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치매대응반-15화 (15/122)

〈 15화 〉 무림치매대응반 15

* * *

아무리 그래도 안쪽까지 손을 넣어서 닦기는 뭐해서 최대한 엄…. 시선을 돌리고 꼼꼼하게 닦았다.

“제대로 보고, 저기 물 있으니까 물도 적셔서 확실하게 닦아줘.”

“그만 하면 되었네.”

“어? 정신이 드세요?”

닦는 중에 정신이 들었는지 초화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불쌍하다고 말하며 탄식하던 목소리는 역시 초화란의 목소리였던 것 같다.

“조금 아까부터. 그쪽의 소저도 이제 그만하시게. 독기는 괜찮을 것 같구만.”

“일단 그래도 몸에 보이는건 다 닦아 두는게 좋을거야 화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어린처자가 함부로 입에 올릴만큼 가벼운 이름은 아닐세. 소협도. 아무리 늙어 쪼그라진 몸이라지만 외간남자 앞에서 샅까지 내보이기는 부끄럽군. 물러나 주게.”

이 할매 아직 본인 몸이 어떤 상태이신지 모르나보다.

“흠. 화란. 지금 상태를 잘 모르나본데.”

“그만. 내가 지금 자네들이 핍박한다면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임은 잘 알고 있음이야. 말 하는대로 따를테니 최소한의 체면은 보아주게나.”

“후우. 오라버니. 화란이 입을 만 한 옷이나 좀 찾아 봐 줘.”

“그래.”

아마도 평소에 여기서 생활을 하셨던 것 같으니 똥칠에 대비한 옷 같은건 있을거다. 종리연이 초화란에게 간섭하던 것을 멈췄는지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서는 것을 확인하고 천으로 대충 눈에 보이는 부분의 노폐물을 닦았다. 초화란은 몸을 닦는 나를 딱히 신경쓰지 않고 구석탱이에 구겨진 마님에게로 다가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불쌍하구나…. 불쌍해. 어찌 이리 모진 팔자란 말인고….”

“저, 대모님 여기 옷을 좀….”

뭐라 부를 말이 애매해서 나도 대모님이라고 불렀다. 다행히 바로 옆에 있던 서랍장에서 펑퍼짐한 옷을 찾았다. 딱 봐도 환자용 옷이라서 초화란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초화란은 옷을 받아 대충 옆에 놓고 불쌍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마님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이러고 보니까 딸이 아픈 어머니 쓰다듬는 모양새네.

“자리를 바꾸지. 나를 어디로든 좀 데려다 주게.”

“여기서 이야기 하셔도….”

“아니, 내가 또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면 저 아이는 내가 죽을때 까지 나를 보아야 하지 않나. 거기 소저.”

“어…. 나?”

“말만한 처자가 말뽄새하고는 에잉. 나좀 업게.”

“하…. 참 나. 화란이 너 하여간 가서 보자.”

내가 건네준 옷을 대충 걸친 초화란은 회한이 찐하게 느껴지는 눈빛으로 방 안을 돌아보았다. 어쨌거나 맨정신을 차리고 있을때의 기억은 있는 것 같으니 투병생활을 하던 방을 보고 느끼는 것이 많은 모양이다. 근데 진짜 지금 본인 상태를 모르나?

“대체 어느집 여식인고?”

“오라버니도 빨리 와요. 이러다 깨겠어.”

“어…. 응.”

사람 하나를 허공에 매달고 있어도 너끈한 종리연인 만큼, 초화란을 등에 업은 상태에서도 나를 안아드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진룡객잔의 3층 창가에서 발을 툭 구르는 것 만으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흐음…. 대장부가 되어서 한심한지고.”

“흥. 누구덕분에 죽다 살아난 줄을 모르고.”

“처자는 아까부터 무에 그리 불만인겐가? 뿔난 망아지마냥….”

“오라버니, 누가 더 예뻐? 응?”

이 타이밍에?

“우…우리 연이가 고금제일미지! 아무렴!”

“그렇게 누가 시킨 것 마냥 대답하지 말고 잘 생각하고 다시 말해 보란 말이야.”

팔락팔락 하고 옷자락이 나부끼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서 달빛과 길가의 불빛만이 남아있는데, 그 허공을 느긋하게 날아내리고 있으니 운치가 기가 막힌다.

“이 노구와 피어나는 처자가 어디 비교가 될 말인가? 흘흘…. 용모는 아름다운 처자가 투기가 심하구나. 시원찮은 소협과 꼭 맞는 짝일세.”

초화란이 종리연의 등에 업힌 채 흘흘…하고 웃었다. 진짜 흘흘 하고. 음. 신기하네. 종리연은 까드득하고 이가는 소리를 내며 차갑게 웃는다. 방금 이거 그냥 여기서 떨궈버릴까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하여간. 잘 생각해 보라고 하면 음. 일단 몸매. 몸매는 이런말하긴 뭣 하지만 초화란쪽이 조금 더 괜찮은 것 같다. 아까 닦을때 보니 가슴이 어우야. 종리연도 가느다란 허리에 비하면 폭력적인 가슴이었는데 초화란이 한 술 더뜬다. 골반도 그렇고.

얼굴이 예쁜걸로 따지자면 그쪽은 종리연 승.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단정하고 살짝 서늘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종리연이 내 취향이다. 초화란은 좀. 강아지상 같은 느낌으로 눈매가 살짝 처지고 어딘지 모르게 이목구비가 포근한 인상이다. 아, 물론 둘다 길에 세워놓으면 쳐다보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남자가 최소 대대급은 될 거다. 감히 내가 저울질을 할 자격이나 있을지.

