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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치매대응반-30화 (30/122)

〈 30화 〉 무림치매대응반 30

* * *

그렇게 연이와 함께 느긋하게 오리를 뜯었다. 혹시나 검후까지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두 마리는 빼놓고. 이미 다 같이 몸을 섞은거나 마찬가지기도 하고 다들 연령대가 좀 되시다 보니 거리낄것도 없어서 옷을 벗고 이불 위에 누웠다. 그렇다고 떡을 친건 아니고.

“아, 나 그거좀 가르쳐 줘.”

“뭐를?”

“내공으로 한서불침을 이룬다거나. 그런것들?”

“으으음. 가르쳐 줄 수는 있는데.”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럼.

“아무것도 아냐. 음. 그냥.”

“걸리는게 있으면 괜찮아. 하다 보면 늘겠지.”

나도 당장 급하게 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이렇게 둘이서 살맞대고 누운김에 궁금하기도 해서 물어본 거니까.

“으으음. 오히려 그게 오라버니가 생각하는 무학의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무슨소리야?”

“내가 나이 이야기 하긴 싫지만, 아무래도 무림명숙입네 하고 높은 사람마냥 점잖게 에헴 거리고 살았던 입장에선 말야. 그, 무학의 심오함이라거나, 묘리라거나. 무슨 경전처럼 떠받들고 살았던 내용이긴 하거든?”

“아하.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내가 익힌 이 시장통 심법도 나름 심오한 구결은 있다. 그게 죄다 어디서 한 번 씩은 들어본 그럴싸한 소리들의 집합이라서 그렇지. 뭐 건곤이 합일하고 음양이 충돌하며 기운은 구름속의 용과 같고 어쩌고 저쩌고. 근데 그거…아, 아버지께는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버지가 평생을 아침저녁으로 구결을 읊으며 죽자사자 운기하셨어도 산적하나 때려잡기 버거운 내공이었다. 상승의 절학이 아닌 저잣거리의 토납법 수준이야 거기서 거기지.

어쨌거나, 종리연의 입장에서는 일생을 다 바쳐서 이룬 내공이고 경지인데, 그걸 나는 무슨 캠핑장비 쓰듯이 알려달라 보채고 있으니까. 본인 입장에서는 또 좀 뭔가 멜랑꼴리한 그런….

“무학이라는게 글쎄. 꼭 무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가?”

“수양이 중요할때는 뭐, 자연을 닮은 기운이 중요한거고. 사람 잡을때는 적보다 강해야 하는거고. 지금 나처럼, 추울때는 내공으로 따뜻하게 하는걸로도 충분한거 아닌가 싶어서. 나야 무공을 잘 모르니까 하는 이야기겠지만.”

이런것도 내가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깔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겠지. 애초에 무림에 떨어져서도 무공? 그게 뭔데 같은 느낌으로 살아왔으니까.

“전에 연이 네가 그랬었잖아?”

“뭘?”

처음 만나서 몸을 섞을 때, 뭐라고 했더라.

“모든게 변하고, 그 모든게 본질이라면서. 나한테는 맨날 내 일 아니다, 느긋하게 생각해라 하면서 정작 본인은 아직 다 못 벗어 난 거 아냐?”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빠진 연이의 콧잔등을 손으로 살짝 찔러봤다. 표정이 귀여워서. 그런데.

­ 푸화악!

연이를 중심으로 토굴벽의 잔모래가 순간적으로 비산했다. 이어서 막대한 기운이 터져나오고…. 진짜냐. 지금도 괴물같은 강함인데 또 터져?

“삼랑!”

“어? 언제 왔어?”

“지금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아냐 괜찮아.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걸.”

“아…그래보이긴 하네요.”

연이는 본격적으로 온 몸에서 금빛 광휘를 뿜어내며 허공으로 떠 올랐다. 옷을 미리 벗고 누워 있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지금 바닥에 깔려 있던 이불처럼 또 걸레짝이 되었겠지.

“세상에 이게….”

“아, 검후님도 오셨네요?”

안왔으면 싶었는데.

아니, 검후가 뭐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고 그렇다고 내가 밀어내고 싶다 그런건 아니고. 진짜로 그런건 아니다. 나한테 다짐하는 것 같지만 절대 아니다. 레알. 그냥 어. 연이랑 화란이만 있어도 앞으로 충분히 과분한 인생을 살아갈 것 같은데. 아, 일단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으으으으음!”

“아직 식사들 안 하셨지?”

“린이한테도 말 편하게 해요 삼랑.”

“아니 그래도 검후님께 어떻게….”

“편하게 하세요.”

그런것 치고는 아직 눈깔에 독기가 안 빠지셨는뎁쇼.

“일단 앉아. 앉으세요. 다시 불에 올리면 금방 따뜻해지니까.”

절반쯤 익힌 채 빼놨던 오리고기를 다시 꼬챙이에 꿰어 불 위에 올렸다. 본의 아니게 초벌 훈제를 한 것 처럼 되어 맛이 끝내줄거다.

“언니는 저렇게 둬도 괜찮아요?”

“응 뭘 좀 깨달았나봐.”

“삼랑이 또 뭐라고 했죠?”

“아니? 난 크게 별 말 안했어.”

“뭔가 이야기 했겠죠.”

“그거야 연이가 워낙 오성이 뛰어나니까 그런거 아니겠어?”

개떡같은 말에서도 뭔가를 찾는거지. 연이야 워낙 무공에 진지하니까. 저거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아직은 말을 안 해주니 알 수가 있나. 나한테 딱히 나쁠일은 아니겠지 싶어서 신경 끄고 있긴 하지만. 애초에 연이가 나한테 뭘 하겠다고 하면 그게 선의든 악의든 막을 수도 없을거고.

