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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32화 (32/122)

〈 32화 〉 무림치매대응반 32

* * *

“그래서, 다시 무공이야기로 돌아가면, 오라버니는 스스로 강자가 되는걸 두려워 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정확히는 힘이 가지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뭐 그런건가? 아닐 것 같은데.

“오라버니는 강해지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게 지나쳐서 거부감을 넘어 두려움이 되고 있는 것 같고.”

“그런가….”

“사람 잘 본다니까.”

나도 모르는 내 속을 네가…알 수도 있겠지. 어. 그런건 주변에서 더 잘 알수도 있는거니까. 그렇다면 그 가정이 맞다고 쳤을 때 왜 강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떨때 보면 굉장히 강한 열망이 느껴질때도 있는데. 그게 언제인지 알아?”

“언제인데?”

“잡기(??)를 볼때야.”

잡기라니 그게 얼마나 생활에 유용한 기술인데.

“이거 봐, 잡기 이야기를 하니까 눈이 초롱초롱 빛나잖아?”

“흠. 아니 누굴 뭐 다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바로 그거. 누굴 다치게 하지 않는다. 오라버니는 거기에 너무 얽매여 있어.”

아…. 뭐 그렇지. 무림이야 칼밥을 먹고 사니까 서로 죽고 죽이고 썰고 썰리고. 관과 무림이 불가침이 아니라 사실 관의 행정력이 무림을 조질만큼 탄탄하지 못하니까 그냥 서로 쌩까는 것에 가깝다. 여튼 힘있는 놈이면 백주대낮에 사람을 썰어 장기자랑을 해도 안 잡혀간다. 못 잡아간다. 그런 세계다 여기는.

“나는, 솔직히.”

“응응.”

“내가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

거창한 불살의 신념 뭐 이딴거는 아니다. 내가 죽을 판이 되면 나도 나한테 있는 뭔가를 모두 동원해서 찌르고 그러겠지. 그런데, 지금의 내 자아로는 그냥 맘에 안든다고 죽이고, 후환이 될 것 같다고 죽이고, 못생겼다고 죽이고, 아침에 숙취 심하다고 죽이고. 감당 못 할것 같다. 자신이 없다. 두려운게 맞네.

“이야. 연이 사람 잘 보는구나.”

“거 봐. 내가 뭐랬어.”

“그런데 오라버니. 잘 생각해봐.”

“뭘?”

“그냥 그렇게, 만약에 나중에 내가 없을때,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 없어. 없어.”

두번 없었다가는 사람도 잡겠네.

“하여튼 그럴 때 오라버니는 지금 공격 수단이 없으니까, 누군가의 말을 강제로 따르게 될지도 모른단 말야.”

“아…. 뭐 그럴 수 있겠지.”

그럴 것 같진 않은데. 그냥 기운을 끌어 올리고 존버만 때려도….

“평생 그러고 살 건 아니잖아? 그치? 맞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해 주었다.

“그럼 그렇게 강요하는 놈을 피치못하게 해쳐야 할텐데, 그럴때 오라버니가 엄청, 엄청 강하다면. 제압만 할 수 있지 않을까?”

야, 이거 무식한 논린데…. 왜 말이 되는거 같지? 멱을 따는 거 보다 제압을 하는게 어렵긴 하지.

“오라버니 앞에서는 누구도 마음대로 죽고 죽일 수 없는거야. 그러면 지금 오라버니의 걱정은 필요 없을것 같은데.”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니까 강해져야겠지? 그렇지? 응?”

어떻게든 내가 무공수련을 하게 만들겠다는 연이의 열망이 느껴져서 그냥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언제까지 짐짝처럼 실려다닐 수는 없으니까. 한 번 해보긴 해야지.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은 것 만으로도, 엄청나게 달라질거야. 사실은 이런걸 제일 처음에 배워야 하지만, 오라버니는 지금 몸 안에 큰 힘이 내재되어 있는 상태니까 늘 조심하고. 알았지?”

“그래. 그렇게 할게.”

아, 정작 나와서 하려고 한 이야기를 까먹을뻔 했네.

“그래서, 검후는 어쩔거야?”

“내가 기는 죽여놨으니까 오라버니 마음대로 해.”

“마음대로 하다니?”

“노예처럼 부리든, 몸종으로 쓰든. 검각에서 지들끼리 치고 받은거야 넘어갈 수 있지만 어딜 감히 오라버니께….”

“그…그래. 그래 알았다.”

여기서 뭔가 반론을 이야기 했다가는 연이의 기분이 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치를 봤다.

“그렇다고 너무 막 대하라는 아니고. 그러다 린이가 못버텨서 망가지기라도 하면 아마 오라버니는 스스로 힘들어 할 테니까.”

고작 두 달. 아, 아닌가? 무림맹에 있을 때의 기억도 살아 났으면 그 이상을 봤나? 흐음. 제법 내가 찌질한 현대인스럽게 행동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긴 하겠네.”

“나 역시도, 오라버니가 부담스러워 하고 그러면 눈 앞에서 사라질 각오도 하고 있어. 아, 물론….”

“물론?”

“주변에서 떠나진 않을거야.”

“그래…어, 너 좋을 대로 해라.”

연이는 그제서야 베시시 웃는 얼굴로 내 팔짱을 끼고 가슴에 머리를 부비적거린다. 그런 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연이의 품에 안겨서 토굴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제법 오래 잔 느낌으로 눈을 떴다. 토굴 안이라 빛은 들어오지 않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겨울 아침 특유의 느낌이 난다.