“그래도 나는 우리 연이가 제일 예뻐.”

“좋아. 망설임없이 대답했으니까 용서해줄게. 오라버니.”

“어…. 응 고맙다.”

종리연님께서 용서해준다고 하시면 감사히 받아야지. 내가 뭐라고. 종리연과 초화란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밤하늘을 쳐다봤다. 이제 고도도 많이 낮아졌고 성벽도 거의 벗어난 느낌이다. 조금 있으면 오늘 우리가 야숙을 위해 천막을 펼쳐놓은 곳 까지 도달할 것 같다.

아까 오후에 느꼈던 고민같지도 않던 고민은 많이 줄어 들었다. 내가 익히고 있는 이 심법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쥐똥만한 내공수련 성취의 반대급부로 특수한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못 이기는 척 종리연 옆에 붙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후우. 야 내려와.”

“아, 응. 미안.”

“아니, 오라버니 말고. 화란이.”

그렇게 밤하늘을 날아서 천막앞의 공터에 내려 앉았다. 딱히 누가 들렀다 가거나 뭘 건드리거나 한 건 없는 것 같았다. 있는거래봐야 옷가지랑 건량 정도가 다라서 천막 자체만 안 가져갔으면 뭐. 종리연을 안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땅바닥에 내려 섰다. 초화란은 그대로 업혀있다가 종리연이 뭐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내려왔고.

“허허…. 참…. 입이 걸구만. 무공만큼 인품은 따라오지 못하는 군 그래.”

“후우…. 야, 아직 상황 파악 안되냐? 나 누군지 모르겠어?”

“내가 정신이 오락가락 한 지가 몇년 되어서…. 다…당주?”

아까 아름다운 어쩌고 하기에 면사 밑에 있는 종리연의 얼굴을 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종리연이 똑바로 앞에 서서 면사를 끌어내리고 발빛 아래에 맨 얼굴을 드러내자 초화란의 움직임이 딱 하고 멈춘다.

“그…그럴리가? 당주는 나보다 먼저 노망이 났을텐데…?”

“내가 누차, 상황파악을 다 하기전에는 입을 섣불리 놀리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치?”

“이게 무슨…혹시 내가 이미 죽은건가? 여보게 소협…. 이게 어찌된?”

“쓰읍. 거 말 많네 진짜. 니 팔이랑 덜렁거리는 젖가슴좀 보지?”

“에그머니나!”

에그머니나라니. 신선하네. 나는 천막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두 사람이 하는 양을 보며 건량을 꺼내 뜯기 시작했다. 팝콘이 있으면 좋았을텐데.

“어찌된일입니까 당주? 제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입니까?”

“아직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긴 하지만 너 대충 다 나았어.”

“예에?”

“얼빠진소리내지 말고. 앞이나 좀 가려라. 우리 오라버니 눈 아프시겠다.”

아니 뭐 어느쪽이냐 하면 속에 든 알맹이야 어쨌건 간에 움직일때 마다 가슴이 푸릉푸릉 하고 허벅지 사이의 비처가 언뜻언뜻 비쳐서 몹시 보기 좋은데. 초화란이 내쪽을 힐끔거리고는 앞 섶을 가린다. 내가 분명 아까 치마도 같이 건네줬던것 같은데 애기들 배냇저고리 같은 윗도리만 있고 아래는 안 입고 있었다. 가린다고 가려봐야 뽀얀 엉덩이가 그대로 달빛을 반사하며 빛난다.

“진짜…. 당주가 맞는겁니까?”

“뭐, 너 저기 서장에서 혈라마한테 한대 얻어맞고 똥지렸던 이야기까지 꺼내줘야 믿을거야?”

“아니 좀…. 그게 언제적 이야긴데 그러십니까.”

“하…. 너 일단 말투부터 좀 고쳐라. 그 얼굴로 그러니까 적응을 못하겠다. 오라버니 심정이 이해가 가네.”

일단 겨울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모닥불이라도 좀 피워야겠다. 저기 뭐…. 아마 초화란도 지금 당장 기운이 좀 빠져있어도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에 성공했으니까 당연히 한서불침정도는 패시브로 달고 계실테고. 아니 그런데 이게 그렇게 흔하게 벌어질 일인가?

“연아. 일단 설명부터 좀 해 주면 안될까?”

“오라버니가 궁금하다니 당연히 해 줘야지.”

“저기…. 대협께서는 실례지만….”

왜 저기 제 호칭이 갑자기 대협으로 격상이 됩니까?

“실례같으면 묻지를 말아라 화란아. 오라버니는 우리같은 노괴가 아니란다.”

“아 그러면….”

“그만. 내가 지금 오라버니께 설명한다고 했잖니? 너도 이리로 와서 앉아.”

무림맹 외당주 시절에 동료라고 하더니 지금 보는건 무슨 이등병 취급인데. 초화란은 바짝얼어서 천막 안쪽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았다. 그. 좀 그런데 가리면 안될까. 무릎담요느낌으로 건네주려고 이불을 더듬거리고 있으니 냉큼 종리연이 들어와서는 내 무릎위에 앉았다. 왜 이러세요?

“아까 낮에 이거 독이라고 내가 이야기 했잖아?”

“그랬지.”

“그래서, 내 머릿속에 있던게 튀어나왔을 때의 감각과 화란이의 기운을 살펴서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막상 이 독을 끄집어내려고 해 보니 이게 그렇게 쉽지가 않더라는 이야기였다.

* * *

0