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무림치매대응반 19
* * *
“흥흥흥~.”
“쟨 뭐가 저렇게 좋대?”
“연이 너도 세상이 밝고 즐겁고 아무튼 그렇다며.”
나폴거리는 연노랑빛 경장 차림으로 초화란이 앞장서서 갈대밭을 걷고 있다. 한 손에는 갈대를 들고 허공을 휘휘 저어대고 폴짝폴짝 뛰는 걸음으로 콧노래까지 곁들여서. 그런 그녀를 보고 내 팔짱을 끼고 있던 종리연이 삐쭉거렸다.
“언니! 도가니가 시리지 않아요!”
“아, 그래 퍽이나 좋겠구나.”
자기도 처음에는 좋아 했으면서. 팽팽해졌다고. 초화란이 종리연에게 당주당주 하고 부르던 걸 이제는 외당주도 아니니까 그냥 언니로 호칭을 정리했다.
“오라버니. 이쯤에서 슬슬 쉬어갈까?”
“뭐? 얼마나 걸었다고?”
“오늘 걸어간걸로 하고 내일 뛰어가는 인생도 있는거야.”
지금 우리의 행선지는 보타암(???)이다. 종리연이 말했던 초화란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신분은 검각에 소속된 호법이라고 했다. 들어본적은 있는 신비문파다. 나름 유명하니까. 저자에 나도는 춘화집이나 불쏘시개에 심심찮게 붙는 설정이다. 검각의 누구누구고 검후의 몇대 제자고.
“그런데, 거기 호법이면 뭐 하는거야?”
“검각 밖으로 나다닐 일이나, 상단이랑 협상을 하거나 뭐 이런저런 밖으로 돌면서 해야 할 일들? 일부는 안에서도 활동 하는 것 같고.”
종리연은 쉬어가겠다던 말이 진담이었는지 그 자리에서 갈대밭 아래로 푹 땅을 팠다. 그제서야 초화란이 기운을 느끼고 뒤돌아보았다.
“어? 벌써?”
“그냥, 오라버니 끼고 옆에 누워있고 싶네.”
“그럼 다음에는 마차를 사요 언니.”
“그럴까?”
생각해보니 마차도 편할 것 같다. 그런데, 급하게 이동해야 할 경우에 마차까지 같이 이동할 수 있나? 중원이 일부 대로들을 제외하고는 제법 험지가 많아서 마차로 이동하기가 썩 쾌적할것 같진 않은데.
“검각에서 달라그래도 되고, 돈도 많으니까.”
“니 돈이니 그게?”
“무림맹 외당 활동 자금이면 저도 포함이죠!”
두 사람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아늑한 토굴은 순식간에 완성되고 있었다. 이 노괴들. 천막치는 것 보다 이게 편하다니. 설마 진짜로 그런건 아니겠지만. 초화란과 함께 소주를 나선 직후 심심해서 장난처럼 만들어 봤던 토굴이 의외로 괜찮아서 가끔씩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해 놓고 안에서 불을 피우면 정말 따뜻하거든. 한국의 찜질방 느낌도 나고.
“끝! 오라버니. 오늘은 쉬자!”
“오늘’은’ 이라고 하지마. 오늘’도’ 잖아.”
“뭐 어때. 시간은 많은데.”
“그래요. 정 불안하면 저와 언니가 삼랑과 함께 경공으로 뛰어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은 내가 아니라 니들이 해야지. 검각으로 가는 이유는 그 위명도 찬란한 검후(??)때문이다. 검. 후. 딱 두글자면 설명되는 인물. 검각의 호법인 초화란의 상태가 삐꾸인 상태였기에 그간 연락이 닿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걱정되는 김에 간다고. 겸사겸사 바다도 보고.
“좀 걱정이네요. 작년까지는 그래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 맛가고 나서는?”
“맛이 가다뇨.”
두 사람은 토굴안에 화로를 설치하고 바닥에 푹신한 요를 깔았다. 입구까지 딱 봉하고 나면. 따끈하고 아늑한 우리의 보금자리다. 오늘은이 아니라, 사실 여기서 며칠이나 뭉개다 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종리연이고 초화란이고 아주 그냥 한 번 자리를 깔면 엉덩이가 커서 그런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삼랑?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검후께서는 괜찮으실거에요.”
“맞아 오라버니. 그 여자도 나 못지 않게 괴물이니까.”
“아니, 나랑 검각은 아무 관계도 없는데 내가 걱정을 왜 해?”
솔직히 니들도 그냥 될대로 되라고 움직이는 중이면서.
“아, 궁금한게 있는데.”
“네 삼랑.”
이걸 이제 물어본다. 초화란이 검각 호법이란 이야기를 일주일 전에 들었는데.
“검각의 호법이 왜 하오문에서 회주같은걸 하고 있는거야?”
“하오문이라뇨. 진룡회라니까.”
“그래 진룡회.”
“흐음…. 검각이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신비문파라건 아시죠?”
“대충 들어서 알긴 하지.”
깔아 놓은 요 위로 올라가 앉았다. 종리연은 나와 화란이 대화를 시작하자 두툼한 겨울옷을 벗어 던지고 얇은 속옷 차림으로 옆에와서 들러붙는다.
“밖에서야 뭐 우리가 동성애를 한다는 둥, 어디서 남자를 납치해와서 아기를 가지고는 남자를 없앤다는 둥 별 소리를 다 하지만 사실은 거의 다 고아로 충원해요.”
“아…. 그래?”
“네. 저도 고아구요. 그래서 복건이나 강소 안휘 정도까지는 저희 호법들이 나가 있어요. 기루에 얼마나 많은 여자아이들이 버려지는 줄 아세요?”
나야 모르지.
