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치매대응반-39화 (39/122)

〈 39화 〉 무림치매대응반 39

* * *

연이가 비급을 보는 동안 화란이와 가볍게 산책을 하려 나왔었지만 산책을 한 결과는 우리집 뒷산 중턱을 움푹파인 황무지로 만들며 끝이났다. 엄…. 너무 격렬하게 몸을 섞었나.

“헤헤…. 너무 좋아서. 음…. 여기까지 밖에 복구가 안되네요.”

“이 정도면 뭐. 대련이라고 했다고 우기지.”

연이는 안 믿겠지. 상관없다. 다른 사람들한테 핑계댈 거리가 필요한 거니까. 정신줄을 놓고 절정에 오르더라도 기운은 정신줄을 놓지 않도록 수련해야겠다.

“이제 돌아갈까요 삼랑?”

“그래.”

종종 이렇게 한 명씩만 데리고 나와야겠다. 화란이와 한층 더 가까워진 거리를 느끼며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산 밑으로 내려왔다. 산 밑에선 다시 경공을 펼쳐서 집 안으로. 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이가 책상에 앉아서 심드렁한 얼굴로 건너다 본다.

“아주 그냥….”

“뭐. 왜.”

“말을 말자. 짐승이야 짐승.”

심사가 잔뜩 뒤틀린 듯한 연이의 얼굴을 보며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화란이가 옆구리를 툭 친다. 아마 둘이서 뒹굴고 와서 삐진모양이다. 화란이는 이제 저녁때니까 식사준비를 돕겠다며 방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색해진 공기에 당황하다가 앉아있는 연이의 뒤에 서서 몸을 구부리고 연이를 끌어안았다.

“다음엔 너도….”

“씨…. 나한테는 그렇게 안 해주고서.”

“아니 그게 그때는….”

화란이가 합류하기 전에 연이와 신나게 뒹굴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때는 내가 어색해서 수동적인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그게 다 들리냐?”

“…하도 기운이 미친듯이 날뛰길래 가서 봤다 왜!”

“그...그래?”

기척을 못 느꼈는데. 하기사. 연이는 우리 중에 가장 강하니까 기척을 감추는건 쉬웠겠지. 나도 오늘 작정하고 화란이를 다정하게 대해줬고 화란이는 화란이대로 적극적으로 덤볐으니까. 그걸 그대로 옆에서 보고 있었으면…. 아무리 나이가 많고 자기 입으로 뭐 투기를 안한다 정실이 있으면 첩이면 된다 했어도 여자 마음이 또 그럴 수 있나. 이만하길 다행이지 젊은 애들 같으면 이미 칼부림이 났을거다.

“기분 풀어. 응?”

“나도 좀 다정…흐으으응….”

눈을 내려깔고 새침하게 투덜거리는 연이의 얼굴을 내쪽으로 돌려 그냥 그대로 입술을 덮었다. 부드럽게 혀를 집어넣고 손은 아래로 내려서 풍만한 가슴을 옷 위로 쓰다듬었다.

“프후…. 이런다고….”

“에이 화내지 말고.”

“아니 화 난건 아닌데. 그냥….”

처음에야 뭐 나랑만 뒹굴고 반로환동도 했겠다. 소싯적에는 무림제일화라고 불렸던 미모니까 자신이 있었겠지만, 왠지 오늘 화란이랑 둘이 나갔다가 온 걸로 평정심이 깨진 것 같았다. 매사에 여유있던 표정이 왠지 모를 초조함으로 가득찬 걸 보니까 이거 또 수컷의 뽕이 차 오른다.

“뭐야 오라버니.”

“응?”

“오라버니는 기분이 좋은가봐?”

나도 모르게 연이가 귀여워서 표정 관리가 안됐나보다. 애써 입꼬리를 끌어 내리고 헛기침을 했다.

“흥. 남자들은 어차피 똑같지 뭐. 한 살이라도 어린애가 좋은거 아냐. 소주 청루 제일의 미녀인데 오죽했겠어.”

“에에이, 왜 그르냐. 일흔이나 예순아홉이나….”

“뭐?”

아차 실수다.

“후웅…. 좋아. 오라버니가 곤란해하니까 오늘은 그냥 넘어갈게. 나도 내가 어린애들처럼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젊게 살면 좋지 뭐.”

“아…. 으으음….”

아, 이것도 실수다. 젠장.

“아, 아무튼, 나도 형님들 도와드리러 가 볼게. 나, 저기.”

“으응?”

