의 50년이 차이가 나는데. 일부 기재들을 빼면 무공에 있어서 시간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요소다. 안타깝게도 서령이는 그런 기재는 아니었다.
“반수검은, 칼을 쥔 손보다. 오른손이나 발놀림이 더욱 중요한 무공이에요.”
“그래?”
“보통의 검술은 왼손을 크게 신경쓰지 않지요. 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건 공격에 적극적으로 활용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화란이도 어느새 옆으로 와 반수검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당연히 왼손이 가지는 질량도 상당하므로, 초식에 왼손의 움직임이 정해져 있고 검결지를 맺어 몸의 중심이동이라거나 방어시에 검 면을 받쳐주거나 등등 활용법 자체는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검술은 어디까지나 검이 중심이지. 양손을 사용해야 하는 초식도 간혹 있지만.
“반면에 반수검의 경우는 검을 들지 않은 오른손이 적극적으로 공세에 활용이 되죠. 지금처럼요.”
서령이는 린이의 검에 자신의 검을 강하게 후려쳐 검을 봉쇄하면서 오른손으로는 린의 옷깃을 잡으려고 시도했다. 물론 린은 손만 슬쩍 비틀어 튕겨버리고는 옷깃을 잡으러 오는 서령이의 오른손에 검면을 슬쩍 들이댔다. 실전이었으면 아마 손목이 날아갔을거다.
“더 하실건가요?”
“차라리, 저를 죽여요.”
“지금은 벨 가치조차 없군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건 말이 심하지. 린이는 말에서 그친게 아니라 이제 공세를 취하겠다는 듯 검을 들어 올리며 살기를 폭사시켰다. 내 일인데 내가 계속 팔짱끼고 보고 있는것도 병신같으니까 슬슬 말려야겠다. 무슨 결론이 나건 말로 풀어야지 이게 왠 야밤에 칼질이야.
“이제 그만 하게 해. 좀 심한 것 같아.”
“응. 오라버니. 그냥, 백소저가 오라버니에게 진심인 만큼 무공에도 진심인지 알고 싶었어.”
“야, 따지고 보면….”
“알아 나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전부 내 잘못인거. 백소저에게는 제대로 사과할테니까 나, 너무 미워하지마.”
잔뜩 풀이 죽어서 저렇게 까지 이야기를 하면 내가 또 할 말이 없지.
“정말, 주인님을 생각하고 수련을 한 게 맞나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네요.”
“다시 오세요.”
“다시.”
수없이 휘두르고, 튕겨나가고, 구르고, 넘어지고. 서령이의 얼굴은 잠깐사이에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한 번씩 서령이가 나뒹굴 때 마다 린이의 차가운 말이 비수처럼 서령이를 찌른다. 야, 차라리 칼로 찔러. 문파단위로 내리갈굼을 실천했던 전문가 답게 과연 (전)검후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다.
“그만해 이제.”
“…네 주인님.”
그래도 며칠 같이 있었다고 린이의 표정이 읽힌다. 놀랍게도 검후님은 좀 재미있어 하고 계신다. 어우. 얘 성격 진짜. 내가 나서며 그만하라고 하자 린이는 바로 검을 집어 넣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서령이는 그 자리에 못 박힌듯 서 있다. 아니, 그만하자니까.
“삼아. 나, 나…실격이야?”
“서령아 일단 진정하고 들어가서 이야기 하자.”
“나, 저기…. 시중이라도…응? 음식도 잘 하고, 빨래도 잘 해!”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지금 그 제발은 내 입에서 나와야 할 것 같거든. 진짜 올해 뭐에 씐건가 전생 현생 여자랑 크게 관계도 없었던 삶이 단기간에 이렇게 되는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서령이의 손을 잡았지만, 서령이는 왼손의 칼을 놓치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일어나요 백소저. 오라버니 곤란하게 하지 말고. 같이 가려면 준비할 게 많으니까.”
“예..?”
“저희가 감히 백소저의 마음을 평가하고 할 주제가 안되는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이 좀 곤란해서 부득이하게 손을 썼어요.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연이가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꾸벅 숙인다. 어려도 거의 50년은 어린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기가 쉽지 않을텐데. 반성을 하긴 하는건가? 지금 내 핑계를, 내가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어서 무림맹의 이목을 피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긴 하지만, 결국 연이가 자각한 질투심도 한 손 보탠것이 사실이다.
“제 욕심이라고 할지…. 아무튼 사과할게요. 함께가요. 백소저.”
“하아…. 하하하…. 그럼, 저. 다시 삼이하고 떨어지지 않아도 되는거죠? 그렇죠?”
“누구도 백소저에게 강요할 수 없을거에요. 다시는.”
아니 야, 말만 들으면 서령이가 나랑 매일같이 붙어다닌 줄 알겠네! 물론 코찔찔이 시절에야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었던건 사실이지만. 으으으음…. 뭔가 미묘하다. 전생의 소꿉친구물과 비교해봐도 상당히 판정이 애매한 느낌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잠시후에 하고, 일단…. 화란아?”
“네 언니.”
“네가 가서 백소저좀 챙겨주렴.”
“그렇게 할게요.”
