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무림치매대응반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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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우리가 오라버니한테 들러붙어서 그렇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삼랑께서 우리를 받아주셨지만, 삼랑은 삼랑의 인생이 있으니까요.”
받아주신…거에서 린이는 좀 빼야 하지 않을까. 지금 그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우리는 오라버니한테 받기만 해.”
“맞아요.”
“그렇죠.”
내가? 내가 뭘 줘. 내공도 니들이 주고, 밥도 니들이 먹여주고, 돈도 연이가 다 내는데.
“그런게 아니라…. 아휴 정말. 어디다 쓰지 이 남자?”
“거 그렇게 대놓고 무쓸모라고 하기 있습니까?”
“농담이에요! 농담! 언니, 빨리 삼랑께 사과해요.”
“미안해 오라버니. 농담이 과했어.”
“그런걸 하나하나 사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실제 무쓸모인것도 사실이고.”
“아니에요 주인님!”
솔직히 린이 너는 나한테 뭘 받았다 어쨌다 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타이밍 아니냐? 합류시점이 일주일 밖에 안됐으면서.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어…. 연이언니가 설명 해 주실거에요.”
“그걸 또 떠넘기네.”
“왜. 린이 귀엽잖아. 이렇게 귀여울 줄 알았으면 젊을 때 교육해서 끼고 다닐걸 그랬다니까?”
“헤헤….”
지들끼리 살가운 눈빛을 주고 받고 헤실거리고 있어도 저렇게 대사 중간에 ‘젊을때’ 같은 워딩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이 할망구들의 원래 모습이 등 뒤로 오버랩 된다. 어우. 아, 그래도 다행인건 있다. 얘들 늙어서도 이 미모 어디 안간다는 거? 대한민국에서 온갖 에스테틱으로 떡칠을 하고 카메라 보정까지 받는 나이든 사람들 보다도 훨씬 보기 좋았었다. 기본 베이스가 되니까 그런거겠지.
“오라버니? 우리가 받은건, 흠. 보아하니 말 해줘도 모를 것 같으니까 됐어. 그냥 그러고 살아. 우린 우리대로 오라버니 옆에서 받고 살테니까. 그건 괜찮지?”
“언제 안괜찮다고 한 적이 있었어?”
“하여간! 안괜찮다고 해도 끝까지 따라갈거니까.”
몸쪽 꽉찬 돌직구 같은 고백 감사합니다. 거 봐. 내가 괜찮고 안괜찮고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는 것들이 뭘 퍽이나 생각해 주는 것 마냥.
“그래서 삼랑, 우리는 삼랑께서 제대로 가정을 꾸리셨으면 해요.”
“주인님께 저희는 덤 같은 거니까요.”
“제대로된 가정은 또 뭐야?”
“후…. 편지 제대로 안 읽으셨죠?”
“어…그게…아냐, 제대로 읽었…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스크롤이 조금만 길어져도 제일 밑에 세줄요약이 없으면 쌍욕을 박는 인생을 살아왔었습니다.
“여기를 좀 보세요 삼랑.”
화란이가 손가락으로 짚어주는 부분으로 눈을 옮겨 쭉 흝었다. 혼례…. 뭐여 이거. 뭔 소리야 이게?
“이 서령이라는 소저는 이미 오라버니와 혼례를 치르기로 합의가 되어 있었던 거에요.”
“주인님께서 변을 당하셨어도 수절하시겠다니 이 얼마나 가상합니까?”
“응. 맞아 그야말로 정실로 딱 어울리는 소저야. 어릴때부터 오라버니를 계속 지켜봐 왔다니 더 할 나위없지.”
어딜 시건방지게 첩들이 정실에 어울리네 마네 품평질이야? 같은 생각이 안 드는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얘들 확실히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다. 흐음. 이걸 그냥 이야기 해야 하나?
“오라버니가 우릴 아껴줘서 행복하긴 하지만, 그래도 다 그…나이가 많으니까.”
“삼랑께서도 나이에 맞는 좋은 사람과 가정을 꾸리시고 아이도 낳고.”
“주인님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우습지만, 그 때는 그 떄에 맞는 행복이라는게 있어요.”
어, 린이 너는 그런말을 하면 못쓰지. 노처녀 히스테리를 문파단위로 부렸으니까. 일단 얘들 말 하는게 이해는 간다. 분명 무림이건 어디건 사람이 나이가 들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하는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나는 못 해봤지만. 아, 어쨌든. 우리 관계는 뒤틀려있는게 사실이긴 하다. 그건 내가 연이나 화란이, 린이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해도 본인들 마음에 계속 남아 있을 부분이겠지.
몸까지 섞은 마당에 이런 소리를 하면 개새끼 확정이지만 얘들을 아끼고 있기는 해도 아직 막 뭐 불타는 사랑이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고 눈이 마주치면 사랑으로 불꽃이 튀기고 그런 상황은 아니다. 의무감이 섞여 있다고 하면 얘들은 슬퍼하겠지만 그래야 한다는 생각은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으흠…. 일단은. 좀 더 나중에 말 해 주려고 했는데. 나는 약관을 갓 지난 어린 아이가 아니야.”
“그치만 올해 스물 넷이라고….”