“오라버니한테 화난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얼굴이 잔뜩 붉어져서는 휭하니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건 또 무슨 전개야 참. 이 시대 사람들이라고 연애를 안 하는 것도 아닐텐데 저러는걸 보면 너무 오랜만이거나, 아니면 정말 처음이거나. 나같은 연애고자도 지금 연이의 상태를 알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뭔지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거, 귀엽네. 지금 당장 방 밖으로 나가서 붙들고 이야기 할 것도 아니고, 애들이야 그렇다 쳐도 나 본인은 빼도박도 못하고 죽은 사람이니 그냥 얌전히 방에서 쉬기로 했다.

그렇게 또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는다. 여전히 연이와 화란이는 생글거리며 어머니와 형수님들과 수다를 떠느라 바빴고, 나는 아버지와 형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하고 있었다. 근데, 린이는 아직 안 오나? 저녁쯤에 온다고 했는데.

“다녀왔습니다. 주인님.”

불쑥 본채의 문이 열리고 방금 머릿속으로 떠올린 린이가 들어왔다. 주인님 소리에 우리애들을 제외하고 내쪽으로 휙 시선이 쏠린다. 야 그건 우리끼리 있을때나 하는거지.

“어서와. 밥 못 먹었지?”

“네. 언니. 데려왔어요.”

뜬금없이 누굴 데려와? 으잉? 하는 느낌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답은 어머니한테서 튀어나온다.

“고생했어요 린 소저. 밖에 왔으면 데리고 들어와요. 밥 부터 먹이게.”

“네 어머님!”

그리고 린이 밖으로 다시 돌아나가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데…. 어째, 익숙하다.

“삼아!”

그 작은 인영은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내 품으로 날아 들었다. 눈물젖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삼이다…. 진짜 삼이다…. 으흐윽…. 삼아. 흐에에에엥!”

“너, 혹시 서령이냐?”

“응응! 살아있었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체 누구한테 감사하다는 건지. 얼마나 울어대는지 내 앞섶이 금방 축축해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낸다. 대체 얘를 왜 린이가 데리고 오는건지. 린이가 오늘 나간다는 볼일이 얘를 데리고 오는 거였으면 왜 나한테는 비밀로 한 건지. 물론 알았으면 말렸을게 뻔하지만.

“서령아, 그만울고 얼른 앉으려므나. 삼이는 도망가지 않는단다.”

“훌쩍. 네. 네에 어머님. 죄송해요. 그치만….”

“안다, 알아.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지?”

“흐아아아앙!”

어머니랑 이야기를 할거면 어머니를 보고 하면 안될까. 왜 계속 내 품안에 고개를 파묻고 이러는 건데? 아까 적당히 묻고 지나갔던 연이가 다시 감정이 요동치는지 점점 표정이 불퉁해지기 시작한다. 주변을 둘러보니 연이와 나를 빼고는 다들 눈시울을 붉히고 손 끝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있다. 심지어 아버지까지!

“이거, 저기 누가 저한테 상황좀 설명 해 주면 안됩니까?”

“잠깐 나가요 오라버니.”

가족들이 있는 앞에서는 나한테 꼬박꼬박 존칭을 사용하는 연이가 내쪽으로 다가와서 손을 붙들었다. 일단 내 가슴팍에 있는 얘를 좀 떼어내야 할 것 같은데?

“서령아, 일단 먼 길 오느라 고생했으니까 숨좀 돌리고, 밥 먹고 다시 이야기 하자. 삼이는 어디 못 가도록 아주머니가 꽉 붙들어 놓을게.”

“네 어머님. 흑.”

그제서야 서령이가 어머님의 손길에 이끌려 밥상쪽으로 이동했다. 밥을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싹 달아나서 엉거주춤 서 있으니까 연이가 내 손을 붙들고 본채 밖으로 당겼다. 일단은 따라 나와서 본채 문을 닫고 연이에게 따져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보시는 대로.”

“니가 꾸민거냐?”

“꾸미긴 뭘 꾸며.”

“나한테 이야기 안했으면 꾸민거지.”

“지 좋으라고…. 아니다.”

으으음. 이거 아무래도 아까 화란이랑 꽁냥거린게 연이한테 타격이 큰 모양인데. 일단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지금의 감정상태는 돌발사태인 것 같으니까 이거부터 뭘 어떻게 좀 해야겠다. 나는 연이의 손목을 끌고 본채에서 벗어나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 와중에 연이는 몇 번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놔주지 않았다.

“아파!”

그럴리가 있냐! 칼로 찔러도 칼이 부러지는 사람이. 아, 이게 아니지. 나는 그대로 다짜고짜 연이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고 연이를 꽉 끌어 안았다. 이럴때는 말이 필요 없다고 했다.

“흡! 우으으응!”