“그래서 기루고, 세를 불리다 보니 사람이 모여서 앞에서게 되더라구요.”
딱히 뭔 암약 단체라거나, 그런 의도가 아니라 보타암 인근에서 기루에 버려지는 여아들을 수급해서 무재가 없으면 비구니로, 무재가 걸출하면 검각으로 집어 넣는다고 한다. 무림맹에서는 검각소속임을 밝히면 워낙에 꼬이는 남자들이 많아서 딱히 밝히지 않았고.
“검각출신이라 그런지 쟤도 칼질은 잘 해.”
“칼질이라뇨 언니.”
“칼질이지 그럼. 닭잡고, 소잡고, 사람잡는 칼질이지. 다를게 뭐 있나?”
종리연이 그냥 막 던지는 것 같은데 이거 은근히 말에 현기가 느껴지는 걸 보면 고수는 고수다.
“누워, 누워. 누워서 이야기 해. 오라버니도 확 벗겨버리기 전에 옷이나 벗어요.”
“참, 거. 남사스럽게.”
“젊을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도 토굴안은 따뜻하고 아늑했기에 잽싸게 옷을 벗어 옆에 내려 놓고 드러 누워버렸다. 종리연도 슬립같은 속옷을 홀랑 벗어 내팽개치고, 초화란까지 알몸이 되어 함께 누웠다.
“아, 화란아. 생각좀 해 봤어?”
“일단은 가서 봐야 확실 할 것 같아. 나도 그 상태를 제대로 못 봤으니까.”
검각으로 가는 이유는 검후가 맞지만, 사실 단순히 걱정된다는 이유만으로 가는것은 아니었다. 검각에는 많은 노고수들이 있으니까. 혹시나 많은 이들이 노망이 난 상태라면 표본조사를 할 수 있을것 같아서였다.
초화란은 치료가 모두 끝나고 나서 새롭게 얻은 경지를 반추하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어찌보면 새로운 실마리일수도 있고. 종리연이 그때 초화란에게 종리연임을 증명하기 위해 던졌던 말 중에 혈라마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걸 듣고 서장에서 혈라마와 충돌했을 때 크게 상처입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게 왠지 자꾸 마음에 걸려서 곱씹고 있었는데….
“확실히,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느낌은 맞는 것 같아요.”
“끄응…. 혈라마 놈들은 그때 씨몰살을 시킨게 맞을텐데.”
“혈라마놈들 짓일까요?”
“아직은 속단하기 일러.”
본인이 그 독에 감염되어 있을때의 상태를 명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회복하고 나서 느낌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좀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하고. 그렇게 후보지를 보자면, 사실 강소나 절강쪽에는 이렇다 할 명문정파도 없거니와 있다손 치더라도 새파랗게 젊은 남녀 세명이 가서 느그 노망환자좀 봅시다. 하면 문전박대 가능성이 크다는거지. 이 상태의 인물들이 득실거리는 무림맹 남경지부에 재침투하는건 논외. 혹시나 암약단체가 지켜보고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리저리 고민하다 보니 초화란의 이름값이 먹힐 검각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역시 시간이 급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빨리 가야 하는거 아냐? 검각의 고수들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하루 이틀 빨리 간다고 뭐 크게 달라지겠어요?”
“화란아, 오라버니는 우리가 만족스럽지 않은가봐. 검각의 노고수들도 탐을 내나?”
“조금 더 힘을 내야겠어요. 검후라면 조금 위험하네요.”
아니, 힘 내지마라. 지금도 기운이 쭉쭉 빨려서 죽을 것 같은데.
막 무림에 존재하는 치매음모를 밝혀내고 중원무림을 지키겠다, 사명감에 불타서 앞만 보고 달리는것도 곤란한 일이지만, 종리연과 초화란은 느긋해도 너무 느긋하다. 하루 걸어가다가 삼일쯤 뒹굴다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서두르면 충분히 차이가 크게 벌어질 만 한 시간이다.
“확실히 오라버니가, 또래에 비해서 진중한 면이 있다고는 해도 젊긴 젊어. 그치?”
“네 언니. 지금도 안달복달 하는거좀 봐요.”
“오라버니께서는 이 일을 해결하고 이름을 날릴 생각이라도 하시는 걸까?”
“내가? 왜?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데?”
진짜다. 나는 인생의 모토가 안빈낙도인 사람이다. 그런걸 생각했으면 환생임을 자각한 순간부터 열공빡공해서 명문정파에 속가제자라도 시켜달라고 했겠지.
“그러면 급할거 없잖아 오라버니?”
“맞아요 삼랑. 아니면 정말로 검각의 여고수들이나 어린아이들에게 관심이 있는건가요?”
“그럴리가 있냐….”
지금 니들 둘도 감당이 안되는 마당에. 종리연과 초화란이 좀 더 끈적한 몸동작으로 내 몸에 달라붙어 꿈지럭거리기 시작했다.
“음…. 이게 니들 일이라고 생각하다 보니까….”
“예? 이게 왜 저희 일이에요?”
“그러게. 우리는 다 나았는데.”
어…. 그런가?
“누차 말하지만 오라버니, 그냥 궁금해서 하는거라니까.”
“맞아요 삼랑, 저흰 이미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데요.”
“이걸 해결하고 피의 복수를 하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어. 기대하지 마.”
“누가 그런걸 기대하냐?”
“그럼 그냥 즐기는거죠. 솔직히 작금의 무림이라면 저희 둘을 뚫고 삼랑께 해를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응. 그냥 돈이나 쓰고 유람이나 다니고. 그런데 그냥 다니면 재미 없으니까 겸사겸사 궁금증도 풀고. 그치?”
“네에.”
어. 음. 양쪽에 들러붙은 두 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손길에 온 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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