화란이가 억울해서 우는지 기뻐서 우는지 모를 서령이를 챙겨서 씻을 수 있는곳으로 데려가고 나와 연이, 그리고 린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죄송해요 주인님.”
“넌 또 뭐가?”
“제가 조금 더 조절했어야 했는데.”
“아냐, 넌….”
잘 했다고 하려다가 좀 재미있어 하는 기색이라 말을 아꼈다. 그냥 신경쓰지 말라는 뜻을 담아 머리만 쓰다듬어 주었다. 연이는 여전히 침중한 기색이다.
“자, 이제 앞으로는 섣불리 삼처사첩이니 안 하는거다 알았지?”
“응. 미안.”
낮에도 한 번 다짐을 받았지만 이참에 아예 못을 박아야겠다 싶어서 굳이 한 번 더 이야기 했다. 하렘도 어느 정도껏이라야지. 이러다 나중에 애라도 낳으면 누가 누구 애인지 애들 얼굴도 모르게 생겼다.
“린이한테도 미안하다고 해.”
“미안해 린아.”
“사과는 받아둘게요. 그치만, 검후가 아닌 주인님의 린이도 나쁘지 않으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마세요.”
과연 나이들이 있어서 그런지 자기들끼리는 적당히 퉁치고 넘어가는 느낌이다. 린이도 뭐. 그때 그렇게 죽이네 살리네 했던거 치고는 일행에 잘 어울려 다니고 있고.
“들어갈게요.”
문 밖에서 화란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물기가 좀 묻어있지만 깨끗해진 서령이와 화란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삼아…!”
서령이는 이제 아무것도 거리낄것이 없다는 듯 일직선으로 내게 달려와 안겨 들었다. 허, 이것 참 손을 어디다가 두어야 할지. 마주 안아 주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목석처럼 가만히 있기도 뭣하고.
“어디 다친데는 없고?”
“응…. 린 님께서 안 다치게 신경을 많이 써 주셨어.”
그렇다면 다행이고. 기특해서 린이쪽을 봤더니 린이가 헛기침을 하고서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우리는 내일 떠날거야. 오늘은 일단 집에가서 백 아저씨께 사정을 설명하도록 해.”
“삼이가 살아있다는걸 말하면 안되는거지?”
“미안하지만 그래.”
“알았어.”
그제서야 서령이가 내 몸에서 떨어졌다. 일단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다들 둘러 앉게 했다.
“지금 남은 일들을 정리하자. 갑자기 칼부림을 하느라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지만.”
“응 오라버니.”
“먼저, 서령이가 가져온 원본은?”
“그건 아까 린 님께.”
모용소저라거나, 뭔가 다른 호칭도 있을텐데 서령이는 린 님이라고 깍듯이 존경을 담아 부르고 있었다. 아마 아까 대적하는 과정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보았기 때문이겠지. 아, 그러고 보니.
“해남검파에는 혹시 노망난 고수라거나 없어?”
“딱히…? 전전대 문주님도 아직 정정하시고.”
“흐음….”
일단은 해남도 세외로 분류되긴 하니까. 여기까지는 그 조직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건가, 아니면 단순히 해남검파에는 그들의 기준을 충족하는 정도의 고수가 없었던 건가.
“서령이 넌 같이 떠나는데 문제는 없는거지?”
이렇게 말하니까 뭔 무림의 진짜 큰 비사를 파헤치러…가는게 맞나? 그렇다고 치자. 안 그러면 위협받은 내 목숨이 초라해지니까. 죽을뻔 했는데 별거 아닌 이유로 그런거면 억울하잖아. 그래도 환생자씩이나 되는데.
“있어도 없어. 그냥 강호행을 떠난다고 할거야.”
“알았어. 그럼 그건 그렇게 처리하고. 연이는 원본 좀 봐 주고.”
“오라버니가 데려다 주고 와.”
“서령이를?”
“응.”
“아니 백 아저씨 댁은 여기서….”
“거리가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래 뭐. 서령이가 대충 봐도 어디가서 맞고 다닐 만한 약한 여자애는 아니라지만, 꼭 그래야만 데려다 주는건 아니니까.
“가자 그럼.”
“응.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요. 오늘은 미안했어요.”
괜찮다는 듯 서로 미소를 나누고 자리를 정리했다. 화란이와 린이는 적당히 주변을 경계하면서 쉴테고 연이는 원본을 보겠지. 서령이와 함께 후원을 나섰다. 백 아저씨 댁이면 바로 요 아래다. 우리 집이 마을에서 약간 거리가 있긴 하지만 경공을 써서 일직선으로 가면 몇 호흡 만에 도착할 거리다.
“아, 아버님 어머님께 인사를….”
“어차피 내일 다시 올텐데 뭐. 내일 아침은 먹고 출발할 생각이니까 인사할 시간은 충분해. 걱정하지마.”
“혹시 나, 떼 놓고 갈 생각은…아니지?”
“안 그래 안 그래.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
“그럼 진짜, 죽을때까지 너 찾아 다닐거야.”
오늘 린이의 그 살벌한 기세 속에서 넘을 수 없는 벽에 칼을 들고 덤비는 꼴을 보면 아마 빈말이 아닐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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