아까 다녀와서도 입맞춤을 했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하고 절실한 마음을 담으려고 노렸했다.

“하아…. 왜 자꾸 입을 맞춰?”

“기분이 안 좋은것 같은데,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오라버니 때문이 아니야. 내가 문제인거지. 아, 입은 그만. 방금전까지 밥 먹다 와서 부끄러우니까.”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네 문제가 내 문제야.”

진짜다. 지금같으면 연이가 없는 생활은 꿈도 못꾼다. 마음적인 부분은 음…. 그건 아마 그렇게 될 예정이고. 유틸적인 부분에서도 내 생활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부분은 크다.

“하아…. 그 심공.”

“아…. 천지 음양 어쩌구?”

“‘천지음양명암한온환원공’이거든? 자기 무공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

“제대로된 무공도 아니라며.”

“하여튼! 내 말은 꼭 토를 달고….”

“야 내가 니 말을 얼마나 잘 듣는데 그래?”

“몰라! 하여간 그거 원본을 린이 보내면 빠르게 회수 해 올 수 있을것 같아서 그러려고 했는데.”

“했는데?”

“해남검파의 백서령 소저에게 있다지 뭐야.”

필사가 아니라 목판 인쇄를 할까 해서 서령이를 통해 해남파 주변의 마을에서 해결하려고 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거대 문파가 있고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면 인쇄도 가능하니까. 지금 시대에 목판인쇄가 그렇게 고급서비스도 아니고.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은 연이와 화란이, 린이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찾아가 서령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편지도 다 읽었으니까. 백소저가 오라버니의 혼약자가 맞고, 아직 오라버니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면 같이 데리고 가고싶다고.”

“아이고 두야….”

“어머님도 고민을 하고 계셨대. 백소저가 오라버니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직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나봐. 안그래도 오라버니가 돌아오긴 했는데 이걸 백소저한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우리한테 물어보는 것도 실례될 것 같아서 골머리를 앓고 계셨는데 우리가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하셨어.”

그걸 또, 우리 어머니가 고맙다고 하니까 낼름 대인의 풍모를 보인답시고 린이가 어차피 원본을 회수하러 가야하니까 이야기 하고 데리고 오겠다. 잘 이야기 해보고 서령이가 아직 날 마음에 두고 있으면 같이 가겠다. 안봐도 블루레이 4K다.

그래놓고는 내가 화란이랑 자기하고 그런 적 없었던 분위기로 알콩달콩하니까 갑자기 멘탈이 바사삭. 그래도 화란이는 합류한지 좀 되기도 했고 나름의 동질감도 있으니까 어찌어찌 외면할 수 있었는데…. 서령이가 와서 날 끌어안고 펑펑 우는걸 보니 바스라진 멘탈을 확실하게 절구에 넣고 가루가 되도록 빻은 상태.

아무리 우리가 좋은 마음으로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사람이 늘어나면 결국 충돌이 있기 마련인데, 그걸 생각도 안하고 영웅은 삼처사첩 어쩌고 하면서 여자를 늘려대더니. 자기가 생각해도 지금 본인 상태가 당황스럽긴 한지 한층 누그러진 얼굴이었다. 나는 연이의 머리를 당겨 꼭 끌어안고 그냥 사과를 했다. 내 잘못은 없지만. 뜬금없는 질투의 불길에 얼타는 모습이 불쌍해서

“흠. 내가 좀 더 강하게 못을 박아둘걸 그랬다 연아. 미안해.”

“으으응. 아니. 내가 더 미안해 오라버니.”

사실, 까놓고 말해서 내 탓은 아니지! 나는 반대했다! 반대했다고.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이나 여기 중원이나 여자는 다 똑같다. 이 자리에서 니가 괜찮다고 했잖아 잘잘못을 따져본들 무엇할 것인가. 따지자면 그래, 내 과실이 있지. 못 말렸으니까.

“나는, 오라버니가 나 싫어하더라도 죽을때까지 옆에 있겠다고 각오했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되나.”

“그러네. 이 나이를 먹고도 자꾸 오라버니한테 배운다. 헤.”

“나이 이야기 하지말고.”

자꾸 생각나니까. 칠십년을 살고 일가도 이뤘던 사람이 이런 감정적인 부분은 사춘기 고삐리만도 못한 상황이라니. 솔직히 귀여워서 못살겠네.

“그래서, 린이가 지금 서령이를 여기로 데리고 온거다?”

“…응.”

하아…. 생각만 해도 골이 지끈거린다. 편지에 적어놓은 감정이나, 나를 보자 마자 달려드는 꼴이나. 떼놓고는 못 갈 거다. 그러게 그냥 조용히 가자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