정작 나랑 상관도 없는 것 같은 무림고수들 치매문제는 후딱 해결해버리고 싶은데 연이한테 걸리는거는 신경끄고 있으니 대체 어떻게 된 판단기준인가 싶기도 하지만. 연이는 예쁘고 귀여우니까.

“이제 먹어도 될까요?”

“아, 얼른 먹어. 딱 좋네. 검후님도 좀 드시죠.”

오리 껍질 아래의 지방이 불에 달궈져 지글지글 끓어 오른다. 지금 저거 한입 깨물면 껍질이 바삭하게 부서지면서 육즙이 쭈욱 흘러나오고 쫄깃한 다릿살이….

“삼랑도 같이 드실래요?”

“아냐, 난 아까 먹었어.”

“같이…드시죠?”

“아뇨, 정말 괜찮아요.”

어우 검후씨는 부담스럽게 왜 이러시냐.

“아, 그보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

검후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걸 보면 잘 안됐나보다. 고기나 뜯자.

“잘 이야기 했어요. 부끄러워서 저래요 쟨.”

“아, 그래?”

뼈 부러졌다는 소검후가 쌍욕을 박았나보네.

“아니,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그냥. 음. 잘 끝내고 왔어요.”

“아닌 것 같은데?”

“그게….”

검후의 반로환동이 화근이었다고. 아까 나왔을때는 검후가 기억을 잃고 경지를 잃었다는 것 때문에 그냥 각에서 내보내는 걸로 끝이 났지만, 이게 또 맨들맨들해진 꿀피부로 반로환동에 경지 상승까지 이룬 채 사과를 하겠답시고 낯짝을 들이밀었으니….

“어휴 난리도 아니었어요. 아, 삼랑 이거 좀 드세요.”

“왜?”

“전 다리는 잘 안 먹어요. 기름져서.”

“벌써 관리하게?”

“끄으으으으응….”

뒤를 힐끔 돌아보니 연이는 아직도 저러고 있다. 아니 뭘 이번에 얼마나 큰 깨달음을 얻어서 이렇게 오래 걸리는거야?

“하여간 그래서, 어떻게 했어?”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요. 린이가 다….”

“사과했어?”

“…팼어요.”

“어?”

아우, 이 뇐네 이거 진짜 못 데리고 다니겠는데.

“원래, 검각이 좀 그래요. 린. 차 좀 마셔.”

“네.”

아니 태평하게 거기서 찻잔 들고 호로록 거리지 말고. 앞뒤 상황을 설명을 해야지. 어? 검각이 원래 그래요 하고 넘어갈 일이냐고 이게.

“사과하러 가서, 다 때려엎고 왔다고?”

“흠, 소녀가 미흡하나마 검후를 맡고 있는건, 검각에서 제일 강하기 때문이에요.”

“아니, 그거야…. 그러시겠죠.”

“무림이나, 검각이나. 결국 통하는건 하나입니다. 강자존(者?).”

그게 여기서 왜 나와요…. 맞는 말이긴 한데…. 아이고 두야.

“소검후에게는 정식으로 검후를 물려줬어요. 알아서 하겠죠.”

“그렇게 무책임하게 끝내라는게 아니라….”

“저는 사과 했어요. 상공의 말씀대로.”

이 여자는 또 왜 상공이래.

“편을 들자는건 아니지만, 삼랑 말씀대로 린이는 최대한 정중하게 사과했어요. 무릎도 꿇었는걸요.”

“무릎도?”

“…저도 정말 미안했단말이에요.”

“그럼 끝까지 미안하셨어야죠.”

“그러려고 했다니까!”

저, 저, 저봐라 저. 방금은 상공이라더니 금방 또 발끈한다.

“하여간,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저는.”

“그걸 꼭 시켜서 합니까….”

“삼랑, 린이도 결국 다 내려놓고 왔으니까 너무 그렇게 타박하지 말아요.”

“타박이 아니라…. 어휴. 일단 고기나 좀 드세요. 난리치고 오셨으면 배고프시겠네.”

“흐으으으응! 으흣!”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연이가 추임새를 넣는다. 표정도 편안하고 날뛰는 기운도 딱히 없으니 그냥 둬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상공소리는 집어 치우고. 마무리는 확실히 지은겁니까?”

“…네.”

“뭐 우리집안 일도 아니니까 그거는 그렇다치고. 화란이 너는 아까 연이한테 들으니까 혈라마 애들은 맞는 것 같다고?”

“아, 네. 그건 확실해요. 혈뇌음사(血雪音?)의 기운이에요.”

“그렇단 말이지….”

나도 소싯적에 무협지좀 읽었다면 읽은 사람이다. 전생의 아버지가 나를 맡기면 만화방에 가서 처박히던 삼촌 덕분에 근본부터 시작해서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다. 대충 이 중원무림에서 사고를 치면 얼추 마교 아니면 혈라마 애들이다. 특히 머리통쪽이나 강시가 엮이면 거의 십중팔구는 혈뇌음사 애들인 경우가 많은데, 이게 여기서도 적용이 될지는 미지수다.

“여기도 그, 혈라마 애들이 강시 끌고 막 밀고들어오고 그러니?”

“예전에는 그랬죠?”

“그럼 혹시, 이렇게, 고수들을 자기들이 만든 독에 중독을 시켜서, 강시로 부린다거나?”

혈라마들에 의한 무림침공! 그것도 무림의 전대 고수들을 치매를 가장해서 전력을 미리미리 약화시키고 강시로 부릴 시체까지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수를 썼다면?

“오라버니, 그건 아닐거야.”

“어…. 괜찮아?”

아 나름 신박한 추론인 것 같았는데 연이가 그걸 확 깨버리면서 느릿느릿 불 옆으로 걸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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