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무림치매대응반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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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받거라.”
“이거군요. 혹시 이거 연이가 좀 봐도 괜찮을까요?”
“며느리가 본다는데 괜찮고 말고. 어차피 우리 마을 사람들 집집이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며느리는 아닌데 아직….
“네. 금방 보고 돌려드릴게요.”
“그냥 가져가거라. 그래도 가전무공인데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그러겠습니다. 원본은요?”
“사람을 보내 두었으니 저녁이면 가져올 수 있을게다.”
다 같이 모여 아침밥을 먹었다. 이형이 안 보였는데 형님이 아침에 나가서 사본을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따로 불러 ‘천지음양명암한온환원공’ 이라고 적혀 있는 책을 한 권 내 주셨다. 굉장히 얇다. 하기사. 별 내용 없었던 걸로 기억하니까. 그런 주제에 따라 읽기도 힘든 ‘천지음양명암한온환원공’이라니 아 숨찬다.
“잠깐이면 충분히 다 보겠는데?”
“그래? 그럼 오늘 밤에 원본까지 보고 내일 떠날 수 있겠네.”
“벌써?”
“왜. 뭐 남은 일 있어?”
“아니 그런건 아닌데, 어머님하고 아직 이야기도 제대로 못 했는데….”
제대로 못하기는 무슨. 아침밥도 어머니랑 같이 먹고 식후에 차까지 마시며 한참 수다를 떨었으면서.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때 내 옆구리에는 불침번을 서다가 아침에서야 잠깐 누운 린이밖에 없었다. 연이와 화란이는 형님들과 함께 아침준비를 한다며 신이 나서 나갔다더라고. 해가 중천에 뜬 지금,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양의 정보가 오고갔을텐데 그걸 제대로 못 했다니….
“아무튼. 내일 떠날거야.”
“흐응…. 뭐. 그래. 오라버니가 그렇다면 그런거니까.”
괜히 여기 있다가 뭐 서령이 이야기라도 나오고 이러면 피곤해진다. 후딱후딱 처리하고 떠야지. 날 보고 또 비실비실 웃는게 저거 왠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추궁해봐야 말해줄리가 없으니 그냥 신경을 꺼버렸다. 화란이는 침상에서 쉬는 중이고, 린이가 안보이네.
“린이는 어디갔냐? 잠도 못 자놓고서는.”
“뭐 좀 알아볼게 있다고 나갔어. 저녁쯤엔 돌아올거야.”
연이는 비급을 펼쳐 놓고 정독에 돌입했다. 연이 정도로 똑똑한 고수라면 금방 그 안에 있는 오의를 파악할 수 있을거다. 모르는게 있으면 아마 아버지께 여쭤보러 갈거고….
“아.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으응?”
“이건, 고수를 양성하기 위한 심법이야.”
아니 무공중에 고수를 양성 안하는 게 있나.
“에이 그냥 좀 알아 들어라. 고수를 양산하기 위한 거야. 일정 이상의 고수를 뿅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듯이 만들어내는게 목적이지.”
“아아…. 그래서….”
“구결에 따라 제대로 운기를 한다면 혈도를 돌면서 탁기와 내공을 싹 밖으로 내보내게 되는거야.”
잠깐만. 뭘, 뭘 내보낸다고?
“뭘?”
“내공.”
“끄으응…. 진짜?”
“내가 이걸 가지고 오라버니한테 거짓말 해서 뭐하게.”
“아니 그럼 정말 약하게 쌓이는 내공은 뭐야?”
“그건 진짜 순수한, 다른 누군가의 막대한 내공이 들어와서 섞이더라도 오히려 도움이 될 기운들. 자연을 통해서 인간이 숨쉬듯이 받아들이는 정말 순수한 기운.”
아, 그래서 이게 그렇게 정심한 기운만이 쌓였던 거구나.
“몸안에서 정말 순수하고 정심한 기운을 제외하고는 몸 밖으로 빼버리는거야.”
원래 목적은 그렇게 탁한 기운을 다 빼버리면서 다른 고수들의 내공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혈도를 튼튼하게 다지고 경지 상승을 준비하기 위한 명상을 하는게 주 목적인 심공이라고 한다. 심공이라기에도 좀 아깝고 하여간 뭐 대충 그런…. 극도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기에 딱히 구결을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몸에 해가 될 만한 일이 생기는건 없고…. 운기에 사용하는 혈도 자체가 위험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혈도들을 통해 기운을 발산하는게 주 목적이라서 정말 몸이 튼튼해지고 건강해지기만 한다고. 연이는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배를 잡고 웃었다.
“운기토납법이 아닌데 운기토납법 중에 최고를 집어오셨네. 아버님께서.”
“그러게. 전화위복이라기도 이상하고. 천재일우쯤 되려나?”
그래서 이 읽기도 힘든 ‘천지음양명암한온환원공’으로 쌓이고 쌓인 기운이 일정 이상이 되면 신묘한 효과를 발휘하는거다. 대충 이십년쯤 축기를 하면 주변의 순리를 벗어난 기운을 끌어당겨 몸 밖으로 배출을 해버린다.
“이게 어떻게 노망을 치료한거지?”