“신체 나이는 그런데, 아직은 확실하게 이야기 못 할 이유로 인해 실제 나이는 그보다 좀 많은 편이야.”
내가, 몇 살이었더라. 스물셋에 건너와서 여기서 십구년을 살았으면. 아 모르겠다. 대충 마흔으로 퉁 치자.
“나는 너희들과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 있는 이유로 사십년이 좀 넘는 세월을 살았어. 불혹은 확실히 지났지.”
아무리 그래도 칠순 뇐네 앞에서 꼴랑 사십몇년 가지고 세월이니 어쩌니 하기는 민망하고, 여기서 당장 내가 꿈인지 뭔지 모르지만 미래의 조선반도에서 왔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여자들이 천형처럼 가지고 있는 애매모호한 자격지심을 덜어주고 싶었다.
“아, 그래서!”
“과연, 그렇네요.”
“음…. 어쩐지….”
아니, 그렇게 한 방에 납득할 이야기는 아닌것 같은데.
“오라버니 사고방식이나 행동하는게 미묘하게 젊은 애들하고는 많이 달라서.”
“맞아요. 본인은 티가 안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진짜 젊은 애들이 주인님같은 정력을 가졌으면 지금쯤 저는 제정신이 아닐걸요?”
린이 얘는 왜 자꾸 한 박자씩 핀트가 어긋나지.
“하여간 그래서. 지금 내가 서령이를 정실부인으로 맞이한다고 치면, 나도 니들같은 죄책감을 가지게 될지 몰라.”
“응? 죄책감은 없는데?”
“죄책감이 아냐?”
“우리가 무슨 죄 졌어? 오라버니가 젊은 여자를 못 만나니까 불쌍해서 그런거지.”
“죄라뇨 삼랑. 그런 감정은 서로의 관계에 아무런 도움도 안된답니다.”
어. 음. 민망하네.
“주인님, 팔 좀.”
린이는 슬슬 이 주제에 관심을 잃었는지 내 옷을 하나 하나 벗겨내며 침상으로 끌고 갔다.
“하여간, 됐네 그럼. 정실은 서령소저로 확정.”
“야, 되긴 뭐가 뭐가 되냐?”
“쉿, 삼랑. 어린 신부도 생기고 좋잖아요.”
“난 걔한테 관심 없다니까?”
“원래 혼인이라는게 그래요 주인님. 아, 나도 혼인 해 보고 싶었는데.”
“삼랑께서 같이 치뤄 주시겠지.”
린이의 손에 떠밀려 침상 위에 눕혀지고 그 옆으로 연이와 화란이가 옷을 벗고 누웠다. 불침번은 린이가 서는건가? 음. 검후는 우리중에 최약체지. 아, 나 빼고. 침상에 누울 자리는 없었지만 발치에 엉덩이를 붙일 자리는 충분해서 린이도 침상 끄트머리에 걸터 앉아 내 다리를 쓰다듬었다.
“그 이유 나중에는 분명히 말 해 줄거지?”
“아, 응. 나도 아직 정리를 못해서 그런거니까. 꼭 이야기 해 줄게.”
“그럼 충분해요 삼랑.”
양쪽에서 부드러운 가슴이 팔뚝을 짓누르며 밀착해 온다. 따끈따끈하고, 포근하고, 말캉하고. 음. 생각하기를 그만두게 되는 감촉이다.
“우리가 사연을 몰랐으면 모를까, 한 남자를 같이 연모하는 사이에 너무 안쓰럽잖아?”
“맞아요, 어린 애기가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
어린 애기 아냐. 지금 시대에 무림인인거 감안하더라도 이십대 중반이면 노처녀야.
“그러니까요! 그때까지 주인님을 기다리다가, 주인님이 돌아오면 혼례를 올리려고 기다린거잖아요.”
무림맹에 있어도 일,이년에 한 번 정도는 집에 돌아오게 되니까. 아마 이번에 내가 돌아오게 되면 본격적으로 혼담을 진행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작년 춘절에 왔을 때 까지는 별 이야기가 없었는데.
“글쎄. 나는 이미 죽은사람이 되었는데 지금와서 굳이 엮일 필요가 있을까?”
“정말 여자 마음이라고는 눈꼽만치도 모르는 사람이군요 삼랑은.”
“오라버니가 눈치가 좀 없긴 해.”
필요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 중원 무림 치매 사태의 음모를 파헤치려고 돌아다니는 중인데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애를 끌어들일 이유가 있냐는 거지. 사랑하는…엄.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본인 인생까지 말아먹을것도 아니고.
“살다보면 잊혀지는거지. 금슬 좋은 부부간에 사별을 해도 다들 또 제 인생 살잖아?”
“그 인생의 끝에 여자의 행복이 있을까?”
“그만.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 니들 이야기 듣다보니까 피곤해졌어. 잠이나 자자.”
“도망치시는거네요 주인님.”
그런시대가 아닌거고, 애정관이나 결혼관이 내가 뿌리깊게 가지고 있는 상식과 다르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냉큼 호로록하기에는 또 좀 그렇다. 나야 이제 내 한 몸은 지킬 수 있다지만 강호행을 하면서 위험한 일이 생기면 대처하기도 힘들거고. 자기 합리화인가? 내 인생 예정에 없었던 여자는 셋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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