“일어나셨어요?”

“어. 음. 네.”

“말씀을 제발, 편하게 해 주세요….”

“후우…. 알았어. 연이랑 화란이는?”

눈을 뜨고 등잔불이 일렁이는 토굴 안을 흝었는데 연이와 화란이가 없다. 내 옆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은 검후만 있다. 아. 검후 자리는 물려줬다고 했지.

“잠시 항주에 다녀오신다고 아침부터 나가셨어요. 주…주인…님.”

항주면 그래도 여기서 보타암근처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데, 그걸 잠시 다녀온다고 나간거 보면 지들은 무슨 현대사회 사는 것 같다. 잠깐만, 그런데 내가 무슨 말을 들은거지?

“주인님이라니? 저요?”

“네…주인님. 부디 말씀을 좀….”

“제가 왜 주인….”

아 뭐 됐다. 어제 토굴로 돌아와서 나는 바로 잤으니까 잠을 거의 안자도 되는 연이와 화란이가 필시 린을 갈궜겠지. 연이만 갈궜으려나. 서열 정리 확실하구만.

“알았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하기로 하고. 언제쯤 돌아온다고 했어?”

“오시쯤 돌아오신다고 하셨는데, 잠시만요.”

당장 여기서 그걸 또 붙들고 늘어지면 말만 길어지고 머리만 복잡해진다. 일단 눙쳐두기로 했다. 린이는 토굴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하늘을 확인했다.

“곧 돌아오실 시간…아, 지금 돌아오시는 것 같네요.”

오시까지 잤으면 진짜 오지게 잤구나. 검후때문이었는지 어째 머리도 지끈거리고 해서 그냥 잠들었는데 피곤하긴 했었나보다. 기본적으로 내가 내공의 고수가 되었으면 피곤함 같은것도 싹 없어져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익힌게 야매라서 그런가.

“우리왔어 오라버니.”

“다녀왔습니다.”

“어. 좋은아침.”

“해가 중천인데 무슨 좋은 아침이야. 린 별일 없었지?”

“네. 언니.”

“야, 잠깐만. 연이는 언니인데 나는 왜 주인님이야?”

“나도 오라버니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참고 있으니까?”

아, 뭐 사실상 그래서 내가 다 주인님이다? 기가 막히는 구만.

“그래 뭐. 그건 알아서들 하시고. 항주는 왜?”

“응. 간단하게 뭐 좀 사려고. 나와 봐.”

연이와 화란이가 내 손을 잡고 토굴 밖으로 이끌었다. 뭘 사왔다는 건지. 토굴 밖으로 나오니 정오에 가까워 지는 따가운 햇빛이 눈부셔서 잠시 눈을 찌푸렸다.

“흐음…. 이건….”

마차 같기는 한데, 이걸 마차라고 봐야하는건지. 바퀴도 없고 말도 없고. 덩그러니…마차 수레부분만 있는 것 같은데.

“뭐야 이게?”

“오라버니의 수련 도구.”

“이걸로?”

“오라버니는 잡기에 주로 관심이 많으니까, 응용적인 부분에서 부터 시작하기로 했어.”

아무래도 빈번하게 터지는 심득과 뻥튀기되는 내공이 영 궁금해서 바로 남해부터 가기로 했다. 원래 무림인은 궁금한건 못 참는다고 우리 집에 있는 비급부터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는데 뭐 그러자고 했다.

그래서 빨리 이동을 해야겠는데, 마차는 타 봐야 이 넓고 거친 중원을 대각선으로 횡단하는 꼴이나 마찬가지고 길도 답 없는 상태다. 이 시대에 관도를 타고 폭주를 해 본들 뭐 얼마나 빠르겠는가. 나를 바꿔 들어가면서 경공으로 이동하는 것도 기각. 산을 뛰고 날듯이 넘어가도 결국 여기 걸리고 저기 걸리고 아무리 잠을 안 자도 괜찮다고는 해도 며칠에 한 번은 또 쉬어가야 하고.

“그래서, 이거란 말이지?”

“생각보다 좋아! 오면서 시험 해 봤는데.”

“오오오….”

연이는 수레에 다가서서 손짓을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수레가 부웅 떠올랐다. 아! 어차피 허공섭물로 오만걸 다 띄우니까 저것도 띄울 수 있겠구나. 이거 장르가 잘못된거 아닌가. 아무래도 여기가 아니라 다른쪽 이세계에 떨어져야 했을 것 같은데.

“올라 타 봐.”

“괜찮아?”

“올때 화란이하고 둘이 타고 왔어. 내공소모는 좀 있지만 충분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거야. 오라버니가 도와준다면.”

“이걸로 어떻게 수련을 하자는건데?”

“움직이는 걸로.”

“나는 못 띄우는 걸?”

“그건 내가 할테니까, 오라버니는 앞으로 움직이는것만.”

그 정도라면 잘 배우면 할 수 있지 않을까? 날으는 마법 양탄자도 아니고, 무림에 와서 이런걸로 이동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확실히 이걸 이용해서 지형지물을 무시하고 남해를 향해 일직선으로 갈 수 있으면 이동 시간은 확실히 단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적당히 요기를 하고 출발하는 걸로 하자.”

“가면서 먹을것도 사 왔으니까 바로 챙겨서 출발하자 오라버니.”

아무래도 연이는 진짜 그놈의 비급이 궁금해서 안달이 난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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