“음. 오라버니의 이 기운이 중독된 사람들의 머리 근처에만 가도 독기에 손상을 줘. 단기적으로 보면 독기가 더 날뛸수도 있을텐데 결국 이 독기를 의원이나 고수들에게서 감추기 위해 씌워둔 위장용 기운이 오라버니의 내공에 휘말려서 날아가버리는거지.”
그 뒤는 평범한 독기처럼 머리 전체에 퍼진 걸 끄집어내서 태워버리면 되는거고. 아, 물론 지 멋대로 움직이고 파고들어서 간단하지는 않지만 아예 가려져 있는 상황에 비하면 말도 안되게 쉬운일이라고 한다.
“어떻게 퍼져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건 건드려봐도 아무런 반응을 안해. 그런게 아니었으면 이미 옛날옛적에 노친네들이 독기때문이라는걸 찾았겠지.”
나는 뭐 그럼 인간 산공독 같은건가?
“에이 그런거면 우리 기운도 오라버니앞에서 다 흩어졌어야지. 말 그대로 부정한 기운들. 자연의 기운이라기에는 너무도 변질된 기운들이 아니라면 오히려 내공같은건 오라버니의 기운과 만나서 좋으면 좋았지 나쁠건 없을거야.”
“그건 다행이네.”
그럼 대충 사본에서 확인할 내용은 다 확인한건가? 사실 저런 내용이라면 딱히 원본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오라버니,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을 고수로 만든다면 누굴 선택할거야?”
“그거야 당연히….”
아버지? 아버지가 고수가 되시면 좋긴 하겠지만, 이미 손주까지 그득한 할아버지인데 지금 고수가 되신들…. 일이 형이 괜찮으려나. 일이형이라면 앞으로도 한참 더 살거고. 장천무관의 관주로서 무관을 더욱 발전시킬 여지도 있을 것 같고.
“일이형이 제일 나을것 같은데.”
“아주버님의 성정은 어떠셔? 지나치게 폭급하시다거나.”
“으으음…. 말 그대로 평범해. 우리집 남자들은 다들 나랑 비슷하지.”
진짜로. 현대인이라서 내가 지나치게 사리는 부분이 있긴하지만 우리집 사람들은 다들 나랑 비슷할 정도로 무난한 성격이다. 무림맹 무사로 계속 사시다가 남경 주변에서 뭘 하실수도 있었는데 해남까지 내려온 우리아버지가 그렇듯이.
“형님께서도?”
여기서 연이가 말하는 형님이면 아마 큰형수님을 말하는 거겠지. 마찬가지다. 어릴때부터 같은 마을에서 자랐고 서로 얼굴을 자주 본 건 아니지만 적당히 나이 맞아서 혼례를 치르고 잘 살고 있다. 애도 넷이고. 동의의 뜻을 담아 연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흐음…. 아주버님께서도 수련은 열심히 하셨지?”
“일단은 부관주니까. 나보다야 훨씬 오래 하셨겠지.”
“그럼 그렇게 하자. 우리가 나중에 떠나고 나서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아주버님께서 대처하실 수 있도록.”
아, 그렇게 해 두면 확실히 안심이 될 것 같다. 솔직히 뭐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갑자기 어둠속의 암약단체가 전력을 기울여서 해남을 치진 않을거고 간을 몇 번 볼텐데 그 정도라면 한명의 절정고수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것이다.
“혹시나 노파심에서 말해두지만, 오라버니 이게 이런 용도의 심공이라는건 절대 새어나가면 안돼. 알고 있지?”
“물론이지.”
내가 그렇게 정심한 기운을 가지게 된 것은 부가적인 효과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를 양산할 수 있는 이 심법은 실제로 존재가 밝혀진다면 제법 파장이 클 것이다. 고만고만한 문파들끼리 세력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단기간에 절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편이 될 테니까. 사파쪽에서 손에 넣어 강대한 세력을 만들어 낸다면 기존의 구파일방 세력과 충돌하여 피바람이 불 것이다. 나처럼 별 생각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머리 좋은 놈들 손에 들어가 효용이 밝혀진다면….
“너무 그렇게 겁낼것까진 없고. 나야 오라버니의 상태를 기반으로 어느 정도의 가설을 가지고 되짚어 봤으니까 알 수 있었던 거지. 이거 그냥 큰 생각없이 보면 정말 운기토납법으로 착각하기 쉬워. 그러니까 저자에 나돌고 있었던 거겠지만.”
“어쨌든 함구를 해야할 일이군. 일이형을 고수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응. 괜히 우환이 될 수 있으니까.”
“아, 그럼 일이형이 심후한 내공을 가지게 된다면 이 심법을 오래 수련한 다른 사람들도 고수로 만들 수 있게 되는건가?”
“역시 눈치채네. 응. 그렇지. 하지만….”
“안 하는게 좋겠지. 자칫 잘못해서 충돌이라도 생기면….”
“힘이 있으면 쓰고 싶어지는게 사람이니까.”
어차피 해남도에는 해남검파가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해남검파에서 지원해 줄 것이다. 해남검파는 해안의 왜구 방어부터 시작해서 이 해남도 안에서는 지방자치정부처럼 움직이니까. 또 그렇기에 장천무관이 뜬금없이 다수의 고수를 보유하게 되면 안되는 거고. 다만 진짜 정말 급한 유사시를 위해 아버지에게 살짝 단서 정도는 드려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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